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일자리 잃고, 고향도 못 가고…‘봉쇄 난민’ 된 중국 농민공들

입력 2022.05.07 (07:02) 수정 2022.05.07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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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요원 앞에서 간절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한 여성.

그녀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방역 요원이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한 끝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다리를 오랫동안 구부리고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똑바로 서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대체 얼마 동안이나 공중전화 부스 안에 있었던 것일까요?

위안 씨가 지냈던 공중전화 부스를 방역 요원이 소독하고 있다. (출처: 시과)위안 씨가 지냈던 공중전화 부스를 방역 요원이 소독하고 있다. (출처: 시과)

고향인 안후이성에서 상하이에 일자리를 찾아 온 위안(袁) 씨는 상하이 봉쇄 탓에 졸지에 오갈 곳이 없어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위안 씨는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집에서 차례로 감염자가 나오면서 자신도 결국 감염됐습니다. 격리 시설로 옮겨졌고 며칠 뒤 PCR 검사에서 음성 결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고용주가 격리 시설에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원래 일하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호텔도 격리 시설에서 막 나온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교통이 모두 끊겨 고향 안후이성으로 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 그녀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5일을 버티게 된 이유입니다.

위안 씨는 화장실을 찾기 어려워 먹고 마시는 것도 참았습니다. 폭우로 공중전화 부스 안에 빗물이 들이쳤지만 견뎠습니다.

그녀가 부스를 '탈출'한 건 고향 지인에게 연락한 뒤입니다. 소식을 들은 안후이성 구급대는 4월 23일, 위안 씨 구조에 나섰습니다.

장 씨가 골판지를 이용해 노숙하는 모습. (출처: 바이두)장 씨가 골판지를 이용해 노숙하는 모습. (출처: 바이두)

장시성 출신 이 남성은 3월 말 상하이에 일자리를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은 것도 잠시, 상하이시는 며칠 만에 봉쇄됐습니다.

갈 곳이 없는 장모 씨(가명)는 노숙을 시작했습니다. 공유 자전거에 골판지를 붙여 바람을 막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라면이나 차가운 밥으로 하루 한 끼만 때우고 가끔은 남이 버린 도시락을 먹습니다.

상하이 한 건설 현장에서 격리 중인 농민공들. 좁은 숙소 안에 대여섯 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출처: 더우인)상하이 한 건설 현장에서 격리 중인 농민공들. 좁은 숙소 안에 대여섯 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출처: 더우인)

위안 씨나 장 씨에 비하면 위 사진의 근로자들은 사정이 나아 보일 지경입니다. 한 사람 눕기도 비좁아 보이지만 비바람은 피할 수 있으니까요.

노동자들은 상하이가 봉쇄되면서 건설 현장 임시 숙소에 갇혔습니다. 고향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무조건 봉쇄가 풀리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쓰촨성에서 온 한 농민공도 상하이시가 봉쇄되면서 노숙을 시작했다. (출처: 바이두)쓰촨성에서 온 한 농민공도 상하이시가 봉쇄되면서 노숙을 시작했다. (출처: 바이두)

한 달 넘게 봉쇄 중인 상하이시와 또 다른 봉쇄 도시 곳곳에는 수많은 '위안 씨'가 살고 있습니다.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나선 농촌 출신 이주노동자, 농민공(农民工)들입니다.

흔히 중국 경제는 농민공들이 떠받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임금·3D 직종에 그들이 있습니다. 대다수가 노동권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래도 고향에서의 벌이보다 낫다는 생각에 도시에 이주한 농민공들이 2억 9천만 명이 넘습니다. (중국 국가통계국 2021년 '농민공 감측 조사 보고서') 중국 인구 14억 명 가운데 대략 21%에 해당합니다.

농민공들이 모여 사는 상하이시의 한 숙소 (출처: 더우인)농민공들이 모여 사는 상하이시의 한 숙소 (출처: 더우인)

중국의 도시 봉쇄로 공장과 건설 현장, 가게들이 문을 닫으면서 이들 중 얼마나 일자리를 잃었는지는 아직 통계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상하이시, 정저우시 등 봉쇄된 지역의 농민공들 벌이가 하루 아침에 0원이 됐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중국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일단 대책은 내놓았습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4월 27일 국무원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농민공에게 생활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원 규모나 지급 방식 등은 알려진 게 없습니다.

농민공의 앞날을 더 어둡게 하는 건 중국공산당의 '다짐'입니다. 5일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다이내믹 제로 코로나의 총 방침을 조금의 동요도 없이 견지하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감염자가 0명이 될 때까지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봉쇄가 거듭될수록 중국 사회의 '그늘'로 불리는 농민공들은 또다시 '더 외진 곳'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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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07 07:02:13
    • 수정2022-05-07 07:14:58
    특파원 리포트

방역 요원 앞에서 간절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한 여성.

그녀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방역 요원이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한 끝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다리를 오랫동안 구부리고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똑바로 서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대체 얼마 동안이나 공중전화 부스 안에 있었던 것일까요?

위안 씨가 지냈던 공중전화 부스를 방역 요원이 소독하고 있다. (출처: 시과)
고향인 안후이성에서 상하이에 일자리를 찾아 온 위안(袁) 씨는 상하이 봉쇄 탓에 졸지에 오갈 곳이 없어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위안 씨는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집에서 차례로 감염자가 나오면서 자신도 결국 감염됐습니다. 격리 시설로 옮겨졌고 며칠 뒤 PCR 검사에서 음성 결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고용주가 격리 시설에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원래 일하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호텔도 격리 시설에서 막 나온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교통이 모두 끊겨 고향 안후이성으로 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 그녀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5일을 버티게 된 이유입니다.

위안 씨는 화장실을 찾기 어려워 먹고 마시는 것도 참았습니다. 폭우로 공중전화 부스 안에 빗물이 들이쳤지만 견뎠습니다.

그녀가 부스를 '탈출'한 건 고향 지인에게 연락한 뒤입니다. 소식을 들은 안후이성 구급대는 4월 23일, 위안 씨 구조에 나섰습니다.

장 씨가 골판지를 이용해 노숙하는 모습. (출처: 바이두)
장시성 출신 이 남성은 3월 말 상하이에 일자리를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은 것도 잠시, 상하이시는 며칠 만에 봉쇄됐습니다.

갈 곳이 없는 장모 씨(가명)는 노숙을 시작했습니다. 공유 자전거에 골판지를 붙여 바람을 막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라면이나 차가운 밥으로 하루 한 끼만 때우고 가끔은 남이 버린 도시락을 먹습니다.

상하이 한 건설 현장에서 격리 중인 농민공들. 좁은 숙소 안에 대여섯 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출처: 더우인)
위안 씨나 장 씨에 비하면 위 사진의 근로자들은 사정이 나아 보일 지경입니다. 한 사람 눕기도 비좁아 보이지만 비바람은 피할 수 있으니까요.

노동자들은 상하이가 봉쇄되면서 건설 현장 임시 숙소에 갇혔습니다. 고향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무조건 봉쇄가 풀리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쓰촨성에서 온 한 농민공도 상하이시가 봉쇄되면서 노숙을 시작했다. (출처: 바이두)
한 달 넘게 봉쇄 중인 상하이시와 또 다른 봉쇄 도시 곳곳에는 수많은 '위안 씨'가 살고 있습니다.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나선 농촌 출신 이주노동자, 농민공(农民工)들입니다.

흔히 중국 경제는 농민공들이 떠받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임금·3D 직종에 그들이 있습니다. 대다수가 노동권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래도 고향에서의 벌이보다 낫다는 생각에 도시에 이주한 농민공들이 2억 9천만 명이 넘습니다. (중국 국가통계국 2021년 '농민공 감측 조사 보고서') 중국 인구 14억 명 가운데 대략 21%에 해당합니다.

농민공들이 모여 사는 상하이시의 한 숙소 (출처: 더우인)
중국의 도시 봉쇄로 공장과 건설 현장, 가게들이 문을 닫으면서 이들 중 얼마나 일자리를 잃었는지는 아직 통계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상하이시, 정저우시 등 봉쇄된 지역의 농민공들 벌이가 하루 아침에 0원이 됐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중국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일단 대책은 내놓았습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4월 27일 국무원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농민공에게 생활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원 규모나 지급 방식 등은 알려진 게 없습니다.

농민공의 앞날을 더 어둡게 하는 건 중국공산당의 '다짐'입니다. 5일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다이내믹 제로 코로나의 총 방침을 조금의 동요도 없이 견지하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감염자가 0명이 될 때까지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봉쇄가 거듭될수록 중국 사회의 '그늘'로 불리는 농민공들은 또다시 '더 외진 곳'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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