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공급 역대 최대라는데…‘금겹살’ 된 이유는?

입력 2022.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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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키우는 사람들은 '금겹살'이란 말을 싫어합니다.

서민 음식인데 이미지가 나빠져 소비가 위축될 수 있고, 돼지 값 오른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돼지고깃값 오르면 누가 웃는 걸까요. 돼지 농가들과 농식품부, 한돈협회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 "돼지 공급량 역대 최대"


다 아는 얘기지만, 삼겹살 가격 무섭습니다. 1년 새 30% 가량(한국소비자원 '참가격' 기준) 올랐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설명은 이렇습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국내산 돼지고기 공급량은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최근 가격 상승은 국내 공급 문제가 아닌,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사료비 상승, 육류 수입단가 상승 등으로 인한 것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설명자료, 5월 19일〉

일부 언론이 가축 전염병(돼지 설사병, PED)으로 인한 공급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반박성 설명입니다.

실제로 돼지 공급량은 역대 최대이기는 합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국내산 돼지 도축 마릿수는 628만 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625만 마리)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나 역대 최대 공급량에 안심할 수 없다고 돼지 농가들은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돼지의 번식 주기상, 4월부터 생산량이 급감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위 그래프에도 나와 있습니다.)

돼지는 태어난 지 약 여섯 달 뒤(임신기간 4개월+성장기간 6개월) 도축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는 6월~9월에는 모돈(어미 돼지)의 수태율(교배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이때 수태된 자돈(새끼 돼지)의 출하 시기가 4월부터라, 생산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합니다.

25일 경기 안성시 축산물 생산 현장에서 간담회를 연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25일 경기 안성시 축산물 생산 현장에서 간담회를 연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 "안정적 공급" 요청했지만…구체적 방안은 없어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어제(25일) 경기도 축산물 생산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 '공급'을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정 장관은 "여름철 더위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해 달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여름철 돼지 생산량 감소는 자연적 법칙에 따른 것이라, 쉽게 거스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더구나 생산량 감소를 예측한 가공·유통업체들이 돼지고기 선구매에 나설 수도 있어 또 다른 가격 상승 요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말뿐인 격려 말씀보다 구체적 방안이 더 절실한 이유입니다.


■ 사룟값 올라서 돼지값 올랐다고?

'사료비 상승으로 돼지 값이 올랐다'다는 정부 설명에도 농가와 한돈협회는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농가에서는 가격을 결정할 수 없어서, 사룟값이 급격히 오르더라도 돼지가격을 올려서 팔 수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현재 돼지 가격은 경매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법칙에 맞춰 날마다 다르게 정해지고 있습니다.

25일 충청북도 충주의 한 돼지농가에서 기자(오른쪽)가 농장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최하운]25일 충청북도 충주의 한 돼지농가에서 기자(오른쪽)가 농장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최하운]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돼지는 공산품처럼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곧바로 얼마를 더 받게 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돼지고기 가격 상승은 ①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외식 수요 증가 ② 수입 돼지고기 가격 상승 탓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유럽 가축 전염병, 원자재 가격·환율 상승 영향으로 수입 돼지고기 가격이 많이 올랐다"라면서 "수입 물량이 오르면 국내산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 가격이 오르는 구조"라고 덧붙였습니다.


돼지 배합사료의 40~50%가 옥수수입니다. 우리나라는 사료용 옥수수를 전량 수입합니다.

코로나19와 이상기후,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수입 옥수수 가격이 뛰며 돼지 사룟값은 2020년부터 계속 올랐습니다.

새끼 돼지 9,000마리를 키우는 농장주는 "사룟값이 100원 오르면 우리는 월 4,000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라면서 "한 마리 출하하는데 생산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70~80%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농장주는 "올해 7월 사룟값이 또 오르는데, 경영적자가 누적되고 있어 가을에는 돼지 농가 30%가 도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돼지 농가들은 '역대 최대 공급량'을 달성한 겁니다. (참고로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가축 전염병 사태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 "추경 통해 사료비 지원…1.1조 원 규모"

정황근 장관이 사룟값 지원을 위해 이번 추경안에 축산 농가 특별사료구매자금(1.1조 원 규모, 금리 1.8%)을 요청하겠다고 한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사료용 밀·옥수수 대체를 위한 겉보리·밀기울 할당 물량을 늘리고, 식품·농식품 부산물의 사료 자원화하는 방안도 농식품부는 발표했습니다.

한 농장주는 "사룟값 때문에 돼지 가격 올랐다고 하면 자칫 농가 탓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그보다는 사룟값 상승에도 성실히 돼지를 키운 농가들을 돕는 게 먼저 아니겠냐"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지원책들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돼지 농가에 현실적인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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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돼지 공급 역대 최대라는데…‘금겹살’ 된 이유는?
    • 입력 2022-05-26 06:00:42
    취재K

돼지 키우는 사람들은 '금겹살'이란 말을 싫어합니다.

서민 음식인데 이미지가 나빠져 소비가 위축될 수 있고, 돼지 값 오른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돼지고깃값 오르면 누가 웃는 걸까요. 돼지 농가들과 농식품부, 한돈협회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 "돼지 공급량 역대 최대"


다 아는 얘기지만, 삼겹살 가격 무섭습니다. 1년 새 30% 가량(한국소비자원 '참가격' 기준) 올랐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설명은 이렇습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국내산 돼지고기 공급량은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최근 가격 상승은 국내 공급 문제가 아닌,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사료비 상승, 육류 수입단가 상승 등으로 인한 것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설명자료, 5월 19일〉

일부 언론이 가축 전염병(돼지 설사병, PED)으로 인한 공급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반박성 설명입니다.

실제로 돼지 공급량은 역대 최대이기는 합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국내산 돼지 도축 마릿수는 628만 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625만 마리)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나 역대 최대 공급량에 안심할 수 없다고 돼지 농가들은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돼지의 번식 주기상, 4월부터 생산량이 급감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위 그래프에도 나와 있습니다.)

돼지는 태어난 지 약 여섯 달 뒤(임신기간 4개월+성장기간 6개월) 도축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는 6월~9월에는 모돈(어미 돼지)의 수태율(교배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이때 수태된 자돈(새끼 돼지)의 출하 시기가 4월부터라, 생산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합니다.

25일 경기 안성시 축산물 생산 현장에서 간담회를 연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 "안정적 공급" 요청했지만…구체적 방안은 없어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어제(25일) 경기도 축산물 생산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 '공급'을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정 장관은 "여름철 더위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해 달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여름철 돼지 생산량 감소는 자연적 법칙에 따른 것이라, 쉽게 거스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더구나 생산량 감소를 예측한 가공·유통업체들이 돼지고기 선구매에 나설 수도 있어 또 다른 가격 상승 요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말뿐인 격려 말씀보다 구체적 방안이 더 절실한 이유입니다.


■ 사룟값 올라서 돼지값 올랐다고?

'사료비 상승으로 돼지 값이 올랐다'다는 정부 설명에도 농가와 한돈협회는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농가에서는 가격을 결정할 수 없어서, 사룟값이 급격히 오르더라도 돼지가격을 올려서 팔 수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현재 돼지 가격은 경매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법칙에 맞춰 날마다 다르게 정해지고 있습니다.

25일 충청북도 충주의 한 돼지농가에서 기자(오른쪽)가 농장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최하운]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돼지는 공산품처럼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곧바로 얼마를 더 받게 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돼지고기 가격 상승은 ①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외식 수요 증가 ② 수입 돼지고기 가격 상승 탓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유럽 가축 전염병, 원자재 가격·환율 상승 영향으로 수입 돼지고기 가격이 많이 올랐다"라면서 "수입 물량이 오르면 국내산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 가격이 오르는 구조"라고 덧붙였습니다.


돼지 배합사료의 40~50%가 옥수수입니다. 우리나라는 사료용 옥수수를 전량 수입합니다.

코로나19와 이상기후,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수입 옥수수 가격이 뛰며 돼지 사룟값은 2020년부터 계속 올랐습니다.

새끼 돼지 9,000마리를 키우는 농장주는 "사룟값이 100원 오르면 우리는 월 4,000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라면서 "한 마리 출하하는데 생산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70~80%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농장주는 "올해 7월 사룟값이 또 오르는데, 경영적자가 누적되고 있어 가을에는 돼지 농가 30%가 도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돼지 농가들은 '역대 최대 공급량'을 달성한 겁니다. (참고로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가축 전염병 사태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 "추경 통해 사료비 지원…1.1조 원 규모"

정황근 장관이 사룟값 지원을 위해 이번 추경안에 축산 농가 특별사료구매자금(1.1조 원 규모, 금리 1.8%)을 요청하겠다고 한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사료용 밀·옥수수 대체를 위한 겉보리·밀기울 할당 물량을 늘리고, 식품·농식품 부산물의 사료 자원화하는 방안도 농식품부는 발표했습니다.

한 농장주는 "사룟값 때문에 돼지 가격 올랐다고 하면 자칫 농가 탓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그보다는 사룟값 상승에도 성실히 돼지를 키운 농가들을 돕는 게 먼저 아니겠냐"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지원책들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돼지 농가에 현실적인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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