[취재후] ‘13살 그림자 아이’ 기억하세요? 주민번호가 생겼습니다

입력 2022.04.21 (07:00) 수정 2022.05.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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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있습니다. 바로 '주민등록 번호' 입니다.

아직도 한국에는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주민등록 번호를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일명 '그림자 아이들' 입니다.

지난 1월 KBS가 보도한 13살 아이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등교는커녕 예방접종 조차 한 적 없던 아이의 최근 근황이 확인돼 전해드립니다.

■그림자 아이, 어떻게 발견됐나?

지난해 10월 중순, 한 남성이 10살 남짓한 아이를 데리고 서울 은평경찰서를 방문했습니다. 이 남성은 아이의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아이는 출생 신고조차 돼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어머니와 단둘이 서울 은평구 반지하 방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와 사실혼 관계였던 이 남성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이 집을 방문했다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5일, 어머니가 아이만 두고 집을 나갔습니다. 집주인에 따르면 1년 넘게 공과금과 방세를 내지 않아, 400만 원의 보증금을 모두 써 버린 뒤였습니다. 아이는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친자 확인까지…주민등록 번호 생겼다

남성은 경찰 신고 당시 아이에 대한 DNA 검사도 요청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신의 자녀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 초 DNA 검사를 진행했고, 지난 2월 이 남성이 아버지가 맞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DNA 결과가 나온 뒤, 곧바로 아이를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했습니다. '그림자'로 지냈던 아이의 주민등록 번호가 드디어 생긴 겁니다.

아이는 발견 이후부터 줄곧 아동양육시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아이가 원한다면 만 18세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다고 합니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구청에 따르면 지난달에는 수두와 소아마비, 일본 뇌염 등의 예방주사도 맞았습니다. 보통 12개월 전후 아기들이 맞는 주사를 13살이 돼서야 맞게 된 셈입니다.

■글자 쓰는 건 아직 어려워…"벌써 단짝 친구도 생겼어"

아이는 이달 초부터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교육청이 아이의 학습 능력과 발육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나이에 맞는 학년에 진학 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13살의 아이가 저학년으로 입학하면, 발육 상태의 차이가 커 오히려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습니다. 구청에 따르면 건강검진에서 이 아이는 또래 평균의 키와 몸무게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유튜브만 보면서 글을 깨우친 아이는, 읽고 말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글을 쓰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데는 아직 어려움이 있어, 학교와 양육시설에서 보충수업을 진행 중입니다.

구청 관계자는 "투정도 부리지 않고, 벌써 단짝 친구가 생겼을 만큼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몇 명인지도 모르는 '그림자 아이'…출생통보제는 언제?

올해 1월 제주도에서도 출생신고 없이 투명인간처럼 살아온 24살, 22살, 15살 세 자매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처럼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 되지 않은 사람에 대한 통계는 없습니다.

지난해 한 시민단체에서 아동복지시설에 머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긴 합니다. 2년 간 각 시설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입소한 아이들은 146명이었습니다. 시설에 머물지 않는 아이들까지 추산하면, 그 수는 더 늘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지자체에 통보하고, 지자체는 직권으로 아이의 출생을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는 방안입니다.

지난달 법무부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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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13살 그림자 아이’ 기억하세요? 주민번호가 생겼습니다
    • 입력 2022-04-21 07:00:27
    • 수정2022-05-15 10:45:42
    취재후·사건후

국내에선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있습니다. 바로 '주민등록 번호' 입니다.

아직도 한국에는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주민등록 번호를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일명 '그림자 아이들' 입니다.

지난 1월 KBS가 보도한 13살 아이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등교는커녕 예방접종 조차 한 적 없던 아이의 최근 근황이 확인돼 전해드립니다.

■그림자 아이, 어떻게 발견됐나?

지난해 10월 중순, 한 남성이 10살 남짓한 아이를 데리고 서울 은평경찰서를 방문했습니다. 이 남성은 아이의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아이는 출생 신고조차 돼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어머니와 단둘이 서울 은평구 반지하 방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와 사실혼 관계였던 이 남성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이 집을 방문했다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5일, 어머니가 아이만 두고 집을 나갔습니다. 집주인에 따르면 1년 넘게 공과금과 방세를 내지 않아, 400만 원의 보증금을 모두 써 버린 뒤였습니다. 아이는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친자 확인까지…주민등록 번호 생겼다

남성은 경찰 신고 당시 아이에 대한 DNA 검사도 요청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신의 자녀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 초 DNA 검사를 진행했고, 지난 2월 이 남성이 아버지가 맞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DNA 결과가 나온 뒤, 곧바로 아이를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했습니다. '그림자'로 지냈던 아이의 주민등록 번호가 드디어 생긴 겁니다.

아이는 발견 이후부터 줄곧 아동양육시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아이가 원한다면 만 18세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다고 합니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구청에 따르면 지난달에는 수두와 소아마비, 일본 뇌염 등의 예방주사도 맞았습니다. 보통 12개월 전후 아기들이 맞는 주사를 13살이 돼서야 맞게 된 셈입니다.

■글자 쓰는 건 아직 어려워…"벌써 단짝 친구도 생겼어"

아이는 이달 초부터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교육청이 아이의 학습 능력과 발육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나이에 맞는 학년에 진학 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13살의 아이가 저학년으로 입학하면, 발육 상태의 차이가 커 오히려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습니다. 구청에 따르면 건강검진에서 이 아이는 또래 평균의 키와 몸무게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유튜브만 보면서 글을 깨우친 아이는, 읽고 말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글을 쓰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데는 아직 어려움이 있어, 학교와 양육시설에서 보충수업을 진행 중입니다.

구청 관계자는 "투정도 부리지 않고, 벌써 단짝 친구가 생겼을 만큼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몇 명인지도 모르는 '그림자 아이'…출생통보제는 언제?

올해 1월 제주도에서도 출생신고 없이 투명인간처럼 살아온 24살, 22살, 15살 세 자매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처럼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 되지 않은 사람에 대한 통계는 없습니다.

지난해 한 시민단체에서 아동복지시설에 머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긴 합니다. 2년 간 각 시설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입소한 아이들은 146명이었습니다. 시설에 머물지 않는 아이들까지 추산하면, 그 수는 더 늘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지자체에 통보하고, 지자체는 직권으로 아이의 출생을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는 방안입니다.

지난달 법무부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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