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몰랐던 614억 원 횡령…우리은행 돈 관리 어땠길래

입력 2022.04.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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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객 돈을 관리하는 대형 은행에서 직원이 600억 원 넘는 돈을 빼돌리는 횡령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은행 이야기입니다. 더 큰 문제는 사건이 벌어지고도 1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는 겁니다. 금융감독원은 즉시 검사에 착수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 우리은행 A 차장 '614억 횡령' 혐의로 긴급체포

지난 27일 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차장급 직원인 44살 남성 A씨가 찾아와 횡령 혐의를 시인했습니다. A 씨가 회삿돈 614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포착한 우리은행이, A 차장을 고소한 지 4시간여 만이었습니다. 막 수사에 착수했던 경찰은 A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했습니다.

우리은행은 이튿날인 어제(28일) 2012년과 2015년, 2018년 3차례에 걸쳐 총 614억 원의 횡령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습니다.

횡령이 시작된 건 10년 전. 마지막으로 돈을 빼낸 것도 무려 4년 전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횡령 혐의가 드러났을까요? 어떤 돈이 빼돌려졌는지 보면, 왜 이제야 횡령사고가 발각됐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횡령금, 12년 전 받았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

2010년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이 최대주주로 57%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작업이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매각 주관사이자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주채권은행이었던 우리은행은 2010년 이란 가전기업 엔텍합과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578억 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매각 협상 과정에서 계약이 취소됐고, 받았던 계약금은 우리은행이 관리했습니다. 당시 우리은행 기업개선부에 있던 A 씨는 대우일렉트로닉스 관련 업무를 했기에 계약금도 관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2015년 계약금을 뺏긴 이란 엔텍합 측이 국제소송을 제기해 3년만인 2018년 승소했고, 엔텍합에 돈을 돌려줘야 했지만, 그동안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송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 미국이 송금을 허용하면서 우리은행은 돈을 돌려주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계좌를 점검하다가 그제서야 돈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배상금 송금을 위한 특별 허가가 없었다면 횡령은 더 늦게 발견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614억 횡령 어떻게 가능? "문서 위조해 팀장 속여"

금융감독원은 횡령사고가 발생 이튿날인 어제(28일) 즉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내부통제시스템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받아야 할 A 씨를 직접 조사할 수 없고, 오래전에 발생한 사건이라 조사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2018년 마지막으로 돈을 빼돌렸을 때는 자산관리공사(캠코)에 계약금 관리 업무를 넘기는 것처럼 문서를 위조해 돈을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문서를 위조해 팀장을 속이고 승인을 받아 캠코에 돈을 보내는 것처럼 송금했다는 겁니다. 당시 A 씨가 돈을 보냈던 우리은행 계좌는 마지막 범행 후 해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 씨가 순환근무 없이 한 부서에만 오래 머무르게 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A 씨는 돈을 빼돌린 기업개선부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횡령 범행 기간을 포함하는 2011년 1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계속 이 부서에 있었습니다.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가 1년만인 2019년부터 다시 돌아와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까지도 기업개선부 소속이었습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장기간 한 업무에 종사하게 하면 금융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보통 영업점에서도 순환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며 "보직을 바꿔가며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금감원, 우리은행 검사 시작…회계법인 대상 현장조사도

금융감독원은 어제 우리은행에 대한 금융사고 검사에 착수한 데 이어 오늘은 정은보 금감원장 주재 회의를 열고 횡령사고 당시 우리은행의 회계감사인이었던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현장조사도 결정했습니다.

본격적인 감리에 착수하기 전에 횡령사고가 벌어졌던 부분의 회계감사 처리가 적정했는지, 위반 사항은 없었는지 살펴보겠다는 겁니다.

횡령사고가 벌어졌던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은행의 회계감사인은 안진회계법인이었습니다. 오늘 중 관련 부서 직원들이 안진회계법인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 경찰, A 씨 구속영장 신청 예정…동생도 긴급체포

A 씨를 긴급 체포해 범행 경위와 횡령금의 행방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은 오늘 중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공범으로 알려진 A 씨의 동생도 어젯(28일)밤 A 씨와 같은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우리은행 관계자들도 참고인으로 불러 횡령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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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간 몰랐던 614억 원 횡령…우리은행 돈 관리 어땠길래
    • 입력 2022-04-29 17:05:39
    취재K
<strong>고객 돈을 관리하는 대형 은행에서 직원이 600억 원 넘는 돈을 빼돌리는 횡령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은행 이야기입니다. 더 큰 문제는 사건이 벌어지고도 1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는 겁니다. 금융감독원은 즉시 검사에 착수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strong><br />

■ 우리은행 A 차장 '614억 횡령' 혐의로 긴급체포

지난 27일 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차장급 직원인 44살 남성 A씨가 찾아와 횡령 혐의를 시인했습니다. A 씨가 회삿돈 614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포착한 우리은행이, A 차장을 고소한 지 4시간여 만이었습니다. 막 수사에 착수했던 경찰은 A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했습니다.

우리은행은 이튿날인 어제(28일) 2012년과 2015년, 2018년 3차례에 걸쳐 총 614억 원의 횡령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습니다.

횡령이 시작된 건 10년 전. 마지막으로 돈을 빼낸 것도 무려 4년 전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횡령 혐의가 드러났을까요? 어떤 돈이 빼돌려졌는지 보면, 왜 이제야 횡령사고가 발각됐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횡령금, 12년 전 받았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

2010년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이 최대주주로 57%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작업이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매각 주관사이자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주채권은행이었던 우리은행은 2010년 이란 가전기업 엔텍합과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578억 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매각 협상 과정에서 계약이 취소됐고, 받았던 계약금은 우리은행이 관리했습니다. 당시 우리은행 기업개선부에 있던 A 씨는 대우일렉트로닉스 관련 업무를 했기에 계약금도 관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2015년 계약금을 뺏긴 이란 엔텍합 측이 국제소송을 제기해 3년만인 2018년 승소했고, 엔텍합에 돈을 돌려줘야 했지만, 그동안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송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 미국이 송금을 허용하면서 우리은행은 돈을 돌려주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계좌를 점검하다가 그제서야 돈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배상금 송금을 위한 특별 허가가 없었다면 횡령은 더 늦게 발견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614억 횡령 어떻게 가능? "문서 위조해 팀장 속여"

금융감독원은 횡령사고가 발생 이튿날인 어제(28일) 즉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내부통제시스템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받아야 할 A 씨를 직접 조사할 수 없고, 오래전에 발생한 사건이라 조사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2018년 마지막으로 돈을 빼돌렸을 때는 자산관리공사(캠코)에 계약금 관리 업무를 넘기는 것처럼 문서를 위조해 돈을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문서를 위조해 팀장을 속이고 승인을 받아 캠코에 돈을 보내는 것처럼 송금했다는 겁니다. 당시 A 씨가 돈을 보냈던 우리은행 계좌는 마지막 범행 후 해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 씨가 순환근무 없이 한 부서에만 오래 머무르게 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A 씨는 돈을 빼돌린 기업개선부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횡령 범행 기간을 포함하는 2011년 1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계속 이 부서에 있었습니다.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가 1년만인 2019년부터 다시 돌아와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까지도 기업개선부 소속이었습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장기간 한 업무에 종사하게 하면 금융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보통 영업점에서도 순환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며 "보직을 바꿔가며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금감원, 우리은행 검사 시작…회계법인 대상 현장조사도

금융감독원은 어제 우리은행에 대한 금융사고 검사에 착수한 데 이어 오늘은 정은보 금감원장 주재 회의를 열고 횡령사고 당시 우리은행의 회계감사인이었던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현장조사도 결정했습니다.

본격적인 감리에 착수하기 전에 횡령사고가 벌어졌던 부분의 회계감사 처리가 적정했는지, 위반 사항은 없었는지 살펴보겠다는 겁니다.

횡령사고가 벌어졌던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은행의 회계감사인은 안진회계법인이었습니다. 오늘 중 관련 부서 직원들이 안진회계법인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 경찰, A 씨 구속영장 신청 예정…동생도 긴급체포

A 씨를 긴급 체포해 범행 경위와 횡령금의 행방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은 오늘 중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공범으로 알려진 A 씨의 동생도 어젯(28일)밤 A 씨와 같은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우리은행 관계자들도 참고인으로 불러 횡령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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