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연기된 ‘일회용컵 보증금제’, 이유 있었다!

입력 2022.05.24 (11:23) 수정 2022.05.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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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0일. 카페와 음식점에서는 더는 일회용 컵을 쓸 수 없다!" 환경부가 올해 들어 대대적인 홍보에 돌입한 '일회용컵 보증제' 얘기입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카페 등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기 위해 소비자가 보증금 300원을 내고, 추후 컵을 반납한 뒤 보증금을 돌려받는 겁니다. 돈은 컵에 붙인 별도의 '바코드 스티커'를 이용해 돌려받을 수 있고, 거리에서 주운 컵도 반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연회까지 연 환경부가 돌연 이 제도 시행을 12월 초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행 3주를 앞둔 시점에 말입니다.

대국민 홍보까지 한 마당에 정부 정책이 갑자기 연기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 가맹점주들이 뿔났다, 왜?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는 업종부터 보겠습니다. 커피와 음료, 제과·제빵 업종에서 매장 수가 전국 백 곳 이상인 105개 브랜드가 대상입니다. 대상 매장만 전국 3만 8천여 곳에 이릅니다.

그런데 홍보 기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대상이 된 점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소상공인 인터넷 카페 등에는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제도'라는 비판 글이 쇄도했습니다. "탁상공론에 불과한 정책이니 제도의 폐지나 수정이 필요하다"는 국회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일회용컵 보증금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이제 점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차례입니다.

이중선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일회용컵으로 인한 환경 오염을 줄이자는 취지에는 점주들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다만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가맹점주들은 제도 시행으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만 합니다. 컵에 붙일 '바코드 스티커'를 구입하기 위해 많게는 1개 컵당 17원이 듭니다. 여기에 보증금 300원에 대한 카드 결제 수수료는 1잔당 최대 1.5원 정도 더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예를들어, 하루에 음료 5백 잔을 파는 점주라면, 매달 27만 7천 원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 돈을 가맹 본사가 아닌 점주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겁니다 .

또 바코드를 일일이 찍어 보증금을 반환해주고, 돌려줘야 할 보증금을 동전으로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인건비에 허덕이는 소규모 점포일수록 그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7일 환경부와 소상공인 단체의 첫 간담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제공)지난 17일 환경부와 소상공인 단체의 첫 간담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제공)

■ 2년간 200차례 간담회… 가맹점주는 없었다

그런데 정부는 과연 이런 문제점들을 몰랐던 걸까요? 네, 몰랐습니다.

3만 8천여 매장 가운데 상당수는 개개인의 점주가 운영하는 가맹점입니다. 환경부는 제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맹점주'들을 최근에야 처음 만났습니다. 지난 17일 환경부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소상공인 단체와 처음으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중선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이 자리에서도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점주들이 모든 부담을 져야 하는 구조"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환경부가 준비 기간 가맹점주들과 만나지 않아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다"고도 했습니다. 더욱이 첫 간담회에서 환경부는 점주들의 생각을 들은 뒤에도 대안이나 대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시행만을 강조했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환경부 역시 가맹점주들과 소통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제도 도입을 준비한 지난 2년간 가맹 본사와 2백여 차례 간담회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가맹 본사 위주'로 소통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본사와 이야기하면 가맹점과도 다 소통했을 거라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거 같다"고도 해명했습니다.

환경부는 첫 간담회 이후 지난 20일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과 다시 만나 현장의 불만을 직접 듣고 나서야 결국 시행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보증금 반환을 위해 컵에 붙은 바코드를 인식시키는 모습보증금 반환을 위해 컵에 붙은 바코드를 인식시키는 모습
환경부는 "유예 기간 동안 중·소상공인과 영세 프랜차이즈의 제도 이행을 지원하는 한편, 제도 이행에 따르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행정적·경제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바코드 스티커 비용이 가맹점주들에게 모두 전가돼 문제라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재원을 보조하는 방안을 고심 중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반환되지 않는 '미반환 컵'을 수거해, 이 돈으로 가맹점주들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위생 문제나 업무 부담 등 업주들이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도 보완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입니다.

■ 기한은 12월 1일, 묘안 찾을까?

환경단체들은 이번 연기 결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시대적인 흐름을 역행하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전 세계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거나 시행하고 있다"며 "심각한 플라스틱 오염 실태를 올바로 인식했다면 이런 시행착오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녹색연합 등이 소속된 한국환경회의도 "환경 정책의 실패"라고 일갈했습니다. 이 단체는 "이 제도는 2년 전부터 준비돼 왔고 충분한 기간"이라며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국민은 환경정책을 포기한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이 결정된 건 2년 전입니다. 2020년 5월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이 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당시 제도 시행 준비를 위해 시기를 2년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통 부족으로 다시 제도가 연기됐습니다.

환경부가 또다시 미룬 유예 시점은 오는 12월 1일입니다. 남은 기간, 정부는 과연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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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연기된 ‘일회용컵 보증금제’, 이유 있었다!
    • 입력 2022-05-24 11:23:38
    • 수정2022-05-24 14:17:06
    취재K

"6월10일. 카페와 음식점에서는 더는 일회용 컵을 쓸 수 없다!" 환경부가 올해 들어 대대적인 홍보에 돌입한 '일회용컵 보증제' 얘기입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카페 등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기 위해 소비자가 보증금 300원을 내고, 추후 컵을 반납한 뒤 보증금을 돌려받는 겁니다. 돈은 컵에 붙인 별도의 '바코드 스티커'를 이용해 돌려받을 수 있고, 거리에서 주운 컵도 반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연회까지 연 환경부가 돌연 이 제도 시행을 12월 초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행 3주를 앞둔 시점에 말입니다.

대국민 홍보까지 한 마당에 정부 정책이 갑자기 연기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 가맹점주들이 뿔났다, 왜?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는 업종부터 보겠습니다. 커피와 음료, 제과·제빵 업종에서 매장 수가 전국 백 곳 이상인 105개 브랜드가 대상입니다. 대상 매장만 전국 3만 8천여 곳에 이릅니다.

그런데 홍보 기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대상이 된 점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소상공인 인터넷 카페 등에는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제도'라는 비판 글이 쇄도했습니다. "탁상공론에 불과한 정책이니 제도의 폐지나 수정이 필요하다"는 국회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이제 점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차례입니다.

이중선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일회용컵으로 인한 환경 오염을 줄이자는 취지에는 점주들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다만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가맹점주들은 제도 시행으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만 합니다. 컵에 붙일 '바코드 스티커'를 구입하기 위해 많게는 1개 컵당 17원이 듭니다. 여기에 보증금 300원에 대한 카드 결제 수수료는 1잔당 최대 1.5원 정도 더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예를들어, 하루에 음료 5백 잔을 파는 점주라면, 매달 27만 7천 원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 돈을 가맹 본사가 아닌 점주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겁니다 .

또 바코드를 일일이 찍어 보증금을 반환해주고, 돌려줘야 할 보증금을 동전으로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인건비에 허덕이는 소규모 점포일수록 그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7일 환경부와 소상공인 단체의 첫 간담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제공)
■ 2년간 200차례 간담회… 가맹점주는 없었다

그런데 정부는 과연 이런 문제점들을 몰랐던 걸까요? 네, 몰랐습니다.

3만 8천여 매장 가운데 상당수는 개개인의 점주가 운영하는 가맹점입니다. 환경부는 제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맹점주'들을 최근에야 처음 만났습니다. 지난 17일 환경부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소상공인 단체와 처음으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중선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이 자리에서도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점주들이 모든 부담을 져야 하는 구조"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환경부가 준비 기간 가맹점주들과 만나지 않아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다"고도 했습니다. 더욱이 첫 간담회에서 환경부는 점주들의 생각을 들은 뒤에도 대안이나 대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시행만을 강조했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환경부 역시 가맹점주들과 소통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제도 도입을 준비한 지난 2년간 가맹 본사와 2백여 차례 간담회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가맹 본사 위주'로 소통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본사와 이야기하면 가맹점과도 다 소통했을 거라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거 같다"고도 해명했습니다.

환경부는 첫 간담회 이후 지난 20일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과 다시 만나 현장의 불만을 직접 듣고 나서야 결국 시행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보증금 반환을 위해 컵에 붙은 바코드를 인식시키는 모습환경부는 "유예 기간 동안 중·소상공인과 영세 프랜차이즈의 제도 이행을 지원하는 한편, 제도 이행에 따르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행정적·경제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바코드 스티커 비용이 가맹점주들에게 모두 전가돼 문제라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재원을 보조하는 방안을 고심 중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반환되지 않는 '미반환 컵'을 수거해, 이 돈으로 가맹점주들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위생 문제나 업무 부담 등 업주들이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도 보완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입니다.

■ 기한은 12월 1일, 묘안 찾을까?

환경단체들은 이번 연기 결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시대적인 흐름을 역행하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전 세계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거나 시행하고 있다"며 "심각한 플라스틱 오염 실태를 올바로 인식했다면 이런 시행착오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녹색연합 등이 소속된 한국환경회의도 "환경 정책의 실패"라고 일갈했습니다. 이 단체는 "이 제도는 2년 전부터 준비돼 왔고 충분한 기간"이라며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국민은 환경정책을 포기한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이 결정된 건 2년 전입니다. 2020년 5월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이 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당시 제도 시행 준비를 위해 시기를 2년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통 부족으로 다시 제도가 연기됐습니다.

환경부가 또다시 미룬 유예 시점은 오는 12월 1일입니다. 남은 기간, 정부는 과연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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