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부끄럽다” 러시아 외교관 공개 사직

입력 2022.05.24 (14:26) 수정 2022.05.2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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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외교관이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범죄'라고 비판하며 공개 사직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 주재 러시아 대표부의 참사관인 보리스 본다레프는 현지 시간 23일 외교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같은 사실을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사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외교관의 반응 가운데 가장 수위가 높은 항의라고 전했습니다.

■ "권력 위한 전쟁…조국 러시아가 부끄럽다"

외교관들에게 보낸 영문 서한에서 본다레프는 "20년의 외교관 경력 중에 우리 외교 정책이 방향 전환하는 것을 봤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24일 만큼 내 조국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사실상 전체 서방 세계를 향해 개시한 공격적인 전쟁은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을 향한 가장 심각한 범죄"라고 주장했습니다.

본다레프는 이번 전쟁을 기획한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단 한 가지라면서, "화려하고 천박한 궁궐에서 살거나 거대한 요트를 타면서 제한 없는 권력과 완전한 면책을 누리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이미 수천 명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희생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푸틴이 국내에 경제 문제와 정치적 불만이 누적되고 동원할 이데올로기가 부족해지자,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습니다.

23일 동료 외교관들이 트위터에 공개한 본다레프의 이메일 성명.23일 동료 외교관들이 트위터에 공개한 본다레프의 이메일 성명.

■ "러시아 외교는 거짓말뿐…모스크바가 좋아할 정보만 전달"

20년간 외교 분야에서 일한 본다레프는 러시아의 외교에 대해서도 맹비난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외교부의 거짓말이 갈수록 늘어갔다면서,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재앙적인 수준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편견 없는 정보와 공정한 분석, 진지한 전망 대신에 1930년대 소비에트 신문에서 볼 법한 정치선전의 상투적인 문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 외교관들은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계를 나쁘게 전달해왔다"면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쉽게 이길 거라고 착각하게 된 것은 외교관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외교관들은 모스크바에 "가능한 객관적인 분석과 앞으로의 전망을 제안하는 대신에 모스크바가 좋아할 것 같은 정보들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처럼 외교활동이 소수(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에 집중되면서, 러시아의 고립과 위상 하락을 초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장관에 대해선 "18년 만에 전문적이고 교육받은 지식인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분쟁 성명을 전달하고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사람이 됐다"고 직격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러시아) 외교부는 외교를 하지 않는다"면서 "전쟁을 조장하고 거짓과 증오만 일삼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보리스 본다레프가 공개된 성명이 자신이 쓴 것임을 확인하며 공개한 여권 사진.보리스 본다레프가 공개된 성명이 자신이 쓴 것임을 확인하며 공개한 여권 사진.

■ "핵무기 공격도 정당화…수치스러워"

본다레프는 러시아 외교관 사이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오로지 자신 한 명인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전쟁이 개시되자 조용히 사직한 외교관들이 더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외교관들이 스스로 관여한 프로파간다의 노예가 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그의 마음을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핵무기 공격 가능성에 대한 동료들의 발언이었습니다.

본다레프는 무기통제와 군비 축소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의 동료들조차 핵무기 공격을 위험천만한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어느 마을을 핵무기로 공격하면, 겁을 먹은 미국인들이 즉시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할 것이라고 얘기한 동료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동료들에게 자녀를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에서 살도록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지만, 핵 공격은 서방에 대응해 '(러시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많은 러시아 외교관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런 의견들이 모스크바로 전달되자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는 "20년 간 외교관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외교관으로 일해왔다"면서 "외교부는 내게 집이고 가족과 같았지만, 피비린내나고 무분별하고 더할 나위 없이 수치스러운 역할을 더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사직 이유를 밝혔습니다.

본다레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나의 사직이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결국 큰 벽을 쌓는데 필요한 하나의 벽돌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본다레프의 사직에 대해 러시아 외교부는 공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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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가 부끄럽다” 러시아 외교관 공개 사직
    • 입력 2022-05-24 14:26:59
    • 수정2022-05-24 14:28:19
    세계는 지금

러시아 외교관이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범죄'라고 비판하며 공개 사직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 주재 러시아 대표부의 참사관인 보리스 본다레프는 현지 시간 23일 외교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같은 사실을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사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외교관의 반응 가운데 가장 수위가 높은 항의라고 전했습니다.

■ "권력 위한 전쟁…조국 러시아가 부끄럽다"

외교관들에게 보낸 영문 서한에서 본다레프는 "20년의 외교관 경력 중에 우리 외교 정책이 방향 전환하는 것을 봤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24일 만큼 내 조국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사실상 전체 서방 세계를 향해 개시한 공격적인 전쟁은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을 향한 가장 심각한 범죄"라고 주장했습니다.

본다레프는 이번 전쟁을 기획한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단 한 가지라면서, "화려하고 천박한 궁궐에서 살거나 거대한 요트를 타면서 제한 없는 권력과 완전한 면책을 누리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이미 수천 명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희생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푸틴이 국내에 경제 문제와 정치적 불만이 누적되고 동원할 이데올로기가 부족해지자,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습니다.

23일 동료 외교관들이 트위터에 공개한 본다레프의 이메일 성명.
■ "러시아 외교는 거짓말뿐…모스크바가 좋아할 정보만 전달"

20년간 외교 분야에서 일한 본다레프는 러시아의 외교에 대해서도 맹비난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외교부의 거짓말이 갈수록 늘어갔다면서,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재앙적인 수준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편견 없는 정보와 공정한 분석, 진지한 전망 대신에 1930년대 소비에트 신문에서 볼 법한 정치선전의 상투적인 문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 외교관들은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계를 나쁘게 전달해왔다"면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쉽게 이길 거라고 착각하게 된 것은 외교관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외교관들은 모스크바에 "가능한 객관적인 분석과 앞으로의 전망을 제안하는 대신에 모스크바가 좋아할 것 같은 정보들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처럼 외교활동이 소수(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에 집중되면서, 러시아의 고립과 위상 하락을 초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장관에 대해선 "18년 만에 전문적이고 교육받은 지식인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분쟁 성명을 전달하고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사람이 됐다"고 직격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러시아) 외교부는 외교를 하지 않는다"면서 "전쟁을 조장하고 거짓과 증오만 일삼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보리스 본다레프가 공개된 성명이 자신이 쓴 것임을 확인하며 공개한 여권 사진.
■ "핵무기 공격도 정당화…수치스러워"

본다레프는 러시아 외교관 사이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오로지 자신 한 명인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전쟁이 개시되자 조용히 사직한 외교관들이 더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외교관들이 스스로 관여한 프로파간다의 노예가 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그의 마음을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핵무기 공격 가능성에 대한 동료들의 발언이었습니다.

본다레프는 무기통제와 군비 축소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의 동료들조차 핵무기 공격을 위험천만한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어느 마을을 핵무기로 공격하면, 겁을 먹은 미국인들이 즉시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할 것이라고 얘기한 동료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동료들에게 자녀를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에서 살도록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지만, 핵 공격은 서방에 대응해 '(러시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많은 러시아 외교관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런 의견들이 모스크바로 전달되자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는 "20년 간 외교관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외교관으로 일해왔다"면서 "외교부는 내게 집이고 가족과 같았지만, 피비린내나고 무분별하고 더할 나위 없이 수치스러운 역할을 더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사직 이유를 밝혔습니다.

본다레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나의 사직이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결국 큰 벽을 쌓는데 필요한 하나의 벽돌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본다레프의 사직에 대해 러시아 외교부는 공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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