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80→148위…홍콩 ‘언론 자유’ 추락 이유는?

입력 2022.05.05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5월 3일 발표한 ‘2022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 표지국경없는 기자회(RSF)가 5월 3일 발표한 ‘2022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 표지

지난해 11월 12일 한국프레스센터. 국민의힘 대선 주자 윤석열 후보가 급한 일정 중에서도 시간을 내 민감한 현안들에 답했습니다. "사드 배치는 우리 정부의 주권 사항이다", "쿼드는 워킹그룹에 더 참여해야 한다", "현재 종전선언은 반대한다".

11월 25일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역시 "북한이 남북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할 말은 하겠다"고 말하는 등 여러 정치적 견해를 밝혔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같은 모임에 초대됐습니다. 바로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입니다.

2021년 11월 12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답하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 연합뉴스)2021년 11월 12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답하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 연합뉴스)

한국에 상주 하는 외신기자의 권익 보호는 물론 한국 정부, 홍보 관계자들과의 교류 증진 등을 목적으로 활동합니다. 대선 기간 한국의 대선 후보들이 줄줄이 참석해 정견을 밝히고 총리들도 국정을 설명할 만큼 존중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현 여권의 언론중재법 추진에 대해 우려 입장을 내는 등 언론 현안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 홍콩 외신기자클럽, 26년 전통 '인권언론상' 시상 중단

홍콩 역시 외신기자클럽이 활발히 활동해왔습니다. 특히 해마다 '세계 언론 자유의 날'인 5월 3일에는 인권언론상을 시상해왔습니다. 아시아 지역 영어와 중국어 보도를 대상으로 지난해까지 26년간 이어온 전통입니다. 하지만 올해 5월 3일에는 상을 수여하는 대신 성명을 냈습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 건물과 관계자들. (사진: 홍콩 외신기자클럽 홈페이지)홍콩 외신기자클럽 건물과 관계자들. (사진: 홍콩 외신기자클럽 홈페이지)

키스 리치버그 홍콩 외신기자클럽 회장은 성명에서 인권언론상 시상을 중단하기로 한 클럽의 결정을 재확인했습니다. 현재 홍콩의 정치 상황에서 인권언론상을 계속 시상할 경우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위험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회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앞으로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이 새로운 지역 스폰서와 함께 대신 인권언론상을 수여할 계획이라고도 소개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은 올해 인권언론상 수상자로 지난 연말 자진 폐간한 입장신문이 선정됐기 때문으로 전해졌습니다. 입장신문의 전직 편집장 등 간부들은 선동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AFP 통신은 홍콩 외신기자클럽 안에서 입장신문에 인권언론상을 줄 경우 홍콩 국가보안법이나 선동죄로 기소될 수 있다는 법률적 조언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 홍콩,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뒤 언론사 폐간 잇달아

홍콩에서는 2020년 6월 국가보안법이 시행됐습니다. 이후 범민주 정치 세력은 위축됐고 홍콩과 중국 당국에 비판적 성향을 보인 언론사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빈과일보, 입장신문, 시티즌뉴스 등이 압수수색, 사주 체포 등 다양한 압박 속에 자진 폐간했습니다. 입장신문은 홍콩에 '문자의 옥(중국 역사에서 지식인에 대한 권력의 탄압)'이 왔다고 한탄하며 온라인상의 과거 칼럼들도 삭제했습니다.

경찰에 연행되는 패트릭 람 입장신문 편집장 (사진: 연합뉴스)경찰에 연행되는 패트릭 람 입장신문 편집장 (사진: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홍콩의 공안 정국을 주도했던 경찰 출신 존 리 전 정무부총리가 사실상 차기 행정장관으로 사실상 확정됐습니다. 5월 8일 행정장관 선거는 요식 행위일 뿐입니다. 베이징의 낙점을 받은 존 리가 이미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확보했습니다. 존 리는 홍콩 자체의 보안법 제정 추진 구상도 밝혔습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의 이번 결정은 이 같은 홍콩의 정치, 언론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미 지난해 8~10월 홍콩 외신기자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46%가 언론 자유 후퇴를 이유로 홍콩을 떠날 계획을 세웠거나 고려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56%는 홍콩 보안법 시행 후 민감한 주제 보도를 기피하는 등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86%는 취재원들이 민감한 현안에 언급을 피하거나 인용을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홍콩 최대 언론인 단체인 홍콩 기자협회 역시 지난달 협회 진로를 놓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정치적 압력 속에 협회 해산 여부 등을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 일단 '당분간' 운영을 지속하면서 계속 의견을 수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홍콩 기자협회는 홍콩 당국으로부터 협회 회계 기록과 회원 명단을 공개하는 압력을 받아왔습니다.

■ 홍콩 '언론 자유' 80위→148위 추락…중국 "외신기자클럽은 불법 조직"

이 같은 언론 환경을 반영하듯,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5월 3일 발표한 '2022년 세계 언론자유 지수'를 보면 홍콩은 전 세계 180개국 가운데 148위를 기록했습니다. 전년도 80위 대비 무려 68계단이나 떨어져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2002년 첫 발표 당시에는 18위였습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올해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홍콩은 180개국 중 148위였다. 2021년은 80위였다. (국경없는 기자회 홈페이지)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올해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홍콩은 180개국 중 148위였다. 2021년은 80위였다. (국경없는 기자회 홈페이지)

올해 한국은 43위, 중국 175위, 북한은 최하위인 180위였습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 리치버그 회장은 다양한 견해와 목소리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드러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홍콩의 일국양제가 허울뿐인 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베이징에도 중국 외신기자클럽(FCCC)이 있습니다. 중국의 취재 현실에 대한 백서를 발간하는 등 비판적 견해를 숨기지 않습니다. 2월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중국의 보도 환경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의 성명도 발표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해 4월 1일 “중국 외신기자클럽은 중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조직”이라고 말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해 4월 1일 “중국 외신기자클럽은 중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조직”이라고 말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이 같은 중국 외신기자클럽에 대해 지난해 4월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중국 외신기자클럽은 중국이 승인한 바 없는 불법 조직이다," "중국 주재 외신기자의 절반도 가입하지 않았다."

홍콩 외신기자클럽의 미래가 이와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80→148위…홍콩 ‘언론 자유’ 추락 이유는?
    • 입력 2022-05-05 07:00:21
    특파원 리포트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5월 3일 발표한 ‘2022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 표지
지난해 11월 12일 한국프레스센터. 국민의힘 대선 주자 윤석열 후보가 급한 일정 중에서도 시간을 내 민감한 현안들에 답했습니다. "사드 배치는 우리 정부의 주권 사항이다", "쿼드는 워킹그룹에 더 참여해야 한다", "현재 종전선언은 반대한다".

11월 25일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역시 "북한이 남북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할 말은 하겠다"고 말하는 등 여러 정치적 견해를 밝혔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같은 모임에 초대됐습니다. 바로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입니다.

2021년 11월 12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답하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 연합뉴스)
한국에 상주 하는 외신기자의 권익 보호는 물론 한국 정부, 홍보 관계자들과의 교류 증진 등을 목적으로 활동합니다. 대선 기간 한국의 대선 후보들이 줄줄이 참석해 정견을 밝히고 총리들도 국정을 설명할 만큼 존중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현 여권의 언론중재법 추진에 대해 우려 입장을 내는 등 언론 현안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 홍콩 외신기자클럽, 26년 전통 '인권언론상' 시상 중단

홍콩 역시 외신기자클럽이 활발히 활동해왔습니다. 특히 해마다 '세계 언론 자유의 날'인 5월 3일에는 인권언론상을 시상해왔습니다. 아시아 지역 영어와 중국어 보도를 대상으로 지난해까지 26년간 이어온 전통입니다. 하지만 올해 5월 3일에는 상을 수여하는 대신 성명을 냈습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 건물과 관계자들. (사진: 홍콩 외신기자클럽 홈페이지)
키스 리치버그 홍콩 외신기자클럽 회장은 성명에서 인권언론상 시상을 중단하기로 한 클럽의 결정을 재확인했습니다. 현재 홍콩의 정치 상황에서 인권언론상을 계속 시상할 경우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위험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회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앞으로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이 새로운 지역 스폰서와 함께 대신 인권언론상을 수여할 계획이라고도 소개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은 올해 인권언론상 수상자로 지난 연말 자진 폐간한 입장신문이 선정됐기 때문으로 전해졌습니다. 입장신문의 전직 편집장 등 간부들은 선동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AFP 통신은 홍콩 외신기자클럽 안에서 입장신문에 인권언론상을 줄 경우 홍콩 국가보안법이나 선동죄로 기소될 수 있다는 법률적 조언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 홍콩,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뒤 언론사 폐간 잇달아

홍콩에서는 2020년 6월 국가보안법이 시행됐습니다. 이후 범민주 정치 세력은 위축됐고 홍콩과 중국 당국에 비판적 성향을 보인 언론사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빈과일보, 입장신문, 시티즌뉴스 등이 압수수색, 사주 체포 등 다양한 압박 속에 자진 폐간했습니다. 입장신문은 홍콩에 '문자의 옥(중국 역사에서 지식인에 대한 권력의 탄압)'이 왔다고 한탄하며 온라인상의 과거 칼럼들도 삭제했습니다.

경찰에 연행되는 패트릭 람 입장신문 편집장 (사진: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홍콩의 공안 정국을 주도했던 경찰 출신 존 리 전 정무부총리가 사실상 차기 행정장관으로 사실상 확정됐습니다. 5월 8일 행정장관 선거는 요식 행위일 뿐입니다. 베이징의 낙점을 받은 존 리가 이미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확보했습니다. 존 리는 홍콩 자체의 보안법 제정 추진 구상도 밝혔습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의 이번 결정은 이 같은 홍콩의 정치, 언론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미 지난해 8~10월 홍콩 외신기자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46%가 언론 자유 후퇴를 이유로 홍콩을 떠날 계획을 세웠거나 고려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56%는 홍콩 보안법 시행 후 민감한 주제 보도를 기피하는 등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86%는 취재원들이 민감한 현안에 언급을 피하거나 인용을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홍콩 최대 언론인 단체인 홍콩 기자협회 역시 지난달 협회 진로를 놓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정치적 압력 속에 협회 해산 여부 등을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 일단 '당분간' 운영을 지속하면서 계속 의견을 수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홍콩 기자협회는 홍콩 당국으로부터 협회 회계 기록과 회원 명단을 공개하는 압력을 받아왔습니다.

■ 홍콩 '언론 자유' 80위→148위 추락…중국 "외신기자클럽은 불법 조직"

이 같은 언론 환경을 반영하듯,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5월 3일 발표한 '2022년 세계 언론자유 지수'를 보면 홍콩은 전 세계 180개국 가운데 148위를 기록했습니다. 전년도 80위 대비 무려 68계단이나 떨어져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2002년 첫 발표 당시에는 18위였습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올해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홍콩은 180개국 중 148위였다. 2021년은 80위였다. (국경없는 기자회 홈페이지)
올해 한국은 43위, 중국 175위, 북한은 최하위인 180위였습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 리치버그 회장은 다양한 견해와 목소리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드러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홍콩의 일국양제가 허울뿐인 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베이징에도 중국 외신기자클럽(FCCC)이 있습니다. 중국의 취재 현실에 대한 백서를 발간하는 등 비판적 견해를 숨기지 않습니다. 2월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중국의 보도 환경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의 성명도 발표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해 4월 1일 “중국 외신기자클럽은 중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조직”이라고 말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이 같은 중국 외신기자클럽에 대해 지난해 4월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중국 외신기자클럽은 중국이 승인한 바 없는 불법 조직이다," "중국 주재 외신기자의 절반도 가입하지 않았다."

홍콩 외신기자클럽의 미래가 이와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