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외수를 위한 변명…그는 단지 ‘기인’이기만 했을까?

입력 2022.04.27 (08:00) 수정 2022.04.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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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1946~2022)이외수(1946~2022)

지난 25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난 이외수 작가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합니다. 1980년~90년대 그가 쓴 장편소설들을 읽고 성장한 세대는 감성적인 문체에 예술지상주의적 세계관을 선보인 소설가로서의 면모에 주목합니다.

30대 이하 젊은 세대에서는 그를 17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둔 트위터에서 촌철살인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소통하는 멘토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생전에 그가 트위터의 영향력을 활용해 정치적인 발언을 일삼는다면서 노골적으로 못마땅하다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를 어떻게 바라보건 간에 과거 그가 행한 숱한 기행(奇行)과 논란에 대해 대해서는 말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의 부음을 전할 때도 일부 매체는 그의 별난 행적을 부각시키며 그 덕분에 대중들로부터 주목받은 인물 정도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과연 그저 기행만 일삼은 기인에 불과했을까요?

그는 1975년 월간『세대』신인문학상에 단편 '훈장'이 당선돼 등단했습니다. 당시 그의 당선 소감은 이랬습니다.
외수. 이 망할 자식아. 세상이 모두 썩어 문드러져도 너만은 절대 썩지 말고 영악스럽게 글을 쓰도록, 그러나 요절하지 말도록. 마침내 나와 나의 언어들이 아름다운 비극으로 남아서 빛나는 순수,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눈물이 되기를 빌며 살기를.
-『세대』1975년 6월호

오만하리만치 당당한 이 발언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패기만만한 문청의 출사표이자 자신에게 다짐하는 각오였습니다.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가 줄기차게 써낸 작품들은 이 자기예언적인 당선 소감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인물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발언들을 보면 자신만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통찰이 드러납니다. 굳이 그가 취한 포즈나 제스처에만 너무 주목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꼴일 테니까요.

그는 꼭 30년 전인 1992년 펴낸 『흐린 세상 건너기』에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습니다.
"어떤 시공에서도 끝을 의미하는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할 뿐, 즉 달리 말하면 죽음은 곧 탄생의 이음동의어에 불과하다."

그 책 제목처럼 그는 흐린 세상을 건너갔습니다. 세상의 젠체하는 사람들은 그를 기인 정도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는 그저 그런 기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와의 소통을 소중히 여긴 작가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보다 연배 낮은 이들의 언어를 함께 호흡하고 감성과 어울리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절집 수행자로 치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소식' 한 셈입니다. 건너간 세상에서도 새 출발을 하길 기원하며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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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이외수를 위한 변명…그는 단지 ‘기인’이기만 했을까?
    • 입력 2022-04-27 08:00:19
    • 수정2022-04-27 14:33:19
    취재K
이외수(1946~2022)
지난 25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난 이외수 작가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합니다. 1980년~90년대 그가 쓴 장편소설들을 읽고 성장한 세대는 감성적인 문체에 예술지상주의적 세계관을 선보인 소설가로서의 면모에 주목합니다.

30대 이하 젊은 세대에서는 그를 17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둔 트위터에서 촌철살인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소통하는 멘토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생전에 그가 트위터의 영향력을 활용해 정치적인 발언을 일삼는다면서 노골적으로 못마땅하다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를 어떻게 바라보건 간에 과거 그가 행한 숱한 기행(奇行)과 논란에 대해 대해서는 말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의 부음을 전할 때도 일부 매체는 그의 별난 행적을 부각시키며 그 덕분에 대중들로부터 주목받은 인물 정도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과연 그저 기행만 일삼은 기인에 불과했을까요?

그는 1975년 월간『세대』신인문학상에 단편 '훈장'이 당선돼 등단했습니다. 당시 그의 당선 소감은 이랬습니다.
외수. 이 망할 자식아. 세상이 모두 썩어 문드러져도 너만은 절대 썩지 말고 영악스럽게 글을 쓰도록, 그러나 요절하지 말도록. 마침내 나와 나의 언어들이 아름다운 비극으로 남아서 빛나는 순수,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눈물이 되기를 빌며 살기를.
-『세대』1975년 6월호

오만하리만치 당당한 이 발언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패기만만한 문청의 출사표이자 자신에게 다짐하는 각오였습니다.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가 줄기차게 써낸 작품들은 이 자기예언적인 당선 소감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인물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발언들을 보면 자신만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통찰이 드러납니다. 굳이 그가 취한 포즈나 제스처에만 너무 주목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꼴일 테니까요.

그는 꼭 30년 전인 1992년 펴낸 『흐린 세상 건너기』에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습니다.
"어떤 시공에서도 끝을 의미하는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할 뿐, 즉 달리 말하면 죽음은 곧 탄생의 이음동의어에 불과하다."

그 책 제목처럼 그는 흐린 세상을 건너갔습니다. 세상의 젠체하는 사람들은 그를 기인 정도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는 그저 그런 기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와의 소통을 소중히 여긴 작가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보다 연배 낮은 이들의 언어를 함께 호흡하고 감성과 어울리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절집 수행자로 치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소식' 한 셈입니다. 건너간 세상에서도 새 출발을 하길 기원하며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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