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만 인분 ‘국산 둔갑’, 돼지등심 너마저…

입력 2022.05.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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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만 취급한다고 우기던 업주들은 진단 키트를 들이밀자 더는 부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단속반에 물었습니다.

"키트가 이번에 새로 이렇게 나온 거예요?"

■ '결정적' 한 줄…"키트가 새로 나온 거예요?"

원산지 표시 단속반이 유통업체에 들이닥칩니다. 아니나 다를까 업주들은 일단 국산이라고 우기고 봅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항체 검사 키트'였습니다.


농관원은 지난해 5월 원산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검정 키트'를 자체 개발했는데, 원리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돼지 열병 백신을 맞은 국산 돼지는 '두 줄'이 나오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수입 돼지는 '한 줄'이 뜨게 되는 거죠.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처럼 결과는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산 둔갑' 사각지대?… 550만 명분 풀렸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올 초부터 '국산 둔갑' 돼지 등심 기획 단속에 나섰습니다. 4개월 동안 32곳이 적발됐습니다. 시중에 풀린 거로 추정되는 물량만 1,100톤에 달합니다. 어느 정도 양이냐면 일반음식점 1인분(200g) 기준으로 550만 명분 정도입니다.

원산지 표시 기동단속반에 적발된 ‘국산 둔갑’ 돼지 등심원산지 표시 기동단속반에 적발된 ‘국산 둔갑’ 돼지 등심

그동안 저렴했던 돼지 등심은 굳이 국산이라고 속여 팔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원산지 표시법 단속 역시 삼겹살이나 목살 위주였습니다. 단속 사각지대라고 생각한 업체들이 마구잡이로 유통해온 셈입니다.

여기에 등심 부위는 전문가조차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원산지 둔갑을 부추겼습니다 . 김철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산지조사실 팀장은 "10년 정도 원산지단속업무를 하고 있는데, 육안으로 봤을 땐 국산과 수입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 '돼지 등심 너마저….'

돼지 등심은 왜 갑자기 '원산지 둔갑'의 표적이 됐을까요?

최근 물가가 올라서 '서민 음식' 삼겹살 먹기도 겁날 정도라고 하죠. 그런데 삼겹살보다 더 오른 부위가 바로 '돼지 등심'입니다.

소고기의 등심과 달리 지방이 적어 상대적으로 값이 싸고, 돈가스나 탕수육의 재료로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등심 값이 최근 크게 뛰었습니다. 돼지 등심 유통 단가는 이달 평균 kg당 7,200원으로, 2년 새 60%나 뛰었습니다.


코로나19로 배달 수요가 늘어난데다, 최근 돼지고깃값이 전반적으로 뛰면서 등심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국내산 등심과 수입육과의 가격 차이도 커졌습니다. 2년 전만 해도 국산과 수입 등심 가격은 kg당 1,200원 차이였지만, 현재는 kg당 2,400원 차이로 배로 벌어졌습니다.


■'3중고'로 가뜩이나 힘든데…"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유통업체들은 '물량 부족'을 탓합니다.

적발된 한 업체 사장은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습니다. "수입을 국산이라고 속여 팔면 오히려 거래처가 떨어져 나중엔 형편이 안 좋은 곳만 거래처로 남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수입을 쓰든 안 쓰든 결과는 똑같은데, 공급 업체가 물건(국산 등심)을 안 준다고 하소연합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등심은 돈가스와 탕수육 같은 튀김 음식의 주 재료입니다. 이 식당들은 최근 밀가루와 식용윳값까지 크게 올라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맛있는 음식 만들기 위해 국산 등심이라고 비싸게 샀는데, 사실은 값싼 수입 고기란 사실을 알고 나면 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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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50만 인분 ‘국산 둔갑’, 돼지등심 너마저…
    • 입력 2022-05-27 07:00:21
    취재K

국산만 취급한다고 우기던 업주들은 진단 키트를 들이밀자 더는 부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단속반에 물었습니다.

"키트가 이번에 새로 이렇게 나온 거예요?"

■ '결정적' 한 줄…"키트가 새로 나온 거예요?"

원산지 표시 단속반이 유통업체에 들이닥칩니다. 아니나 다를까 업주들은 일단 국산이라고 우기고 봅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항체 검사 키트'였습니다.


농관원은 지난해 5월 원산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검정 키트'를 자체 개발했는데, 원리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돼지 열병 백신을 맞은 국산 돼지는 '두 줄'이 나오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수입 돼지는 '한 줄'이 뜨게 되는 거죠.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처럼 결과는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산 둔갑' 사각지대?… 550만 명분 풀렸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올 초부터 '국산 둔갑' 돼지 등심 기획 단속에 나섰습니다. 4개월 동안 32곳이 적발됐습니다. 시중에 풀린 거로 추정되는 물량만 1,100톤에 달합니다. 어느 정도 양이냐면 일반음식점 1인분(200g) 기준으로 550만 명분 정도입니다.

원산지 표시 기동단속반에 적발된 ‘국산 둔갑’ 돼지 등심
그동안 저렴했던 돼지 등심은 굳이 국산이라고 속여 팔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원산지 표시법 단속 역시 삼겹살이나 목살 위주였습니다. 단속 사각지대라고 생각한 업체들이 마구잡이로 유통해온 셈입니다.

여기에 등심 부위는 전문가조차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원산지 둔갑을 부추겼습니다 . 김철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산지조사실 팀장은 "10년 정도 원산지단속업무를 하고 있는데, 육안으로 봤을 땐 국산과 수입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 '돼지 등심 너마저….'

돼지 등심은 왜 갑자기 '원산지 둔갑'의 표적이 됐을까요?

최근 물가가 올라서 '서민 음식' 삼겹살 먹기도 겁날 정도라고 하죠. 그런데 삼겹살보다 더 오른 부위가 바로 '돼지 등심'입니다.

소고기의 등심과 달리 지방이 적어 상대적으로 값이 싸고, 돈가스나 탕수육의 재료로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등심 값이 최근 크게 뛰었습니다. 돼지 등심 유통 단가는 이달 평균 kg당 7,200원으로, 2년 새 60%나 뛰었습니다.


코로나19로 배달 수요가 늘어난데다, 최근 돼지고깃값이 전반적으로 뛰면서 등심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국내산 등심과 수입육과의 가격 차이도 커졌습니다. 2년 전만 해도 국산과 수입 등심 가격은 kg당 1,200원 차이였지만, 현재는 kg당 2,400원 차이로 배로 벌어졌습니다.


■'3중고'로 가뜩이나 힘든데…"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유통업체들은 '물량 부족'을 탓합니다.

적발된 한 업체 사장은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습니다. "수입을 국산이라고 속여 팔면 오히려 거래처가 떨어져 나중엔 형편이 안 좋은 곳만 거래처로 남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수입을 쓰든 안 쓰든 결과는 똑같은데, 공급 업체가 물건(국산 등심)을 안 준다고 하소연합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등심은 돈가스와 탕수육 같은 튀김 음식의 주 재료입니다. 이 식당들은 최근 밀가루와 식용윳값까지 크게 올라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맛있는 음식 만들기 위해 국산 등심이라고 비싸게 샀는데, 사실은 값싼 수입 고기란 사실을 알고 나면 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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