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모두 벌벌 떨었다”…‘간첩섬’의 14人

입력 2022.05.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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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북 군산 개야도 ‘간첩섬’ 사건의 진실


<녹취> 정삼근/간첩조작 피해자
연평도 바로 뒤에서 조개를 잡는데 날 새면서 안개가 뿌옇게 꼈는데 새벽에 작업을 하는데 느닷없이 선원이 와서 기계를 빨리 돌리라 이거야. 왜 그러냐니까 이북 경비정이 여기로 오고 있다 이거여. 그렇게 하는 순간 그냥 턱하고 여기에 대더라니까. 그리고 그냥 끌려갔으니까. 그런데 이제 갔다 오니까 무조건 납북 어부라네. 우리가 그 어로 저지선을 넘었다.

1960년대 개야도에서만 어선 6척이 납북됐다. 몇 달 만에 돌아온 어부들은 한배에 10여 명 남짓, 차례차례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그들은 그때부터 납북 귀환 어부’로 불렸다.

귀환 10여 년 뒤, 섬에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수사기관들이 주민들을 연행해 가기 시작했다. 정삼근 씨는 처갓집 잔치를 앞두고 있었다.

<녹취> 정삼근/간첩조작 피해자
제가 맏사위였는데, 내일 준비한다고 이제 저녁때 술도 한 잔 먹고 나는 잤죠. 누가 나를 깨워싸요. 눈을 떠보니까 생전 모르는 사람인데, 컴컴한데 차에다가 나를 번쩍 들어 실어버려요. 봉고차에다가. 68년도 너 이북 갔다 왔지. 그때부터 맞기 시작하는 거야. 막 신발 구두 신은 채 그냥. 얼마나 맞았나. 백지를 갖다 주면서 반성문을 쓰래요. 잘못했다는 반성문. 반성문을 뭐라고 씁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잘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잘하겠습니다.

간첩이라는 낙인은 빠르고 무서웠다.

<녹취> 이춘자/개야도 주민
그 집 식구하고 얘기하는 게 간첩이라고 잡아갈까 해서 말도 못한다니까. 참, 남도 아니고 그렇게 친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하고는 서로 얘기를 서로 못했다니까.

<녹취> 박복자/개야도 주민
지나가도 모르는 것처럼

<녹취> 이춘자/개야도 주민
그냥 지나가고 그랬지. 말 한마디를 못했어.

개야도에서 간첩 낙인이 찍힌 것은 정 씨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웃에 살던 서창덕 씨가
간첩이라는 뉴스가 나온 것이 불과 1년 전이었다.

당시 뉴스를 본 정 씨 부부는 서창덕 씨가 간첩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불과 1년 후 자신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곤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녹취> 박애자/ 정삼근 씨 아내
저녁에 TV에 막 크게 사진이 나와. 여기서는 저 미친놈의 새끼네 진짜로 미친놈의 새끼네. 이러면서. 그냥 앉아서 큰 일 났네. 큰 일 났네.

<녹취> 정삼근/ 간첩조작 피해자
(서창덕 선생님이랑 친하셨어요?) 아휴 그럼, 친했지. 그 TV를 보고서 하, 저건 아니다, 나쁘게 생각했죠. 진짜로 그렇게 한 줄 알았어요. 나도. 나 역시도.

지금은 고인이 된 서창덕 씨. 납북됐다 돌아온 뒤 17년이 지나, 보안사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됐다.

<녹취> 故 서창덕/ 2015년
이북 놈의 새끼들한테 일러준다고 했다고 비행장이 있고, 뭐 기름 탱크가 있고 아
매일 다 아는 거 아니요. 개야도에서 보면 비행장 다 보이잖아요. 하하. 그 지랄을 해가 지고 사람을 간첩을 만드는 거예요. 이 새끼들이 그렇게 두드려 패 가지고….

한 번 찍혀버린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녹취> 故 서창덕/ 2015년
친구들도 대화도 안 해주고 거기 갔다 와서 친구들하고 멀어져 버렸죠. 섬에서 친구가 있다고 해야 다 아는 사람 아닙니까. 오죽했으면 우리 동생은 자살했겠어요. 형이 이북 갔다 왔다 그러니까 거기서 해고해 버렸어. 그래가지고 약을 먹고 자살해버렸어.

수사기관들은 개야도에서 간첩을 주기적으로 만들어 냈다.

<녹취> 임봉택/ 간첩조작 피해자
임봉택이 간첩해서 징역 산다고 하더라, 그 소문이 어떻게 해서 개야도에 났던 모양이에요. 소문이 나서 우리 아버지가 그냥 거시기를 해버렸어요.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런 짓을 했겠어요.

섬은 공포에 떨었다. 해가 갈수록 섬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녹취> 전영순/ 개야도 주민
(해마다 계속해서 그랬잖아요. 몇 년을. 그러면 그때 동네가 뒤숭숭했겠네요? 몇 년 동안) 어디 밤중에는 나가지도 못했어. 무서워서. 다 동네 사람들이 다 벌벌 떨었으니까

<녹취> 김순례/ 개야도 주민
그때는 뒤숭숭한 정도가 아니야. 그럼. 한마디로 쑥대밭, 쑥대밭

수사기관과 언론은 그렇게 개야도를 ‘간첩섬’으로 만들었다.

<녹취> 한홍구/ 간첩조작 피해자
바다에는 남북 간에 합의된 경계선이 없어요. 물고기를 쫓아보면 그 경계선 무시하고 월선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고 그래요. 고기 잡다가 그렇게 간 건데 무슨 대북용의점이 있는 것처럼 하고. 남쪽의 기밀을 누설했다라고 이제 간첩죄로 그때도 간첩죄로 걸어요. 더 흉악한 거는 이 어부들은 계속해서 잠재적으로 감시의 대상이었고 그중에서 만만한 사람들을
골라내서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이 두들겨 패서 간첩을 만드는 거에요.

진실과화해위원회는 임봉택, 서창덕, 정삼근 씨의 사건을 ‘조작’이라고 규명했고, 법원은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 판결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개야도 주민이 확인된 사람만 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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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 “모두 벌벌 떨었다”…‘간첩섬’의 14人
    • 입력 2022-05-21 07:00:41
    취재K
전북 군산 개야도 ‘간첩섬’ 사건의 진실

<녹취> 정삼근/간첩조작 피해자
연평도 바로 뒤에서 조개를 잡는데 날 새면서 안개가 뿌옇게 꼈는데 새벽에 작업을 하는데 느닷없이 선원이 와서 기계를 빨리 돌리라 이거야. 왜 그러냐니까 이북 경비정이 여기로 오고 있다 이거여. 그렇게 하는 순간 그냥 턱하고 여기에 대더라니까. 그리고 그냥 끌려갔으니까. 그런데 이제 갔다 오니까 무조건 납북 어부라네. 우리가 그 어로 저지선을 넘었다.

1960년대 개야도에서만 어선 6척이 납북됐다. 몇 달 만에 돌아온 어부들은 한배에 10여 명 남짓, 차례차례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그들은 그때부터 납북 귀환 어부’로 불렸다.

귀환 10여 년 뒤, 섬에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수사기관들이 주민들을 연행해 가기 시작했다. 정삼근 씨는 처갓집 잔치를 앞두고 있었다.

<녹취> 정삼근/간첩조작 피해자
제가 맏사위였는데, 내일 준비한다고 이제 저녁때 술도 한 잔 먹고 나는 잤죠. 누가 나를 깨워싸요. 눈을 떠보니까 생전 모르는 사람인데, 컴컴한데 차에다가 나를 번쩍 들어 실어버려요. 봉고차에다가. 68년도 너 이북 갔다 왔지. 그때부터 맞기 시작하는 거야. 막 신발 구두 신은 채 그냥. 얼마나 맞았나. 백지를 갖다 주면서 반성문을 쓰래요. 잘못했다는 반성문. 반성문을 뭐라고 씁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잘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잘하겠습니다.

간첩이라는 낙인은 빠르고 무서웠다.

<녹취> 이춘자/개야도 주민
그 집 식구하고 얘기하는 게 간첩이라고 잡아갈까 해서 말도 못한다니까. 참, 남도 아니고 그렇게 친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하고는 서로 얘기를 서로 못했다니까.

<녹취> 박복자/개야도 주민
지나가도 모르는 것처럼

<녹취> 이춘자/개야도 주민
그냥 지나가고 그랬지. 말 한마디를 못했어.

개야도에서 간첩 낙인이 찍힌 것은 정 씨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웃에 살던 서창덕 씨가
간첩이라는 뉴스가 나온 것이 불과 1년 전이었다.

당시 뉴스를 본 정 씨 부부는 서창덕 씨가 간첩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불과 1년 후 자신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곤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녹취> 박애자/ 정삼근 씨 아내
저녁에 TV에 막 크게 사진이 나와. 여기서는 저 미친놈의 새끼네 진짜로 미친놈의 새끼네. 이러면서. 그냥 앉아서 큰 일 났네. 큰 일 났네.

<녹취> 정삼근/ 간첩조작 피해자
(서창덕 선생님이랑 친하셨어요?) 아휴 그럼, 친했지. 그 TV를 보고서 하, 저건 아니다, 나쁘게 생각했죠. 진짜로 그렇게 한 줄 알았어요. 나도. 나 역시도.

지금은 고인이 된 서창덕 씨. 납북됐다 돌아온 뒤 17년이 지나, 보안사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됐다.

<녹취> 故 서창덕/ 2015년
이북 놈의 새끼들한테 일러준다고 했다고 비행장이 있고, 뭐 기름 탱크가 있고 아
매일 다 아는 거 아니요. 개야도에서 보면 비행장 다 보이잖아요. 하하. 그 지랄을 해가 지고 사람을 간첩을 만드는 거예요. 이 새끼들이 그렇게 두드려 패 가지고….

한 번 찍혀버린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녹취> 故 서창덕/ 2015년
친구들도 대화도 안 해주고 거기 갔다 와서 친구들하고 멀어져 버렸죠. 섬에서 친구가 있다고 해야 다 아는 사람 아닙니까. 오죽했으면 우리 동생은 자살했겠어요. 형이 이북 갔다 왔다 그러니까 거기서 해고해 버렸어. 그래가지고 약을 먹고 자살해버렸어.

수사기관들은 개야도에서 간첩을 주기적으로 만들어 냈다.

<녹취> 임봉택/ 간첩조작 피해자
임봉택이 간첩해서 징역 산다고 하더라, 그 소문이 어떻게 해서 개야도에 났던 모양이에요. 소문이 나서 우리 아버지가 그냥 거시기를 해버렸어요.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런 짓을 했겠어요.

섬은 공포에 떨었다. 해가 갈수록 섬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녹취> 전영순/ 개야도 주민
(해마다 계속해서 그랬잖아요. 몇 년을. 그러면 그때 동네가 뒤숭숭했겠네요? 몇 년 동안) 어디 밤중에는 나가지도 못했어. 무서워서. 다 동네 사람들이 다 벌벌 떨었으니까

<녹취> 김순례/ 개야도 주민
그때는 뒤숭숭한 정도가 아니야. 그럼. 한마디로 쑥대밭, 쑥대밭

수사기관과 언론은 그렇게 개야도를 ‘간첩섬’으로 만들었다.

<녹취> 한홍구/ 간첩조작 피해자
바다에는 남북 간에 합의된 경계선이 없어요. 물고기를 쫓아보면 그 경계선 무시하고 월선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고 그래요. 고기 잡다가 그렇게 간 건데 무슨 대북용의점이 있는 것처럼 하고. 남쪽의 기밀을 누설했다라고 이제 간첩죄로 그때도 간첩죄로 걸어요. 더 흉악한 거는 이 어부들은 계속해서 잠재적으로 감시의 대상이었고 그중에서 만만한 사람들을
골라내서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이 두들겨 패서 간첩을 만드는 거에요.

진실과화해위원회는 임봉택, 서창덕, 정삼근 씨의 사건을 ‘조작’이라고 규명했고, 법원은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 판결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개야도 주민이 확인된 사람만 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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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뉴스 홈페이지 https://news.kbs.co.kr/vod/program.do?bcd=0039&ref=pMe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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