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없어졌는데 여전히 ‘어린이 보호구역’…사고 나면?

입력 2022.04.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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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른바 '민식이법'의 도입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안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대해 처벌이 대폭 강화됐습니다.

이 때문에, 평소 운전하실 때 어린이 보호구역에 진입하면 주변을 특히 더 살피게 되실 텐데요. 운전자로서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는 근처에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 등 어린이 관련 시설이 있으니, 어린이를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일 겁니다.

그런데 관련 시설이 문을 닫은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보호구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곳곳에서 확인됐습니다. 최근에 도색까지 새로 한 곳도 발견됐습니다.


■ '어린이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

위에 보신 사진,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한 어린이 보호구역의 모습입니다.

2010년 9월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근처에 유치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도로 도색까지 마쳐 깔끔하게 정비됐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던 유치원은 지난해(2021년) 봄,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폐원했습니다.

유치원이 사라진 지 1년이 지나서 도색까지 해 새 단장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린이 보호구역 관리와 도로 도색을 담당한 원주시청 부서에서는 폐원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놓습니다. 유치원을 관리하는 곳은 교육청인데, 관련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교육청 입장에서도, 유치원 하나 문 닫았다고 해서 이 사실을 타 기관에 알리기도 애매했습니다. 보호구역을 지정할 때는 당연히 알려야 하지만, 해제할 이유가 생겼을 때는 관련 법상 알릴 의무가 없었던 겁니다. 또, 보호구역 지정 해제도 "할 수 있다"라고 돼 있지,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지정됐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보호구역도 해제하는 게 올바른 수순인데, 담당 기관에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도색까지 하게 되는 촌극이 빚어진 겁니다. 도색에는 100만 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 사고 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민식이법' 적용 대상

어린이 관련 시설이 사라진 상태에서, 보호구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뭐가 문제가 될까요?

보호구역이 해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이른바 민식이법 적용 대상이라는 게 법조인과 실무 담당자들의 판단입니다.

취재에 응한 변호사는 이에 대해,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데다, 관련 표지판이나 노면에 보호구역임을 알 수 있는 표식들이 남아 있다면, 수사 기관 입장에서는 운전자를 형사 입건 할 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어린이 관련 시설이 사라졌다면 보호구역도 해제가 됐어야 하는 게 상식이지만, 관리 주체가 이를 몰라서 해제하지 않은 경우에도, 법적으로는 어린이 보호구역인 셈입니다. 이런 곳에서 운전자가 어린이를 다치게 하면, 보호구역 내 사고로 처리돼 징역 1년 이상 또는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애꿎은 피해를 보게 되는 상황입니다.

원주시의 한 주택가 골목. 이 곳도 근처 유치원이 문을 닫은 지 2년이 넘었지만, 보호구역 표식이 남아 있다.원주시의 한 주택가 골목. 이 곳도 근처 유치원이 문을 닫은 지 2년이 넘었지만, 보호구역 표식이 남아 있다.

■ '어린이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 몇 곳인지도 모른다

확인 결과, 원주시에서만 이런 곳들이 위 사례를 비롯해 4곳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3곳과 어린이집 1곳입니다. 폐원해야 하는데, 방치된 곳들입니다.

그나마 원주시 사정은 나은 편입니다. 원주시는 일제 조사를 거쳐, 방치된 곳들이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 가운데 1곳은 지정 해제를 했습니다. 나머지 3곳에 대해서도 경찰과 협의해 해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시 담당자도 초등학교가 폐교한다면 모를 수가 없지만, 도처에 있는 유치원 등이 폐원하는 것까지는 모두 알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지침에, 해제 사유가 발생하면 기관 간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는 의무 조항을 넣으면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문제는, 전국적으로 이런 곳들이 몇 곳인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공데이터 포털 기준, 현재 전국 어린이 보호구역은 18,700여 곳. 보호구역 지정과 관리는 전국 200곳이 넘는 지방자치단체가 각자 하고 있습니다. 실태 파악을 하는 데만 해도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행정안전부도 이에 대해 민식이법 시행 이후, 올해(2022년)까지는 보호구역 지정과 이에 따른 필요한 시설 설치에 대한 지원 사업을 마무리하고, 관리 효율화를 위한 관련 용역을 수행해 보완책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연관 기사] ‘어린이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사고 나면, 책임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49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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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치원 없어졌는데 여전히 ‘어린이 보호구역’…사고 나면?
    • 입력 2022-04-28 07:00:17
    취재K
이른바 '민식이법'의 도입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안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대해 처벌이 대폭 강화됐습니다.<br /><br />이 때문에, 평소 운전하실 때 어린이 보호구역에 진입하면 주변을 특히 더 살피게 되실 텐데요. 운전자로서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는 근처에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 등 어린이 관련 시설이 있으니, 어린이를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일 겁니다.<br /><br />그런데 관련 시설이 문을 닫은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보호구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곳곳에서 확인됐습니다. 최근에 도색까지 새로 한 곳도 발견됐습니다.

■ '어린이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

위에 보신 사진,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한 어린이 보호구역의 모습입니다.

2010년 9월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근처에 유치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도로 도색까지 마쳐 깔끔하게 정비됐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던 유치원은 지난해(2021년) 봄,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폐원했습니다.

유치원이 사라진 지 1년이 지나서 도색까지 해 새 단장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린이 보호구역 관리와 도로 도색을 담당한 원주시청 부서에서는 폐원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놓습니다. 유치원을 관리하는 곳은 교육청인데, 관련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교육청 입장에서도, 유치원 하나 문 닫았다고 해서 이 사실을 타 기관에 알리기도 애매했습니다. 보호구역을 지정할 때는 당연히 알려야 하지만, 해제할 이유가 생겼을 때는 관련 법상 알릴 의무가 없었던 겁니다. 또, 보호구역 지정 해제도 "할 수 있다"라고 돼 있지,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지정됐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보호구역도 해제하는 게 올바른 수순인데, 담당 기관에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도색까지 하게 되는 촌극이 빚어진 겁니다. 도색에는 100만 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 사고 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민식이법' 적용 대상

어린이 관련 시설이 사라진 상태에서, 보호구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뭐가 문제가 될까요?

보호구역이 해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이른바 민식이법 적용 대상이라는 게 법조인과 실무 담당자들의 판단입니다.

취재에 응한 변호사는 이에 대해,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데다, 관련 표지판이나 노면에 보호구역임을 알 수 있는 표식들이 남아 있다면, 수사 기관 입장에서는 운전자를 형사 입건 할 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어린이 관련 시설이 사라졌다면 보호구역도 해제가 됐어야 하는 게 상식이지만, 관리 주체가 이를 몰라서 해제하지 않은 경우에도, 법적으로는 어린이 보호구역인 셈입니다. 이런 곳에서 운전자가 어린이를 다치게 하면, 보호구역 내 사고로 처리돼 징역 1년 이상 또는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애꿎은 피해를 보게 되는 상황입니다.

원주시의 한 주택가 골목. 이 곳도 근처 유치원이 문을 닫은 지 2년이 넘었지만, 보호구역 표식이 남아 있다.
■ '어린이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 몇 곳인지도 모른다

확인 결과, 원주시에서만 이런 곳들이 위 사례를 비롯해 4곳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3곳과 어린이집 1곳입니다. 폐원해야 하는데, 방치된 곳들입니다.

그나마 원주시 사정은 나은 편입니다. 원주시는 일제 조사를 거쳐, 방치된 곳들이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 가운데 1곳은 지정 해제를 했습니다. 나머지 3곳에 대해서도 경찰과 협의해 해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시 담당자도 초등학교가 폐교한다면 모를 수가 없지만, 도처에 있는 유치원 등이 폐원하는 것까지는 모두 알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지침에, 해제 사유가 발생하면 기관 간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는 의무 조항을 넣으면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문제는, 전국적으로 이런 곳들이 몇 곳인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공데이터 포털 기준, 현재 전국 어린이 보호구역은 18,700여 곳. 보호구역 지정과 관리는 전국 200곳이 넘는 지방자치단체가 각자 하고 있습니다. 실태 파악을 하는 데만 해도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행정안전부도 이에 대해 민식이법 시행 이후, 올해(2022년)까지는 보호구역 지정과 이에 따른 필요한 시설 설치에 대한 지원 사업을 마무리하고, 관리 효율화를 위한 관련 용역을 수행해 보완책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연관 기사] ‘어린이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사고 나면, 책임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49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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