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cm, ‘이것’ 없으면 위험한 높이일 수 있다…중대재해법 100일 분석

입력 2022.05.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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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죽지 않게' 하자며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6일로 시행 100일이 되었습니다. 그간은 어땠을까요? 돌이켜보면 삼표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 여천NCC 폭발 사고 같은 대형 사고가 잇따랐고, 그보다 더 많은, 알려지지 않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법까지 만들어졌는데 왜 사고가 반복되는 건지, 막을 수는 없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 KBS가 1월 27일부터 지난 1일까지 95일 동안 발생한 중대재해를 분석해봤습니다.

[연관 기사] 1m 높이에도 사망, 왜?…“여전히 안전모도 없다” (2022.05.06, KBS1TV 뉴스9)

■ 하루 평균 1.8명 사망…여전히 '후진국형 사고' 많아

분석 기간 동안 발생한 중대재해는 모두 168건입니다. 이 가운데 사망은 165건, 모두 177명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1.8명, 그러니까 2명 가량이 매일 일하다 숨진 겁니다.

이 가운데 재해자 정보가 수집된 166건을 살펴보니, 눈에 띄는 건 경력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고가 1년 미만(20%) 아니면 5년 이상(58%) 경력자들에서 많이 나타났던 겁니다. 1년 미만 경력자 가운데에선 입사 당일에 사고를 당한 사람도 6명이나 됐습니다.

연령대별로 살펴봤을 땐 50대가 36%, 60대 이상이 39%로 노년층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6일 KBS1TV ‘뉴스9’ 방송 화면지난 6일 KBS1TV ‘뉴스9’ 방송 화면
사업장별로 살펴봤을 때 가장 사고 많았던 곳은 바로 건설업 사업장이었습니다. 그에 못지 않게 제조업 사업장도 사고가 많았습니다.

건설업에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제조업에선 기계 등에 끼이는 사고가 많이 나는데, 이번에도 역시 이들 사고가 전체의 56%였습니다. 이른바 '후진국형 사고'라고 부릅니다. 기본적인 안전 조치만 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안전 조치라 함은, 안전모와 안전대, 고정된 작업발판 같이 복잡하고 비싼 설비가 아닌 그야말로 기본적인 설비를 말합니다.

■ 추락 사망 59%는 5m 이하…"보호구 꼭 있어야"

'추락 사고'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흔히 아주 높은 곳에서 나는 사고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KBS가 분석해보니, 아주 높은 곳에서 나는 사고는 그렇게 많지 않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전체 추락 사고 67건 가운데, 59%가 5m 이하 높이에서 난 사고였습니다. 2m 이하 높이에서 난 사고도 20%에 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4건은 1m 이하 높이에서 났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월 9일, 울산시 울주군에서 노동자가 차양막 설치 위치를 측정한 뒤 사다리를 내려오다가 1m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습니다. 작업 발판도 없었고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3월 21일, 경기 구리시에서 실리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1m 사다리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역시 작업발판도, 안전모도 없었습니다.

③ 3월 29일, 경북 영주시의 한 단독주택 건설 현장에서 도배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말비계에서 0.9m 아래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당시 노동자는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④ 지난달 6일, 인천시 남동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조명 설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1m 아래로 떨어져 숨졌습니다. 당시 작업발판 없이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보호구가 없었던 사건은 모두 33건, 63%에 달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분석 기간 중 가장 낮은 추락 높이는 1m도 안 되는 90cm였습니다. 안전모만 쓰고 있었더라면 사망까지는 막을 수 있었던 높이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호구 없이는 아무리 높이가 낮은 곳이라 하더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런 낮은 추락 사고는 대부분, 실제 건설 현장이라기보단 기타 정비나 조명 설치 작업, 인테리어 작업 등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늘상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더 보호구 착용이나, 고정된 작업 발판을 사용하는 데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끼임' 사고는 어떨까요? 끼임 사망 사고는 전체 24건,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인 11건에서 방호 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방호 장치가 없거나, 있는데도 꺼놨거나, 기계를 멈추지 않고 작업한 경우입니다.


■ "방호장치 해제·보호구 미착용, 노동자 책임? 아니다"

한편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방호장치나 덮개를 왜 빼놓고 일하나요? 그렇게 작업하는 게 안전하지 않은데도 한 노동자들 잘못 아닌가요?"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고 작업하다 사고가 났다면, 안 한 사람 책임이지 왜 사업주가 처벌을 받나요?"

우선 방호장치 해제와 관련해서, 제조업 현장에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물어봤습니다.

한 노동자는 "기계나 설비가 노후화 돼 있는 게 많아, 고장이 잦다"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고장이 나거나 재료가 끼이거나 했을 때 덮개를 하나하나 뺐다가 덮었다가 하려면 20~30분씩 시간이 걸리는데, 이 때 사업주는 생산에서 차질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직접 손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결국 시간에 쫓기다 보니, 위험하게 작업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생긴다는 설명입니다.

감독 기관인 고용노동부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질문을 들은 양현수 안전보건감독기획과장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큰일 난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양 과장은 "감독 기관에선 사업주의 '고의'를 가릴 때 사고가 난 작업이 '통상의 작업 방식이었는지'를 보는데, '늘 이렇게 하고 있었다'라는 게 바로 통상의 작업이다. 주변 근로자들이 '늘 (보호구를) 안 쓰고 했어요', '늘 (방호 장치) 꺼놨습니다'라고 한다면 위험을 방치하거나 묵인했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리하면,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고 사고가 났을 때 사고를 당한 노동자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는 게 현장의 작업 방식이었다면 사업주가 이 위험을 알고도 방치했다고 볼 수 있단 겁니다.

대법원 판례도 이 같이 보호 조치가 되지 않은 사실을 묵인하고 방치한 것은 사업주의 '고의'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노동자의 과실이나 실수로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관리 감독 등 시스템의 미흡이라는 점이 인정되면 사업주와 회사를 처벌합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도 노동자가 작업 차량에 치인 사고에 대해, 영국항공에 벌금을 29억 원 선고한 사례가 있습니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위험한 통로를 사용했습니다. 얼핏 노동자 과실로 보이지만, 법원은 이런 작업 방식이 10년 동안 통용돼 왔다며 본사 차원의 관리 감독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연관 기사] 중대재해, 영국은 뭐가 다른가요? ② 걸렸다? 공개한다 (2022.02.24, KBS 디지털 뉴스)

■ "2019년 사고 계기로 12억 투자…880일 넘게 '무사고'"

하지만 본사 차원에서 사고를 막기 위해 투자도 늘리고, 현장의 안전 체계가 잘 돌아가도록 관심을 가지는 등 '실질적'인 노력을 했는데도 사고가 날 수는 있습니다. 그런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실질적'인 노력이 더 필요한 곳들입니다. 분석 기간 일어난 중대재해 가운데 2건 이상 사고가 난 곳을 살펴봤더니 모두 대기업 계열사였습니다. 현대제철과 현대건설 등 현대자동차그룹이 5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대림과 한화가 각각 3건, 2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게 '실질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4일, 취재팀은 경기 화성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를 찾았습니다. 상시 근로자 수가 70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이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는 곳입니다.


이곳에선 3년 전, 프레스 공정 중 노동자 한 명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 이후 윗선에선 사고 재발을 막자며 안전 설비에 대한 투자를 늘렸습니다. 특히 방호 장치를 대부분 바꿨는데, 작업 중 노동자의 몸이 가까이 가면 작동을 멈추는 설비를 도입했고, 현재까지 880일 넘게 사고가 재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 전무이사인 안창식 씨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사장님 방침에 따라서, 안전에 들어가는 비용은 하나도 아끼지 말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며 "이번에 시행된 중대재해법이 기업들에겐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중소기업이라고 못 한다는 선입견은 버리고 접근하면 충분히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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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cm, ‘이것’ 없으면 위험한 높이일 수 있다…중대재해법 100일 분석
    • 입력 2022-05-09 07:00:32
    취재K

'일하다 죽지 않게' 하자며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6일로 시행 100일이 되었습니다. 그간은 어땠을까요? 돌이켜보면 삼표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 여천NCC 폭발 사고 같은 대형 사고가 잇따랐고, 그보다 더 많은, 알려지지 않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법까지 만들어졌는데 왜 사고가 반복되는 건지, 막을 수는 없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 KBS가 1월 27일부터 지난 1일까지 95일 동안 발생한 중대재해를 분석해봤습니다.

[연관 기사] 1m 높이에도 사망, 왜?…“여전히 안전모도 없다” (2022.05.06, KBS1TV 뉴스9)

■ 하루 평균 1.8명 사망…여전히 '후진국형 사고' 많아

분석 기간 동안 발생한 중대재해는 모두 168건입니다. 이 가운데 사망은 165건, 모두 177명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1.8명, 그러니까 2명 가량이 매일 일하다 숨진 겁니다.

이 가운데 재해자 정보가 수집된 166건을 살펴보니, 눈에 띄는 건 경력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고가 1년 미만(20%) 아니면 5년 이상(58%) 경력자들에서 많이 나타났던 겁니다. 1년 미만 경력자 가운데에선 입사 당일에 사고를 당한 사람도 6명이나 됐습니다.

연령대별로 살펴봤을 땐 50대가 36%, 60대 이상이 39%로 노년층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6일 KBS1TV ‘뉴스9’ 방송 화면사업장별로 살펴봤을 때 가장 사고 많았던 곳은 바로 건설업 사업장이었습니다. 그에 못지 않게 제조업 사업장도 사고가 많았습니다.

건설업에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제조업에선 기계 등에 끼이는 사고가 많이 나는데, 이번에도 역시 이들 사고가 전체의 56%였습니다. 이른바 '후진국형 사고'라고 부릅니다. 기본적인 안전 조치만 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안전 조치라 함은, 안전모와 안전대, 고정된 작업발판 같이 복잡하고 비싼 설비가 아닌 그야말로 기본적인 설비를 말합니다.

■ 추락 사망 59%는 5m 이하…"보호구 꼭 있어야"

'추락 사고'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흔히 아주 높은 곳에서 나는 사고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KBS가 분석해보니, 아주 높은 곳에서 나는 사고는 그렇게 많지 않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전체 추락 사고 67건 가운데, 59%가 5m 이하 높이에서 난 사고였습니다. 2m 이하 높이에서 난 사고도 20%에 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4건은 1m 이하 높이에서 났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월 9일, 울산시 울주군에서 노동자가 차양막 설치 위치를 측정한 뒤 사다리를 내려오다가 1m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습니다. 작업 발판도 없었고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3월 21일, 경기 구리시에서 실리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1m 사다리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역시 작업발판도, 안전모도 없었습니다.

③ 3월 29일, 경북 영주시의 한 단독주택 건설 현장에서 도배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말비계에서 0.9m 아래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당시 노동자는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④ 지난달 6일, 인천시 남동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조명 설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1m 아래로 떨어져 숨졌습니다. 당시 작업발판 없이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보호구가 없었던 사건은 모두 33건, 63%에 달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분석 기간 중 가장 낮은 추락 높이는 1m도 안 되는 90cm였습니다. 안전모만 쓰고 있었더라면 사망까지는 막을 수 있었던 높이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호구 없이는 아무리 높이가 낮은 곳이라 하더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런 낮은 추락 사고는 대부분, 실제 건설 현장이라기보단 기타 정비나 조명 설치 작업, 인테리어 작업 등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늘상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더 보호구 착용이나, 고정된 작업 발판을 사용하는 데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끼임' 사고는 어떨까요? 끼임 사망 사고는 전체 24건,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인 11건에서 방호 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방호 장치가 없거나, 있는데도 꺼놨거나, 기계를 멈추지 않고 작업한 경우입니다.


■ "방호장치 해제·보호구 미착용, 노동자 책임? 아니다"

한편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방호장치나 덮개를 왜 빼놓고 일하나요? 그렇게 작업하는 게 안전하지 않은데도 한 노동자들 잘못 아닌가요?"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고 작업하다 사고가 났다면, 안 한 사람 책임이지 왜 사업주가 처벌을 받나요?"

우선 방호장치 해제와 관련해서, 제조업 현장에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물어봤습니다.

한 노동자는 "기계나 설비가 노후화 돼 있는 게 많아, 고장이 잦다"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고장이 나거나 재료가 끼이거나 했을 때 덮개를 하나하나 뺐다가 덮었다가 하려면 20~30분씩 시간이 걸리는데, 이 때 사업주는 생산에서 차질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직접 손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결국 시간에 쫓기다 보니, 위험하게 작업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생긴다는 설명입니다.

감독 기관인 고용노동부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질문을 들은 양현수 안전보건감독기획과장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큰일 난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양 과장은 "감독 기관에선 사업주의 '고의'를 가릴 때 사고가 난 작업이 '통상의 작업 방식이었는지'를 보는데, '늘 이렇게 하고 있었다'라는 게 바로 통상의 작업이다. 주변 근로자들이 '늘 (보호구를) 안 쓰고 했어요', '늘 (방호 장치) 꺼놨습니다'라고 한다면 위험을 방치하거나 묵인했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리하면,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고 사고가 났을 때 사고를 당한 노동자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는 게 현장의 작업 방식이었다면 사업주가 이 위험을 알고도 방치했다고 볼 수 있단 겁니다.

대법원 판례도 이 같이 보호 조치가 되지 않은 사실을 묵인하고 방치한 것은 사업주의 '고의'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노동자의 과실이나 실수로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관리 감독 등 시스템의 미흡이라는 점이 인정되면 사업주와 회사를 처벌합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도 노동자가 작업 차량에 치인 사고에 대해, 영국항공에 벌금을 29억 원 선고한 사례가 있습니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위험한 통로를 사용했습니다. 얼핏 노동자 과실로 보이지만, 법원은 이런 작업 방식이 10년 동안 통용돼 왔다며 본사 차원의 관리 감독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연관 기사] 중대재해, 영국은 뭐가 다른가요? ② 걸렸다? 공개한다 (2022.02.24, KBS 디지털 뉴스)

■ "2019년 사고 계기로 12억 투자…880일 넘게 '무사고'"

하지만 본사 차원에서 사고를 막기 위해 투자도 늘리고, 현장의 안전 체계가 잘 돌아가도록 관심을 가지는 등 '실질적'인 노력을 했는데도 사고가 날 수는 있습니다. 그런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실질적'인 노력이 더 필요한 곳들입니다. 분석 기간 일어난 중대재해 가운데 2건 이상 사고가 난 곳을 살펴봤더니 모두 대기업 계열사였습니다. 현대제철과 현대건설 등 현대자동차그룹이 5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대림과 한화가 각각 3건, 2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게 '실질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4일, 취재팀은 경기 화성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를 찾았습니다. 상시 근로자 수가 70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이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는 곳입니다.


이곳에선 3년 전, 프레스 공정 중 노동자 한 명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 이후 윗선에선 사고 재발을 막자며 안전 설비에 대한 투자를 늘렸습니다. 특히 방호 장치를 대부분 바꿨는데, 작업 중 노동자의 몸이 가까이 가면 작동을 멈추는 설비를 도입했고, 현재까지 880일 넘게 사고가 재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 전무이사인 안창식 씨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사장님 방침에 따라서, 안전에 들어가는 비용은 하나도 아끼지 말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며 "이번에 시행된 중대재해법이 기업들에겐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중소기업이라고 못 한다는 선입견은 버리고 접근하면 충분히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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