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의 ‘굿바이 청와대’…주민들 “시원섭섭해”

입력 2022.05.10 (07:00) 수정 2022.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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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좀 구워 먹잖아요? 그럼 당장 쫓아와요.”

청와대 옆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최용열 씨의 말입니다. 그동안 최 씨에게는 자기 집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자유'도 제한됐습니다. 200 미터 떨어진 청와대 때문이었습니다. 고기 굽는 연기일 뿐이었지만,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불을 피우지 말라 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팔판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유연복 씨는 5년 전 촛불집회 내내 신분증을 챙겨야 했습니다. 신분증이 없으면 집 바로 앞인데도 편하게 돌아다니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경이 (친구를) 데리고 왔었어요. 주민 맞냐, 청와대 앞에 사는 친구였는데... 이 앞에서 뭐 의경하고 대판했죠.”

■ 다시 찾은 일상의 자유... 청와대 개방되면 “나부터 먼저”

그러나 오늘부터는 달라집니다. 74년 만에 대통령 집무실이 이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거처가 있다는 이유로 제한됐던 평범한 일상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배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보연 씨는 앞으로 통학 길이 더 편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청와대가 빠지니 집회와 시위가 부쩍 줄지 않겠냐는 겁니다.

청와대가 개방되면 관광객이 몰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가게 매출이 늘어 상권이 되살아나고, 다른 지역보다 덜 올랐던 집값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습니다.

바로 옆에 살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금단의 공간, 청와대 내부에 대한 호기심도 엿보입니다.

금천교 시장에서 전집을 운영 중인 윤을수 씨는 “나부터도 진짜, 최고 먼저 한번 가보고 싶은 심정”이라며 설렘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청와대 일일 입장 인원을 최대 3만 9천 명으로 잡고 있습니다. 청와대 개방 첫날인 오늘에만 2만 6천 명이 관람자로 당첨됐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부산대학교 김현석 교수에게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와대 전면 개방으로 인근 지역이 누릴 관광 수입은 매년 1.8조 원가량으로 추정됩니다.

■ 청와대 직원 3천 명 빈자리는…규제는 제때 풀릴까

어제(9일) 종일 청와대 정문은 이삿짐 차량과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움직이는 직원들로 붐볐다.어제(9일) 종일 청와대 정문은 이삿짐 차량과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움직이는 직원들로 붐볐다.

삼청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씨는 다른 걱정을 합니다. A씨는 “청와대 상시 근로자가 저희 한 3천 명"이라며 "저 사람들 한 번에 훅 나가면 지역 경제에는 사실 조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내자동 시장에서 30년째 방앗간을 운영해 온 곽종수 씨도 마찬가지 걱정입니다. 길 건너편에 있는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했을 때 시장이 타격을 입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곽 씨는 “청와대만 이사 가고 규제들이 안 풀려버리면 청와대가 이사간 것이, 과연…”이라며 혼란스러운 현장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개발 규제가 풀릴지는 미지수입니다. 대통령이 이사가더라도, 자연경관지구인데다 경복궁이 지척인 탓입니다. 다음 정권에서 또다시 청와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규제 해제를 가로막는 변수입니다.

■ 쓸쓸하고 섭섭하지만 일단은, 굿바이 청와대!

청와대의 첫 이삿날, 주민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청와대가 떠나가는 것에 대해 쓸쓸한 마음인 건 비슷해 보였습니다.

통의동에서 10년 넘게 호프집을 운영해 온 이순근 씨는 “쓸쓸하지 청와대 간다니까 우리 여기서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도록 다 살았는데"라며 “여기서 청와대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가 떠나간다는 게 그것도 섭섭하고...”라고 덧붙였습니다.

청와대 집무실 이전으로, 자신의 집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자유'를 얻게 된 최용열 씨도 섭섭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최 씨는 “데모는 없어져서 시원해요. 그건 근데 좀 섭섭한 마음이 더 많아요.”라며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 있는 마지막 날 사랑채 인근을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주소는 그대로지만, 오늘부터 대통령은 여기에 없습니다.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맞는 청와대 인근 주민들의 앞날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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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4년 만의 ‘굿바이 청와대’…주민들 “시원섭섭해”
    • 입력 2022-05-10 07:00:30
    • 수정2022-05-10 13:41:47
    취재K

“고기 좀 구워 먹잖아요? 그럼 당장 쫓아와요.”

청와대 옆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최용열 씨의 말입니다. 그동안 최 씨에게는 자기 집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자유'도 제한됐습니다. 200 미터 떨어진 청와대 때문이었습니다. 고기 굽는 연기일 뿐이었지만,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불을 피우지 말라 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팔판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유연복 씨는 5년 전 촛불집회 내내 신분증을 챙겨야 했습니다. 신분증이 없으면 집 바로 앞인데도 편하게 돌아다니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경이 (친구를) 데리고 왔었어요. 주민 맞냐, 청와대 앞에 사는 친구였는데... 이 앞에서 뭐 의경하고 대판했죠.”

■ 다시 찾은 일상의 자유... 청와대 개방되면 “나부터 먼저”

그러나 오늘부터는 달라집니다. 74년 만에 대통령 집무실이 이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거처가 있다는 이유로 제한됐던 평범한 일상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배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보연 씨는 앞으로 통학 길이 더 편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청와대가 빠지니 집회와 시위가 부쩍 줄지 않겠냐는 겁니다.

청와대가 개방되면 관광객이 몰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가게 매출이 늘어 상권이 되살아나고, 다른 지역보다 덜 올랐던 집값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습니다.

바로 옆에 살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금단의 공간, 청와대 내부에 대한 호기심도 엿보입니다.

금천교 시장에서 전집을 운영 중인 윤을수 씨는 “나부터도 진짜, 최고 먼저 한번 가보고 싶은 심정”이라며 설렘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청와대 일일 입장 인원을 최대 3만 9천 명으로 잡고 있습니다. 청와대 개방 첫날인 오늘에만 2만 6천 명이 관람자로 당첨됐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부산대학교 김현석 교수에게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와대 전면 개방으로 인근 지역이 누릴 관광 수입은 매년 1.8조 원가량으로 추정됩니다.

■ 청와대 직원 3천 명 빈자리는…규제는 제때 풀릴까

어제(9일) 종일 청와대 정문은 이삿짐 차량과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움직이는 직원들로 붐볐다.
삼청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씨는 다른 걱정을 합니다. A씨는 “청와대 상시 근로자가 저희 한 3천 명"이라며 "저 사람들 한 번에 훅 나가면 지역 경제에는 사실 조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내자동 시장에서 30년째 방앗간을 운영해 온 곽종수 씨도 마찬가지 걱정입니다. 길 건너편에 있는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했을 때 시장이 타격을 입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곽 씨는 “청와대만 이사 가고 규제들이 안 풀려버리면 청와대가 이사간 것이, 과연…”이라며 혼란스러운 현장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개발 규제가 풀릴지는 미지수입니다. 대통령이 이사가더라도, 자연경관지구인데다 경복궁이 지척인 탓입니다. 다음 정권에서 또다시 청와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규제 해제를 가로막는 변수입니다.

■ 쓸쓸하고 섭섭하지만 일단은, 굿바이 청와대!

청와대의 첫 이삿날, 주민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청와대가 떠나가는 것에 대해 쓸쓸한 마음인 건 비슷해 보였습니다.

통의동에서 10년 넘게 호프집을 운영해 온 이순근 씨는 “쓸쓸하지 청와대 간다니까 우리 여기서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도록 다 살았는데"라며 “여기서 청와대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가 떠나간다는 게 그것도 섭섭하고...”라고 덧붙였습니다.

청와대 집무실 이전으로, 자신의 집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자유'를 얻게 된 최용열 씨도 섭섭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최 씨는 “데모는 없어져서 시원해요. 그건 근데 좀 섭섭한 마음이 더 많아요.”라며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 있는 마지막 날 사랑채 인근을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주소는 그대로지만, 오늘부터 대통령은 여기에 없습니다.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맞는 청와대 인근 주민들의 앞날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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