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증거’ CCTV 버린 어린이집 원장 무죄…교사는 ‘증거불충분’?
입력 2022.04.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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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의 한 어린이집 외부에 CCTV 촬영 중임을 알리는 안내가 붙어 있는 모습.
■ 학대 장면 담긴 CCTV 저장장치, 바다·강에 내다 버린 원장
2020년 7월, 경남 창원의 한 민간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습니다. 보육교사 2명이 아동 3명을 신체적,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내용입니다.
경찰은 곧장 해당 어린이집을 찾아가 핵심 증거인 CCTV를 확인했습니다. 학대로 의심되는 영상이 들어 있었고, 경찰은 핸드폰으로 일부를 촬영해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경찰은 학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원장에게 앞서 60일 치 영상이 담긴 저장장치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원장은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보육교사들에게 불리한 증거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영장을 받아 저장장치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경남 창원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CCTV 저장장치 3개를 버린 바닷가.
영장이 나오기 전, 원장은 저장장치를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증거 훼손 작업은 은밀하게 이뤄졌습니다.
먼저 자정을 넘긴 새벽, 어린이집에 들러 저장된 녹화 영상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이어 CCTV 관리 업체 직원을 불러 저장장치 분리 방법을 물어본 뒤 저장장치 4개를 떼어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낙동강에 버렸고, 나머지 3개는 어린이집과 비교적 가까이 있는 바닷가에 버려 증거를 훼손했습니다.
■ 증거 훼손한 원장 '영유아보육법 위반' 기소…법원 "무죄"
검찰은 원장이 어린이집 영상장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영유아보육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검찰이 적용한 조항은 영유아보육법 벌칙 54조입니다.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영상정보를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당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지난 14일 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스스로 저장장치를 떼어내 바다와 강에 던져 훼손한 원장의 경우, 영유아보육법 벌칙에 나온 '훼손당한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장장치를 다른 사람이 훼손되도록 원장이 내버려 두거나 방치했다면 죄를 물을 수 있지만, 직접 영상장치를 훼손하고 버린 건 처벌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법원.
이번 판결이 있기 한 달 여 전, 대법원이 창원 어린이집과 비슷한 울산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2017년 울산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교사의 학대를 의심한 부모로부터 CCTV 영상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 수리업자를 불러 저장장치를 버리고, 새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이 원장은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쟁점은 '훼손당한 자'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1심 법원은 원장이 '훼손당한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은 '훼손당한'의 대상은 어린이집 운영자가 아닌 CCTV 영상이라고 해석해, 무죄를 뒤집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은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영유아보육법의 처벌 조항과 관련해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한 자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것은 규정 체계나 취지에 비추어보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직 1심판결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창원 어린이집 원장의 CCTV 훼손도 유죄가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 경찰 "원장 형법상 증거인멸 혐의 적용 못 해"
증거가 될 수 있는 CCTV를 훼손한 원장에게 다른 법률을 적용할 수는 없었을까요?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과 친족간의 특례) ①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경남 창원 어린이집 원장은 자신이 고용한 보육교사에게 불리한 증거가 담긴 영상자료를 바다에 버려 증거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형법에서는 증거인멸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데요.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원장이 아동학대 장면이 담긴 CCTV 저장장치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경남 창원의 한 어린이집.
당시 보육교사 2명은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습니다. 또한, 해당 어린이집 원장 역시 아동학대를 예방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같은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경찰은 원장이 증거를 인멸한 사실은 명백하지만, 타인의 형사사건이 아닌 자신의 형사사건에 대해 증거를 인멸했기 때문에 형법상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창원 어린이집 보육교사 2명을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넘겼지만, 검찰은 혐의 없음 처분했습니다.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9조(안전조치의무)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가 분실ㆍ도난ㆍ유출ㆍ위조ㆍ변조 또는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내부 관리계획 수립, 접속기록 보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적ㆍ관리적 및 물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
저장장치를 고의로 훼손해 버린 행위를 아예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법률인 개인정보보호법에는 CCTV 등 개인정보가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다하지 않은 관리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창원 사건의 경우, 검찰이 2심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적용할지 아직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게 되면, '학대' 부분과의 관련성이 모호해져, 어린이집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감독기관의 행정처분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 화면.
■ CCTV 영상은 '학대의 결정적 증거' …"법 개정 서둘러야"
대법원이 CCTV 저장장치를 스스로 훼손한 사건에 대해 영유아보육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앞으로 창원, 울산 사건과 유사한 사건은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어린이집 학대 논란이 불거지면 어린이집 측에서 CCTV를 훼손해버려,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동학대 범죄에서 CCTV 영상은 혐의 입증의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2019년 거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도 경찰의 CCTV 전수 분석으로 피해자가 1명에서 18명까지 늘었습니다. 영유아들은 말이나 의사 표현이 서툰 경우가 많아 피해 진술이 어렵고, 특히 물리적 상처 등이 남지 않는 정서적 학대의 경우 영상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과실로 인해 영상정보를 훼손당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지만, 고의로 훼손할 경우 영유아보육법으로는 처벌할 수조차 없고, '훼손당한 자'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도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한 자'에 대한 문구를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돼 법 개정을 깊이있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개정 시점입니다. 수사기관들은 이번 사례를 통해 학대가 의심되는 어린이집의 경우 CCTV를 고의로 훼손하는 일이 잇따를 수 있다며 법 개정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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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대 증거’ CCTV 버린 어린이집 원장 무죄…교사는 ‘증거불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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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4-21 07:00:28
■ 학대 장면 담긴 CCTV 저장장치, 바다·강에 내다 버린 원장
2020년 7월, 경남 창원의 한 민간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습니다. 보육교사 2명이 아동 3명을 신체적,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내용입니다.
경찰은 곧장 해당 어린이집을 찾아가 핵심 증거인 CCTV를 확인했습니다. 학대로 의심되는 영상이 들어 있었고, 경찰은 핸드폰으로 일부를 촬영해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경찰은 학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원장에게 앞서 60일 치 영상이 담긴 저장장치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원장은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보육교사들에게 불리한 증거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영장을 받아 저장장치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영장이 나오기 전, 원장은 저장장치를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증거 훼손 작업은 은밀하게 이뤄졌습니다.
먼저 자정을 넘긴 새벽, 어린이집에 들러 저장된 녹화 영상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이어 CCTV 관리 업체 직원을 불러 저장장치 분리 방법을 물어본 뒤 저장장치 4개를 떼어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낙동강에 버렸고, 나머지 3개는 어린이집과 비교적 가까이 있는 바닷가에 버려 증거를 훼손했습니다.
■ 증거 훼손한 원장 '영유아보육법 위반' 기소…법원 "무죄"
검찰은 원장이 어린이집 영상장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영유아보육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검찰이 적용한 조항은 영유아보육법 벌칙 54조입니다.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영상정보를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당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지난 14일 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스스로 저장장치를 떼어내 바다와 강에 던져 훼손한 원장의 경우, 영유아보육법 벌칙에 나온 '훼손당한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장장치를 다른 사람이 훼손되도록 원장이 내버려 두거나 방치했다면 죄를 물을 수 있지만, 직접 영상장치를 훼손하고 버린 건 처벌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번 판결이 있기 한 달 여 전, 대법원이 창원 어린이집과 비슷한 울산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2017년 울산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교사의 학대를 의심한 부모로부터 CCTV 영상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 수리업자를 불러 저장장치를 버리고, 새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이 원장은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쟁점은 '훼손당한 자'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1심 법원은 원장이 '훼손당한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은 '훼손당한'의 대상은 어린이집 운영자가 아닌 CCTV 영상이라고 해석해, 무죄를 뒤집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은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영유아보육법의 처벌 조항과 관련해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한 자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것은 규정 체계나 취지에 비추어보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직 1심판결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창원 어린이집 원장의 CCTV 훼손도 유죄가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 경찰 "원장 형법상 증거인멸 혐의 적용 못 해"
증거가 될 수 있는 CCTV를 훼손한 원장에게 다른 법률을 적용할 수는 없었을까요?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과 친족간의 특례) ①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경남 창원 어린이집 원장은 자신이 고용한 보육교사에게 불리한 증거가 담긴 영상자료를 바다에 버려 증거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형법에서는 증거인멸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데요.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보육교사 2명은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습니다. 또한, 해당 어린이집 원장 역시 아동학대를 예방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같은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경찰은 원장이 증거를 인멸한 사실은 명백하지만, 타인의 형사사건이 아닌 자신의 형사사건에 대해 증거를 인멸했기 때문에 형법상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창원 어린이집 보육교사 2명을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넘겼지만, 검찰은 혐의 없음 처분했습니다.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9조(안전조치의무)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가 분실ㆍ도난ㆍ유출ㆍ위조ㆍ변조 또는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내부 관리계획 수립, 접속기록 보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적ㆍ관리적 및 물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
저장장치를 고의로 훼손해 버린 행위를 아예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법률인 개인정보보호법에는 CCTV 등 개인정보가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다하지 않은 관리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창원 사건의 경우, 검찰이 2심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적용할지 아직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게 되면, '학대' 부분과의 관련성이 모호해져, 어린이집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감독기관의 행정처분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 CCTV 영상은 '학대의 결정적 증거' …"법 개정 서둘러야"
대법원이 CCTV 저장장치를 스스로 훼손한 사건에 대해 영유아보육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앞으로 창원, 울산 사건과 유사한 사건은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어린이집 학대 논란이 불거지면 어린이집 측에서 CCTV를 훼손해버려,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동학대 범죄에서 CCTV 영상은 혐의 입증의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2019년 거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도 경찰의 CCTV 전수 분석으로 피해자가 1명에서 18명까지 늘었습니다. 영유아들은 말이나 의사 표현이 서툰 경우가 많아 피해 진술이 어렵고, 특히 물리적 상처 등이 남지 않는 정서적 학대의 경우 영상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과실로 인해 영상정보를 훼손당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지만, 고의로 훼손할 경우 영유아보육법으로는 처벌할 수조차 없고, '훼손당한 자'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도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한 자'에 대한 문구를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돼 법 개정을 깊이있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개정 시점입니다. 수사기관들은 이번 사례를 통해 학대가 의심되는 어린이집의 경우 CCTV를 고의로 훼손하는 일이 잇따를 수 있다며 법 개정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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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원 기자 pra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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