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개발’ 축포…이면의 “혹독한 격난”

입력 2022.05.03 (18:58) 수정 2022.05.0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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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에 허덕인다더니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북한이 최근 자랑한 평양 도심 초고층 아파트 단지와 화려한 열병식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입니다. 하지만 축포로 둘러싸인 겉모습 뒤에 감춰진 북한 내부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어 보입니다. 화려한 선전전의 극적 효과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북한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혹독한 격난과 사상 초유의 중압"…'어렵다' 소리치는 북한

오늘(3일)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 개발 성과 띄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최근 핵무기 사용 조건을 확장하며 선제 핵 공격 가능성을 공언한 것을 '담대하고 새로운 결단'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동서 고금에 없는 미증유의 대승리를 거뒀다"면서 핵 개발의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처한 현실을 "혹독한 격난과 사상 초유의 중압"이라고 표현해 자신들의 어려움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신문은 "(적들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나라도 겪어본 적 없는 가장 혹독한 제재 압박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실제로 북한의 핵 개발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심화시켰고,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북한을 완벽한 폐쇄 사회로 몰아갔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김정은 (지난달 27일)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김정은 (지난달 27일)

■ 제재도 버텼는데, 진짜 직격탄은 코로나? … 다시 멈춰선 북·중 화물 열차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이 북한산 광물 수출 불허와 연간 정제유 수입 상한선을 50만 배럴로 제한한 초강력 제재를 결의한지 이제 5년이 돼갑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북제재는 여전히 사상 최강으로 가동되고 있고, 북한 교역의 95% 정도의 숨통을 죄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중국과의 교역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미 구조적인 문제이며, 민간 소비가 상당히 억제된 채로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최대한 덜 먹고 덜 쓰면서 수년 째 버티고 있다는 얘깁니다.

반면에, 국제 사회 제재가 북한 주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 10년간 탈북민 천2백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공개한 '김정은 집권 10년 북한 주민 통일의식'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주식을 '쌀'로만 먹었다는 응답은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1~2014년 44.4%였지만 중기(2015~2017년) 53.4%, 후기(2018~2020년)에는 69.2%로 증가했습니다. 주로 '강냉이'를 먹었다는 답변은 집권 초기 22.2%에서 중기 12.1%, 후기 5.5%로 감소했습니다. '고기'를 매일 먹었다는 응답도 초기 8.7%에서 후기 13.3%로 늘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섭취했다'는 응답은 초기 25.4%에서 후기 45.1%로 증가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에서 바라본 중조우의교(왼쪽)와 압록강단교 (올해 1월 촬영)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에서 바라본 중조우의교(왼쪽)와 압록강단교 (올해 1월 촬영)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전문가들은 이전보다는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중국과의 교역이 지속됐고, 북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장마당이 활성화됐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도 코로나19 사태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북중 국경봉쇄가 강화되면서 밀가루와 콩나물, 설탕 같은 식료품의 수입이 매우 감소해 주민들의 생활이 불안정해졌다고 '북한 주민 통일의식 보고서'도 지적했습니다.

1년 반 동안 닫혔던 북·중 교역 거점인 중국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는 화물열차 운행이 올해 초 재개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단둥 지역 봉쇄로 열차 운행은 이달부터 다시 중단된 상태입니다.

■ 설상가상 '가뭄'까지…"식량난 전투도 당 옹위·보위 전"

코로나19로 더욱 고립된 북한을 덮치는 또 하나의 공포는'가뭄'입니다. 겨울 가뭄이 극심해 지난해 파종한 밀과 보리 상당수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지난해 태풍과 장마 등으로 인해 쌀값이 오르는 등 식량난이 가중되자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밀과 보리 농사 확대를 지시했는데 이마저도 어렵게 된 것입니다.


올해 봄 가뭄 역시 심각할 것으로 북한 당국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비롯해 서해안 중부 이남 지역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자 노동신문 기사를 보면 북한이 가뭄으로 인한 식량 생산 차질을 막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데요. 신문은 "가뭄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한 투쟁은 자연과의 전쟁이기 전에 당 정책 옹위전, 당의 권위 보위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민 독려를 위해 농업 생산량 증대를 당의 권위, 국가의 존망과 연결지은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도 김정은 위원장이 식량난과 관련해 "살얼음 걷는 심정이고, 낱알 한 톨까지 확보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온갖 조명으로 치장한 평양 시내 초고층 건물들과 한 편의 영화 같은 열병식 등 북한의 최신 선전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해졌지만, '자력갱생'이라는 구호 속의 경제난과 그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엄연한 북한의 '진짜 현실'입니다.

북한 매체들은 일주일째 열병식을 재조명하며 '김정은 원수' 칭송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특수성을 참작해도 '과하다'는 게 최근 만난 당국자나 전문가들의 반응입니다. 연일 '핵 선제 공격론'을 띄우는 것도 역시 정상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핵'이라는 성과물과 그 때문에 포기한 '경제'. 핵과 경제 사이의 모순을 잠재울 열쇠로써 북한이 선전·선동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걸까요? 어쨌거나 북한은 핵 무력을 더 가다듬기 위해 앞으로도 고난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보다 실효적인 대북 접근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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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핵개발’ 축포…이면의 “혹독한 격난”
    • 입력 2022-05-03 18:58:41
    • 수정2022-05-03 18:59:35
    취재K


"경제난에 허덕인다더니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북한이 최근 자랑한 평양 도심 초고층 아파트 단지와 화려한 열병식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입니다. 하지만 축포로 둘러싸인 겉모습 뒤에 감춰진 북한 내부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어 보입니다. 화려한 선전전의 극적 효과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북한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혹독한 격난과 사상 초유의 중압"…'어렵다' 소리치는 북한

오늘(3일)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 개발 성과 띄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최근 핵무기 사용 조건을 확장하며 선제 핵 공격 가능성을 공언한 것을 '담대하고 새로운 결단'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동서 고금에 없는 미증유의 대승리를 거뒀다"면서 핵 개발의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처한 현실을 "혹독한 격난과 사상 초유의 중압"이라고 표현해 자신들의 어려움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신문은 "(적들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나라도 겪어본 적 없는 가장 혹독한 제재 압박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실제로 북한의 핵 개발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심화시켰고,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북한을 완벽한 폐쇄 사회로 몰아갔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김정은 (지난달 27일)
■ 제재도 버텼는데, 진짜 직격탄은 코로나? … 다시 멈춰선 북·중 화물 열차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이 북한산 광물 수출 불허와 연간 정제유 수입 상한선을 50만 배럴로 제한한 초강력 제재를 결의한지 이제 5년이 돼갑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북제재는 여전히 사상 최강으로 가동되고 있고, 북한 교역의 95% 정도의 숨통을 죄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중국과의 교역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미 구조적인 문제이며, 민간 소비가 상당히 억제된 채로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최대한 덜 먹고 덜 쓰면서 수년 째 버티고 있다는 얘깁니다.

반면에, 국제 사회 제재가 북한 주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 10년간 탈북민 천2백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공개한 '김정은 집권 10년 북한 주민 통일의식'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주식을 '쌀'로만 먹었다는 응답은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1~2014년 44.4%였지만 중기(2015~2017년) 53.4%, 후기(2018~2020년)에는 69.2%로 증가했습니다. 주로 '강냉이'를 먹었다는 답변은 집권 초기 22.2%에서 중기 12.1%, 후기 5.5%로 감소했습니다. '고기'를 매일 먹었다는 응답도 초기 8.7%에서 후기 13.3%로 늘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섭취했다'는 응답은 초기 25.4%에서 후기 45.1%로 증가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에서 바라본 중조우의교(왼쪽)와 압록강단교 (올해 1월 촬영)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전문가들은 이전보다는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중국과의 교역이 지속됐고, 북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장마당이 활성화됐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도 코로나19 사태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북중 국경봉쇄가 강화되면서 밀가루와 콩나물, 설탕 같은 식료품의 수입이 매우 감소해 주민들의 생활이 불안정해졌다고 '북한 주민 통일의식 보고서'도 지적했습니다.

1년 반 동안 닫혔던 북·중 교역 거점인 중국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는 화물열차 운행이 올해 초 재개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단둥 지역 봉쇄로 열차 운행은 이달부터 다시 중단된 상태입니다.

■ 설상가상 '가뭄'까지…"식량난 전투도 당 옹위·보위 전"

코로나19로 더욱 고립된 북한을 덮치는 또 하나의 공포는'가뭄'입니다. 겨울 가뭄이 극심해 지난해 파종한 밀과 보리 상당수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지난해 태풍과 장마 등으로 인해 쌀값이 오르는 등 식량난이 가중되자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밀과 보리 농사 확대를 지시했는데 이마저도 어렵게 된 것입니다.


올해 봄 가뭄 역시 심각할 것으로 북한 당국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비롯해 서해안 중부 이남 지역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자 노동신문 기사를 보면 북한이 가뭄으로 인한 식량 생산 차질을 막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데요. 신문은 "가뭄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한 투쟁은 자연과의 전쟁이기 전에 당 정책 옹위전, 당의 권위 보위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민 독려를 위해 농업 생산량 증대를 당의 권위, 국가의 존망과 연결지은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도 김정은 위원장이 식량난과 관련해 "살얼음 걷는 심정이고, 낱알 한 톨까지 확보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온갖 조명으로 치장한 평양 시내 초고층 건물들과 한 편의 영화 같은 열병식 등 북한의 최신 선전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해졌지만, '자력갱생'이라는 구호 속의 경제난과 그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엄연한 북한의 '진짜 현실'입니다.

북한 매체들은 일주일째 열병식을 재조명하며 '김정은 원수' 칭송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특수성을 참작해도 '과하다'는 게 최근 만난 당국자나 전문가들의 반응입니다. 연일 '핵 선제 공격론'을 띄우는 것도 역시 정상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핵'이라는 성과물과 그 때문에 포기한 '경제'. 핵과 경제 사이의 모순을 잠재울 열쇠로써 북한이 선전·선동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걸까요? 어쨌거나 북한은 핵 무력을 더 가다듬기 위해 앞으로도 고난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보다 실효적인 대북 접근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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