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고발사주’ 여진…공수처는 왜 ‘작성자’ 못 밝혔나?

입력 2022.05.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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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난 4일,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8개월 만에 발표했습니다.

결국 윤석열 당선인 등 당시 검찰 지휘부와 실무자였던 손준성 검사 등 피의자 전원의 '직권 남용' 혐의를 모두 무혐의 처분했는데, 고발장을 누가 작성했는지 밝히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공수처의 모든 검사들이 투입된 사건이자 대선 기간을 뜨겁게 달궜던 수사인만큼, 수사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그로부터 나흘 뒤 공개된 공수처의 '불기소결정서'에는 초라한 수사결과에 대한 '변명'이 담겨있었습니다.

수사 대상이었던 검사들이 압수수색 가능성이 큰 디지털 기기의 내용을 대거 삭제·교체했다는 건데,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 불기소결정서에 드러난 '증거 인멸' 정황…'PC 하드디스크·대화 내역 모두 삭제'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 시민행동이 오늘(7일) 공개한 공수처의 '고발 사주' 사건 불기소결정서에는, 2020년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들이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의 의혹 보도가 나온 직후 증거 인멸에 나선 정황이 담겨 있습니다.

수사정보정책관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담당하는 부서인데, 여기선 줄여서 '수정관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공수처에 따르면 수정관실 소속 임모 검사는 10일 전 교체했던 PC의 하드디스크를 보도 당일인 지난해 9월 2일 또다시 교체했고, 7일에는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모두 지웠습니다.

열흘 뒤에는 서울중앙지검 조사 직전 또 다른 수정관실 검사인 성모 검사와 통화 내역과 텔레그램 비밀채팅방을 삭제하고, 이후 삭제 정보의 복구를 아예 방해하는 '안티포렌식' 앱까지 휴대전화에 설치했습니다.

공수처는 9월 28일이 되어서야 뒤늦게 성 검사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으로 확보했지만,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해 포렌식 조사가 불발됐고, 또 10월 초에는 휴대전화가 초기화됐다고 밝혔습니다.

11월 15일에는 수정관실 PC를 압수수색했지만, 저장장치는 모두 포맷·초기화 등 기록 삭제 작업이 이뤄진 후라고 돼 있었습니다.

또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검사도 9월 13일 텔레그램을 원격으로 탈퇴했고, 손 검사가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는 휴대전화 잠금 해제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영장 기각 뒤에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연루 검사 "증거 인멸 사실 아냐…포렌식 협조"

그러나 임 검사는 공수처의 불기소결정서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임 검사는 "PC 하드디스크 교체 사실이 없고 이를 공수처에 소명했다"고 밝혔습니다. (공수처는 소명을 받았지만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와 텔레그램 비밀번호도 모두 제공해 협조했다"며 "다만 사생활 보호를 위해 9개월 전부터 안티포렌식 앱을 사용했는데, 공수처는 추가 설치 사실만 강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서울중앙지검이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돌려준 뒤 하루 만에 공수처가 같은 휴대전화를 또다시 압수하는 등 과도한 인권침해로 진정을 내 인권위가 조사 중"이라고도 밝혔습니다.

현행법상 자신의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면 증거인멸 혐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만 공수처는 '실패한 수사'에 대해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이런 변명을 달아서라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고, '수사 베테랑'인 검사들도 호락호락 받아줄 마음은 없습니다.

공수처와 검찰이 '증거인멸' 정황을 놓고 벌이는 진실 게임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함께 연루된 김웅 의원도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며 공수처를 비판했습니다.

김 의원은 "휴대전화 압수 직후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에게 휴대전화 잠금해제 패턴을 알려주었고, 당시 공수처 수사관은 압수수색 조서에 그 패턴을 그려 넣은 사실도 있다"며 "압수해 간 뒤 2주 넘게 포렌식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압수 대상자가 빨리 자료를 추출하라고 독촉하자 비로소 포렌식에 나섰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2021년 9월 공수처가 '김웅 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위법하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결국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압수수색을 취소시켰다"며 " 공수처 담당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도 밝혔습니다.

■ "수사팀 두 차례 '무혐의' 보고에도, 尹 "최강욱 기소하라" 지시"

공개된 불기소결정서에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해 수사팀이 무혐의 의견을 보고했지만 기소를 지시한 정황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최강욱 의원과 관련이 깊습니다.

최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인턴 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미래통합당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겁니다.

이 배후에 검찰이 있었고, 검찰이 미래통합당에 '고발을 사주' 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불기소결정서에는 이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가 대검에 2차례 불기소 처분 의견을 보고했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검 공안수사지원과장은 "총장님은 기소 의견이고 사건 재검토 지시"라고 수사팀에 전했고, 대검 공공수사부장도 재차 "총장님은 기소 지시"라고 연락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결국 서울중앙지검은 검사장(현 이성윤 서울고검장) 지시로 그해 10월 15일 최 의원을 기소했습니다.

이후 1심 법원은 최강욱 의원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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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속되는 ‘고발사주’ 여진…공수처는 왜 ‘작성자’ 못 밝혔나?
    • 입력 2022-05-07 17:00:08
    취재K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난 4일,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8개월 만에 발표했습니다.

결국 윤석열 당선인 등 당시 검찰 지휘부와 실무자였던 손준성 검사 등 피의자 전원의 '직권 남용' 혐의를 모두 무혐의 처분했는데, 고발장을 누가 작성했는지 밝히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공수처의 모든 검사들이 투입된 사건이자 대선 기간을 뜨겁게 달궜던 수사인만큼, 수사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그로부터 나흘 뒤 공개된 공수처의 '불기소결정서'에는 초라한 수사결과에 대한 '변명'이 담겨있었습니다.

수사 대상이었던 검사들이 압수수색 가능성이 큰 디지털 기기의 내용을 대거 삭제·교체했다는 건데,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 불기소결정서에 드러난 '증거 인멸' 정황…'PC 하드디스크·대화 내역 모두 삭제'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 시민행동이 오늘(7일) 공개한 공수처의 '고발 사주' 사건 불기소결정서에는, 2020년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들이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의 의혹 보도가 나온 직후 증거 인멸에 나선 정황이 담겨 있습니다.

수사정보정책관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담당하는 부서인데, 여기선 줄여서 '수정관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공수처에 따르면 수정관실 소속 임모 검사는 10일 전 교체했던 PC의 하드디스크를 보도 당일인 지난해 9월 2일 또다시 교체했고, 7일에는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모두 지웠습니다.

열흘 뒤에는 서울중앙지검 조사 직전 또 다른 수정관실 검사인 성모 검사와 통화 내역과 텔레그램 비밀채팅방을 삭제하고, 이후 삭제 정보의 복구를 아예 방해하는 '안티포렌식' 앱까지 휴대전화에 설치했습니다.

공수처는 9월 28일이 되어서야 뒤늦게 성 검사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으로 확보했지만,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해 포렌식 조사가 불발됐고, 또 10월 초에는 휴대전화가 초기화됐다고 밝혔습니다.

11월 15일에는 수정관실 PC를 압수수색했지만, 저장장치는 모두 포맷·초기화 등 기록 삭제 작업이 이뤄진 후라고 돼 있었습니다.

또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검사도 9월 13일 텔레그램을 원격으로 탈퇴했고, 손 검사가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는 휴대전화 잠금 해제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영장 기각 뒤에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연루 검사 "증거 인멸 사실 아냐…포렌식 협조"

그러나 임 검사는 공수처의 불기소결정서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임 검사는 "PC 하드디스크 교체 사실이 없고 이를 공수처에 소명했다"고 밝혔습니다. (공수처는 소명을 받았지만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와 텔레그램 비밀번호도 모두 제공해 협조했다"며 "다만 사생활 보호를 위해 9개월 전부터 안티포렌식 앱을 사용했는데, 공수처는 추가 설치 사실만 강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서울중앙지검이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돌려준 뒤 하루 만에 공수처가 같은 휴대전화를 또다시 압수하는 등 과도한 인권침해로 진정을 내 인권위가 조사 중"이라고도 밝혔습니다.

현행법상 자신의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면 증거인멸 혐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만 공수처는 '실패한 수사'에 대해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이런 변명을 달아서라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고, '수사 베테랑'인 검사들도 호락호락 받아줄 마음은 없습니다.

공수처와 검찰이 '증거인멸' 정황을 놓고 벌이는 진실 게임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함께 연루된 김웅 의원도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며 공수처를 비판했습니다.

김 의원은 "휴대전화 압수 직후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에게 휴대전화 잠금해제 패턴을 알려주었고, 당시 공수처 수사관은 압수수색 조서에 그 패턴을 그려 넣은 사실도 있다"며 "압수해 간 뒤 2주 넘게 포렌식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압수 대상자가 빨리 자료를 추출하라고 독촉하자 비로소 포렌식에 나섰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2021년 9월 공수처가 '김웅 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위법하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결국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압수수색을 취소시켰다"며 " 공수처 담당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도 밝혔습니다.

■ "수사팀 두 차례 '무혐의' 보고에도, 尹 "최강욱 기소하라" 지시"

공개된 불기소결정서에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해 수사팀이 무혐의 의견을 보고했지만 기소를 지시한 정황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최강욱 의원과 관련이 깊습니다.

최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인턴 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미래통합당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겁니다.

이 배후에 검찰이 있었고, 검찰이 미래통합당에 '고발을 사주' 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불기소결정서에는 이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가 대검에 2차례 불기소 처분 의견을 보고했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검 공안수사지원과장은 "총장님은 기소 의견이고 사건 재검토 지시"라고 수사팀에 전했고, 대검 공공수사부장도 재차 "총장님은 기소 지시"라고 연락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결국 서울중앙지검은 검사장(현 이성윤 서울고검장) 지시로 그해 10월 15일 최 의원을 기소했습니다.

이후 1심 법원은 최강욱 의원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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