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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책]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기술은 누구의 편일까
입력 2022.05.07 (10:02) 취재K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가 쓴 소설 '로드'는 대재앙 이후의 폐허가 된 지구가 배경이다. 소설은 산도, 들도, 집도 불에 타버렸고, 온갖 재가 하늘을 가려 햇빛 한 조각마저 보기 어렵게 된 세상을 다룬다. 흙까지 오염되면서 한 끼 먹을거리조차 찾기가 쉽지 않게 되자 극한 상황에 내몰린 소설 속 사람들은 힘없는 이들을 노예로 부리거나, 그저 고기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등 온갖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문명도 윤리도 증발한 사회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아 '바다는 다르지 않을까', '바다는 푸르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품으며 길을 따라 남쪽으로 걷고 또 걸어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코맥 매카시는 대재앙 이후의 지옥 같은 세상을 그려낸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여러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인류가 수백 년, 수천 년 가꾸고 다듬어 낸 도덕이나 윤리도 한순간 무너질 수 있음을 그려내고 있다. 핵전쟁이나 환경오염 같은 대재앙이 일어나 문명사회가 붕괴되고 전기와 전자, 기계, 화학, 건축 등 인류 문명을 지탱해 왔던 온갖 기술도 사라져버리면, 사회의 도덕과 윤리도 약해져 버리거나 없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기술이 끝 모를 정도로 발전한 미래사회가 되면 인류의 도덕이나 윤리는 자동적으로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그것은 아니라고 얘기하는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제법 많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보자. 개인용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상상하기도 힘든 시절인 1949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기술의 도움으로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미래의 디스토피아 사회를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는 귀에 대고 속삭이는 지극히 낮은 소리를 제외하고는 주인공이 내는 모든 소리를 다 포착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기술 발전이 억압과 통제의 빅브라더 사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조지 오웰은 이미 70여 년 전에 경고한 것이다.

이처럼 적지 않은 문학 작품들이 기술의 유무 여부나 발전 여부에 따라 인류의 도덕, 윤리도 무너지거나 바뀔 수 있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그렇다면 기술과 윤리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누구도 선뜻 답을 내리기 힘든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 출간됐다. 테드(TED) 강연으로도 유명한 미래학자 후안 엔리케스의 '무엇이 옳은가'이다. 그는 윤리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한다. 그가 질문을 던진다.

'지금은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이 사람을 노예로 삼는 행위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한 때 미국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데려와 노예로 삼는 일을 당연시했을까.'

후안 엔리케스는 과거 미국에서는 훌륭했던 목사조차도 '성서에 실린 교리와 여러 사례를 보면 노예 소유는 얼마든지 정당한 일이다.'라고 말하며 노예제도를 지지하기도 했다면서, 알고 보면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일들이 너무도 많다고 강조한다.

후안 엔리케스는 동시에 '영국이 노예제도를 가장 먼저 폐지한 국가라는 사실이 그저 우연일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산업화를 이룬 미국 북부가 노예제도를 금지한 데 반해 농업에 의존했던 남부의 경우 그 끔찍한 관행을 유지하기 위해 싸웠다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노예제도가 사라진 것은, 어쩌면 휘발유 1갤런의 가치가 인력 400시간의 가치와 동일하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도발적 질문을 추가로 던진다.

후안 엔리케스는 '노예제도의 역사는 사회에서 합법적인 것으로 용인되는 윤리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극단적인 예'라고 말하며,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여러 선택권을 주고 그에 따라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 또는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이라 여겨온 이들을 한층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깨우침의 아침이 서서히 밝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후안 엔리케스는 이처럼 사람들이 반성을 하고 각성을 해서 더 나은 윤리를 추구하게 됐다기보다는 기술이 삶의 방식을 바꿔 놓아서 더 나은 윤리가 통용됐을 수도 있다는, 어쩌면 윤리의 태생적 힘을 믿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


후안 엔리케스는 마찬가지 이치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지금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일들도 미래에는 몰상식한 짓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가축을 도축해서 고기를 얻는 일을 당연시하고 있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 실험실에서 만든 '합성고기'가 값도 싸고 맛도 있고 그래서 일반화되면 우리의 후손들은 수많은 가축을 도살한 현 세대를 야만인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산 분배 문제는 오히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후안 엔리케스는 산업화와 디지털화로 지구 전체의 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가구 상위 1퍼센트의 자산이 하위 90퍼센트가 가진 자산의 총합보다 많고, 이와 같은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기술 발전과 함께 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고,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고, 노동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다며, 기술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를 쌓을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또 다른 과제도 안겨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특히 기술이 거짓된 사실을 퍼져나가게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후안 엔리케스는 로켓과 인공위성 등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가 뚜렷해졌는데도 트위터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타고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의 주장은 더 쉽게 더 멀리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평평한 지구 협회의 회장은 인공위성이 찍은 지구 사진을 보고선 헛기침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사진이 훈련되지 않은 사람의 눈을 속이긴 정말 쉽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가짜뉴스의 확산과 그에 따른 맹목적 믿음에 빠질 가능성도 커졌다는 얘기다. 후안 엔리케스는 기술이 윤리와 동떨어지게 되면 위험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무엇보다 분노와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은 그만큼 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서 신뢰할 수 없는 뉴스에 의지한다고 힘줘 말한다.

책의 영문판 제목은 '옳고/그름: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윤리를 바꾸는가 (Right/Wrong: How Technology Transforms Our Ethics)'이다. 책은 답을 내리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그때는 맞았던 게 지금은 틀릴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옳았던 일들도 미래에는 틀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윤리도 바뀐다. 하지만 윤리가 꼭 옳은 방향으로 바뀐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니 기술 발전과 함께 우리가 어떤 윤리를 지켜나가고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를 논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는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면서, 답을 보여주기보다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고 있다.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고도 무거운 문제를.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 교수는 '무엇이 옳은가'가 논쟁의 도착지가 되는 책이 아니라 논쟁의 출발점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듯, 책의 추천사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지금 바로 당신의 게으른 윤리 의식을 깨워라. 그리고 이 책이 펼쳐놓은 격렬한 '논쟁의 싸움터'로 걸어가라."
  • [주말& 책]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기술은 누구의 편일까
    • 입력 2022-05-07 10:02:31
    취재K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가 쓴 소설 '로드'는 대재앙 이후의 폐허가 된 지구가 배경이다. 소설은 산도, 들도, 집도 불에 타버렸고, 온갖 재가 하늘을 가려 햇빛 한 조각마저 보기 어렵게 된 세상을 다룬다. 흙까지 오염되면서 한 끼 먹을거리조차 찾기가 쉽지 않게 되자 극한 상황에 내몰린 소설 속 사람들은 힘없는 이들을 노예로 부리거나, 그저 고기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등 온갖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문명도 윤리도 증발한 사회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아 '바다는 다르지 않을까', '바다는 푸르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품으며 길을 따라 남쪽으로 걷고 또 걸어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코맥 매카시는 대재앙 이후의 지옥 같은 세상을 그려낸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여러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인류가 수백 년, 수천 년 가꾸고 다듬어 낸 도덕이나 윤리도 한순간 무너질 수 있음을 그려내고 있다. 핵전쟁이나 환경오염 같은 대재앙이 일어나 문명사회가 붕괴되고 전기와 전자, 기계, 화학, 건축 등 인류 문명을 지탱해 왔던 온갖 기술도 사라져버리면, 사회의 도덕과 윤리도 약해져 버리거나 없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기술이 끝 모를 정도로 발전한 미래사회가 되면 인류의 도덕이나 윤리는 자동적으로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그것은 아니라고 얘기하는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제법 많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보자. 개인용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상상하기도 힘든 시절인 1949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기술의 도움으로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미래의 디스토피아 사회를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는 귀에 대고 속삭이는 지극히 낮은 소리를 제외하고는 주인공이 내는 모든 소리를 다 포착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기술 발전이 억압과 통제의 빅브라더 사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조지 오웰은 이미 70여 년 전에 경고한 것이다.

이처럼 적지 않은 문학 작품들이 기술의 유무 여부나 발전 여부에 따라 인류의 도덕, 윤리도 무너지거나 바뀔 수 있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그렇다면 기술과 윤리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누구도 선뜻 답을 내리기 힘든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 출간됐다. 테드(TED) 강연으로도 유명한 미래학자 후안 엔리케스의 '무엇이 옳은가'이다. 그는 윤리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한다. 그가 질문을 던진다.

'지금은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이 사람을 노예로 삼는 행위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한 때 미국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데려와 노예로 삼는 일을 당연시했을까.'

후안 엔리케스는 과거 미국에서는 훌륭했던 목사조차도 '성서에 실린 교리와 여러 사례를 보면 노예 소유는 얼마든지 정당한 일이다.'라고 말하며 노예제도를 지지하기도 했다면서, 알고 보면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일들이 너무도 많다고 강조한다.

후안 엔리케스는 동시에 '영국이 노예제도를 가장 먼저 폐지한 국가라는 사실이 그저 우연일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산업화를 이룬 미국 북부가 노예제도를 금지한 데 반해 농업에 의존했던 남부의 경우 그 끔찍한 관행을 유지하기 위해 싸웠다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노예제도가 사라진 것은, 어쩌면 휘발유 1갤런의 가치가 인력 400시간의 가치와 동일하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도발적 질문을 추가로 던진다.

후안 엔리케스는 '노예제도의 역사는 사회에서 합법적인 것으로 용인되는 윤리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극단적인 예'라고 말하며,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여러 선택권을 주고 그에 따라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 또는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이라 여겨온 이들을 한층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깨우침의 아침이 서서히 밝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후안 엔리케스는 이처럼 사람들이 반성을 하고 각성을 해서 더 나은 윤리를 추구하게 됐다기보다는 기술이 삶의 방식을 바꿔 놓아서 더 나은 윤리가 통용됐을 수도 있다는, 어쩌면 윤리의 태생적 힘을 믿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


후안 엔리케스는 마찬가지 이치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지금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일들도 미래에는 몰상식한 짓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가축을 도축해서 고기를 얻는 일을 당연시하고 있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 실험실에서 만든 '합성고기'가 값도 싸고 맛도 있고 그래서 일반화되면 우리의 후손들은 수많은 가축을 도살한 현 세대를 야만인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산 분배 문제는 오히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후안 엔리케스는 산업화와 디지털화로 지구 전체의 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가구 상위 1퍼센트의 자산이 하위 90퍼센트가 가진 자산의 총합보다 많고, 이와 같은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기술 발전과 함께 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고,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고, 노동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다며, 기술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를 쌓을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또 다른 과제도 안겨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특히 기술이 거짓된 사실을 퍼져나가게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후안 엔리케스는 로켓과 인공위성 등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가 뚜렷해졌는데도 트위터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타고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의 주장은 더 쉽게 더 멀리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평평한 지구 협회의 회장은 인공위성이 찍은 지구 사진을 보고선 헛기침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사진이 훈련되지 않은 사람의 눈을 속이긴 정말 쉽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가짜뉴스의 확산과 그에 따른 맹목적 믿음에 빠질 가능성도 커졌다는 얘기다. 후안 엔리케스는 기술이 윤리와 동떨어지게 되면 위험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무엇보다 분노와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은 그만큼 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서 신뢰할 수 없는 뉴스에 의지한다고 힘줘 말한다.

책의 영문판 제목은 '옳고/그름: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윤리를 바꾸는가 (Right/Wrong: How Technology Transforms Our Ethics)'이다. 책은 답을 내리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그때는 맞았던 게 지금은 틀릴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옳았던 일들도 미래에는 틀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윤리도 바뀐다. 하지만 윤리가 꼭 옳은 방향으로 바뀐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니 기술 발전과 함께 우리가 어떤 윤리를 지켜나가고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를 논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는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면서, 답을 보여주기보다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고 있다.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고도 무거운 문제를.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 교수는 '무엇이 옳은가'가 논쟁의 도착지가 되는 책이 아니라 논쟁의 출발점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듯, 책의 추천사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지금 바로 당신의 게으른 윤리 의식을 깨워라. 그리고 이 책이 펼쳐놓은 격렬한 '논쟁의 싸움터'로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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