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더 큰 분열이냐, 변화냐…총선 이후 레바논은

입력 2022.05.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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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레바논에서 4년만에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결과는 집권 세력 헤즈볼라 동맹의 과반 유지 실패로 나타났습니다.

헤즈볼라 동맹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정파로 지난 2018년 총선에서 전체 128석의 의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71석을 차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개표 결과 헤즈볼라 동맹은 61석을 확보해 과반인 65석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지난 총선보다 10석이 줄어든 겁니다.

반면 헤즈볼라와 맞서온 기독교 계열의 '레바논 포스'와 무소속 후보들이 유례없는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레바논 포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으로 19석을 확보했습니다. 또 2019년 반정부 시위를 이끌어왔던 무소속과 신인들은 14석을 얻었습니다.

■ "최악의 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 분노 반영"

워낙 다양한 종교가 있는 레바논은 독특한 정치 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 장기간 내전을 치른 뒤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해 종교에 따른 권력 배분을 헌법에 명시한 겁니다.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나눠 맡아왔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분권이 정치 다툼을 오히려 격화시키면서 분열을 일으키고 부패를 심화시켜 국가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9년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고 이후로 코로나19 대유행과 베이루트항 대폭발이 겹치면서 레바논은 극심한 경제난에 빠져들었습니다. 세계은행은 레바논이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레바논은 현재 국가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참혹한 상황입니다.

공공전기는 하루 두 시간 정도만 가능하고, 화폐 가치가 2년 새 90% 가까이 급락하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특히 기름과 식료품, 물, 약 등 생필품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이같은 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반영됐다는 분석입니다.


■ 변화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매표 행위" 지적도

다만, 이같은 결과가 즉각적인 정치 변화로 이어지면서 민심을 반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치 세력이 나오지 않아 앞으로 친사우디 성향의 '레바논 포스'와 친이란 성향의 헤즈볼라 동맹 등이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동 지역 언론들도 낙관적인 전망보다 우려의 분석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더 내셔널(The national)은 "두 세력이 의회에서 서로 무력화시키면서 앞으로 몇 달 또는 그 이후에도 레바논은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결과가 가장 유력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레바논의 정당들은 국민에 대한 걱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걸프뉴스(Gulf News)도 "더욱 극명하게 양국화될 수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가장 큰 우려는 국제통화기금(IMF)가 내놓은 조건입니다. IMF는 30억 달러(우리 돈 약 36조 6천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조건을 달았는데, 레바논 정부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개혁을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때문에 정파 간 다툼과 분열이 이어진다면 구제금융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선거 이후 성명을 내고 "IMF와의 합의를 마무리하고 경제회복을 위해 필요한 개혁을 이행할 수 있는 포용적 정부 구성을 기대한다"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선거를 감시한 유럽연합(EU)감시단은 레바논 선거의 부패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내무부가 총선 최종 개표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 감시단은 투표소 곳곳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했으며 매표 행위도 있었다고 밝혔는데 내무부는 이를 부정했습니다.

또 일부 정당에서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거라는 보도도 나오는 등 레바논 국민들이 기대하는 변화가 당장 나타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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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더 큰 분열이냐, 변화냐…총선 이후 레바논은
    • 입력 2022-05-18 10:13:33
    특파원 리포트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레바논에서 4년만에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결과는 집권 세력 헤즈볼라 동맹의 과반 유지 실패로 나타났습니다.

헤즈볼라 동맹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정파로 지난 2018년 총선에서 전체 128석의 의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71석을 차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개표 결과 헤즈볼라 동맹은 61석을 확보해 과반인 65석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지난 총선보다 10석이 줄어든 겁니다.

반면 헤즈볼라와 맞서온 기독교 계열의 '레바논 포스'와 무소속 후보들이 유례없는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레바논 포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으로 19석을 확보했습니다. 또 2019년 반정부 시위를 이끌어왔던 무소속과 신인들은 14석을 얻었습니다.

■ "최악의 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 분노 반영"

워낙 다양한 종교가 있는 레바논은 독특한 정치 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 장기간 내전을 치른 뒤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해 종교에 따른 권력 배분을 헌법에 명시한 겁니다.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나눠 맡아왔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분권이 정치 다툼을 오히려 격화시키면서 분열을 일으키고 부패를 심화시켜 국가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9년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고 이후로 코로나19 대유행과 베이루트항 대폭발이 겹치면서 레바논은 극심한 경제난에 빠져들었습니다. 세계은행은 레바논이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레바논은 현재 국가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참혹한 상황입니다.

공공전기는 하루 두 시간 정도만 가능하고, 화폐 가치가 2년 새 90% 가까이 급락하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특히 기름과 식료품, 물, 약 등 생필품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이같은 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반영됐다는 분석입니다.


■ 변화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매표 행위" 지적도

다만, 이같은 결과가 즉각적인 정치 변화로 이어지면서 민심을 반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치 세력이 나오지 않아 앞으로 친사우디 성향의 '레바논 포스'와 친이란 성향의 헤즈볼라 동맹 등이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동 지역 언론들도 낙관적인 전망보다 우려의 분석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더 내셔널(The national)은 "두 세력이 의회에서 서로 무력화시키면서 앞으로 몇 달 또는 그 이후에도 레바논은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결과가 가장 유력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레바논의 정당들은 국민에 대한 걱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걸프뉴스(Gulf News)도 "더욱 극명하게 양국화될 수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가장 큰 우려는 국제통화기금(IMF)가 내놓은 조건입니다. IMF는 30억 달러(우리 돈 약 36조 6천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조건을 달았는데, 레바논 정부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개혁을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때문에 정파 간 다툼과 분열이 이어진다면 구제금융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선거 이후 성명을 내고 "IMF와의 합의를 마무리하고 경제회복을 위해 필요한 개혁을 이행할 수 있는 포용적 정부 구성을 기대한다"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선거를 감시한 유럽연합(EU)감시단은 레바논 선거의 부패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내무부가 총선 최종 개표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 감시단은 투표소 곳곳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했으며 매표 행위도 있었다고 밝혔는데 내무부는 이를 부정했습니다.

또 일부 정당에서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거라는 보도도 나오는 등 레바논 국민들이 기대하는 변화가 당장 나타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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