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新중국책략’ 첫걸음…IPEF 속 ‘국익 방정식’

입력 2022.05.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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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국의 ‘新중국책략’이 시작됐다.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는 중요한 틀이다. 우리의 국익은 참여 쪽에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미국이 ’오라는 대로 따라만 간다‘고 국익이 극대화되진 않는다. 미국의 상황과 아시아 상황을 살펴보면 왜 그런지 보인다. 우리의 길도 보인다.


■‘시장 내주는 자유무역’은 끝났다

미국이 이제 FTA(자유무역협정)를 추가로 맺을 가능성은 작다. 트럼프가 멈춰세운 TPP를 바이든도 재개한다고 말을 못 한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후속인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재가입 역시 말 꺼낼 수 없는 분위기다. 국내 정치 요인이 크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이 대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유는 경제정책 실패를 꼽는다. 인플레이션 때문인데, FTA는 인플레이션만큼이나 ‘표 떨어지게 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간단히 표현하면 일자리 문제다. FTA는 ‘자유무역’ 하자는 협정이다. 자유무역은 이론적으론 수출과 수입을 다 촉진 시킨다. 현실에서 미국엔 수입을 압도적으로 더 촉진 시키는 정책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에게 FTA는 ‘내수시장을 해외 기업에 내주는 정책’으로 각인됐다. 국내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트럼프가 당선됐던 이유이고, 그리고 2024년 또 당선될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제 미국 대통령은 누가 됐든 더는 ‘시장을 해외에 내주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다. 대신 한국의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때마다 만나 악수하고 감사해야한다.

이렇게 미국 입장에서 자유무역의 시대는 끝났다. WTO 체제도 유명무실하다. (트럼프는 중국 중심 동맹체라며 깨고 나가려 했다.) 더는 자유무역 그 자체가 패권국 미국에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인해 평평하지 않은‘ 경제질서
-이 질서를 바꿔야 사는 패권국 미국-


사실 자유무역은 미국의 이데올로기다. 소련의 붕괴 이후 열린 미국의 시대는 ’자유무역의 시대‘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 냉전 이후 세계를 세계화를 해야 하는 시대로 정의했다. 그의 책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1999)‘나 ’세계는 평평하다(2005)‘는 이 시대의 복음서였다. 세계화에 순응하는 ’황금 구속복‘을 입으면 부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도 그 핵심가치를 잘 표현한다. ’비효율적인‘ 국가는 작아져라. 규제는 없애고, 공기업은 민영화하라. 민간의 재산권을 보호하라. 국제무역은 촉진하라. 관세는 철폐하고, 환율은 가만두고, 시장금리도 손대지 마라. 그렇게 하면 번영이 올 것이다.

2000년 중국의 WTO 가입은 이 미국의 시대 ’승리의 선언‘ 같이 여겨졌다. 20년이 흘러보니 ’미-중 갈등‘의 씨앗이 되었을 뿐이지만.


이유는 자유무역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중국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허락해 세계 시장에 물건을 팔 수 있게 됐는데, 먼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이제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내수시장‘을 가진 나라까지 됐다. 공장이자 시장도 가진 나라…중국은 자유무역으로 성장의 모든 엔진을 손에 쥐게 됐다. 20세기 초반에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국가 GDP 규모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가만히 두면 첨단 기술산업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5G 장비 산업에 가장 먼저 진출한 화웨이가 그 상징이 될 뻔했다. 구조적인 상황이 중국에 유리하다.

권위주의 국가에 패권을 내줄 생각이 없는 미국의 고민은 여기 있다. 화웨이는 제재로 막았지만, 개별 기업 제재로 이 구조적 상황을 반전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자유무역 이외의 규범을 찾게 됐다. 더 공정하고, 인권에 부합하는 경제, 환경과 노동 가치를 생각하는 경제, 그리하여 자유 민주주의가 지속적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부합하는 경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선언은 그래서 나왔다.

그 생각을 담은 것이 바로 IPEF(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고, 이보다 조금 먼저 출범해 모습을 드러내는 미국과 유럽(EU) 사이의 TTC(무역기술위원회)가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미국 ’新 통상전략의 틀‘
-IPEF나 TTC 같은 경제안보의 논리로 중국을 포위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TTC가 중국의 의지를 꺾는 ’민주 자유동맹‘이라고 표현한다. 첨단 기술에서부터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제를 논의해 ’개방과 자유, 글로벌 상호 작용, 신뢰, 보안‘과 관련한 가치를 지킨다. 구체적 협력 대상은 AI나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이다. 기후 기술 등의 발전도 안건이다. 여기 더해, 중국의 투자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지점을 찾는 노력에도 협력한다.

IPEF는 동일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금의 자유무역이 중국에 유리한 시스템이 된 것은 중국이 자유무역의 핵심 규범, 시민의 자유 확대라는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중국은 국가가 국영기업에 막대한 돈을 투입해 생산한다. 가격은 시장이 아닌 국가가 결정하고, 때로는 원가 이하의 후려치기로 해외의 경쟁자를 말려죽인다. 지적 재산권도 존중하지 않는다. 외국의 기술을 마구잡이로 훔친다. 우주 산업, 빅데이터 산업, AI 산업은 다른 해외 경쟁자들이 꿈꾸지 못할 수준의 막대한 지원을 한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다. 자국 시민들을 감시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소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한 국가의 장악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중국의 기술이 발전될수록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시민사회에 대한 위협이 커진다. 이제는 미국조차 이러한 중국을 제어할 수 없다.‘

IPEF의 주제는 크게 네 가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이다. 디지털 경제 영역의 새로운 기술과 표준을 어떻게 규정하고 발전시키나, 노동과 환경 차원에서 바람직한 가치를 어떻게 경제에 반영하고, 제도적 투명성을 확보하나와 같은 가치다.


두 번째 영역은 코로나19 이후 위험이 확인된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안, 세 번째 영역은 인프라와 탈 탄소 청정 에너지 분야의 협력이고, 네 번째는 반부패 규범과 조세 협력 규범 마련이다.

자유주의적 질서나 규범은 ’중국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중국을 견제하는 틀이 된다. 특히 첨단 산업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이다.

중국은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자국민 탄압에 쓴다는 의심을 받는다. 또 해당 기술을 해외로도 수출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도 낳는다. 디지털 백도어나 스파이웨어를 만들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촉진할 것이라는 걱정은 이러한 구상의 명분이 된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이 구상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다. 아직 구체적 형태나 강령을 확정 짓지 못했다. 미 CSIS도 IPEF를 정의하면서 이제 막 정립되는 단계로 불확실한 점이 많다고 했다.

■불확실성① 참여의 수준


IPEF는 기본적으로 인도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우리에겐 우리의 참여가 하나의 사건이고 결단지만,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이나 일본, 뉴질랜드 같은 국가는 ’당연한‘ 참가국이다. 그리고 이 계획의 성패 역시 우리의 참여와는 거의 무관하다. 그보다는 인도나 아세안과 같은 국가들이 얼마만한 강도로 협의체에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현재 참여가 확정된 국가들의 중국 의존도를 보면 ’과연 중국 견제가 가능할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정리한 IPEF 참여를 확정한 각국의 대중국 의존도만 보면 이 국가들이 당장 반중국 정책을 실행하고 지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미국도 우리나라도, ’대중국 견제‘라는 표현의 공식적인 사용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시장 개방‘이 배제된 경제 협력체인 만큼, 참가국들에 시장 말고 무엇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서진교 선임연구위원은 “아시아 참여 대상 국가들은 발전 정도와 크기가 다양하다. 이들은 IPEF 참여를 통해 자국에 생산시설을 새로 설치해주거나, 제조 기술을 이전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우선은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노골적 중국 견제 협의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면서, 참여 개발도상국들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줘야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불확실성은 미국 그 자체

아세안과 인도 등 참여 대상 국가들은 미국에 대한 의구심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시절 TPP를 추진하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바로 탈퇴했다.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IPEF 또한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당장 중간선거 이후 미국이 의회의 초당적 지지를 얻지 못하면 IPEF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걱정, 나아가 2024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IPEF는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조차 ’2024년 트럼프나 비당파 대통령이 당선돼 백악관에 입성할 경우, 경제안보 구상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비슷한 구상이 또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중국은 한 발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라고 걱정할 정도다.

포린폴리시지는 최근 ’미국이 시장을 대담하게 열 생각이 없으므로 교역 상대국들은 실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직 미 상무부 고위직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정부는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무역대표부 캐서린 타이 대표는 ’IPEF 정책은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 “따라만 가지 말고”

참여는 국익이다. 대 중국 교역의 틀을 바꿀 협의체라면 더욱 그렇다. 앞서 보았듯 우리의 대중국 의존도는 아세안 국가들에 비해 낮지 않다. 경제안보의 틀이 자리 잡기 전에 들어가 우리의 국익이 구체적으로 반영되게 해야한다.

조용찬 미중경제연구소장은 “우리는 아직 공급망에서 중국에 의존한다”며 “요소수 같이 중국산 수입품에 80% 이상 의존하는 항목이 1,800개가 넘으니 탈중국화는 먼 얘기이고, 그래서 참여해서 우리 이익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아세안 국가들에게 IPEF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하는 공급망 규범으로 여겨진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점점 더 위험해지는 중국에 대항해 다른나라들에 인센티브를 줘 참여하게 하는 계획이니, 아시아판 마샬플랜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관세 인하 같은 시장 개방을 거의 고려하지 않으니, 이 마샬플랜은 자연히 첨단-친환경 신산업의 생산기지를 참여국에 만들어주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미국은 이 비용 부담을 이 구상에 참여하는 부유한 동맹국에 전가 시킬 개연성이 높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주요 대상이 될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우리의 경우 ’개발원조 ODA 자본의 규모 측면에서 일본에 대항할 수 없다‘며 돈 보다는 ’고기 잡는 방법‘에 해당하는 기술 전수를 택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국익과 우리의 국익이 합치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RCEP이나 CPTPP 참여를 모색하는 우리는 여전히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에 일치한다. 더는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이 아닌 미국과 이해관계가 갈리는 지점이다.

아직 최종 기착지는 물론, 계획의 성사조차 불투명한 IPEF 앞에서 우리 국익을 생각할 때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경제 외교적 ’책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본질적 ’경쟁력‘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은 “결국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런 기술을 가진 TSMC를 미국이 지키려 하고 중국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을 잘 봐야 한다. 우리도 그런 위치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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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新중국책략’ 첫걸음…IPEF 속 ‘국익 방정식’
    • 입력 2022-05-24 09:30:57
    취재K
미국의 ‘新중국책략’이 시작됐다.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는 중요한 틀이다. 우리의 국익은 참여 쪽에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br /><br />다만, 미국이 ’오라는 대로 따라만 간다‘고 국익이 극대화되진 않는다. 미국의 상황과 아시아 상황을 살펴보면 왜 그런지 보인다. 우리의 길도 보인다.

■‘시장 내주는 자유무역’은 끝났다

미국이 이제 FTA(자유무역협정)를 추가로 맺을 가능성은 작다. 트럼프가 멈춰세운 TPP를 바이든도 재개한다고 말을 못 한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후속인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재가입 역시 말 꺼낼 수 없는 분위기다. 국내 정치 요인이 크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이 대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유는 경제정책 실패를 꼽는다. 인플레이션 때문인데, FTA는 인플레이션만큼이나 ‘표 떨어지게 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간단히 표현하면 일자리 문제다. FTA는 ‘자유무역’ 하자는 협정이다. 자유무역은 이론적으론 수출과 수입을 다 촉진 시킨다. 현실에서 미국엔 수입을 압도적으로 더 촉진 시키는 정책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에게 FTA는 ‘내수시장을 해외 기업에 내주는 정책’으로 각인됐다. 국내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트럼프가 당선됐던 이유이고, 그리고 2024년 또 당선될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제 미국 대통령은 누가 됐든 더는 ‘시장을 해외에 내주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다. 대신 한국의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때마다 만나 악수하고 감사해야한다.

이렇게 미국 입장에서 자유무역의 시대는 끝났다. WTO 체제도 유명무실하다. (트럼프는 중국 중심 동맹체라며 깨고 나가려 했다.) 더는 자유무역 그 자체가 패권국 미국에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인해 평평하지 않은‘ 경제질서
-이 질서를 바꿔야 사는 패권국 미국-


사실 자유무역은 미국의 이데올로기다. 소련의 붕괴 이후 열린 미국의 시대는 ’자유무역의 시대‘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 냉전 이후 세계를 세계화를 해야 하는 시대로 정의했다. 그의 책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1999)‘나 ’세계는 평평하다(2005)‘는 이 시대의 복음서였다. 세계화에 순응하는 ’황금 구속복‘을 입으면 부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도 그 핵심가치를 잘 표현한다. ’비효율적인‘ 국가는 작아져라. 규제는 없애고, 공기업은 민영화하라. 민간의 재산권을 보호하라. 국제무역은 촉진하라. 관세는 철폐하고, 환율은 가만두고, 시장금리도 손대지 마라. 그렇게 하면 번영이 올 것이다.

2000년 중국의 WTO 가입은 이 미국의 시대 ’승리의 선언‘ 같이 여겨졌다. 20년이 흘러보니 ’미-중 갈등‘의 씨앗이 되었을 뿐이지만.


이유는 자유무역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중국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허락해 세계 시장에 물건을 팔 수 있게 됐는데, 먼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이제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내수시장‘을 가진 나라까지 됐다. 공장이자 시장도 가진 나라…중국은 자유무역으로 성장의 모든 엔진을 손에 쥐게 됐다. 20세기 초반에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국가 GDP 규모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가만히 두면 첨단 기술산업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5G 장비 산업에 가장 먼저 진출한 화웨이가 그 상징이 될 뻔했다. 구조적인 상황이 중국에 유리하다.

권위주의 국가에 패권을 내줄 생각이 없는 미국의 고민은 여기 있다. 화웨이는 제재로 막았지만, 개별 기업 제재로 이 구조적 상황을 반전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자유무역 이외의 규범을 찾게 됐다. 더 공정하고, 인권에 부합하는 경제, 환경과 노동 가치를 생각하는 경제, 그리하여 자유 민주주의가 지속적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부합하는 경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선언은 그래서 나왔다.

그 생각을 담은 것이 바로 IPEF(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고, 이보다 조금 먼저 출범해 모습을 드러내는 미국과 유럽(EU) 사이의 TTC(무역기술위원회)가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미국 ’新 통상전략의 틀‘
-IPEF나 TTC 같은 경제안보의 논리로 중국을 포위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TTC가 중국의 의지를 꺾는 ’민주 자유동맹‘이라고 표현한다. 첨단 기술에서부터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제를 논의해 ’개방과 자유, 글로벌 상호 작용, 신뢰, 보안‘과 관련한 가치를 지킨다. 구체적 협력 대상은 AI나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이다. 기후 기술 등의 발전도 안건이다. 여기 더해, 중국의 투자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지점을 찾는 노력에도 협력한다.

IPEF는 동일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금의 자유무역이 중국에 유리한 시스템이 된 것은 중국이 자유무역의 핵심 규범, 시민의 자유 확대라는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중국은 국가가 국영기업에 막대한 돈을 투입해 생산한다. 가격은 시장이 아닌 국가가 결정하고, 때로는 원가 이하의 후려치기로 해외의 경쟁자를 말려죽인다. 지적 재산권도 존중하지 않는다. 외국의 기술을 마구잡이로 훔친다. 우주 산업, 빅데이터 산업, AI 산업은 다른 해외 경쟁자들이 꿈꾸지 못할 수준의 막대한 지원을 한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다. 자국 시민들을 감시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소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한 국가의 장악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중국의 기술이 발전될수록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시민사회에 대한 위협이 커진다. 이제는 미국조차 이러한 중국을 제어할 수 없다.‘

IPEF의 주제는 크게 네 가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이다. 디지털 경제 영역의 새로운 기술과 표준을 어떻게 규정하고 발전시키나, 노동과 환경 차원에서 바람직한 가치를 어떻게 경제에 반영하고, 제도적 투명성을 확보하나와 같은 가치다.


두 번째 영역은 코로나19 이후 위험이 확인된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안, 세 번째 영역은 인프라와 탈 탄소 청정 에너지 분야의 협력이고, 네 번째는 반부패 규범과 조세 협력 규범 마련이다.

자유주의적 질서나 규범은 ’중국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중국을 견제하는 틀이 된다. 특히 첨단 산업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이다.

중국은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자국민 탄압에 쓴다는 의심을 받는다. 또 해당 기술을 해외로도 수출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도 낳는다. 디지털 백도어나 스파이웨어를 만들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촉진할 것이라는 걱정은 이러한 구상의 명분이 된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이 구상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다. 아직 구체적 형태나 강령을 확정 짓지 못했다. 미 CSIS도 IPEF를 정의하면서 이제 막 정립되는 단계로 불확실한 점이 많다고 했다.

■불확실성① 참여의 수준


IPEF는 기본적으로 인도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우리에겐 우리의 참여가 하나의 사건이고 결단지만,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이나 일본, 뉴질랜드 같은 국가는 ’당연한‘ 참가국이다. 그리고 이 계획의 성패 역시 우리의 참여와는 거의 무관하다. 그보다는 인도나 아세안과 같은 국가들이 얼마만한 강도로 협의체에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현재 참여가 확정된 국가들의 중국 의존도를 보면 ’과연 중국 견제가 가능할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정리한 IPEF 참여를 확정한 각국의 대중국 의존도만 보면 이 국가들이 당장 반중국 정책을 실행하고 지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미국도 우리나라도, ’대중국 견제‘라는 표현의 공식적인 사용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시장 개방‘이 배제된 경제 협력체인 만큼, 참가국들에 시장 말고 무엇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서진교 선임연구위원은 “아시아 참여 대상 국가들은 발전 정도와 크기가 다양하다. 이들은 IPEF 참여를 통해 자국에 생산시설을 새로 설치해주거나, 제조 기술을 이전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우선은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노골적 중국 견제 협의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면서, 참여 개발도상국들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줘야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불확실성은 미국 그 자체

아세안과 인도 등 참여 대상 국가들은 미국에 대한 의구심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시절 TPP를 추진하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바로 탈퇴했다.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IPEF 또한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당장 중간선거 이후 미국이 의회의 초당적 지지를 얻지 못하면 IPEF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걱정, 나아가 2024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IPEF는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조차 ’2024년 트럼프나 비당파 대통령이 당선돼 백악관에 입성할 경우, 경제안보 구상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비슷한 구상이 또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중국은 한 발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라고 걱정할 정도다.

포린폴리시지는 최근 ’미국이 시장을 대담하게 열 생각이 없으므로 교역 상대국들은 실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직 미 상무부 고위직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정부는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무역대표부 캐서린 타이 대표는 ’IPEF 정책은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 “따라만 가지 말고”

참여는 국익이다. 대 중국 교역의 틀을 바꿀 협의체라면 더욱 그렇다. 앞서 보았듯 우리의 대중국 의존도는 아세안 국가들에 비해 낮지 않다. 경제안보의 틀이 자리 잡기 전에 들어가 우리의 국익이 구체적으로 반영되게 해야한다.

조용찬 미중경제연구소장은 “우리는 아직 공급망에서 중국에 의존한다”며 “요소수 같이 중국산 수입품에 80% 이상 의존하는 항목이 1,800개가 넘으니 탈중국화는 먼 얘기이고, 그래서 참여해서 우리 이익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아세안 국가들에게 IPEF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하는 공급망 규범으로 여겨진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점점 더 위험해지는 중국에 대항해 다른나라들에 인센티브를 줘 참여하게 하는 계획이니, 아시아판 마샬플랜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관세 인하 같은 시장 개방을 거의 고려하지 않으니, 이 마샬플랜은 자연히 첨단-친환경 신산업의 생산기지를 참여국에 만들어주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미국은 이 비용 부담을 이 구상에 참여하는 부유한 동맹국에 전가 시킬 개연성이 높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주요 대상이 될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우리의 경우 ’개발원조 ODA 자본의 규모 측면에서 일본에 대항할 수 없다‘며 돈 보다는 ’고기 잡는 방법‘에 해당하는 기술 전수를 택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국익과 우리의 국익이 합치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RCEP이나 CPTPP 참여를 모색하는 우리는 여전히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에 일치한다. 더는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이 아닌 미국과 이해관계가 갈리는 지점이다.

아직 최종 기착지는 물론, 계획의 성사조차 불투명한 IPEF 앞에서 우리 국익을 생각할 때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경제 외교적 ’책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본질적 ’경쟁력‘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은 “결국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런 기술을 가진 TSMC를 미국이 지키려 하고 중국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을 잘 봐야 한다. 우리도 그런 위치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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