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 지금과 같은 듯 다른 듯…조선시대 공무원의 일과 삶

입력 2022.05.14 (06:01) 수정 2022.05.1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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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재산을 모으는데 서툴렀다. 그래서 늘 책을 침상 위에다 놓고서는, 자리를 그 위에 깔고 잠을 잤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답하기를, "침상이 냉하고 모포가 없어서 그리합니다."고 답했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실록에도 집이 가난했다고 언급된 김수온은 갖가지 기행은 물론 독서광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연려실기술은 책 읽기를 좋아했던 김수온이 신숙주한테 책을 빌려와서는 돌려주지 않은 일화를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신숙주가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고문선(古文選)'을 갖고 있었다. 신숙주는 책을 아껴서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는데, 김수온이 간절히 빌려달라고 청해 빌려 줬다. 책을 빌려준 뒤 한 달이 지나 신숙주가 김수온의 집에 가보았다. 김수온은 신숙주의 책을 쪽마다 찢어서 벽에 붙여 놓고 있었다. 때가 타서 글씨를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연유를 물었더니 김수온은 '내가 누워서 외우느라 그렇게 되었다오.'고 답했다.
※ 연려실기술 제5권 세조 조의 명신 (한국고전종합DB)

연려실기술은 신숙주의 반응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해 놓지 않았지만, 독서광 김수온의 기행 앞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수온은 '책벌레'로 유명했지만, 조선 시대 책에 빠져 지냈던 선비는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독서를 권장하는 사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관직을 얻기 위해서는 과거에 급제해야 했으며, 과거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의 공무원들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했을까, 그렇게 과거에 급제하면 또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이와 같은 의문에 조금이나마 답을 해주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감사원 공무원이기도 한 권기환 작가가 쓴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입니다.

조선 시대 공무원들의 삶과 일을 꼼꼼하게 밝혀 놓고 있는 이 책은 과거급제를 위해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했던 조선 선비들의 운명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대부분의 양반집 자제들은 어려서는 서당에서 공부하고, 조금 더 커서는 사학이나 성균관, 또는 향교나 서원에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과거 급제를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길게는 20년, 30년씩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책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조선 시대 문과와 무과 시험은 정기시험인 식년시에다 특별시험인 별시까지 더해서 모두 740여 회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특히 책은 당시 조선의 고을 수가 360여 개였고 일반적으로 관직 진출이 보장되는 식년시의 합격 정원이 33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개 고을에서 합격자 1명을 배출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생한 사례로 이황을 들고 있습니다. 대학자인 이황의 경우도 34세가 되어서야 문과에 급제하는 등 과거 시험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이황도 쉽지 않았을 만큼 합격이 지난한 데다 양반집 자제들이 너나없이 과거 급제에 매달리다 보니,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별별 방법도 다 동원됐다고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책은 먼저, 사서삼경 같은 교과서류와 함께 간편한 요약서 또한 선호됐다고 전합니다. 사서삼경을 음미하며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합격이 급했다는 것이죠. 또 예전 과거 답안지를 모아 놓은 일종의 기출문제지도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책은 요즘 학원가의 '1타 강사'처럼 조선 시대에도 우수한 과외 선생이 있어 학생들을 끌어 모았다는 사례도 곁들이고 있습니다.

합격을 향한 욕망이 너무 뜨겁다 보니, 부정행위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책은 과거 응시자가 이름을 속이거나, 다른 사람이 지은 글을 빌리거나, 다른 사람을 대신해 글을 지어주는 행위 등 온갖 종류의 부정행위가 있었음을 역사 속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박제가 같은 실학자는 그의 저서 북학의에서 '하루 안에 치르는 과거를 보게 되면 머리털이 허옇게 세고 심지어 남을 살상하거나 압사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더욱이 정작 시험 과목은 실무에서 써먹기 힘든 불필요한 지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는 사실도 책은 전하고 있습니다.

과거 시험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우수한 인재를 뽑는다는 그 본래 기능을 일정 부분 상실한 듯, 책은 정약용 또한 오학론에서 '권세가들은 시험 날에는 부정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과거시험을 제대로 바꿔야만 백성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백성보다는 자신의 부귀와 안위를 앞서 생각하는 자격 없는 수령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쓴 권기환 작가는 조선 시대 과거급제를 한 선비들이 모두 다 무능하거나 부패한 공무원이었다면 조선 사회가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 또한 밝히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문제 많은 공무원도 있었지만 훌륭한 공무원들 또한 많았다는 것이죠.


책은 장원급제에 얽힌 얘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5백 년이 넘는 조선 시대, 장원급제를 한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 가운데 최연소는 선조 때 17세의 나이로 문과 장원을 차지한 박호였습니다. 17세에 장원급제, 조선 역사를 통틀어 최연소, 요즘 말로 하면 '공부 천재'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박호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교과서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최연소 장원급제를 했지만 아마도 일은 잘하지 못했냐보다, 그래서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나보다', 추측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책 '조선의 공무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최연소 장원급제를 한 박호의 삶도 짧게나마 조명하고 있는 데요.

박호가 25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박호는 당시 경상도순변사 이일을 보좌하는 종사관이었습니다. 상주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합니다. 책은 당시 800여 명의 적은 병사들이 1만여 명이 넘는 일본군을 대항해 싸웠는데, 박호는 '내가 17세에 장원급제하여 나라의 큰 은혜를 입었다. 지금 전세가 이처럼 불리하니 내가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왕을 뵐 수 있겠는가'라며 끝까지 저항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너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됐고, 그래서 그에 대해 남아 있는 기록도 별로 없다고 합니다.


책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시대는 다르지만 갑질과 부정부패를 일삼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선배 공무원들과 청렴하고 성실하게 일을 해 본보기 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배 공무원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을 쓴 권기환 작가는 감사원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공공감사, 알고 싶은 77가지 이야기', '진짜 암행어사,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등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권기환 작가는 이번 책에서 '많은 사람이 공무원 하면 워라밸과 철밥통을 떠올리지만, 사명감과 책임감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책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공무원이 돼야 하는지, 바람직한 공무원상이란 어떤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은 보름여 전인 4월 말 출간됐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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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책] 지금과 같은 듯 다른 듯…조선시대 공무원의 일과 삶
    • 입력 2022-05-14 06:01:44
    • 수정2022-05-16 09:37:52
    취재K

'공은 재산을 모으는데 서툴렀다. 그래서 늘 책을 침상 위에다 놓고서는, 자리를 그 위에 깔고 잠을 잤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답하기를, "침상이 냉하고 모포가 없어서 그리합니다."고 답했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실록에도 집이 가난했다고 언급된 김수온은 갖가지 기행은 물론 독서광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연려실기술은 책 읽기를 좋아했던 김수온이 신숙주한테 책을 빌려와서는 돌려주지 않은 일화를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신숙주가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고문선(古文選)'을 갖고 있었다. 신숙주는 책을 아껴서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는데, 김수온이 간절히 빌려달라고 청해 빌려 줬다. 책을 빌려준 뒤 한 달이 지나 신숙주가 김수온의 집에 가보았다. 김수온은 신숙주의 책을 쪽마다 찢어서 벽에 붙여 놓고 있었다. 때가 타서 글씨를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연유를 물었더니 김수온은 '내가 누워서 외우느라 그렇게 되었다오.'고 답했다.
※ 연려실기술 제5권 세조 조의 명신 (한국고전종합DB)

연려실기술은 신숙주의 반응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해 놓지 않았지만, 독서광 김수온의 기행 앞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수온은 '책벌레'로 유명했지만, 조선 시대 책에 빠져 지냈던 선비는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독서를 권장하는 사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관직을 얻기 위해서는 과거에 급제해야 했으며, 과거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의 공무원들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했을까, 그렇게 과거에 급제하면 또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이와 같은 의문에 조금이나마 답을 해주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감사원 공무원이기도 한 권기환 작가가 쓴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입니다.

조선 시대 공무원들의 삶과 일을 꼼꼼하게 밝혀 놓고 있는 이 책은 과거급제를 위해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했던 조선 선비들의 운명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대부분의 양반집 자제들은 어려서는 서당에서 공부하고, 조금 더 커서는 사학이나 성균관, 또는 향교나 서원에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과거 급제를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길게는 20년, 30년씩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책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조선 시대 문과와 무과 시험은 정기시험인 식년시에다 특별시험인 별시까지 더해서 모두 740여 회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특히 책은 당시 조선의 고을 수가 360여 개였고 일반적으로 관직 진출이 보장되는 식년시의 합격 정원이 33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개 고을에서 합격자 1명을 배출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생한 사례로 이황을 들고 있습니다. 대학자인 이황의 경우도 34세가 되어서야 문과에 급제하는 등 과거 시험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이황도 쉽지 않았을 만큼 합격이 지난한 데다 양반집 자제들이 너나없이 과거 급제에 매달리다 보니,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별별 방법도 다 동원됐다고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책은 먼저, 사서삼경 같은 교과서류와 함께 간편한 요약서 또한 선호됐다고 전합니다. 사서삼경을 음미하며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합격이 급했다는 것이죠. 또 예전 과거 답안지를 모아 놓은 일종의 기출문제지도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책은 요즘 학원가의 '1타 강사'처럼 조선 시대에도 우수한 과외 선생이 있어 학생들을 끌어 모았다는 사례도 곁들이고 있습니다.

합격을 향한 욕망이 너무 뜨겁다 보니, 부정행위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책은 과거 응시자가 이름을 속이거나, 다른 사람이 지은 글을 빌리거나, 다른 사람을 대신해 글을 지어주는 행위 등 온갖 종류의 부정행위가 있었음을 역사 속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박제가 같은 실학자는 그의 저서 북학의에서 '하루 안에 치르는 과거를 보게 되면 머리털이 허옇게 세고 심지어 남을 살상하거나 압사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더욱이 정작 시험 과목은 실무에서 써먹기 힘든 불필요한 지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는 사실도 책은 전하고 있습니다.

과거 시험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우수한 인재를 뽑는다는 그 본래 기능을 일정 부분 상실한 듯, 책은 정약용 또한 오학론에서 '권세가들은 시험 날에는 부정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과거시험을 제대로 바꿔야만 백성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백성보다는 자신의 부귀와 안위를 앞서 생각하는 자격 없는 수령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쓴 권기환 작가는 조선 시대 과거급제를 한 선비들이 모두 다 무능하거나 부패한 공무원이었다면 조선 사회가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 또한 밝히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문제 많은 공무원도 있었지만 훌륭한 공무원들 또한 많았다는 것이죠.


책은 장원급제에 얽힌 얘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5백 년이 넘는 조선 시대, 장원급제를 한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 가운데 최연소는 선조 때 17세의 나이로 문과 장원을 차지한 박호였습니다. 17세에 장원급제, 조선 역사를 통틀어 최연소, 요즘 말로 하면 '공부 천재'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박호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교과서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최연소 장원급제를 했지만 아마도 일은 잘하지 못했냐보다, 그래서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나보다', 추측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책 '조선의 공무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최연소 장원급제를 한 박호의 삶도 짧게나마 조명하고 있는 데요.

박호가 25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박호는 당시 경상도순변사 이일을 보좌하는 종사관이었습니다. 상주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합니다. 책은 당시 800여 명의 적은 병사들이 1만여 명이 넘는 일본군을 대항해 싸웠는데, 박호는 '내가 17세에 장원급제하여 나라의 큰 은혜를 입었다. 지금 전세가 이처럼 불리하니 내가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왕을 뵐 수 있겠는가'라며 끝까지 저항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너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됐고, 그래서 그에 대해 남아 있는 기록도 별로 없다고 합니다.


책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시대는 다르지만 갑질과 부정부패를 일삼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선배 공무원들과 청렴하고 성실하게 일을 해 본보기 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배 공무원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을 쓴 권기환 작가는 감사원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공공감사, 알고 싶은 77가지 이야기', '진짜 암행어사,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등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권기환 작가는 이번 책에서 '많은 사람이 공무원 하면 워라밸과 철밥통을 떠올리지만, 사명감과 책임감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책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공무원이 돼야 하는지, 바람직한 공무원상이란 어떤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은 보름여 전인 4월 말 출간됐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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