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비우에서 매일 출퇴근”…국경에서 만난 봉사자들

입력 2022.04.27 (06:00) 수정 2022.04.2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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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접경, '메디카 국경검문소'. 우크라이나인들이 여행용 가방을 끌고 녹색 문을 지나 폴란드 땅을 밟는 곳입니다.

피란민들을 돕기 위해 메디카에는 텐트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피자 같은 음식을 전하기도 하고, 휴대전화 데이터와 배터리를 제공하거나 핫팩도 나눠줍니다. 물론 모두 무료입니다.

우크라이나인 자원봉사자들. 왼쪽부터 20살 이반카 카메츠카, 20살 올렉산드라 바사라브, 19살 마리아나 바흐다이.우크라이나인 자원봉사자들. 왼쪽부터 20살 이반카 카메츠카, 20살 올렉산드라 바사라브, 19살 마리아나 바흐다이.

■ "다른 국민 돕는 건 의무"…피란민 돕기 위해 매일 폴란드로 출·퇴근

국경검문소에서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빨간 조끼를 입은 앳된 얼굴의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자신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이고 서부 도시 르비우에서 왔다고 소개합니다.

'알렉산드라'는 러시아식이라며 자신의 이름은 '올렉산드라'라고 강조한 이 봉사자는 대학교에서 정치를 공부하는 20살 여성입니다.

인터뷰한 전날에도 르비우 인근에 미사일 폭격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었기 때문에 이들의 집은 안전한지, 또 직접 여기까지 온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올렉산드라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우크라이나를 사랑한다며 자신이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있기 때문에 다른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는 게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르비우에 매일 2~3번씩 공습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집을 잃은 친구들을 떠올리면 그들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아직 자신에겐 집이 있고 도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섰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폴란드를 오간 여권 기록.우크라이나-폴란드를 오간 여권 기록.

이들은 '원 하트(One Heart)'라는 봉사 단체에 소속돼 5~6명은 폴란드 쪽에서, 나머지 5~6명은 우크라이나 쪽에서 피란민을 돕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들은 영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폴란드어를 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도와주고 숙소와 음식 등을 제공받을 수 있게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한 달 넘게 봉사했는데, 피란민들의 이야기를 한 장소에서 계속 들으면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 환기를 위해 우크라이나 르비우와 국경검문소 등 피란민이 있는 여러 곳을 돌아가면서 가야 했다고도 토로했습니다.

이들의 여권에는 르비우에서 폴란드 국경을 넘나드느라 찍힌 출입국 기록이 빼곡하게 확인됐습니다.


■ 러시아 출신 봉사자도…"푸틴 정권에 반대해 10년 전 떠나"

그런가 하면 러시아 출신 봉사자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지 버거 씨는 2012년 정치적인 이유로 가족들과 러시아를 떠났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폴란드 국적을 갖고 있는데요. 그의 동료들 역시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러시아를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조지 씨는 러시아 출신으로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전쟁의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책임감을 느껴 봉사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 등 많은 언어를 하는 만큼,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사람들이 서유럽이나 다른 폴란드 내 큰 도시로 갈 수 있게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금 활동을 통해 이미 10대 정도의 피란민 버스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로 보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는 "러시아인이 여기 왜 있냐"며 실랑이도 있었는데요. 조지는 자신도 푸틴이 싫어서 러시아를 떠나온 사람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피란민들을 보면 고통을 느낀다며, 그들에게 효율적(effective)이기 위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피란민, 최근 1만 명 안팎까지 줄어

전쟁 초기였던 지난달 초에는 하루에 폴란드로 들어오는 피란민이 국경수비대 집계 기준 6만 명에서 7만 명을 오갔고, 10만 명을 넘는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폴란드로 오는 사람은 줄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사람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하루에 폴란드로 입국한 피란민 수는 이달 중순 2만 명 안팎을 기록하다가 점점 줄어 지난 24일에는 하루 동안 9천 8백 명만이 폴란드로 들어왔습니다. 이미 지난 16일에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사람이 떠나온 사람을 앞지르기도 했습니다.

더는 우크라이나에 남기고 온 생업을 버려둘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고, 지난 주말 정교회 부활절을 맞아 고향길에 오른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이유로 피란민이 전쟁 초기보다 줄면서 최근엔 메디카 국경검문소에서 피란민보다 자원봉사자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날도 있는데요. 피란민이 줄어도 자원봉사자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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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비우에서 매일 출퇴근”…국경에서 만난 봉사자들
    • 입력 2022-04-27 06:00:18
    • 수정2022-04-27 08:05:30
    세계는 지금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접경, '메디카 국경검문소'. 우크라이나인들이 여행용 가방을 끌고 녹색 문을 지나 폴란드 땅을 밟는 곳입니다.

피란민들을 돕기 위해 메디카에는 텐트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피자 같은 음식을 전하기도 하고, 휴대전화 데이터와 배터리를 제공하거나 핫팩도 나눠줍니다. 물론 모두 무료입니다.

우크라이나인 자원봉사자들. 왼쪽부터 20살 이반카 카메츠카, 20살 올렉산드라 바사라브, 19살 마리아나 바흐다이.
■ "다른 국민 돕는 건 의무"…피란민 돕기 위해 매일 폴란드로 출·퇴근

국경검문소에서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빨간 조끼를 입은 앳된 얼굴의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자신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이고 서부 도시 르비우에서 왔다고 소개합니다.

'알렉산드라'는 러시아식이라며 자신의 이름은 '올렉산드라'라고 강조한 이 봉사자는 대학교에서 정치를 공부하는 20살 여성입니다.

인터뷰한 전날에도 르비우 인근에 미사일 폭격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었기 때문에 이들의 집은 안전한지, 또 직접 여기까지 온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올렉산드라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우크라이나를 사랑한다며 자신이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있기 때문에 다른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는 게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르비우에 매일 2~3번씩 공습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집을 잃은 친구들을 떠올리면 그들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아직 자신에겐 집이 있고 도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섰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폴란드를 오간 여권 기록.
이들은 '원 하트(One Heart)'라는 봉사 단체에 소속돼 5~6명은 폴란드 쪽에서, 나머지 5~6명은 우크라이나 쪽에서 피란민을 돕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들은 영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폴란드어를 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도와주고 숙소와 음식 등을 제공받을 수 있게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한 달 넘게 봉사했는데, 피란민들의 이야기를 한 장소에서 계속 들으면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 환기를 위해 우크라이나 르비우와 국경검문소 등 피란민이 있는 여러 곳을 돌아가면서 가야 했다고도 토로했습니다.

이들의 여권에는 르비우에서 폴란드 국경을 넘나드느라 찍힌 출입국 기록이 빼곡하게 확인됐습니다.


■ 러시아 출신 봉사자도…"푸틴 정권에 반대해 10년 전 떠나"

그런가 하면 러시아 출신 봉사자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지 버거 씨는 2012년 정치적인 이유로 가족들과 러시아를 떠났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폴란드 국적을 갖고 있는데요. 그의 동료들 역시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러시아를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조지 씨는 러시아 출신으로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전쟁의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책임감을 느껴 봉사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 등 많은 언어를 하는 만큼,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사람들이 서유럽이나 다른 폴란드 내 큰 도시로 갈 수 있게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금 활동을 통해 이미 10대 정도의 피란민 버스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로 보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는 "러시아인이 여기 왜 있냐"며 실랑이도 있었는데요. 조지는 자신도 푸틴이 싫어서 러시아를 떠나온 사람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피란민들을 보면 고통을 느낀다며, 그들에게 효율적(effective)이기 위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피란민, 최근 1만 명 안팎까지 줄어

전쟁 초기였던 지난달 초에는 하루에 폴란드로 들어오는 피란민이 국경수비대 집계 기준 6만 명에서 7만 명을 오갔고, 10만 명을 넘는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폴란드로 오는 사람은 줄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사람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하루에 폴란드로 입국한 피란민 수는 이달 중순 2만 명 안팎을 기록하다가 점점 줄어 지난 24일에는 하루 동안 9천 8백 명만이 폴란드로 들어왔습니다. 이미 지난 16일에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사람이 떠나온 사람을 앞지르기도 했습니다.

더는 우크라이나에 남기고 온 생업을 버려둘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고, 지난 주말 정교회 부활절을 맞아 고향길에 오른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이유로 피란민이 전쟁 초기보다 줄면서 최근엔 메디카 국경검문소에서 피란민보다 자원봉사자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날도 있는데요. 피란민이 줄어도 자원봉사자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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