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새 2명 ‘성추행’ 직위해제…창원소방본부에 무슨 일이?

입력 2022.05.14 (09: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창원소방본부 소속 소방관 2명, 하위 직급 여성 소방관 성추행 혐의 경찰 수사
-가해자 명예퇴직 신청했지만, 피해자 “조사 재개” 요청으로 퇴직 반려
-본부 내 여성 소방관 비율 6.8% “부당한 일에 참지 않고 용기 낸 피해자 지지할 것”



# 사건 1.
창원소방본부는 지난달 간부 소방관 A 씨를 직위해제했습니다. A 씨는 지난 1월 사무실에서 여성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본부 내 '성 고충 심의위'는 A씨가 피해 여성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사실도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사건 2.
9일 뒤 본부 소속 또 다른 남성 소방관 B 씨가 직위해제됐습니다. 팀장급 보직을 맡고 있던 B 씨는 1월부터 약 넉 달 동안 청사 안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여성 소방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피해 횟수가 잦아 일부 목격자들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높은 직급에 있었고, 업무 역시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과 '강제추행' 가운데, 어떤 혐의를 적용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수사가 마무리 단계며, 늦어도 이달 안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명예퇴직'으로 묻힐 뻔한 사건, 어떻게 드러났나?

첫 번째 사건이 최초로 드러난 건 2월 중순쯤입니다. 피해자는 본부 최고 책임자를 찾아가 직접 피해 사실을 알렸고, 즉각적인 분리 조치가 이뤄졌습니다. 보름 뒤인 3월 초쯤 본부 내 성 고충심의위에 공식적으로 사건을 접수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이 시작된 뒤 열흘이 지난 시점에 가해자로 지목된 A씨가 돌연 명예퇴직을 신청합니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피해자 역시 '조사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더 이상의 진실 규명이나 징계 없이 사건은 무마되는 듯 했습니다. 묻힐 뻔했던 사건은 다음 날 반전을 맞습니다.

소방본부 감찰계로 익명의 투서가 접수된 겁니다. "A 씨의 명예퇴직을 받아 주어서는 안 된다, 철저히 진상을 밝혀 추가 피해를 막아달라"는 호소였습니다. 피해자 역시 '조사 재개'를 요청합니다.

A 씨의 명예퇴직 신청은 반려됐고, 4월 6일 정식으로 소방본부 내 '성 고충 심의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성 고충 심의위'가 열린 건 2012년 창원소방본부 개청 이래 최초였습니다.

첫 번째 사건의 처리 과정을 지켜 보며, 두 번째 사건 피해자 역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여성 동료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여성 동료들의 적극적인 조력 속에서, 고충 상담과 경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고충 접수에서부터 직위해제까지 2개월 가까이 소요됐던 첫 번째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피해자가 고충 상담을 신청한 지 나흘 만에 직위해제가 결정됐습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성 비위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상부에서도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례적일 만큼 '신속하고 단호한' 처분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성 비위' 고충 상담, 임용 3년 차가 해야 하는 현실



창원소방본부 여성 소방관은 69명으로, 전체의 6.8%에 불과합니다. 워낙 소수이다 보니 이번 건과 같이 '성 비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무수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일례로 창원소방본부에는 관서마다 남녀 1명씩 '고충 상담원'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직장 내 갑질과 성 비위 사건을 접수하고 상담을 해주는 이들입니다.

고충 상담원의 역할은 단순히 피해 사실을 '들어주는'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악의적인 소문과 불이익의 위험을 감수한 피해자들을 대리해야 합니다. 정서적 지지는 물론, 피해 신고가 정당하게 처리되는지를 감시해야 합니다. 때때로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를 포함한 조직 전체와 싸우고 협상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연륜'과 '강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당수 여성 고충 상담원들은 남성 상담원에 비해 연차나 직급이 낮습니다. 일부 관서의 경우, 신입이나 다름없는 임용 3년 차 여성 소방관이 고충 상담원으로 활동해야 할 정도입니다.

■피해자들의 용기가 새로운 길이 되려면

이달 초 창원소방본부는 여성 소방관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청사 내 여성들의 공간과 '성 비위' 고충 처리 절차에 이르기까지, 잠재해 있던 불만과 요구들이 쏟아졌습니다. 여성 소방관들끼리 온·오프라인 모임을 만들고, 선후배 간 '멘토링'을 해보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3차례로 나눠 진행된 '여성 소방공무원 간담회' . 휴직자 6명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여성 소방관이 참석했다.3차례로 나눠 진행된 '여성 소방공무원 간담회' . 휴직자 6명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여성 소방관이 참석했다.

연이어 터진 조직 내 성 비위에 여성 소방관들 대다수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직의 분위기가 희미하게나마 변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3년 차 이하 한 여성 소방관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조직을 믿고 상담할 수 시스템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참지 않고, 용기를 내어 준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창원소방본부는 현재 '소방공무원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2차 피해 방지지침'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침묵을 깬 피해자들의 용기가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도록,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문제점과 대안들이 얼마나 충실히 반영될지 두고 볼 대목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열흘 새 2명 ‘성추행’ 직위해제…창원소방본부에 무슨 일이?
    • 입력 2022-05-14 09:00:39
    취재K
-창원소방본부 소속 소방관 2명, 하위 직급 여성 소방관 성추행 혐의 경찰 수사<br />-가해자 명예퇴직 신청했지만, 피해자 “조사 재개” 요청으로 퇴직 반려<br />-본부 내 여성 소방관 비율 6.8% “부당한 일에 참지 않고 용기 낸 피해자 지지할 것”


# 사건 1.
창원소방본부는 지난달 간부 소방관 A 씨를 직위해제했습니다. A 씨는 지난 1월 사무실에서 여성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본부 내 '성 고충 심의위'는 A씨가 피해 여성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사실도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사건 2.
9일 뒤 본부 소속 또 다른 남성 소방관 B 씨가 직위해제됐습니다. 팀장급 보직을 맡고 있던 B 씨는 1월부터 약 넉 달 동안 청사 안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여성 소방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피해 횟수가 잦아 일부 목격자들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높은 직급에 있었고, 업무 역시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과 '강제추행' 가운데, 어떤 혐의를 적용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수사가 마무리 단계며, 늦어도 이달 안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명예퇴직'으로 묻힐 뻔한 사건, 어떻게 드러났나?

첫 번째 사건이 최초로 드러난 건 2월 중순쯤입니다. 피해자는 본부 최고 책임자를 찾아가 직접 피해 사실을 알렸고, 즉각적인 분리 조치가 이뤄졌습니다. 보름 뒤인 3월 초쯤 본부 내 성 고충심의위에 공식적으로 사건을 접수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이 시작된 뒤 열흘이 지난 시점에 가해자로 지목된 A씨가 돌연 명예퇴직을 신청합니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피해자 역시 '조사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더 이상의 진실 규명이나 징계 없이 사건은 무마되는 듯 했습니다. 묻힐 뻔했던 사건은 다음 날 반전을 맞습니다.

소방본부 감찰계로 익명의 투서가 접수된 겁니다. "A 씨의 명예퇴직을 받아 주어서는 안 된다, 철저히 진상을 밝혀 추가 피해를 막아달라"는 호소였습니다. 피해자 역시 '조사 재개'를 요청합니다.

A 씨의 명예퇴직 신청은 반려됐고, 4월 6일 정식으로 소방본부 내 '성 고충 심의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성 고충 심의위'가 열린 건 2012년 창원소방본부 개청 이래 최초였습니다.

첫 번째 사건의 처리 과정을 지켜 보며, 두 번째 사건 피해자 역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여성 동료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여성 동료들의 적극적인 조력 속에서, 고충 상담과 경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고충 접수에서부터 직위해제까지 2개월 가까이 소요됐던 첫 번째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피해자가 고충 상담을 신청한 지 나흘 만에 직위해제가 결정됐습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성 비위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상부에서도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례적일 만큼 '신속하고 단호한' 처분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성 비위' 고충 상담, 임용 3년 차가 해야 하는 현실



창원소방본부 여성 소방관은 69명으로, 전체의 6.8%에 불과합니다. 워낙 소수이다 보니 이번 건과 같이 '성 비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무수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일례로 창원소방본부에는 관서마다 남녀 1명씩 '고충 상담원'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직장 내 갑질과 성 비위 사건을 접수하고 상담을 해주는 이들입니다.

고충 상담원의 역할은 단순히 피해 사실을 '들어주는'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악의적인 소문과 불이익의 위험을 감수한 피해자들을 대리해야 합니다. 정서적 지지는 물론, 피해 신고가 정당하게 처리되는지를 감시해야 합니다. 때때로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를 포함한 조직 전체와 싸우고 협상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연륜'과 '강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당수 여성 고충 상담원들은 남성 상담원에 비해 연차나 직급이 낮습니다. 일부 관서의 경우, 신입이나 다름없는 임용 3년 차 여성 소방관이 고충 상담원으로 활동해야 할 정도입니다.

■피해자들의 용기가 새로운 길이 되려면

이달 초 창원소방본부는 여성 소방관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청사 내 여성들의 공간과 '성 비위' 고충 처리 절차에 이르기까지, 잠재해 있던 불만과 요구들이 쏟아졌습니다. 여성 소방관들끼리 온·오프라인 모임을 만들고, 선후배 간 '멘토링'을 해보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3차례로 나눠 진행된 '여성 소방공무원 간담회' . 휴직자 6명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여성 소방관이 참석했다.
연이어 터진 조직 내 성 비위에 여성 소방관들 대다수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직의 분위기가 희미하게나마 변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3년 차 이하 한 여성 소방관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조직을 믿고 상담할 수 시스템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참지 않고, 용기를 내어 준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창원소방본부는 현재 '소방공무원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2차 피해 방지지침'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침묵을 깬 피해자들의 용기가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도록,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문제점과 대안들이 얼마나 충실히 반영될지 두고 볼 대목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