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택배 분실은 누구 책임?…미처 몰랐던 속사정

입력 2022.05.14 (07:00) 수정 2022.05.15 (10: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21년 한 해 국내 택배 물동량은 36억 건을 넘었습니다. 하루 약 천만 건의 택배 상자가 오갔다는 얘깁니다.

한국의 택배 배송 시스템이 세계적인 수준이라지만 분실과 파손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죠. 배상을 누가 할 것이냐입니다. 당연히 분실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물어야겠지만, 하루 천만 건씩 오가는 택배 상자의 과실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책임이 불명확할 경우에는 누가 배상 책임을 질까. 여기에 복잡한 속사정이 숨어있습니다.


■ 택배 분실·파손, 공정위 약관은 명확한데…

공정거래위원회가 2020년 개정한 택배 표준 약관은 명확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고객이 분실이나 파손으로 배상을 요청하면 사업자, 즉 택배 회사가 30일 이내에 우선 배상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택배 기사는 고객에 직접 1차 배상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국택배노조 2천1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개월 이내에 고객에 직접 배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80%에 달했습니다.

분실 파손 신고에서 회사가 먼저 배상했다는 응답은 27.5%에 그쳤습니다.


약관은 명확한데 왜 현장의 목소리는 다를까요. 취재해보니, 사정이 있었습니다.

택배 분실이나 파손이 발생하면, 고객의 배상 요청이 들어옵니다. 이때 배상 요청을 접수한 대리점이 본사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파손이나 분실이 많으면 대리점의 고객 만족 점수가 깎이는데, 향후 본사와의 재계약에 영향을 주니 아예 사고 자체를 숨겨버리는 겁니다.

결국, 배상 책임은 대리점과 택배기사들이 알아서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 대리점도 불만 "대리점 분실 파손은 왜 회사가 책임지지 않느냐?"

택배 분실·파손 유형에는 배송 후 사고뿐만 아니라 대리점 집하 과정에서 생기는 사고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워 대리점과 소속 택배 기사 모두에게 돈을 나눠 보상하게 합니다.

4만 원짜리 물건이 파손되면 대리점에 소속된 20명의 택배기사가 2천 원씩 돈을 물어주는 방식입니다.

이때 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데, 대리점은 왜 회사가 빠져있느냐는 불만입니다.

전국택배노조는 이와 관련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8조의 연대책임을 어긴 것이라며 국토교통부에 관행 개선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 택배 회사도 할 말 있어..."1차 배상하고 있다"

택배 회사도 할 말이 있습니다. 배상 시스템은 잘 작동하고 있고, 약관대로 1차 배상은 모두 회사가 책임지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고객센터를 통해 접수된 분실과 파손 건은 택배 회사에서 1차 배상을 모두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고 접수가 많은 대리점의 점수를 깎는 것은 고객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일이고, 이를 피해 알아서 처리한 건 회사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8조에 있는 연대책임도 회사와 대리점, 기사가 똑같이 책임을 지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 소재를 가려 배상하라는 뜻이라 문제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 과실 책임 입증은 누가?...약관도 법도 모호

택배 기사들도 회사가 고객 센터에 접수된 건은 우선 배상을 해주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우선 배상 이후 기사의 과실을 따져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미흡하다고 말합니다.

공정위 약관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국토교통부의 표준계약서 모두 분실과 파손 책임을 누가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리점은 점수는 점수대로 깎이고, 과실을 따지는 과정도 분명치 않으니 기사가 알아서 처리하는 관행이 이어져 온 겁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책임을 부담하지 않게 면책 조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경우에 택배 기사님이 면책이 되고, 어떤 경우에 회사가 면책이 되는지를 분명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희라 변호사

모호한 규정 속에서 피해를 보는 건 관행이란 이름으로 배상 책임을 떠안은 택배 기사들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택배 분실은 누구 책임?…미처 몰랐던 속사정
    • 입력 2022-05-14 07:00:13
    • 수정2022-05-15 10:45:42
    취재후·사건후

2021년 한 해 국내 택배 물동량은 36억 건을 넘었습니다. 하루 약 천만 건의 택배 상자가 오갔다는 얘깁니다.

한국의 택배 배송 시스템이 세계적인 수준이라지만 분실과 파손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죠. 배상을 누가 할 것이냐입니다. 당연히 분실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물어야겠지만, 하루 천만 건씩 오가는 택배 상자의 과실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책임이 불명확할 경우에는 누가 배상 책임을 질까. 여기에 복잡한 속사정이 숨어있습니다.


■ 택배 분실·파손, 공정위 약관은 명확한데…

공정거래위원회가 2020년 개정한 택배 표준 약관은 명확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고객이 분실이나 파손으로 배상을 요청하면 사업자, 즉 택배 회사가 30일 이내에 우선 배상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택배 기사는 고객에 직접 1차 배상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국택배노조 2천1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개월 이내에 고객에 직접 배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80%에 달했습니다.

분실 파손 신고에서 회사가 먼저 배상했다는 응답은 27.5%에 그쳤습니다.


약관은 명확한데 왜 현장의 목소리는 다를까요. 취재해보니, 사정이 있었습니다.

택배 분실이나 파손이 발생하면, 고객의 배상 요청이 들어옵니다. 이때 배상 요청을 접수한 대리점이 본사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파손이나 분실이 많으면 대리점의 고객 만족 점수가 깎이는데, 향후 본사와의 재계약에 영향을 주니 아예 사고 자체를 숨겨버리는 겁니다.

결국, 배상 책임은 대리점과 택배기사들이 알아서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 대리점도 불만 "대리점 분실 파손은 왜 회사가 책임지지 않느냐?"

택배 분실·파손 유형에는 배송 후 사고뿐만 아니라 대리점 집하 과정에서 생기는 사고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워 대리점과 소속 택배 기사 모두에게 돈을 나눠 보상하게 합니다.

4만 원짜리 물건이 파손되면 대리점에 소속된 20명의 택배기사가 2천 원씩 돈을 물어주는 방식입니다.

이때 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데, 대리점은 왜 회사가 빠져있느냐는 불만입니다.

전국택배노조는 이와 관련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8조의 연대책임을 어긴 것이라며 국토교통부에 관행 개선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 택배 회사도 할 말 있어..."1차 배상하고 있다"

택배 회사도 할 말이 있습니다. 배상 시스템은 잘 작동하고 있고, 약관대로 1차 배상은 모두 회사가 책임지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고객센터를 통해 접수된 분실과 파손 건은 택배 회사에서 1차 배상을 모두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고 접수가 많은 대리점의 점수를 깎는 것은 고객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일이고, 이를 피해 알아서 처리한 건 회사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8조에 있는 연대책임도 회사와 대리점, 기사가 똑같이 책임을 지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 소재를 가려 배상하라는 뜻이라 문제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 과실 책임 입증은 누가?...약관도 법도 모호

택배 기사들도 회사가 고객 센터에 접수된 건은 우선 배상을 해주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우선 배상 이후 기사의 과실을 따져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미흡하다고 말합니다.

공정위 약관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국토교통부의 표준계약서 모두 분실과 파손 책임을 누가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리점은 점수는 점수대로 깎이고, 과실을 따지는 과정도 분명치 않으니 기사가 알아서 처리하는 관행이 이어져 온 겁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책임을 부담하지 않게 면책 조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경우에 택배 기사님이 면책이 되고, 어떤 경우에 회사가 면책이 되는지를 분명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희라 변호사

모호한 규정 속에서 피해를 보는 건 관행이란 이름으로 배상 책임을 떠안은 택배 기사들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