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지원하겠다”…러 협력 우크라이나인 ‘법의 심판대’에

입력 2022.05.22 (08:00) 수정 2022.05.2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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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러시아군 협력자체포된 러시아군 협력자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영화 '암살' 속 염석진은 동지들을 일본에 팔아넘긴 이유를 묻자 이렇게 항변합니다. 짐작조차 못 했던 해방된 조국에서 그는 법의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러시아는 개전 일인 2월 24일부터 맹렬한 기세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습니다. 주요 도시를 점령한 러시아군에게 협력한 우크라이나인들도 있었습니다. 철수를 짐작조차 못 했던 그들도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군에게 협력했던 현지인의 이야기를 19일(현지시각) 보도했습니다.

■ '러시아군 지원 약속' 사업가 시장, 경비원은 부시장에

2월, 러시아군은 주민 5천 명이 사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북서부의 소도시 디메르를 점령한 뒤 올렉산드르 하르첸코를 새 시장에 앉혔습니다.

지역민에게 이름조차 생소했던 사업가 하르첸코는 자신은 러시아 언론만 보고 있다고 말하며 침공한 러시아군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3월 28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비디오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언론을 믿지 말라"며 "러시아군은 적대적이지 않으며 당신은 이들에게 정상적으로 접근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영상에서는 러시아군이 주민들에게 음식과 약을 배부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하르첸코는 러시아군의 전략에 따라 선택됐습니다. 러시아군은 침공에 반발하는 주민들을 진정시키고 친러 괴뢰정부를 세우기 위해 자신들을 지원해줄 현지인을 물색했습니다. 점령 지역에서 전·현직 시장과 시의회 의원, 저명한 지역 인사 등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하르첸코와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인사와 손을 잡았습니다.

자포리자주의 베르댠스크에서는 경비원이 부시장이 됐고, 남부 헤르손 지역에서는 반(反) 백신 블로거가 부지사 등의 요직에 앉았습니다. 러시아군은 디메르에서도 유명 인사에게 협력을 제의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러시아군 협력자 체포 작전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러시아군 협력자 체포 작전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

■ 러시아군 철수 후 '법의 심판대'에…최대 무기징역

러시아군은 4월 디메르에서 철수했습니다. 홀로 남은 하르첸코는 시민들의 적이 됐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은 뒤 겨우 살아남았고, 현재는 적군과 협력한 혐의로 구금돼 재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하르첸코의 어머니인 이리나는 아들이 어려운 시기에 지역민을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러시아군과 협력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사람이 굶주렸고 먹을 게 없었다. (러시아군) 점령은 힘든 시기였고 하르첸코는 도우려고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하르첸코가 러시아 측에 돈바스 참전 용사와 국토방위군 명단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를 두둔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하르첸코의 이웃이었던 퇴역 군인 안드리 리스코우는 러시아군이 점령 당시 자신을 비롯해 다른 참전 용사를 괴롭히지 않은 게 그 덕분이라며 옹호했습니다.

러시아군이 나타나자 민감한 정보를 지우고 피신했던 디메르의 시장 볼로디미르 피드쿠르하니도 누군가 구금되도록 하르첸코가 러시아 측에 정보를 줬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처벌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안톤 게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보좌관은 "국민 대다수는 적군의 편에 선 반역자에 대해 법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연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검찰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이래 반역 혐의 914건과 적군 협력 혐의 788건이 접수됐습니다. 반역죄는 전시 중 무기징역까지 처벌되고, 적군 협력죄는 1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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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군 지원하겠다”…러 협력 우크라이나인 ‘법의 심판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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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2-05-22 0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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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러시아군 협력자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영화 '암살' 속 염석진은 동지들을 일본에 팔아넘긴 이유를 묻자 이렇게 항변합니다. 짐작조차 못 했던 해방된 조국에서 그는 법의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러시아는 개전 일인 2월 24일부터 맹렬한 기세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습니다. 주요 도시를 점령한 러시아군에게 협력한 우크라이나인들도 있었습니다. 철수를 짐작조차 못 했던 그들도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군에게 협력했던 현지인의 이야기를 19일(현지시각) 보도했습니다.

■ '러시아군 지원 약속' 사업가 시장, 경비원은 부시장에

2월, 러시아군은 주민 5천 명이 사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북서부의 소도시 디메르를 점령한 뒤 올렉산드르 하르첸코를 새 시장에 앉혔습니다.

지역민에게 이름조차 생소했던 사업가 하르첸코는 자신은 러시아 언론만 보고 있다고 말하며 침공한 러시아군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3월 28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비디오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언론을 믿지 말라"며 "러시아군은 적대적이지 않으며 당신은 이들에게 정상적으로 접근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영상에서는 러시아군이 주민들에게 음식과 약을 배부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하르첸코는 러시아군의 전략에 따라 선택됐습니다. 러시아군은 침공에 반발하는 주민들을 진정시키고 친러 괴뢰정부를 세우기 위해 자신들을 지원해줄 현지인을 물색했습니다. 점령 지역에서 전·현직 시장과 시의회 의원, 저명한 지역 인사 등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하르첸코와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인사와 손을 잡았습니다.

자포리자주의 베르댠스크에서는 경비원이 부시장이 됐고, 남부 헤르손 지역에서는 반(反) 백신 블로거가 부지사 등의 요직에 앉았습니다. 러시아군은 디메르에서도 유명 인사에게 협력을 제의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러시아군 협력자 체포 작전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
■ 러시아군 철수 후 '법의 심판대'에…최대 무기징역

러시아군은 4월 디메르에서 철수했습니다. 홀로 남은 하르첸코는 시민들의 적이 됐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은 뒤 겨우 살아남았고, 현재는 적군과 협력한 혐의로 구금돼 재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하르첸코의 어머니인 이리나는 아들이 어려운 시기에 지역민을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러시아군과 협력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사람이 굶주렸고 먹을 게 없었다. (러시아군) 점령은 힘든 시기였고 하르첸코는 도우려고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하르첸코가 러시아 측에 돈바스 참전 용사와 국토방위군 명단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를 두둔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하르첸코의 이웃이었던 퇴역 군인 안드리 리스코우는 러시아군이 점령 당시 자신을 비롯해 다른 참전 용사를 괴롭히지 않은 게 그 덕분이라며 옹호했습니다.

러시아군이 나타나자 민감한 정보를 지우고 피신했던 디메르의 시장 볼로디미르 피드쿠르하니도 누군가 구금되도록 하르첸코가 러시아 측에 정보를 줬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처벌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안톤 게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보좌관은 "국민 대다수는 적군의 편에 선 반역자에 대해 법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연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검찰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이래 반역 혐의 914건과 적군 협력 혐의 788건이 접수됐습니다. 반역죄는 전시 중 무기징역까지 처벌되고, 적군 협력죄는 1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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