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사망 열쇠 푼 구더기…‘법 곤충 감정’ 본격화

입력 2022.05.18 (09:09) 수정 2022.06.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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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6월 1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 밭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시신의 정체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은 신원 파악조차 힘들 만큼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습니다.

유 전 회장의 사망 원인과 시점에 대한 의혹 제기가 거세질 때쯤, 경찰은 유 회장이 '6월 2일에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부패한 시신으로 사망 시점을 추정한 건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 구더기는 그의 사망 시간을 알고 있었다

단서는 구더기에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시신에서 채취한 구더기의 부화 시각을 분석했고, 유 전 회장이 6월 2일에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법곤충 감정'을 활용한 겁니다.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의 종류나 부화 시각을 분석해 사망 시점을 추정하는 과학수사 기법입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체의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①시반(시신 얼룩), ②체온 하강, ③소화기 잔여 음식물 등입니다.
- 시반 : 시신에 나타나는 얼룩. 형태와 형성 과정으로 사망 시간 추정
- 체온 하강 : 정상 체온(36.5℃)과 사망 후 직장 내 온도를 비교해 사망 시간 추정
- 소화기 잔여 음식물 : 위에 남아 있는 음식물의 소화 상태로 사망 시간 추정

하지만 유병언 전 회장 사례처럼 시신이 심하게 부패하면, 이런 방법을 쓸 수 없습니다. 이때가 법곤충 감정 기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변사 사건에서 사망시간 추정이 가장 중요한 수사 단서인데, 체온 하강이나 시반(시신 얼룩)은 사망 2~3일이 지나면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법곤충 감정은 발견되는 곤충이 언제 산란했는지 확인하면, 최초 산란시간이 사망 시간에 근접하기 때문에 사망 시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김정민 경찰청 과학수사기법 계장

■ 법곤충은 학대 여부도 알 수 있다

법곤충 감정은 노약자 학대나 동물 학대 수사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7월, 아들이 80대 노모를 방임해 숨지게 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경찰은 노모의 괴사 된 상처에서 구더기를 발견했습니다. 길이를 측정해봤더니, 사망 사흘 전에 산란 된 개체였습니다.

노모가 사망한 이후가 아니라 이전부터 구더기가 생겼다는 얘기. 이를 통해 '아들이 병든 노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몸에 구더기가 생기는 승저증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경찰은 확인했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이나 사람에게 구더기가 발생하는 것을 승저증이라고 합니다. 노약자나 어린이한테 이런 승저증이 발생하게 되면 방임이나 학대의 증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김정민 경찰청 과학수사기법 계장

■ 하루면 분석 가능…국내 최초 법곤충 감정실 개소

유병언 전 회장 사건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법곤충 감정이 활용됐습니다. 하지만 곤충 전문인력과 법곤충 데이터가 미비해 수사에 제한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은 지난 2016년부터 법곤충 관련 연구 개발을 시작했고, 어제(17일) 국내 최초로 '법곤충 감정실'을 열었습니다. 법곤충 감정을 통해 사망시간, 사망한 계절, 시신 이동 여부 등 추가적인 수사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이미 서울과 광주에서 일어난 강력 사건 2건을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법곤충 감정이 변사와 관련된 부분뿐만 아니라 동물 학대 수사에도 유용할 것"이라면서 "법곤충 감정실 개소를 계기로 한국의 과학수사 역량이 한층 더 향상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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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병언 사망 열쇠 푼 구더기…‘법 곤충 감정’ 본격화
    • 입력 2022-05-18 09:09:05
    • 수정2022-06-02 16:40:29
    취재K

지난 2014년 6월 1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 밭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시신의 정체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은 신원 파악조차 힘들 만큼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습니다.

유 전 회장의 사망 원인과 시점에 대한 의혹 제기가 거세질 때쯤, 경찰은 유 회장이 '6월 2일에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부패한 시신으로 사망 시점을 추정한 건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 구더기는 그의 사망 시간을 알고 있었다

단서는 구더기에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시신에서 채취한 구더기의 부화 시각을 분석했고, 유 전 회장이 6월 2일에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법곤충 감정'을 활용한 겁니다.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의 종류나 부화 시각을 분석해 사망 시점을 추정하는 과학수사 기법입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체의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①시반(시신 얼룩), ②체온 하강, ③소화기 잔여 음식물 등입니다.
- 시반 : 시신에 나타나는 얼룩. 형태와 형성 과정으로 사망 시간 추정
- 체온 하강 : 정상 체온(36.5℃)과 사망 후 직장 내 온도를 비교해 사망 시간 추정
- 소화기 잔여 음식물 : 위에 남아 있는 음식물의 소화 상태로 사망 시간 추정

하지만 유병언 전 회장 사례처럼 시신이 심하게 부패하면, 이런 방법을 쓸 수 없습니다. 이때가 법곤충 감정 기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변사 사건에서 사망시간 추정이 가장 중요한 수사 단서인데, 체온 하강이나 시반(시신 얼룩)은 사망 2~3일이 지나면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법곤충 감정은 발견되는 곤충이 언제 산란했는지 확인하면, 최초 산란시간이 사망 시간에 근접하기 때문에 사망 시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김정민 경찰청 과학수사기법 계장

■ 법곤충은 학대 여부도 알 수 있다

법곤충 감정은 노약자 학대나 동물 학대 수사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7월, 아들이 80대 노모를 방임해 숨지게 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경찰은 노모의 괴사 된 상처에서 구더기를 발견했습니다. 길이를 측정해봤더니, 사망 사흘 전에 산란 된 개체였습니다.

노모가 사망한 이후가 아니라 이전부터 구더기가 생겼다는 얘기. 이를 통해 '아들이 병든 노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몸에 구더기가 생기는 승저증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경찰은 확인했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이나 사람에게 구더기가 발생하는 것을 승저증이라고 합니다. 노약자나 어린이한테 이런 승저증이 발생하게 되면 방임이나 학대의 증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김정민 경찰청 과학수사기법 계장

■ 하루면 분석 가능…국내 최초 법곤충 감정실 개소

유병언 전 회장 사건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법곤충 감정이 활용됐습니다. 하지만 곤충 전문인력과 법곤충 데이터가 미비해 수사에 제한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은 지난 2016년부터 법곤충 관련 연구 개발을 시작했고, 어제(17일) 국내 최초로 '법곤충 감정실'을 열었습니다. 법곤충 감정을 통해 사망시간, 사망한 계절, 시신 이동 여부 등 추가적인 수사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이미 서울과 광주에서 일어난 강력 사건 2건을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법곤충 감정이 변사와 관련된 부분뿐만 아니라 동물 학대 수사에도 유용할 것"이라면서 "법곤충 감정실 개소를 계기로 한국의 과학수사 역량이 한층 더 향상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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