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공에 갈 곳 잃은 교민들…“정부 지원 필요”

입력 2022.04.30 (07:00) 수정 2022.04.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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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진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우리 교민 대부분은 폴란드와 독일 등 다른 나라로 피란을 갔습니다. 전쟁으로 갑작스럽게 삶의 터전을 잃은 교민들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외국정부·NGO 도움 의존"

지난 2월 27일 KBS ‘뉴스9’ 방송 캡처지난 2월 27일 KBS ‘뉴스9’ 방송 캡처

우크라이나에서 17년 넘게 산 김도순 씨는 지난 2월 26일 가족들과 함께 폴란드 국경을 넘었습니다. 김 씨에게 폴란드는 예전에 잠시 출장 왔던 나라일 뿐, 아무런 연고도 없습니다. 김 씨는 "정서적으로 폴란드가 비슷하고, 국경도 (우크라이나와) 맞닿아 있어서 이쪽으로 많이 넘어온다"고 말했습니다.

시내 변두리의 한 임대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 김 씨는 전쟁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김 씨는 "쉽게 끝날 전쟁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쟁이 언제 끝날까'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 생각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답했습니다.

김 씨와 같은 피란민들은 1차적으론 현지 도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폴란드 정부로부터 의료보험 등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김 씨는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넘어와서 폴란드 세금을 축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며 "그런데도 (폴란드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린다든지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폴란드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곳곳에 같이 걸려있다고도 전했습니다.

김 씨처럼 폴란드로 피란 온 교민 A 씨도 모든 재산을 우크라이나에 두고 빠져나왔습니다. 국제 NGO 단체의 도움으로 숙소를 마련하고, 끼니는 난민 대피소에서 해결합니다. 별다른 벌이가 없어 급한 대로 번역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교민 협회 "정부의 도움 필요"

이달 7일과 8일, 우크라이나 교민 협회는 외교부와 주한 폴란드 대사관 등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급하게 탈출한 교민들 가운데 한국에 터전이 없어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런 기반도 없는 사람들에게 한국 정부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적의 가족들과 지인에 대한 비자 발급 또는 비자 없이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도 지난달 25일 자신의 SNS를 통해 우크라이나인의 한국 입국을 무비자로 허용해달라는 취지의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고려인 동포의 경우 신분증,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우크라이나인의 가족의 경우에는 가족관계증명 서류만 있으면 비자를 발급해주는 등 신청 과정을 대폭 간소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지인 또는 동거인 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입국 절차 간소화는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간 교민들의 소재지를 일일이 파악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에 한인 25명…"태풍의 눈 안에 있는 것 같다"

4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폭발 현장 (사진제공 AP=연합뉴스)4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폭발 현장 (사진제공 AP=연합뉴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교민은 25명입니다.

그중 한 명인 B 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B 씨는 "부차 사건처럼 학살 소식은 들려오지 않지만, 한 달 전보다 삼엄하고 위협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KBS에 말했습니다. 전쟁 초기와는 달리 포격 소리는 비교적 잠잠해져, 마치 '태풍의 눈' 안에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길어지는 전쟁에, 남은 사람들은 여러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전쟁 초반부터 가게에서는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현금으로만 물건을 살 수 있었는데, 이제 은행이 보유한 현금이 바닥나 사람들은 돈을 찾을 수조차 없습니다.

B 씨는 "지금까지 식량으로 인한 극한의 어려운 상황은 아니지만, 현금이 없으면 구할 수 없다"며 "천만다행인 것은 전기와 가스, 물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군인들이 구호물자를 빼앗아가기도 하고, 구호품을 받아와 비싸게 되파는 상인들도 눈에 띈다고 했습니다.

왜 아직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았느냐고 B 씨에게 물었습니다. B 씨는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이 곁에 있다"며 " 생명을 지켜줄 능력은 없어도 힘겨울 때 곁을 지켜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 남아있는 교민들은 숨죽이며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은 잔류 교민들의 상황을 전화 등으로 수시 확인하는 한편, 키이우 복귀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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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침공에 갈 곳 잃은 교민들…“정부 지원 필요”
    • 입력 2022-04-30 07:00:09
    • 수정2022-04-30 07:01:49
    취재K

2월 24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진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우리 교민 대부분은 폴란드와 독일 등 다른 나라로 피란을 갔습니다. 전쟁으로 갑작스럽게 삶의 터전을 잃은 교민들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외국정부·NGO 도움 의존"

지난 2월 27일 KBS ‘뉴스9’ 방송 캡처
우크라이나에서 17년 넘게 산 김도순 씨는 지난 2월 26일 가족들과 함께 폴란드 국경을 넘었습니다. 김 씨에게 폴란드는 예전에 잠시 출장 왔던 나라일 뿐, 아무런 연고도 없습니다. 김 씨는 "정서적으로 폴란드가 비슷하고, 국경도 (우크라이나와) 맞닿아 있어서 이쪽으로 많이 넘어온다"고 말했습니다.

시내 변두리의 한 임대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 김 씨는 전쟁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김 씨는 "쉽게 끝날 전쟁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쟁이 언제 끝날까'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 생각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답했습니다.

김 씨와 같은 피란민들은 1차적으론 현지 도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폴란드 정부로부터 의료보험 등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김 씨는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넘어와서 폴란드 세금을 축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며 "그런데도 (폴란드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린다든지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폴란드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곳곳에 같이 걸려있다고도 전했습니다.

김 씨처럼 폴란드로 피란 온 교민 A 씨도 모든 재산을 우크라이나에 두고 빠져나왔습니다. 국제 NGO 단체의 도움으로 숙소를 마련하고, 끼니는 난민 대피소에서 해결합니다. 별다른 벌이가 없어 급한 대로 번역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교민 협회 "정부의 도움 필요"

이달 7일과 8일, 우크라이나 교민 협회는 외교부와 주한 폴란드 대사관 등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급하게 탈출한 교민들 가운데 한국에 터전이 없어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런 기반도 없는 사람들에게 한국 정부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적의 가족들과 지인에 대한 비자 발급 또는 비자 없이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도 지난달 25일 자신의 SNS를 통해 우크라이나인의 한국 입국을 무비자로 허용해달라는 취지의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고려인 동포의 경우 신분증,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우크라이나인의 가족의 경우에는 가족관계증명 서류만 있으면 비자를 발급해주는 등 신청 과정을 대폭 간소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지인 또는 동거인 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입국 절차 간소화는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간 교민들의 소재지를 일일이 파악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에 한인 25명…"태풍의 눈 안에 있는 것 같다"

4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폭발 현장 (사진제공 AP=연합뉴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교민은 25명입니다.

그중 한 명인 B 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B 씨는 "부차 사건처럼 학살 소식은 들려오지 않지만, 한 달 전보다 삼엄하고 위협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KBS에 말했습니다. 전쟁 초기와는 달리 포격 소리는 비교적 잠잠해져, 마치 '태풍의 눈' 안에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길어지는 전쟁에, 남은 사람들은 여러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전쟁 초반부터 가게에서는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현금으로만 물건을 살 수 있었는데, 이제 은행이 보유한 현금이 바닥나 사람들은 돈을 찾을 수조차 없습니다.

B 씨는 "지금까지 식량으로 인한 극한의 어려운 상황은 아니지만, 현금이 없으면 구할 수 없다"며 "천만다행인 것은 전기와 가스, 물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군인들이 구호물자를 빼앗아가기도 하고, 구호품을 받아와 비싸게 되파는 상인들도 눈에 띈다고 했습니다.

왜 아직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았느냐고 B 씨에게 물었습니다. B 씨는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이 곁에 있다"며 " 생명을 지켜줄 능력은 없어도 힘겨울 때 곁을 지켜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 남아있는 교민들은 숨죽이며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은 잔류 교민들의 상황을 전화 등으로 수시 확인하는 한편, 키이우 복귀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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