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스태그플레이션입니까, 아닙니까?

입력 2022.05.0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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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2022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쇼크 : 얼마나 나빠질까"

4.8% 소비자물가 상승률.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난 상태에서 물가 상승률 수치는 점점 더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있습니다. 정말 오일쇼크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시작일까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최신기사, [2022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쇼크 : 얼마나 나빠질까]에 나온 그래프 하나 먼저 보시겠습니다. 제목부터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 기사의 첫 그래프는 마치 '이래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냐?'고 묻고 있는 듯 합니다.


이 그래프는 2022년의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이 2021년 1월부터 최근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8개 나라가 대상입니다.

공통된 패턴이 보입니다. 2022년에 가까워질수록 성장률 전망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 전망은 급격히 치솟습니다. 특히 상당수의 나라에서 올해 1월 이후 성장 전망은 푹 고꾸라지고 인플레이션은 확대되는 모양새가 나옵니다. 유럽 국가들이 더 심하긴 한데 추세 자체는 공통적입니다.

두 가지 경제 외적 변수의 영향입니다. 최근 변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와 그에 대응하는 세계의 러시아 제재입니다. 전쟁이 경제 용어로는 '외부 충격'이라는 변수가 됩니다.

그런데 전쟁 이전에도 물가는 점점 올라가고 성장률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존재하던 충격, '코로나 회복 경로의 불확실성'입니다.

■ IMF "인플레이션은 더 높게 올라가고, 더 오래 지속된다"

이 두 변수의 영향을 좀 더 살펴보죠. 지난달 발표된 IMF의 향후 물가 전망 그래프입니다. 지역별로 세 개의 포물선형 그래프가 보입니다. 지난해 10월과 올 1월, 지난달까지 석 달 간격으로 발표한 '현재와 향후 인플레이션' 전망입니다.


지난해 10월에서 올해 1월 전망 사이 변화는 코로나 회복경로 불확실성의 영향입니다. 공급망 병목 현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반도체와 에너지, 각종 광물의 가격이 더 많이 올랐습니다. 동시에 정부 재정 부양책의 부작용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금방 해소될 줄 알고 일시적이라 했던 물가 상승, 노동시장 인력 부족, 물류난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국제 밀 가격 등 곡물가격까지 치솟자 물가는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IMF는 인플레이션이 지금보다 더 높게 올라가고, 더 오래 지속한다고 했습니다.

■ 그럼에도 스태그플레이션 일 수도, 아닐 수도

FT는 이미 왔다고 강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스태그플레이션인가, 혹은 그 전 단계인가, 아닌가를 놓고는 논쟁이 많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조 격인 70년대 오일쇼크와는 같은 점도, 다른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FT와 인터뷰한 루이지 스페란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70년대와 꼭 같진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스태그플레이션같이 느껴질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국내 경제학자들은 좀 더 유보적이었습니다. 조영무 LG 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70년대 당시 세계가 15%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일시적으로 미국 경제가 역성장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직 글로벌 7~8%대에 미국경제는 여전히 플러스 성장이 기대되기 때문이란 것이죠.

황세운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높은 플러스의 물가상승률이 전제되어야 한단 겁니다.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슬로우플레이션의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좀 낮은 성장과 높은 물가 상승의 조합이란 것이죠.

KDI 정규철 경제전망 실장도 아직 경기 침체기는 아니므로 당장 스태그플레이션이 왔다기보다는 공급 충격이 좀 크게 왔다고 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답했습니다. 경기 부진에 물가가 높아지는 것이니 스태그플레이션 방향을 향한단 겁니다. 물가 불안정은 경기에 선행해 나타나고, 다른 경기 지표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물가가 불안하니 경제 주체들은 향후 자산가치와 가격 움직임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고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죠.

하지만 용어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점이 큰 차이는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은 지점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와 경기 정체가 결합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상상을 못했다. '코로나 회복경로'와 '전쟁'의 불확실성이라는 두 강펀치가 세계를 이 방향으로 몰았다.

사실 조영무 연구위원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의 기원에 명확한 경제적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정치인입니다. 1965년 이언 맥클레오드는 의회에서 '경기침체Stagnation과 인플레이션 Inflation이 동시에 나타난 최악의 상황Stagflation'이라며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조 위원은 "훗날 재무장관(1970)이 되긴 하지만, 시작은 정치인이 상황을 표현한 정치적 발언"이었으니 이 단어를 경제적으로 명확히 정의하려는 자체가 실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소득이 내려가고 어려움은 커진다" …저소득층이 더 힘들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제용어는 성장은 내려가고 인플레이션은 올라가는 상황을 표현한 것인데, 사람들은 소득이 내려가고 어려움은 커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IMF 게오르기 에바 총재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미치고, 중산층 그리고 저소득층에 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생활물가지수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통계청이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들로 구성돼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하는 지수입니다. 이 생활물가지수는 일반적인 인플레이션(소비자물가지수 CPI)보다 변동 폭이 더 큽니다. 물가가 많이 오를 때 생활물가지수는 더 많이 올라갑니다. (물가가 내릴 때는 더 많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즉, 가격이 올라도 구매를 줄일 수 없는, 사야만 하는 품목 가격은 더 많이 오른다는 뜻입니다. 저소득층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각국 정부의 정교한 경제 정책이 시험대에

이미 물가 상황은 안 좋은 신호가 울리는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영미권 물가는 확실히 위험한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유럽은 아직은 에너지 부문을 빼면 그런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4월 수치를 보면 에너지를 뺀 이른바 '코어 지수(석유류 혹은 에너지 제외지수)' 역시 고개를 치켜드는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최대 관심은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할지 여부입니다. 70년대 당시에는 10년 넘게 지속했습니다. 장기 불황이었죠.

이번엔 그런 장기 불황이라고 보는 시각이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IMF도 내년 중반 이후 인플레이션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봅니다.

달러 거품을 담뱃불로 꺼트리려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FT, ⓒJames Ferguson)달러 거품을 담뱃불로 꺼트리려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FT, ⓒJames Ferguson)

여러 이유를 제시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적 중앙은행'이라는 제도입니다. 오일쇼크를 끝낸 것이 바로 미 연준의 폴 볼커 의장이죠. 금리를 무려 19%까지 올리며 '인플레이션 파이터'라고 불렸습니다. 결국, 물가를 잡았습니다. 이후 각국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지닌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잘 가꿔왔습니다.

불신이 있긴 합니다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연준의 실패'를 공공연히 언급합니다. 전 미국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 역시 '연준이 실기했다, 이제 고통스런 금리 인상 없이는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은 통화 정책이 바른 방향(긴축)으로 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통화정책에서 고삐를 죌 때 재정정책이 조화로울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긴축하면 경기가 하강할 수 있습니다. 경제 주체들이 돈을 빌리는데 주저하게 되면 경기는 둔화됩니다. 이때 정부가 적절한 재정정책으로 과도한 경기부양은 자제하되, 피해가 집중되는 계층과 집단에 목표화된 정책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경제 성장이, 각국의 경기가 큰 틀에서 훼손되지 않는다면, 조금은 힘들지만 건전한 경로로 상황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 변수는 전쟁, 그리고 '임금-물가 악순환'의 출현 여부

변수는 역시 전쟁의 장기지속, 그리고 전쟁에 대한 서방의 제재와 러시아의 보복이 반복되는 상황입니다. 다른 변수는 ‘임금과 가격의 악순환 : Wage-Price Spiral'입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월급이 오르고, 월급이 올라서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하는 악순환이 나타나면 고물가 상황이 더 장기적으로 지속할 겁니다.

미국에서 이런 상황이 온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고, 한국은행도 최근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유사한 경고를 했습니다. '현재 우리 노동시장 내 임금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고, 물가와 임금 간 전가 효과도 있다며, 상황이 지속하면 올 하반기 '물가와 임금의 악순환'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 '민주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생존한다'

인플레이션이 왜 무서운가?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정을 미루고 들었다는 대통령직 인수위 워크샵의 강연 자료의 한 대목입니다. 이 표현이 화제가 됐습니다.

김형태 김앤장 수석 이코노미스트 〈글로벌 환경변화와 한국경제 대응방향〉 3.26 강연 자료김형태 김앤장 수석 이코노미스트 〈글로벌 환경변화와 한국경제 대응방향〉 3.26 강연 자료

정권이 인플레이션을 못 이기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다양한 차원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사재기 등 사회 불안이 생긴다. 아랍의 봄도, 카자흐스탄의 정치 위기도 다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지금 미국도 그렇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올 연말 중간선거 질 확률이 90%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이유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을 못 잡으면 국민이 용서를 못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인플레이션이 왜 무서운가? 표가 날아가기 때문이다(정권이 교체된다)’는 얘길 한 겁니다.

황세운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경기 둔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물가가 올라가는 건 못 견딘다.

인플레이션은 피부에 와닿는다는 얘깁니다. 반면 성장률 줄어드는 것은 사실 내 피부로 직접 와닿는 현상은 아니죠. 숫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물가가 올라가면 내 지갑이 홀쭉해집니다. 매달 통장 잔고가 더 빨리 사라지죠. 고통이 체감되는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국민들은 증세를 싫어하듯 인플레이션도 싫어합니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아야만 하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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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 스태그플레이션입니까, 아닙니까?
    • 입력 2022-05-03 11:46:39
    취재K

■FT "2022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쇼크 : 얼마나 나빠질까"

4.8% 소비자물가 상승률.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난 상태에서 물가 상승률 수치는 점점 더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있습니다. 정말 오일쇼크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시작일까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최신기사, [2022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쇼크 : 얼마나 나빠질까]에 나온 그래프 하나 먼저 보시겠습니다. 제목부터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 기사의 첫 그래프는 마치 '이래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냐?'고 묻고 있는 듯 합니다.


이 그래프는 2022년의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이 2021년 1월부터 최근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8개 나라가 대상입니다.

공통된 패턴이 보입니다. 2022년에 가까워질수록 성장률 전망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 전망은 급격히 치솟습니다. 특히 상당수의 나라에서 올해 1월 이후 성장 전망은 푹 고꾸라지고 인플레이션은 확대되는 모양새가 나옵니다. 유럽 국가들이 더 심하긴 한데 추세 자체는 공통적입니다.

두 가지 경제 외적 변수의 영향입니다. 최근 변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와 그에 대응하는 세계의 러시아 제재입니다. 전쟁이 경제 용어로는 '외부 충격'이라는 변수가 됩니다.

그런데 전쟁 이전에도 물가는 점점 올라가고 성장률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존재하던 충격, '코로나 회복 경로의 불확실성'입니다.

■ IMF "인플레이션은 더 높게 올라가고, 더 오래 지속된다"

이 두 변수의 영향을 좀 더 살펴보죠. 지난달 발표된 IMF의 향후 물가 전망 그래프입니다. 지역별로 세 개의 포물선형 그래프가 보입니다. 지난해 10월과 올 1월, 지난달까지 석 달 간격으로 발표한 '현재와 향후 인플레이션' 전망입니다.


지난해 10월에서 올해 1월 전망 사이 변화는 코로나 회복경로 불확실성의 영향입니다. 공급망 병목 현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반도체와 에너지, 각종 광물의 가격이 더 많이 올랐습니다. 동시에 정부 재정 부양책의 부작용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금방 해소될 줄 알고 일시적이라 했던 물가 상승, 노동시장 인력 부족, 물류난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국제 밀 가격 등 곡물가격까지 치솟자 물가는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IMF는 인플레이션이 지금보다 더 높게 올라가고, 더 오래 지속한다고 했습니다.

■ 그럼에도 스태그플레이션 일 수도, 아닐 수도

FT는 이미 왔다고 강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스태그플레이션인가, 혹은 그 전 단계인가, 아닌가를 놓고는 논쟁이 많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조 격인 70년대 오일쇼크와는 같은 점도, 다른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FT와 인터뷰한 루이지 스페란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70년대와 꼭 같진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스태그플레이션같이 느껴질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국내 경제학자들은 좀 더 유보적이었습니다. 조영무 LG 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70년대 당시 세계가 15%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일시적으로 미국 경제가 역성장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직 글로벌 7~8%대에 미국경제는 여전히 플러스 성장이 기대되기 때문이란 것이죠.

황세운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높은 플러스의 물가상승률이 전제되어야 한단 겁니다.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슬로우플레이션의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좀 낮은 성장과 높은 물가 상승의 조합이란 것이죠.

KDI 정규철 경제전망 실장도 아직 경기 침체기는 아니므로 당장 스태그플레이션이 왔다기보다는 공급 충격이 좀 크게 왔다고 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답했습니다. 경기 부진에 물가가 높아지는 것이니 스태그플레이션 방향을 향한단 겁니다. 물가 불안정은 경기에 선행해 나타나고, 다른 경기 지표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물가가 불안하니 경제 주체들은 향후 자산가치와 가격 움직임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고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죠.

하지만 용어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점이 큰 차이는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은 지점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와 경기 정체가 결합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상상을 못했다. '코로나 회복경로'와 '전쟁'의 불확실성이라는 두 강펀치가 세계를 이 방향으로 몰았다.

사실 조영무 연구위원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의 기원에 명확한 경제적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정치인입니다. 1965년 이언 맥클레오드는 의회에서 '경기침체Stagnation과 인플레이션 Inflation이 동시에 나타난 최악의 상황Stagflation'이라며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조 위원은 "훗날 재무장관(1970)이 되긴 하지만, 시작은 정치인이 상황을 표현한 정치적 발언"이었으니 이 단어를 경제적으로 명확히 정의하려는 자체가 실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소득이 내려가고 어려움은 커진다" …저소득층이 더 힘들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제용어는 성장은 내려가고 인플레이션은 올라가는 상황을 표현한 것인데, 사람들은 소득이 내려가고 어려움은 커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IMF 게오르기 에바 총재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미치고, 중산층 그리고 저소득층에 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생활물가지수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통계청이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들로 구성돼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하는 지수입니다. 이 생활물가지수는 일반적인 인플레이션(소비자물가지수 CPI)보다 변동 폭이 더 큽니다. 물가가 많이 오를 때 생활물가지수는 더 많이 올라갑니다. (물가가 내릴 때는 더 많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즉, 가격이 올라도 구매를 줄일 수 없는, 사야만 하는 품목 가격은 더 많이 오른다는 뜻입니다. 저소득층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각국 정부의 정교한 경제 정책이 시험대에

이미 물가 상황은 안 좋은 신호가 울리는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영미권 물가는 확실히 위험한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유럽은 아직은 에너지 부문을 빼면 그런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4월 수치를 보면 에너지를 뺀 이른바 '코어 지수(석유류 혹은 에너지 제외지수)' 역시 고개를 치켜드는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최대 관심은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할지 여부입니다. 70년대 당시에는 10년 넘게 지속했습니다. 장기 불황이었죠.

이번엔 그런 장기 불황이라고 보는 시각이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IMF도 내년 중반 이후 인플레이션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봅니다.

달러 거품을 담뱃불로 꺼트리려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FT, ⓒJames Ferguson)
여러 이유를 제시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적 중앙은행'이라는 제도입니다. 오일쇼크를 끝낸 것이 바로 미 연준의 폴 볼커 의장이죠. 금리를 무려 19%까지 올리며 '인플레이션 파이터'라고 불렸습니다. 결국, 물가를 잡았습니다. 이후 각국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지닌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잘 가꿔왔습니다.

불신이 있긴 합니다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연준의 실패'를 공공연히 언급합니다. 전 미국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 역시 '연준이 실기했다, 이제 고통스런 금리 인상 없이는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은 통화 정책이 바른 방향(긴축)으로 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통화정책에서 고삐를 죌 때 재정정책이 조화로울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긴축하면 경기가 하강할 수 있습니다. 경제 주체들이 돈을 빌리는데 주저하게 되면 경기는 둔화됩니다. 이때 정부가 적절한 재정정책으로 과도한 경기부양은 자제하되, 피해가 집중되는 계층과 집단에 목표화된 정책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경제 성장이, 각국의 경기가 큰 틀에서 훼손되지 않는다면, 조금은 힘들지만 건전한 경로로 상황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 변수는 전쟁, 그리고 '임금-물가 악순환'의 출현 여부

변수는 역시 전쟁의 장기지속, 그리고 전쟁에 대한 서방의 제재와 러시아의 보복이 반복되는 상황입니다. 다른 변수는 ‘임금과 가격의 악순환 : Wage-Price Spiral'입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월급이 오르고, 월급이 올라서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하는 악순환이 나타나면 고물가 상황이 더 장기적으로 지속할 겁니다.

미국에서 이런 상황이 온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고, 한국은행도 최근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유사한 경고를 했습니다. '현재 우리 노동시장 내 임금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고, 물가와 임금 간 전가 효과도 있다며, 상황이 지속하면 올 하반기 '물가와 임금의 악순환'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 '민주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생존한다'

인플레이션이 왜 무서운가?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정을 미루고 들었다는 대통령직 인수위 워크샵의 강연 자료의 한 대목입니다. 이 표현이 화제가 됐습니다.

김형태 김앤장 수석 이코노미스트 〈글로벌 환경변화와 한국경제 대응방향〉 3.26 강연 자료
정권이 인플레이션을 못 이기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다양한 차원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사재기 등 사회 불안이 생긴다. 아랍의 봄도, 카자흐스탄의 정치 위기도 다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지금 미국도 그렇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올 연말 중간선거 질 확률이 90%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이유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을 못 잡으면 국민이 용서를 못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인플레이션이 왜 무서운가? 표가 날아가기 때문이다(정권이 교체된다)’는 얘길 한 겁니다.

황세운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경기 둔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물가가 올라가는 건 못 견딘다.

인플레이션은 피부에 와닿는다는 얘깁니다. 반면 성장률 줄어드는 것은 사실 내 피부로 직접 와닿는 현상은 아니죠. 숫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물가가 올라가면 내 지갑이 홀쭉해집니다. 매달 통장 잔고가 더 빨리 사라지죠. 고통이 체감되는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국민들은 증세를 싫어하듯 인플레이션도 싫어합니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아야만 하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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