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추적] 구독료만 110억…‘통·반장 신문’을 아십니까

입력 2022.05.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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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신 흔적이 빳빳하네요." )
"네. 그대로 그냥 모아만 놨기 때문에."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통장을 하고 있는 A 씨는 펼쳐본 흔적이 없는 신문을 들고 나왔습니다. A 씨가 구독하는 신문은 한겨레신문. 구독료는 구청이 내줍니다.

A 씨는 이 '공짜 신문'을 거의 보지 않습니다. 신문이 오면 1면 큰 제목만 읽어보고 차곡차곡 모읍니다. 모은 신문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 내놓습니다.

통장 업무 6년 차인 A 씨는 "처음 3년 동안은 신문을 봤다"며 "요즘에는 보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기 때문에 신문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각 자치구의 통장 또는 반장들이 받아 보는 통·반장 신문 구독료로 적지 않은 구청 예산이 들어갑니다.

서울 25개 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예산을 기준으로 통·반장 신문 연간 구독료는 115억 3천700만 원이었습니다. 구청당 평균 4억 6천100만 원입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통·반장 신문의 시작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정권 유지를 위한 홍보를 목적으로 정부에서 전국의 통·반장들에게 공짜 신문을 넣어줬는데, '계도지'로 불렸던 이런 악습이 서울 전체 자치구와 강원도 일부에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구청들이 악습을 없애지 않는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는 통·반장 편의 제공이라고 말하지만 속내는 다릅니다. 지난해 서울시 관악구의회에서 있었던 예산안 심사에서 관악구청 홍보담당자는 "언론사를 통해서 구정을 홍보하려고 하면 언론사와 유대 관계가 있다"며 "(언론사에서) 신문 구독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언론사와 유대를 쌓기 위해 신문 구독을 한다고 말한 겁니다.

2020년 서초구의회 회의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왔습니다. 서초구청 홍보담당자는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어떤 환경의 네트워크 유지를 위한 일종의 화학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그런 비용이 든다"며 "평소에 관계를 맺어놓지 않고 (리스크가 터졌을 때) 도와달라고 하면 '아니 내가 너를 언제 만났는데 도와줘'(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관악구의회의 한 의원은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꼬집었습니다. "구독료를 내고 기사를 청탁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통·반장들은 읽지도 않는 신문을 구청이 해마다 100억 원 넘게 들여 구독하는 현실. 이 구독료는 과연 누구를 위한 예산일까요.

5월 1일 저녁 8시 10분 KBS 1TV에서 첫 방송되는 <시사멘터리 추적>의 한 코너 '미디어 추적'에서는 50년 가까이 없어지지 않는 악습인 통·반장 신문을 추적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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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추적] 구독료만 110억…‘통·반장 신문’을 아십니까
    • 입력 2022-05-01 10:00:15
    취재K
("안 보신 흔적이 빳빳하네요." )
"네. 그대로 그냥 모아만 놨기 때문에."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통장을 하고 있는 A 씨는 펼쳐본 흔적이 없는 신문을 들고 나왔습니다. A 씨가 구독하는 신문은 한겨레신문. 구독료는 구청이 내줍니다.

A 씨는 이 '공짜 신문'을 거의 보지 않습니다. 신문이 오면 1면 큰 제목만 읽어보고 차곡차곡 모읍니다. 모은 신문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 내놓습니다.

통장 업무 6년 차인 A 씨는 "처음 3년 동안은 신문을 봤다"며 "요즘에는 보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기 때문에 신문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각 자치구의 통장 또는 반장들이 받아 보는 통·반장 신문 구독료로 적지 않은 구청 예산이 들어갑니다.

서울 25개 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예산을 기준으로 통·반장 신문 연간 구독료는 115억 3천700만 원이었습니다. 구청당 평균 4억 6천100만 원입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통·반장 신문의 시작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정권 유지를 위한 홍보를 목적으로 정부에서 전국의 통·반장들에게 공짜 신문을 넣어줬는데, '계도지'로 불렸던 이런 악습이 서울 전체 자치구와 강원도 일부에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구청들이 악습을 없애지 않는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는 통·반장 편의 제공이라고 말하지만 속내는 다릅니다. 지난해 서울시 관악구의회에서 있었던 예산안 심사에서 관악구청 홍보담당자는 "언론사를 통해서 구정을 홍보하려고 하면 언론사와 유대 관계가 있다"며 "(언론사에서) 신문 구독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언론사와 유대를 쌓기 위해 신문 구독을 한다고 말한 겁니다.

2020년 서초구의회 회의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왔습니다. 서초구청 홍보담당자는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어떤 환경의 네트워크 유지를 위한 일종의 화학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그런 비용이 든다"며 "평소에 관계를 맺어놓지 않고 (리스크가 터졌을 때) 도와달라고 하면 '아니 내가 너를 언제 만났는데 도와줘'(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관악구의회의 한 의원은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꼬집었습니다. "구독료를 내고 기사를 청탁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통·반장들은 읽지도 않는 신문을 구청이 해마다 100억 원 넘게 들여 구독하는 현실. 이 구독료는 과연 누구를 위한 예산일까요.

5월 1일 저녁 8시 10분 KBS 1TV에서 첫 방송되는 <시사멘터리 추적>의 한 코너 '미디어 추적'에서는 50년 가까이 없어지지 않는 악습인 통·반장 신문을 추적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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