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대 씨는 왜 전동휠체어를 타고 화순에서 광주를 넘어왔나?

입력 2022.04.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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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인 김용대 씨가 전남 화순과 광주광역시 경계에 있는 ‘너릿재 터널’을 전동휠체어로 건너고 있다.지체장애인 김용대 씨가 전남 화순과 광주광역시 경계에 있는 ‘너릿재 터널’을 전동휠체어로 건너고 있다.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으로 택시를 불러본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이용객이 몰리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짧게는 몇 분 내에 잡히기도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택시를 불러 비용만 낸다면 전국 방방 곳곳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에게 이토록 당연한 일상이, 장애인들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의 중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가 '장애인 콜택시'입니다. 지하철이 아예 없거나 저상버스 도입률이 낮은 지역일수록 장애인 콜택시의 역할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이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부분 시·군의 경계를 넘지 못하게 막고 있기 때문인데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 장애인 콜택시, 광주-화순 경계에서 "내리세요"


광주광역시에 사는 지체장애인 김용대 씨는 휠체어를 탑니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엔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야 합니다. 김 씨는 이번 달 초, 아내와 함께 전남 화순의 전남대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광주 집으로 가려고 화순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내려야 했습니다. 화순 장애인 콜택시가 '화순을 벗어나지 못한다'면서 화순과 광주 경계지역에서 내리라고 한 겁니다. 황당했습니다.

하차를 요구받은 지점은 화순과 광주 사이에 있는 '너릿재 터널' 인근 버스 정류장. 집으로 가려면 광주로 넘어가 광주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인접 시·군으로 장애인 콜택시를 운행하고 있지만, 김 씨처럼 장애등급이 2급인 경우엔 광주에서 출발하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전동휠체어를 탄 김용대 씨가 경적을 울리는 차들에 손짓하며 터널을 건너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탄 김용대 씨가 경적을 울리는 차들에 손짓하며 터널을 건너고 있다.

결국, 김 씨는 전동휠체어 하나에 의지해 차도와 터널까지 2km 구간을 건너야 했습니다. 터널 안은 조명이 어두워 깜깜한 데다, 차선을 변경할 수도 없어 사고 위험이 큽니다. 김 씨는 "차들이 옆으로 쌩쌩 달리니까 무서웠다"며 "이러다 사고가 나거나 차가 뒤에서 부딪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을 겪는 건 김 씨뿐이 아닙니다.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인 고명진 씨도 "전남 목포에서 바로 인접 도시인 무안을 가는데에도 경계지역을 넘어갈 수 없어 무안 장애인 콜택시를 다시 불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같은 경험을 토로했습니다.

■ 30%까지 시외 운행 허용…사전예약해야 가능

전남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시외로 나가려면 하루 전날 전화나 누리집을 통해 예약해야 한다. 전남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시외로 나가려면 하루 전날 전화나 누리집을 통해 예약해야 한다.

현행법상 지방자치단체가 특별교통수단의 운행범위를 행정구역 안 또는 인근 지방자치단체까지로 제한할 수 있습니다. 전남의 경우 조례를 통해 장애인 콜택시의 30%까지 시외 운행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용하려면 하루 전날 예약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요는 많고, 운영 대수는 적습니다. 화순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애인 콜택시는 7대인데, 한두대 정도만 시외로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습니다.

사전예약제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병원의 경우 진료가 끝나는 시점을 명확히 알기 어려워 하루 전에 예약하기가 쉽지 않고, 당일에 급하게 시외로 나가는 일이 생길 경우에는 아예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일부 지자체는 인접 시군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전남과 맞닿아 있는 광주광역시는 화순과 함평, 담양군 등으로 운행합니다. 경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지자체는 인접 시군으로 운행하고, 또 다른 지자체는 병원을 가는 경우에만 운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지자체별로 재정 상황과 장애인 콜택시 보유현황에 따라 제각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 임차·바우처 택시 늘리고, 지자체 간 운행·환승 체계 논의해야


시군 경계를 제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각 지자체가 보유한 장애인 콜택시의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전남의 장애인 콜택시는 289대입니다. 법정 대수인 241대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된 '특장차'는 179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일반택시인 임차나 바우처택시입니다.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목포와 여수, 순천과 나주, 광양, 해남 등 6개 시군에는 임차와 바우처 택시가 있습니다. 나머지 16개 시군에는 오로지 '특장차'만 있습니다. 그마저도 열대가 채 안 되는 곳들이 많은데요. 이 특장차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과 비 휠체어 장애인, 교통약자들과 함께 사용합니다. 비 휠체어 장애인들은 장애인 콜택시 이용자의 60%를 차지하는데요. 상대적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특장차'를 이용할 기회가 줄어드는 겁니다.

이 때문에 임차와 바우처 택시를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임차와 바우처 택시를 늘려 비 휠체어 장애인들이 특장차를 사용하는 횟수를 줄이는 겁니다.

지자체 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서원선 부연구위원은 "장애인 콜택시를 인접 시까지 운행하는 시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도 있고, 어떤 시는 인접 시는 가되 병원만 가는 경우도 있다"면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면서 서로 경계를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 지자체 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전동휠체어로 건너왔다는 너릿재 터널을 빠져나오자 갓길을 따라 분홍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꽃놀이하러 화순에 간다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겠다는데 태워다 주면 안 되는 거냐"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병원도 가고, 꽃놀이도 갈 수 있는 일상은 언제쯤 당연해질 수 있는 걸까요. 장애인 콜택시로 노란 유채꽃이 핀 장흥도, 겹벚꽃이 유명하다는 순천도 마음껏 갈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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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대 씨는 왜 전동휠체어를 타고 화순에서 광주를 넘어왔나?
    • 입력 2022-04-21 11:35:08
    취재K
지체장애인 김용대 씨가 전남 화순과 광주광역시 경계에 있는 ‘너릿재 터널’을 전동휠체어로 건너고 있다.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으로 택시를 불러본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이용객이 몰리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짧게는 몇 분 내에 잡히기도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택시를 불러 비용만 낸다면 전국 방방 곳곳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에게 이토록 당연한 일상이, 장애인들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의 중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가 '장애인 콜택시'입니다. 지하철이 아예 없거나 저상버스 도입률이 낮은 지역일수록 장애인 콜택시의 역할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이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부분 시·군의 경계를 넘지 못하게 막고 있기 때문인데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 장애인 콜택시, 광주-화순 경계에서 "내리세요"


광주광역시에 사는 지체장애인 김용대 씨는 휠체어를 탑니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엔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야 합니다. 김 씨는 이번 달 초, 아내와 함께 전남 화순의 전남대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광주 집으로 가려고 화순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내려야 했습니다. 화순 장애인 콜택시가 '화순을 벗어나지 못한다'면서 화순과 광주 경계지역에서 내리라고 한 겁니다. 황당했습니다.

하차를 요구받은 지점은 화순과 광주 사이에 있는 '너릿재 터널' 인근 버스 정류장. 집으로 가려면 광주로 넘어가 광주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인접 시·군으로 장애인 콜택시를 운행하고 있지만, 김 씨처럼 장애등급이 2급인 경우엔 광주에서 출발하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전동휠체어를 탄 김용대 씨가 경적을 울리는 차들에 손짓하며 터널을 건너고 있다.
결국, 김 씨는 전동휠체어 하나에 의지해 차도와 터널까지 2km 구간을 건너야 했습니다. 터널 안은 조명이 어두워 깜깜한 데다, 차선을 변경할 수도 없어 사고 위험이 큽니다. 김 씨는 "차들이 옆으로 쌩쌩 달리니까 무서웠다"며 "이러다 사고가 나거나 차가 뒤에서 부딪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을 겪는 건 김 씨뿐이 아닙니다.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인 고명진 씨도 "전남 목포에서 바로 인접 도시인 무안을 가는데에도 경계지역을 넘어갈 수 없어 무안 장애인 콜택시를 다시 불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같은 경험을 토로했습니다.

■ 30%까지 시외 운행 허용…사전예약해야 가능

전남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시외로 나가려면 하루 전날 전화나 누리집을 통해 예약해야 한다.
현행법상 지방자치단체가 특별교통수단의 운행범위를 행정구역 안 또는 인근 지방자치단체까지로 제한할 수 있습니다. 전남의 경우 조례를 통해 장애인 콜택시의 30%까지 시외 운행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용하려면 하루 전날 예약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요는 많고, 운영 대수는 적습니다. 화순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애인 콜택시는 7대인데, 한두대 정도만 시외로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습니다.

사전예약제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병원의 경우 진료가 끝나는 시점을 명확히 알기 어려워 하루 전에 예약하기가 쉽지 않고, 당일에 급하게 시외로 나가는 일이 생길 경우에는 아예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일부 지자체는 인접 시군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전남과 맞닿아 있는 광주광역시는 화순과 함평, 담양군 등으로 운행합니다. 경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지자체는 인접 시군으로 운행하고, 또 다른 지자체는 병원을 가는 경우에만 운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지자체별로 재정 상황과 장애인 콜택시 보유현황에 따라 제각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 임차·바우처 택시 늘리고, 지자체 간 운행·환승 체계 논의해야


시군 경계를 제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각 지자체가 보유한 장애인 콜택시의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전남의 장애인 콜택시는 289대입니다. 법정 대수인 241대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된 '특장차'는 179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일반택시인 임차나 바우처택시입니다.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목포와 여수, 순천과 나주, 광양, 해남 등 6개 시군에는 임차와 바우처 택시가 있습니다. 나머지 16개 시군에는 오로지 '특장차'만 있습니다. 그마저도 열대가 채 안 되는 곳들이 많은데요. 이 특장차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과 비 휠체어 장애인, 교통약자들과 함께 사용합니다. 비 휠체어 장애인들은 장애인 콜택시 이용자의 60%를 차지하는데요. 상대적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특장차'를 이용할 기회가 줄어드는 겁니다.

이 때문에 임차와 바우처 택시를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임차와 바우처 택시를 늘려 비 휠체어 장애인들이 특장차를 사용하는 횟수를 줄이는 겁니다.

지자체 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서원선 부연구위원은 "장애인 콜택시를 인접 시까지 운행하는 시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도 있고, 어떤 시는 인접 시는 가되 병원만 가는 경우도 있다"면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면서 서로 경계를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 지자체 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전동휠체어로 건너왔다는 너릿재 터널을 빠져나오자 갓길을 따라 분홍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꽃놀이하러 화순에 간다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겠다는데 태워다 주면 안 되는 거냐"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병원도 가고, 꽃놀이도 갈 수 있는 일상은 언제쯤 당연해질 수 있는 걸까요. 장애인 콜택시로 노란 유채꽃이 핀 장흥도, 겹벚꽃이 유명하다는 순천도 마음껏 갈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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