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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차량의 ‘무법 질주’ 45분…이러라고 면책특권?
입력 2022.05.18 (11:18) 취재K

지난 일요일(15일) 밤 8시 30분쯤.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부근.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버스전용차로를 달렸습니다. 명백한 위법인데, 거리낌 없는 질주였습니다. 옆 차선 승용차들이 빨간 불빛을 내며 멈춰 서 있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제보자가 촬영해, KBS에 보내주신 영상입니다.


차량 후미에는 '외교 번호판'이 선명합니다. 외교 차량은 허용되지 않은 시간에 버스전용차로를 달려도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국내 차량과 같게 위법입니다. 버스가 아닌 승용차가 규정 시간에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경우, 운전자는 6만 원의 범칙금을 내야 하고 벌점 30점을 받습니다.

교통법규가 외교 차량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이른바 '교통 딱지'는 피할 수 없지만, 이를 안 내고 버텨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경찰이나 지자체가 압류 같은 강제 집행을 못 합니다.

외교관의 면책특권 때문입니다. 외교 관계에 대한 비엔나 협약 31조는 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1. 외교관은 접수국의 형사재판 관할권으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 외교관은 또한, 다음 경우를 제외하고는, 접수국의 민사 및 행정재판 관할권으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

■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면책 특권 있는데..."

확인 결과, 해당 차량은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의 차량이었습니다. 번호판 연번이 '1번'인 것으로 봐서 대사가 탑승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즈벡 대사관에 왜 버스전용차로를 불법 주행했냐고 물었습니다. 대사가 탑승하고 있었는지도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우즈벡 대사관은 "전화로는 설명이 어렵고 (대사관을) 방문하시면 입장을 밝히겠다"하면서도 "외교관 면책 특권이 있는데, 기사 낼 때 외교부와 상의하고 내야 하는 것 아닌지...공관 차량을 촬영하는 건 'privacy invasion'(사생활 침해)이 될 수도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대사 탑승 여부는 긍정도 부인도 안하는(NCND)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 제보자 "국민들은 법규를 지키는데 외교 차량은..."

KBS에 영상을 제공한 제보자는 해당 외교 차량이 서울요금소 통과 전부터 한남대로까지 약 45분 거리를 주행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들은 법규를 지키는데 외교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버스전용차로 법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쯤에서 '국제 평화' 비엔나 협약의 목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교 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은 특권만 명시한 것이 아닙니다. 협약 41조는 접수국의 법령을 존중할 것을 특권을 향유하는 자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

제41조 1. 그들의 특권과 면제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한, 접수국의 법령을 존중하는 것은 이와 같은 특권과 면제를 향유하는 모든 자의 의무이다. 그들은 또한 접수국의 내정에 개입하여서는 아니 될 의무를 진다.

■ '불법주차' 1등 베트남, 2등 미국

국내에 있는 외교 차량 전체의 교통법규 위반 현황을 점검해봤습니다. 비엔나협약 41조의 취지를 잘 지키고 있을까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과태료를 미납하는 국가들이 많아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래서 2009년 외교부는 제도를 바꿉니다.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은 외교 차량은 소유권을 이전하거나 교체할 수 없도록 한 겁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적어도 체납은 없습니다. 체납률은 사실상 0%라고 경찰청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교통법규 위반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이 지난해 9월 경찰청과 서울시에 요청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2016년~2020년)간 주한 외교 차량의 교통법규 위반 건수는 총 3,299건으로, 약 1억 5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었습니다.

전체 교통법규 위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불법 주차였습니다. 불법주차 과태료를 가장 많이 낸 외교 공관은 베트남이었는데요.

베트남은 5년간 총 159건의 불법주차에 대해 약 580여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102건), 리비아(100건), 러시아(99건), 사우디아라비아(93건) 순이었습니다.

불법 주차를 포함한 교통법규 위반 전체에 부과된 과태료는 2016년도 2천6백여만 원에서 2020년 3천8백여만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5년 사이)국내 외교 공관 수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면서 "갓길 운전에 대한 공익신고단을 운영한 이후 공익 신고가 늘어 단속도 늘었다" 설명했습니다. 다만, 외교 차량의 위반율이 내국인보다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 이러라고 면책특권 준 걸까?

외교 차량 번호판을 갱신해서 계속 사용할 요량이면,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안 내고 버틸 수는 없습니다. 체납은 안 할테니 문제는 덜할 수 있습니다.

외교 업무 특성상 바쁜 일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외교 공관 차량이 바쁘다는 이유로 '벌금 내고 버틴다' 식으로 위법을 계속한다면, 한국의 교통 법규의 자체가 퇴색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면책특권을 부여한 걸까요? 비엔나 협약의 진정한 의미를 돌이켜볼 때입니다.
  • 외교 차량의 ‘무법 질주’ 45분…이러라고 면책특권?
    • 입력 2022-05-18 11:18:43
    취재K

지난 일요일(15일) 밤 8시 30분쯤.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부근.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버스전용차로를 달렸습니다. 명백한 위법인데, 거리낌 없는 질주였습니다. 옆 차선 승용차들이 빨간 불빛을 내며 멈춰 서 있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제보자가 촬영해, KBS에 보내주신 영상입니다.


차량 후미에는 '외교 번호판'이 선명합니다. 외교 차량은 허용되지 않은 시간에 버스전용차로를 달려도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국내 차량과 같게 위법입니다. 버스가 아닌 승용차가 규정 시간에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경우, 운전자는 6만 원의 범칙금을 내야 하고 벌점 30점을 받습니다.

교통법규가 외교 차량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이른바 '교통 딱지'는 피할 수 없지만, 이를 안 내고 버텨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경찰이나 지자체가 압류 같은 강제 집행을 못 합니다.

외교관의 면책특권 때문입니다. 외교 관계에 대한 비엔나 협약 31조는 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1. 외교관은 접수국의 형사재판 관할권으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 외교관은 또한, 다음 경우를 제외하고는, 접수국의 민사 및 행정재판 관할권으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

■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면책 특권 있는데..."

확인 결과, 해당 차량은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의 차량이었습니다. 번호판 연번이 '1번'인 것으로 봐서 대사가 탑승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즈벡 대사관에 왜 버스전용차로를 불법 주행했냐고 물었습니다. 대사가 탑승하고 있었는지도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우즈벡 대사관은 "전화로는 설명이 어렵고 (대사관을) 방문하시면 입장을 밝히겠다"하면서도 "외교관 면책 특권이 있는데, 기사 낼 때 외교부와 상의하고 내야 하는 것 아닌지...공관 차량을 촬영하는 건 'privacy invasion'(사생활 침해)이 될 수도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대사 탑승 여부는 긍정도 부인도 안하는(NCND)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 제보자 "국민들은 법규를 지키는데 외교 차량은..."

KBS에 영상을 제공한 제보자는 해당 외교 차량이 서울요금소 통과 전부터 한남대로까지 약 45분 거리를 주행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들은 법규를 지키는데 외교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버스전용차로 법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쯤에서 '국제 평화' 비엔나 협약의 목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교 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은 특권만 명시한 것이 아닙니다. 협약 41조는 접수국의 법령을 존중할 것을 특권을 향유하는 자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

제41조 1. 그들의 특권과 면제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한, 접수국의 법령을 존중하는 것은 이와 같은 특권과 면제를 향유하는 모든 자의 의무이다. 그들은 또한 접수국의 내정에 개입하여서는 아니 될 의무를 진다.

■ '불법주차' 1등 베트남, 2등 미국

국내에 있는 외교 차량 전체의 교통법규 위반 현황을 점검해봤습니다. 비엔나협약 41조의 취지를 잘 지키고 있을까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과태료를 미납하는 국가들이 많아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래서 2009년 외교부는 제도를 바꿉니다.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은 외교 차량은 소유권을 이전하거나 교체할 수 없도록 한 겁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적어도 체납은 없습니다. 체납률은 사실상 0%라고 경찰청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교통법규 위반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이 지난해 9월 경찰청과 서울시에 요청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2016년~2020년)간 주한 외교 차량의 교통법규 위반 건수는 총 3,299건으로, 약 1억 5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었습니다.

전체 교통법규 위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불법 주차였습니다. 불법주차 과태료를 가장 많이 낸 외교 공관은 베트남이었는데요.

베트남은 5년간 총 159건의 불법주차에 대해 약 580여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102건), 리비아(100건), 러시아(99건), 사우디아라비아(93건) 순이었습니다.

불법 주차를 포함한 교통법규 위반 전체에 부과된 과태료는 2016년도 2천6백여만 원에서 2020년 3천8백여만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5년 사이)국내 외교 공관 수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면서 "갓길 운전에 대한 공익신고단을 운영한 이후 공익 신고가 늘어 단속도 늘었다" 설명했습니다. 다만, 외교 차량의 위반율이 내국인보다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 이러라고 면책특권 준 걸까?

외교 차량 번호판을 갱신해서 계속 사용할 요량이면,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안 내고 버틸 수는 없습니다. 체납은 안 할테니 문제는 덜할 수 있습니다.

외교 업무 특성상 바쁜 일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외교 공관 차량이 바쁘다는 이유로 '벌금 내고 버틴다' 식으로 위법을 계속한다면, 한국의 교통 법규의 자체가 퇴색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면책특권을 부여한 걸까요? 비엔나 협약의 진정한 의미를 돌이켜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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