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변한 건 없어요”…진우 씨는 매일 ‘벽 너머 벽’을 느낍니다

입력 2022.04.23 (08:15) 수정 2022.05.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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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면서까지 세상을 향해 권리 보장을 외치고 있는 걸까요?

장애인들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 즉 이동권이나 교육권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일상에서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 생활 자체가 '거대한 벽'이라고 말하는 장애인 2명을 이틀 동안 동행 취재했습니다.

■ "여전히 똑같다"…피팅룸 찾아 삼만리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20대 유진우 씨는 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취재진과 서울 명동에서 쇼핑하기로 한 진우 씨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내렸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명동역엔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습니다. 당연히 지하철 역에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시설입니다.

명동의 한 옷가게에서 진우 씨는 이 옷, 저 옷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봄 옷을 고르는 진우 씨의 표정은 밝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지만 진우 씨는 입어볼 수 없었습니다. 피팅룸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 1층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팅룸을 찾기 위해 명동 시내 옷 가게 10여 곳을 둘러봤습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공간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면 꽉 차는 피팅룸공간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면 꽉 차는 피팅룸

백화점으로 옮겨서야 피팅룸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만큼 널찍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들어가니 휠체어로 꽉 찼습니다. 고른 옷을 입어보긴 어려웠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유 씨는 보통 인터넷으로 쇼핑한다고 말했습니다. 직접 입어보고 옷을 사고 싶어 몇 년 만에 나와 봤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똑같아요. 옷 사기 정말 힘드네요. 피팅룸 찾다가 진이 다 빠져요. 다신 안 올 것 같아요."

최근에는 장애인 전문 의류 브랜드가 생겨나는 등 장애인의 '입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겁니다.

■ 새로운 시설은 곧, 두려운 존재

"밥 한 끼 선택을 함에서도 수많은 것들을 미리 확인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이날 점심을 먹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 들린 진우 씨는 또 한 번 좌절했습니다. 무인주문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기 위해 팔을 쭉 뻗어봤지만, 손이 버튼에 닿지 않았습니다. 진우 씨에게 식사 메뉴를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맛보다 '접근성'입니다.

ATM이나 무인민원발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지 않습니다. 진우 씨가 기기에 더 바짝 붙어보려고 해도 휠체어 발판 때문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기에 접근하려면, 무거운 철문을 밀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혼자 뭔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 "개선해 달라" 수없이 외쳤지만…나아지는 것 없어

불편한 점은 이뿐이 아닙니다. 특히 화장실을 찾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용변을 보기 위해 진우 씨는 백화점 화장실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화장실 같은 경우에도 장애인용 있으면 다행인데 장애인용 없으면 가까운 지하철역 가서 볼일 보고 다시 옷 보러 갑니다. 낡은 건물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 기준을 제시해 놓은 법률이 있습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그것입니다.

목적은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 건물은 여전히 많습니다. 과거보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확충됐다고는 하지만, 현장을 둘러보니 절대 충분치 않았습니다.


"불이 나면 어떻게 할지 막막하네요…."

백화점 비상구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우 씨는 힘없이 입을 열었습니다. 보통 병원 같은 곳은 경사로가 설치돼 있는데, 그 외의 시설에서는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진우 씨는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곳으로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고층 빌딩의 경우 화재나 지진 등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승강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이 계단으로 내려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만일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찔합니다.

■ 장애인 콜택시 대기 시간 기약 없어

장애인 콜택시 평균 배차 대기 시간장애인 콜택시 평균 배차 대기 시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 김탄진 씨는 출근 시간보다 2~3시간 먼저 집을 나섭니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장애인 콜택시 때문입니다. 장애인 콜택시가 늦기라도 하면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기도 합니다.

집에서 직장까지의 거리는 약 8km, 자가용으로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콜택시는 콜 신청부터 차량 도착까지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서울에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2만 6천여 명입니다. 이들이 한정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려 하다 보니,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겁니다.

특히 이용자가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 오래 기다릴 때는 3시간을 대기한 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탄진 씨는 퇴근할 때 콜택시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대중교통은 정말 이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리프트가 있는 저상버스만 가능하고, 지하철을 이용하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다 보면 집에 가는데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립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이들은 이동하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계속 사과를 했습니다. 퇴근 시간만 되면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해 쉽사리 지나갈 수도 없고, 눈치 주는 사람들도 있어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합니다.

장애인들은 리프트를 타다 죽고, 열차와 승강장 사이 폭에 휠체어 바퀴나 다리가 끼인 뒤 넘어져 다치기도 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이 말을 해야 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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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변한 건 없어요”…진우 씨는 매일 ‘벽 너머 벽’을 느낍니다
    • 입력 2022-04-23 08:15:43
    • 수정2022-05-15 10:45:42
    취재후·사건후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면서까지 세상을 향해 권리 보장을 외치고 있는 걸까요?

장애인들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 즉 이동권이나 교육권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일상에서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 생활 자체가 '거대한 벽'이라고 말하는 장애인 2명을 이틀 동안 동행 취재했습니다.

■ "여전히 똑같다"…피팅룸 찾아 삼만리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20대 유진우 씨는 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취재진과 서울 명동에서 쇼핑하기로 한 진우 씨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내렸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명동역엔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습니다. 당연히 지하철 역에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시설입니다.

명동의 한 옷가게에서 진우 씨는 이 옷, 저 옷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봄 옷을 고르는 진우 씨의 표정은 밝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지만 진우 씨는 입어볼 수 없었습니다. 피팅룸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 1층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팅룸을 찾기 위해 명동 시내 옷 가게 10여 곳을 둘러봤습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공간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면 꽉 차는 피팅룸
백화점으로 옮겨서야 피팅룸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만큼 널찍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들어가니 휠체어로 꽉 찼습니다. 고른 옷을 입어보긴 어려웠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유 씨는 보통 인터넷으로 쇼핑한다고 말했습니다. 직접 입어보고 옷을 사고 싶어 몇 년 만에 나와 봤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똑같아요. 옷 사기 정말 힘드네요. 피팅룸 찾다가 진이 다 빠져요. 다신 안 올 것 같아요."

최근에는 장애인 전문 의류 브랜드가 생겨나는 등 장애인의 '입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겁니다.

■ 새로운 시설은 곧, 두려운 존재

"밥 한 끼 선택을 함에서도 수많은 것들을 미리 확인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이날 점심을 먹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 들린 진우 씨는 또 한 번 좌절했습니다. 무인주문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기 위해 팔을 쭉 뻗어봤지만, 손이 버튼에 닿지 않았습니다. 진우 씨에게 식사 메뉴를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맛보다 '접근성'입니다.

ATM이나 무인민원발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지 않습니다. 진우 씨가 기기에 더 바짝 붙어보려고 해도 휠체어 발판 때문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기에 접근하려면, 무거운 철문을 밀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혼자 뭔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 "개선해 달라" 수없이 외쳤지만…나아지는 것 없어

불편한 점은 이뿐이 아닙니다. 특히 화장실을 찾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용변을 보기 위해 진우 씨는 백화점 화장실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화장실 같은 경우에도 장애인용 있으면 다행인데 장애인용 없으면 가까운 지하철역 가서 볼일 보고 다시 옷 보러 갑니다. 낡은 건물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 기준을 제시해 놓은 법률이 있습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그것입니다.

목적은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 건물은 여전히 많습니다. 과거보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확충됐다고는 하지만, 현장을 둘러보니 절대 충분치 않았습니다.


"불이 나면 어떻게 할지 막막하네요…."

백화점 비상구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우 씨는 힘없이 입을 열었습니다. 보통 병원 같은 곳은 경사로가 설치돼 있는데, 그 외의 시설에서는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진우 씨는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곳으로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고층 빌딩의 경우 화재나 지진 등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승강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이 계단으로 내려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만일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찔합니다.

■ 장애인 콜택시 대기 시간 기약 없어

장애인 콜택시 평균 배차 대기 시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 김탄진 씨는 출근 시간보다 2~3시간 먼저 집을 나섭니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장애인 콜택시 때문입니다. 장애인 콜택시가 늦기라도 하면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기도 합니다.

집에서 직장까지의 거리는 약 8km, 자가용으로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콜택시는 콜 신청부터 차량 도착까지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서울에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2만 6천여 명입니다. 이들이 한정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려 하다 보니,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겁니다.

특히 이용자가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 오래 기다릴 때는 3시간을 대기한 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탄진 씨는 퇴근할 때 콜택시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대중교통은 정말 이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리프트가 있는 저상버스만 가능하고, 지하철을 이용하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다 보면 집에 가는데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립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이들은 이동하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계속 사과를 했습니다. 퇴근 시간만 되면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해 쉽사리 지나갈 수도 없고, 눈치 주는 사람들도 있어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합니다.

장애인들은 리프트를 타다 죽고, 열차와 승강장 사이 폭에 휠체어 바퀴나 다리가 끼인 뒤 넘어져 다치기도 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이 말을 해야 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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