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스태그플레이션…그리고 2022년

입력 2022.05.0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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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시대 위로 비상하는 백조 빌리, 〈빌리 엘리어트〉

"춤을 추면 다 잊어버려요. 좋아서 내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이 변해서,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달까요?"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리노가 되어 비상하는 소년의 꿈을 그린 영화다. 스크린에는 결국에 백조가 되는 소년의 희망차고 밝은 몸짓이 가득하다. 역설적이게도 그 비상하는 몸짓의 감동을 증폭시키는 건 80년대 영국의 캄캄한 역사적 배경이다.

‘철의 여인’ 대처가 광산 노동자인 빌리의 아빠와 형을 굴복시킨 시대다. 1980년대 초중반, 그들은 영국 역사상 가장 긴 파업으로 기록된 광부 대파업의 현장에서 투쟁의 최일선에서 경찰과 싸웠지만 두들겨 맞고 체포된다. 시위대는 결사 항전했지만 시대는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다.


패배한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갱도 안으로 힘없이 ‘하강’하지만, 그 대신 그들은 ‘날아오르려는’ 빌리의 꿈을 지지하기로 한다.

“빌리에게 기회를 주자꾸나”

■ 그 시대의 이름은 ‘스태그플레이션’

사실 영국 블루칼라 노동자의 삶을 앗아간 건 <철의 여인> 대처가 아니다. 지금도 영국 노동자들은 악의 근원으로 기억되는 <철의 여인>에 대한 적개심을 분출하지만, 사실 노동자의 삶을 빼앗아간 것은 변화한 경제 구조다. 더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지속 불가능해진 경제 흐름이다. (영국은 1976년 IMF 구제금융을 받는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이 경제 모순을 상징하는 단어다.

2차대전 뒤 60년대까지 자리했던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저물었다. 이 황금기는 ‘케인스의 시대’로 불리기도, ‘재정정책의 시대’로 불리기도, ‘필립스 곡선의 시대’로 불리기도 했다. 다 같은 말이다.

정부가 재정정책이라는 윤활유만 발라주면 경제는 잘 돌아간다. 경제구조에 돈을 부으면 약간의 인플레는 일어나지만, 유효수요가 창출되어 실업률이 낮아지고 성장이 일어난다. 성장이 지속되니 복지는 확대되고, 노동자와 정부는 윈윈Win-Win한다.

하지만 모든 좋은 시절에 끝이 있듯 이 시절이 끝난다.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이 벌어진다.

이제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돈을 부어도 인플레만 일어나고 성장은 없다. 강한 노조를 가진 노동자 임금은 보전되고 올라가는데, 이게 유효수요를 창출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 부담을 증가시켜 물건의 가격을 올리고, 다시 노동자 임금을 올린다. 비효율이 확대된 기업은 생산을 줄여간다. 경제는 하강한다. 임금-가격의 악순환(Wage- Price Spiral)의 깊은 늪이다.

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는 ‘재정정책이 불가능한 시대’다. 그동안 정부는 물가와 실업 사이의 반비례 관계인 ‘필립스 곡선’만 보고 손쉽게 재정 부양책을 써왔는데, 그 필립스 곡선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 재정정책으로 창출되는 게 유효수요가 아니고 ‘인플레이션’과 ‘역성장’, 그리고 ‘실업’이 됐다. 이제 비효율과 물가 상승만을 부르는 정부 역할을 축소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영국의 보수적 정치가 이언 맥클레오드는 1965년, 영국 의회에서 이 상황을 ‘성장의 정체(Stagnation)와 물가의 상승(Inflation)이 동시에 닥친 최악의 상황(Stagflation)’이라고 명명한다. 5년 뒤 재무장관이 된 정치가가 만든 이 새로운 단어는 역사에 길이 남는 생명력을 얻는다.

■ 공급 쇼크와 달러의 위기…위기의 증폭

석유파동에 따른 1970년대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이 상황을 부채질했다. 또 미국의 정책 실패도 한몫했다. 쉽게 이길 줄 알았던 베트남전에서 수렁에 빠지면서 막대한 돈을 써야 했다. 인플레가 일어났고, 그와 함께 <반전 여론>이라는 국내 정치의 늪에도 빠져든다.

달러는 위기에 빠진다. 미국은 돈을 너무 많이 풀어버린 뒤 35달러를 금 1온스로 바꿔주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근간을 포기한다. 이 ‘금 태환 포기’ 선언은 닉슨 쇼크로 불린다. 달러 위기를 부채질하고 동시에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을 부추긴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침식하는 10년 넘는 장기 불황의 시대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그린 아래 그래프는 인플레이션이 성장을 잠식하는 1970년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세계 경제가 늘 역성장만 하는 건 아니다. (실제 당시에도 우리나라 경제는 계속 성장했다.)

성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특히 높은 해는 반드시 성장률이 고꾸라진다. 물가가 연 15% 안팎 상승한 1975, 76년이 그랬고 80년도 그랬다. 임금-가격 악순환이다. 영국은 76년 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망가졌다.


■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은 어떻게 극복됐나?

영국은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을 <영국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영국병을 때려잡기로 했다. 친노동정책은 모두 폐기했고, 복지는 없앴다. 재정을 줄였고, 공공은 민영화했고, 노동시장은 유연화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등장시켰다. 연준 의장 폴 볼커다. 기준금리를 19%까지 올렸다. 약했던 달러는 점차 강해지게 했다.

대신 실업은 급증했고, 기업은 도산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막대한 감세를 단행했다. 긴축과 자율의 시대, 비효율적인 정부 역할을 줄이는 시대가 도래했다.

비효율을 혁파하는 이 시대 사조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다음 장으로, 필연적인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 노동이 저문 자리에 등장한 〈신자유주의 시대〉

그 경제구조의 고통은 블루칼라에 집중됐다. 가장 고통받은 것은 광산 노동자, 제조업 노동자, 서민과 취약계층이었다. 수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고, 직장을 잃지 않더라도 임금이 삭감됐고, 비정규직이 됐다. 복지는 축소됐다.

그 고통 뒤에 국민 경제 전체로 보면 더 나아 보이는 시대가 오긴 왔다. 성장은 회복되었고, 전반적으로는 더 풍요로워지는 시대가 돌아왔다. 다만 노동자를 위한 제조업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금융자본주의>의 시대다. 제조업은 영미권을 떠나 개발도상국으로 아웃소싱됐다. 영미권 내부 노동은 지속적으로 유연화되었다. 해고는 쉽고 복지는 사라지는 방향으로. 대신 제조업과 무관한 금융이 커졌다. 옵션과 선물이, 파생상품이, 그리고 그림자 금융이 돈의 팽창을 촉진하고 부동산 가격의 팽창을 부르는 시대.

그렇게 고도로 발전한 금융이 황금알을 낳기는 했는데, 그 황금알은 극도로 불공평하게 분배되었다. 노동과는 무관하게 부가 분배된 이 시대를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 2022년…다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의 시대

2022년, 다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이 돌아왔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한 공급망 병목 현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원자재가격 상승이 초래한 두려움이다. 미국의 긴축은 그 두려움을 증폭했다.

금융시장은 움츠러든다. 이 흐름이 물가를 잡아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했던 1970년대처럼 진행된다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2.5%가 아니라 3, 4%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금리가 오르면 증시에선 자금이 빠져나가 충격이 확산할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런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가 확실히 돌아올지는 아무도 장담은 못 한다는 사실이다.


뉴욕 증시가 앞으로 오를지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에 3% 올랐다가 그다음 날 5% 폭락하는 극도의 변동성이 지배한다. 예측은 무의미하고,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시대’만 분명해졌다.

설왕설래가 가득하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는 공포가 가득하지만, 동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지배하는 ‘뉴노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건 다시 영국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렸지만, 미국처럼 0.5%p를 올리지 않고 0.25%p만 올렸다. 이유는 불확실성이다. 영란은행은 올해 인플레이션이 2분기 9%를 약간 상회하고, 4분기에 10%를 넘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준금리 ‘빅컷’ 인상은 주저했다.

내년은 3.5%, 내후년은 1.5%로 인플레가 급격히 꺾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리를 결정하는 영란은행 내부의 두 사람은 인플레이션의 지속을 의심한다.

심지어 ‘향후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신호가 부적절하다는 발언까지 했다. 4분기를 시작으로 경제가 저절로 침체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란 이유다. 시장은 ‘영국 중앙은행이 분열됐다’고 판단하면서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정말 불확실성의 시대다. 한 편에선 엄청난 인플레에 직면했다며 이 인플레이션은 점점 더 심화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데, 반대편에서는 ‘조금 지나면 거품이 다 꺼지고 인플레도 꺼지고 디플레이션이 다시 찾아온다’는 경고가 나온다.

■ 불확실성에 고통이 가중되는 시대라는 공통점

중국에 맞서 국내 제조업 재부흥, 리쇼어링을 추진하는 미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잠재우고, 제조업만 다시 키워낼 수 있을까. 그러기엔 너무 비효율적인 경제 구조가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 불확실성의 한가운데에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패의 고통이 귀결되는 지점이다. 경제의 충격과 불확실성은 언제나 노동자 서민의 고통의 형태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불변이다.

이미 〈빌리 엘리어트〉에 아로새겨진 노동자 서민의 고통이 반복될 거란 이야기다.

코로나 19라는 대전염병 이후에 찾아온 공급망 병목과 에너지 부국 러시아가 감행한 전쟁과 제재의 악순환의 결론이 그렇다. 에너지 가격 폭등과 경제 충격의 끝이 디플레 일지 스태그플레이션일지는 몰라도 또 다른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만은 분명하다. 고통은 서민과 노동자에 귀결될 것이다.

그 시대가 돌아온다면 서민과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빌리 엘리어트>속 아빠와 형이 그러했듯 자신의 세대는 하강하되, 다음 세대만은 다시 부상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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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리 엘리어트, 스태그플레이션…그리고 2022년
    • 입력 2022-05-08 07:01:29
    취재K

■ 캄캄한 시대 위로 비상하는 백조 빌리, 〈빌리 엘리어트〉

"춤을 추면 다 잊어버려요. 좋아서 내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이 변해서,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달까요?"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리노가 되어 비상하는 소년의 꿈을 그린 영화다. 스크린에는 결국에 백조가 되는 소년의 희망차고 밝은 몸짓이 가득하다. 역설적이게도 그 비상하는 몸짓의 감동을 증폭시키는 건 80년대 영국의 캄캄한 역사적 배경이다.

‘철의 여인’ 대처가 광산 노동자인 빌리의 아빠와 형을 굴복시킨 시대다. 1980년대 초중반, 그들은 영국 역사상 가장 긴 파업으로 기록된 광부 대파업의 현장에서 투쟁의 최일선에서 경찰과 싸웠지만 두들겨 맞고 체포된다. 시위대는 결사 항전했지만 시대는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다.


패배한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갱도 안으로 힘없이 ‘하강’하지만, 그 대신 그들은 ‘날아오르려는’ 빌리의 꿈을 지지하기로 한다.

“빌리에게 기회를 주자꾸나”

■ 그 시대의 이름은 ‘스태그플레이션’

사실 영국 블루칼라 노동자의 삶을 앗아간 건 <철의 여인> 대처가 아니다. 지금도 영국 노동자들은 악의 근원으로 기억되는 <철의 여인>에 대한 적개심을 분출하지만, 사실 노동자의 삶을 빼앗아간 것은 변화한 경제 구조다. 더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지속 불가능해진 경제 흐름이다. (영국은 1976년 IMF 구제금융을 받는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이 경제 모순을 상징하는 단어다.

2차대전 뒤 60년대까지 자리했던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저물었다. 이 황금기는 ‘케인스의 시대’로 불리기도, ‘재정정책의 시대’로 불리기도, ‘필립스 곡선의 시대’로 불리기도 했다. 다 같은 말이다.

정부가 재정정책이라는 윤활유만 발라주면 경제는 잘 돌아간다. 경제구조에 돈을 부으면 약간의 인플레는 일어나지만, 유효수요가 창출되어 실업률이 낮아지고 성장이 일어난다. 성장이 지속되니 복지는 확대되고, 노동자와 정부는 윈윈Win-Win한다.

하지만 모든 좋은 시절에 끝이 있듯 이 시절이 끝난다.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이 벌어진다.

이제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돈을 부어도 인플레만 일어나고 성장은 없다. 강한 노조를 가진 노동자 임금은 보전되고 올라가는데, 이게 유효수요를 창출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 부담을 증가시켜 물건의 가격을 올리고, 다시 노동자 임금을 올린다. 비효율이 확대된 기업은 생산을 줄여간다. 경제는 하강한다. 임금-가격의 악순환(Wage- Price Spiral)의 깊은 늪이다.

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는 ‘재정정책이 불가능한 시대’다. 그동안 정부는 물가와 실업 사이의 반비례 관계인 ‘필립스 곡선’만 보고 손쉽게 재정 부양책을 써왔는데, 그 필립스 곡선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 재정정책으로 창출되는 게 유효수요가 아니고 ‘인플레이션’과 ‘역성장’, 그리고 ‘실업’이 됐다. 이제 비효율과 물가 상승만을 부르는 정부 역할을 축소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영국의 보수적 정치가 이언 맥클레오드는 1965년, 영국 의회에서 이 상황을 ‘성장의 정체(Stagnation)와 물가의 상승(Inflation)이 동시에 닥친 최악의 상황(Stagflation)’이라고 명명한다. 5년 뒤 재무장관이 된 정치가가 만든 이 새로운 단어는 역사에 길이 남는 생명력을 얻는다.

■ 공급 쇼크와 달러의 위기…위기의 증폭

석유파동에 따른 1970년대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이 상황을 부채질했다. 또 미국의 정책 실패도 한몫했다. 쉽게 이길 줄 알았던 베트남전에서 수렁에 빠지면서 막대한 돈을 써야 했다. 인플레가 일어났고, 그와 함께 <반전 여론>이라는 국내 정치의 늪에도 빠져든다.

달러는 위기에 빠진다. 미국은 돈을 너무 많이 풀어버린 뒤 35달러를 금 1온스로 바꿔주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근간을 포기한다. 이 ‘금 태환 포기’ 선언은 닉슨 쇼크로 불린다. 달러 위기를 부채질하고 동시에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을 부추긴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침식하는 10년 넘는 장기 불황의 시대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그린 아래 그래프는 인플레이션이 성장을 잠식하는 1970년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세계 경제가 늘 역성장만 하는 건 아니다. (실제 당시에도 우리나라 경제는 계속 성장했다.)

성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특히 높은 해는 반드시 성장률이 고꾸라진다. 물가가 연 15% 안팎 상승한 1975, 76년이 그랬고 80년도 그랬다. 임금-가격 악순환이다. 영국은 76년 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망가졌다.


■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은 어떻게 극복됐나?

영국은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을 <영국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영국병을 때려잡기로 했다. 친노동정책은 모두 폐기했고, 복지는 없앴다. 재정을 줄였고, 공공은 민영화했고, 노동시장은 유연화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등장시켰다. 연준 의장 폴 볼커다. 기준금리를 19%까지 올렸다. 약했던 달러는 점차 강해지게 했다.

대신 실업은 급증했고, 기업은 도산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막대한 감세를 단행했다. 긴축과 자율의 시대, 비효율적인 정부 역할을 줄이는 시대가 도래했다.

비효율을 혁파하는 이 시대 사조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다음 장으로, 필연적인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 노동이 저문 자리에 등장한 〈신자유주의 시대〉

그 경제구조의 고통은 블루칼라에 집중됐다. 가장 고통받은 것은 광산 노동자, 제조업 노동자, 서민과 취약계층이었다. 수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고, 직장을 잃지 않더라도 임금이 삭감됐고, 비정규직이 됐다. 복지는 축소됐다.

그 고통 뒤에 국민 경제 전체로 보면 더 나아 보이는 시대가 오긴 왔다. 성장은 회복되었고, 전반적으로는 더 풍요로워지는 시대가 돌아왔다. 다만 노동자를 위한 제조업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금융자본주의>의 시대다. 제조업은 영미권을 떠나 개발도상국으로 아웃소싱됐다. 영미권 내부 노동은 지속적으로 유연화되었다. 해고는 쉽고 복지는 사라지는 방향으로. 대신 제조업과 무관한 금융이 커졌다. 옵션과 선물이, 파생상품이, 그리고 그림자 금융이 돈의 팽창을 촉진하고 부동산 가격의 팽창을 부르는 시대.

그렇게 고도로 발전한 금융이 황금알을 낳기는 했는데, 그 황금알은 극도로 불공평하게 분배되었다. 노동과는 무관하게 부가 분배된 이 시대를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 2022년…다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의 시대

2022년, 다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이 돌아왔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한 공급망 병목 현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원자재가격 상승이 초래한 두려움이다. 미국의 긴축은 그 두려움을 증폭했다.

금융시장은 움츠러든다. 이 흐름이 물가를 잡아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했던 1970년대처럼 진행된다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2.5%가 아니라 3, 4%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금리가 오르면 증시에선 자금이 빠져나가 충격이 확산할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런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가 확실히 돌아올지는 아무도 장담은 못 한다는 사실이다.


뉴욕 증시가 앞으로 오를지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에 3% 올랐다가 그다음 날 5% 폭락하는 극도의 변동성이 지배한다. 예측은 무의미하고,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시대’만 분명해졌다.

설왕설래가 가득하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는 공포가 가득하지만, 동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지배하는 ‘뉴노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건 다시 영국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렸지만, 미국처럼 0.5%p를 올리지 않고 0.25%p만 올렸다. 이유는 불확실성이다. 영란은행은 올해 인플레이션이 2분기 9%를 약간 상회하고, 4분기에 10%를 넘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준금리 ‘빅컷’ 인상은 주저했다.

내년은 3.5%, 내후년은 1.5%로 인플레가 급격히 꺾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리를 결정하는 영란은행 내부의 두 사람은 인플레이션의 지속을 의심한다.

심지어 ‘향후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신호가 부적절하다는 발언까지 했다. 4분기를 시작으로 경제가 저절로 침체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란 이유다. 시장은 ‘영국 중앙은행이 분열됐다’고 판단하면서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정말 불확실성의 시대다. 한 편에선 엄청난 인플레에 직면했다며 이 인플레이션은 점점 더 심화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데, 반대편에서는 ‘조금 지나면 거품이 다 꺼지고 인플레도 꺼지고 디플레이션이 다시 찾아온다’는 경고가 나온다.

■ 불확실성에 고통이 가중되는 시대라는 공통점

중국에 맞서 국내 제조업 재부흥, 리쇼어링을 추진하는 미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잠재우고, 제조업만 다시 키워낼 수 있을까. 그러기엔 너무 비효율적인 경제 구조가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 불확실성의 한가운데에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패의 고통이 귀결되는 지점이다. 경제의 충격과 불확실성은 언제나 노동자 서민의 고통의 형태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불변이다.

이미 〈빌리 엘리어트〉에 아로새겨진 노동자 서민의 고통이 반복될 거란 이야기다.

코로나 19라는 대전염병 이후에 찾아온 공급망 병목과 에너지 부국 러시아가 감행한 전쟁과 제재의 악순환의 결론이 그렇다. 에너지 가격 폭등과 경제 충격의 끝이 디플레 일지 스태그플레이션일지는 몰라도 또 다른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만은 분명하다. 고통은 서민과 노동자에 귀결될 것이다.

그 시대가 돌아온다면 서민과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빌리 엘리어트>속 아빠와 형이 그러했듯 자신의 세대는 하강하되, 다음 세대만은 다시 부상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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