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공부하기 싫으면 연근 캐라” 中 영상 논란

입력 2022.04.29 (07:00) 수정 2022.04.2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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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우는 중국 후베이의 11살 소녀. 공부하기 싫다고 반항하다 4시간 동안 연근을 캔 사연이 중국 SNS에 동영상과 함께 올라와 논란을 일으켰다. (웨이보 캡처)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우는 중국 후베이의 11살 소녀. 공부하기 싫다고 반항하다 4시간 동안 연근을 캔 사연이 중국 SNS에 동영상과 함께 올라와 논란을 일으켰다. (웨이보 캡처)

중국 후베이성의 한 어린 소녀가 땡볕 아래 연근을 캐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중국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논란을 다시 한번 촉발했습니다.

영상을 보면 11살 여자 어린이가 울다가 물에 잠긴 연근 밭에 들어가 연근을 캐 나옵니다. 영상과 함께 녹음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공부하는 고생을 못견디면 생활의 고생을 견뎌야 한다"며 할아버지와 함께 연근을 캐라고 딸에게 말합니다. 연근을 캐고 난 뒤에는 새벽 2시에 아버지와 시장에 가서 새우를 팔자고도 합니다.

■ 공부하기 싫다고 반항하다 4시간 연근 캔 소녀 동영상, '자녀 교육' 온라인 논란

영상이 화제가 되자 아버지는 현지 매체와 인터뷰도 했습니다. 딸이 공부하기 싫다며 선생님에게 대든 일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딸이 공부를 안하고 집에 가겠다고 해 생활을 체험해 보라며 4시간 동안 일을 시켰다고 말했습니다. 햇볕 아래 일하다 얼굴이 빨개지고 껍질도 벗겨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딸에게 공부하는 고생을 못견디면 이런 생활의 고생을 견뎌야 한다고 말했더니 딸이 "공부를 잘하겠다", "공부 잘해 출세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습니다.

후베이성 11살 소녀가 물에 잠긴 연근 밭에 들어가 연근을 캐는 모습(웨이보 캡처)후베이성 11살 소녀가 물에 잠긴 연근 밭에 들어가 연근을 캐는 모습(웨이보 캡처)

이같은 이야기는 중국 여러 매체에 동영상과 함께 퍼졌는데, 좋아요 25만 회, 댓글 만여개가 달린 경우도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아버지의 행동을 옹호하는 내용이 다수입니다.

"아빠 방법이 맞아요. 아이가 어려 이유를 모르니 체험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른이 돼 돌아보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독서가 지름길이죠", "아이를 때리는 것보다는 나아요.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등의 댓글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중국 한 매체의 ‘연근 소녀’ 동영상에 25만 명 넘게 찬성 의견을 밝히고 만명 넘게 댓글을 달았다.  각각 4만명, 2만명 이상 ‘좋아요’를 눌러 가장 호응이 많았던 댓글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그래픽/홍선우)중국 한 매체의 ‘연근 소녀’ 동영상에 25만 명 넘게 찬성 의견을 밝히고 만명 넘게 댓글을 달았다. 각각 4만명, 2만명 이상 ‘좋아요’를 눌러 가장 호응이 많았던 댓글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그래픽/홍선우)

스스로 교사라고 주장한 한 네티즌은 동영상 파일을 보관해뒀다가 학생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배움의 본질은 힘든 일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위험하다. 어린 아이가 빨갛게 탔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소녀에게 중요한 삶의 교훈을 줬는지, 아니면 과도하게 엄하게 대했는지를 놓고 엇갈린 의견들이 중국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번 동영상 논란에 대해 중국의 권위주의적 양육은 그동안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면서, 많은 가정은 여전히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격언을 믿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2살 딸을 폭력적으로 벌 준 어머니에게서 현지 당국이 양육권을 박탈한 사례도 소개했습니다.

■ 중국, 올해부터 '가정교육촉진법' 시행...미성년 자식 잘못하면 부모도 훈계·지도

이같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 중국은 올해부터 가정교육촉진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제화됐습니다. 부모의 가정 교육 의무가 핵심입니다. "미성년자의 부모 또는 기타 보호자는 가정 교육 실시를 책임진다"고 적시했습니다.

특히 미성년자의 심각한 불량 행위나 범죄 행위를 발견하면 부모를 훈계하고 지도를 받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공안 기관과 법원이 자녀의 심각한 잘못에 대해 부모를 훈계하며 사실상 책임을 추궁하는 것입니다.자녀에 대한 가정 교육을 성실히 하지 않으면 아동 학대 또는 교육 소홀 명목으로 부모를 처벌할 수 있습니다. 미성년자가 인터넷에 중독되는 것을 예방하라는 내용까지 들어있습니다.

이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후난성 창사시의 톈신 인민법원은 이혼한 부모가 어린 딸을 직접 돌보지 않고 가사도우미와 살도록 한 사례를 심리했습니다. 법원은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살며 보호자 책임을 확실히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또 어린 딸의 정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학교 교사와도 자주 소통을 하라고도 명령했습니다.

가정교육촉진법에 따라 가정교육명령을 내린 후난성 창사시 톈신인민법원 재판부. 이혼한 부모가 어린 딸을 가사도우미와 둘이 살게 하는데 대해, 친부가 딸의 양육을 책임지고 정서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명령했다. (사진/중국장안망)가정교육촉진법에 따라 가정교육명령을 내린 후난성 창사시 톈신인민법원 재판부. 이혼한 부모가 어린 딸을 가사도우미와 둘이 살게 하는데 대해, 친부가 딸의 양육을 책임지고 정서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명령했다. (사진/중국장안망)

■ CCTV "가정 교육을 국가 문제로 다루는 최초 입법"

그런데 이 법이 주목받은 대목은 또 있습니다. 제 4조에 국가 공무원이 가풍을 세우고 가정 교육의 책임을 다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 1조에는 '사회주의 건설자와 후계자 양성'을 법의 목적으로 명시했습니다. 국가와 이념이 가정 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성큼 들어온 느낌입니다. 관영 CCTV는 가정교육촉진법은 "가정 교육을 가정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로 다루는 최초의 입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중국은 2021년 세자녀 출산을 허용하며 사실상 산아 제한을 폐지했다. (사진/연합뉴스)중국은 2021년 세자녀 출산을 허용하며 사실상 산아 제한을 폐지했다. (사진/연합뉴스)

저출산에 직면한 중국은 수십년 고수한 한자녀 정책을 포기하고 두자녀, 나아가 세자녀 정책으로 전환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 자녀만 가질 당시 제기되던 '소황제(小皇帝)' 걱정은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연근 소녀' 동영상이 촉발한 논란과 본격 시행에 들어간 가정교육촉진법을 보면, 자녀 교육에 대한 중국의 개인과 국가 영역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사회적 고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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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공부하기 싫으면 연근 캐라” 中 영상 논란
    • 입력 2022-04-29 07:00:40
    • 수정2022-04-29 08:47:53
    특파원 리포트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우는 중국 후베이의 11살 소녀. 공부하기 싫다고 반항하다 4시간 동안 연근을 캔 사연이 중국 SNS에 동영상과 함께 올라와 논란을 일으켰다. (웨이보 캡처)
중국 후베이성의 한 어린 소녀가 땡볕 아래 연근을 캐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중국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논란을 다시 한번 촉발했습니다.

영상을 보면 11살 여자 어린이가 울다가 물에 잠긴 연근 밭에 들어가 연근을 캐 나옵니다. 영상과 함께 녹음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공부하는 고생을 못견디면 생활의 고생을 견뎌야 한다"며 할아버지와 함께 연근을 캐라고 딸에게 말합니다. 연근을 캐고 난 뒤에는 새벽 2시에 아버지와 시장에 가서 새우를 팔자고도 합니다.

■ 공부하기 싫다고 반항하다 4시간 연근 캔 소녀 동영상, '자녀 교육' 온라인 논란

영상이 화제가 되자 아버지는 현지 매체와 인터뷰도 했습니다. 딸이 공부하기 싫다며 선생님에게 대든 일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딸이 공부를 안하고 집에 가겠다고 해 생활을 체험해 보라며 4시간 동안 일을 시켰다고 말했습니다. 햇볕 아래 일하다 얼굴이 빨개지고 껍질도 벗겨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딸에게 공부하는 고생을 못견디면 이런 생활의 고생을 견뎌야 한다고 말했더니 딸이 "공부를 잘하겠다", "공부 잘해 출세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습니다.

후베이성 11살 소녀가 물에 잠긴 연근 밭에 들어가 연근을 캐는 모습(웨이보 캡처)
이같은 이야기는 중국 여러 매체에 동영상과 함께 퍼졌는데, 좋아요 25만 회, 댓글 만여개가 달린 경우도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아버지의 행동을 옹호하는 내용이 다수입니다.

"아빠 방법이 맞아요. 아이가 어려 이유를 모르니 체험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른이 돼 돌아보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독서가 지름길이죠", "아이를 때리는 것보다는 나아요.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등의 댓글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중국 한 매체의 ‘연근 소녀’ 동영상에 25만 명 넘게 찬성 의견을 밝히고 만명 넘게 댓글을 달았다.  각각 4만명, 2만명 이상 ‘좋아요’를 눌러 가장 호응이 많았던 댓글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그래픽/홍선우)
스스로 교사라고 주장한 한 네티즌은 동영상 파일을 보관해뒀다가 학생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배움의 본질은 힘든 일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위험하다. 어린 아이가 빨갛게 탔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소녀에게 중요한 삶의 교훈을 줬는지, 아니면 과도하게 엄하게 대했는지를 놓고 엇갈린 의견들이 중국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번 동영상 논란에 대해 중국의 권위주의적 양육은 그동안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면서, 많은 가정은 여전히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격언을 믿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2살 딸을 폭력적으로 벌 준 어머니에게서 현지 당국이 양육권을 박탈한 사례도 소개했습니다.

■ 중국, 올해부터 '가정교육촉진법' 시행...미성년 자식 잘못하면 부모도 훈계·지도

이같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 중국은 올해부터 가정교육촉진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제화됐습니다. 부모의 가정 교육 의무가 핵심입니다. "미성년자의 부모 또는 기타 보호자는 가정 교육 실시를 책임진다"고 적시했습니다.

특히 미성년자의 심각한 불량 행위나 범죄 행위를 발견하면 부모를 훈계하고 지도를 받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공안 기관과 법원이 자녀의 심각한 잘못에 대해 부모를 훈계하며 사실상 책임을 추궁하는 것입니다.자녀에 대한 가정 교육을 성실히 하지 않으면 아동 학대 또는 교육 소홀 명목으로 부모를 처벌할 수 있습니다. 미성년자가 인터넷에 중독되는 것을 예방하라는 내용까지 들어있습니다.

이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후난성 창사시의 톈신 인민법원은 이혼한 부모가 어린 딸을 직접 돌보지 않고 가사도우미와 살도록 한 사례를 심리했습니다. 법원은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살며 보호자 책임을 확실히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또 어린 딸의 정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학교 교사와도 자주 소통을 하라고도 명령했습니다.

가정교육촉진법에 따라 가정교육명령을 내린 후난성 창사시 톈신인민법원 재판부. 이혼한 부모가 어린 딸을 가사도우미와 둘이 살게 하는데 대해, 친부가 딸의 양육을 책임지고 정서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명령했다. (사진/중국장안망)
■ CCTV "가정 교육을 국가 문제로 다루는 최초 입법"

그런데 이 법이 주목받은 대목은 또 있습니다. 제 4조에 국가 공무원이 가풍을 세우고 가정 교육의 책임을 다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 1조에는 '사회주의 건설자와 후계자 양성'을 법의 목적으로 명시했습니다. 국가와 이념이 가정 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성큼 들어온 느낌입니다. 관영 CCTV는 가정교육촉진법은 "가정 교육을 가정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로 다루는 최초의 입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중국은 2021년 세자녀 출산을 허용하며 사실상 산아 제한을 폐지했다. (사진/연합뉴스)
저출산에 직면한 중국은 수십년 고수한 한자녀 정책을 포기하고 두자녀, 나아가 세자녀 정책으로 전환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 자녀만 가질 당시 제기되던 '소황제(小皇帝)' 걱정은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연근 소녀' 동영상이 촉발한 논란과 본격 시행에 들어간 가정교육촉진법을 보면, 자녀 교육에 대한 중국의 개인과 국가 영역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사회적 고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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