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달러가치 20년 만에 최고…세계경제는 왜 달러를 추앙할까

입력 2022.06.0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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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6월 1일)부터 양적 긴축 시작!
■ 미국의 금리인상은 어떻게 우리 지갑을 털어갈까?
■ Fed는 인플레 걱정이 없어서 툭하면 돈을 풀었는데, 앞으론 어떻게 하나
■ 지구인들은 왜 매번 속으면서 달러 무한 발행 시스템을 용인할까


빚쟁이도 이런 빚쟁이가 없다. 미국은 나라빚이 30조 달러다(30조 원이 아니다). 장사도 지독히 못해 무역수지도 해마다 적자다. 이 나라 정부와 기업이 중앙은행(FED)에 꿔온 돈이 9조 9천억 달러다. 이쯤 되면 나라가 망해야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달러 가치가 치솟는다. 달러인덱스(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값)가 20년만에 최고치다.

글로벌 경제가 또 흔들린다. 그럼 이런 빚쟁이 나라는 당장 외화조달이 어려워져야 한다. 누가 돈을 빌려 주겠는가. 투자도 막힌다. 그럼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치솟는다. 멀쩡한 채권도 연장을 안해준다. 그렇게 스리랑카나 파키스탄, 러시아 등 수십여 나라가 지금 망하기 직전이다. 그런데 미국은 정반대다.

국채도 잘만 팔린다. 정부가 돈 꿔오기가 너무 쉽다. 돈 필요해? 중앙은행(fed)이 알아서 돈을 쭉쭉 쏴준다. 연준(FED)의 인쇄기는 2년간 5천조 원을 또 풀었다. 장사하기 참 쉽다. 10여년 전에도 4천조 원을 풀었었다. 그렇게 범람한 돈이 바다건너 세계경제를 때린다. 그래서 어쩌라구.

"달러화는 우리 돈이고, 문제는 당신들의 것이라니까! our currency... but it’s your problem"
-존 커널리(John Conally, 전 미 재무장관)

1. 금태환의 거짓말


20세기 초부터 유럽은 지독한 화폐남발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다들 수출을 위해 자국 화폐가치를 낮추고 툭하면 무역장벽을 쌓았다. 서로 수입을 막으면 모두의 수출이 줄어든다. 믿을 만한 기준통화가 사라지자 공황은 계속 길어졌다.

영국은 미국을 공황에서 구해낸 천재학자 케인즈를 보내서 '지구인들이 거래에 사용할 새로운 대표화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누가 전쟁에서 죽다 살아난 이 늙은 제국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파운드화는 초라해졌고, 이미 오래전 유럽국가들은 런던은행에 예치해둔 금을 다 찾아갔다.

결국 미국 맘대로 하기로 했다. 1944년 미국은 브레튼우즈라는 시골 도시에 44개 나라를 모여라고 한뒤 친절하게 이렇게 정해줬다.

"자, 잘들으세요! 오늘부터 금 1온스=35달러입니다. 이제 35달러 가져오시면 금 1온스를 드려요"

곳간에 쌓인 금만큼만 화폐를 찍어내는 금태환이 이번엔 달러 기준으로 바뀌었다. 달러는 금에 고정되고, 다른 나라 돈의 가치는 달러에 고정된다. 달러의 시대가 열렸다. 지구인들은 이제 거래를 하면서 모두 달러를 내고, 무역 흑자가 나면 곳간에 달러를 쌓아두면 된다. 금이 필요하면 달러들고 미국의 중앙은행을 찾아가면 된다. 화폐 발행은 절제될 것이고 지긋지긋한 인플레이션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미국은 곳간의 금보다 훨씬 더 많은 달러를 찍어냈다. 스위스와 스페인이 미국을 의심하며 달러를 주고 금을 찾아갔다. 1965년, 전쟁영웅 드골의 프랑스도 달러를 믿지 못하겠다며 서둘러 금을 되찾아갔다.

달러를 주고 황금을 되찾아오는 상선을 프랑스 해군이 호위하는 장면은 흔들리던 달러의 권위에 치명상을 입혔다. 달러는 '못믿을 화폐'가 됐다. 71년 결국 영국마저 달러를 들이밀며 금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고, 결국 이렇게 브레튼우즈체제가 막을 내린다.
달러가치는 급락하고 그렇게 달러의 시대는 저무는 것 같았다. (드골은 이 장면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65년, 프랑스의 드골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지출로 미국인들이 ‘공짜 빚’을 즐긴다며 미국의 대책 없는 달러 발행을 비난한다. 이 발언 이후 프랑스는 못 믿을 달러를 미국에 돌려주고 그만큼의 금을 인출해 갔다. 드골은 이 연설에서 ‘오직 믿을 것은 금밖에 없다’고 말한다. 출처 유튜브 GoldSilver (w/ Mike Maloney)

2. 페트로달러(PetroDollar)

73년 1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미국은 사우디 등 오펙(Opec)회원국과 달러로만 기름거래를 하기로 약속을 맺었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다. 기름을 수입하는 모든 나라는 이제 달러를 써야한다. 기름값이 치솟으면 달러 수요도 치솟는다. 지구인들은 이렇게 또 속는셈치고 달러를 믿어주기로 했다.

연준의 달러 인쇄기에 기름칠이 끝났다. 마구 찍어낼 일만 남았다. 달러 범람의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이 고스톱 게임에서 오직 한사람은 돈이 떨어지면 얼마든지 옆방에 가서 돈을 찍어낼 수 있다. 최대 부채국가이며 대책없는 무역적자국 미국은 이렇게 달러로 세워진 제국이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적절히 밟으면 된다는 케인즈의 설명처럼', 이제 경기가 가라앉으면 돈을 풀고 돈이 넘치면 금리를 올리면 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전세계에 풀린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돈은 항상 이자 많이 주는 곳으로 향한다). 흔들리는 미국 경제를 다잡아준다. 대신 대부분의 나라는 달러유출을 바라보며 자국 화폐가치를 걱정해야한다.

그렇게 달러 유동성의 부담이 다른 나라로 전가된다. 미국은 이렇게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금리 인상으로 외환시장의 불안을 수출한다. 그 불안이 커질수록 달러 수요는 더 높아진다. 그렇게 부는 미국으로, 가난은 전세계로 이전된다.

3. 미국의 금리인상은 어떻게 우리 지갑을 털어갈까

8% 인플레이션에 놀란 연준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린다. 시장 전망을 종합하면 연말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2.5~2.75% 정도가 된다. 우리도 그 정도는 올려야한다. 우리도 곧 인플레가 5%를 넘어간다(금통위). 무엇보다 미국과 금리차가 많이 나면 안된다. 미국보다 이자를 덜주면 달러가 보따리 싸서 고향으로 갈 수 있다. 그러니 우리도 금리를 많이 그리고 빨리 올려야한다.

1) 이자부담이 커진다.
시장이 예상하는 연말 우리 기준금리는 2.25~2.5% 수준이다. 코로나사태로 0.5%까지 떨어졌던 기준금리가 2%p정도 올라가는 셈이다. 한은 총재는 며칠전 우리 기준금리가 1%p만 올라도 해마다 가계는 이자부담이 3조원, 기업은 2조7천억원 정도 커진다고 밝혔다. (이 돈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지갑에서, 예대마진을 제하고 형편이 넉넉한 예금자들의 이자 소득으로 이전될 것이다. 원래 가난에는 늘 그렇게 이자가 붙는다.)

시중 주담대 이자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금리인상을 시작한 이후 올해 말까지 1인당 130만원 정도의 이자를 더 내야한다. 늘어난 이자부담은 그만큼 지갑을 닫게 만든다. 금리인상은 그렇게 경기를 무겁게 만든다.

2) 경기가 무거워진다.
금리 인상은 돈값이 오른다는 뜻이다. 돈값이 오르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든다. 코로나때문에 돈을 풀어 소비가 그토록 늘었지만, 투자와 고용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경기침체 조짐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달러 대비 우리돈의 가치가 내릴수록 우리는 더 비싼 값에 수입을 해야한다. 원자재부터 특히 기름값이 오르고 그렇게 한국인은 더 비싼 값을 치러야한다. 수입가가 높아지면 무역적자가 커진다. 수출대국 한국이 이미 3월과 4월에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적자는 원화의 평가절하를 더 부추긴다. 달러화대비 우리 원화의 가격이 1,300원을 뚫고 갈 기세다. 이제 해외여행을 갈 때도, 미국의 딸에게 학비를 보낼 때도 더 많은 한국돈을 내야 한다.

달러값이 치솟는다. 주요 6개 나라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를 알려주는 ‘달러인덱스’ 지수가 최근 105를 넘나들며 2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캡처 Investing.com달러값이 치솟는다. 주요 6개 나라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를 알려주는 ‘달러인덱스’ 지수가 최근 105를 넘나들며 2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캡처 Investing.com

3) 출렁이는 자본시장

이자를 더준다고 하면 돈은 은행 곳간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뭔가를 사지않고 팔려고 한다. 특히 급등한 자산일수록 급락하기 쉽다. 게다가 우리는 가계부채가 '1천7백조 원'이다. 선진국중 가장 가계부채가 폭증한 나라다. 빚내서 주식사고 빚내서 집산 사람들에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금리인상'이다. 이미 코인과 증시에 투자한 수많은 사람들의 계좌가 퍼렇게 멍들고 있다.

4) 외환보유고 유지에도 돈이 들어간다.

이런 위험을 줄이려고 정부는 곳간에 외환보유고 4,588억 달러(4월 기준)를 쌓아뒀다. 태국 한해 GDP에 맘먹는 엄청난 규모다. 이 외환보유고 곳간의 달러나 채권 또는 금을 사려면 당연히 돈이 들어간다. 외국환평형기금 채권 등을 발행해 이 돈을 마련하는데 그 이자가 해마다 수천억 원이 나간다. 결국 다 우리 국민의 부담이다. 툭하면 빠져나가는 달러는 이렇게 사방팔방에서 우리 지갑을 털어간다.

"강한 달러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당시 미 재무장관), 95년

"달러는 무슨 일이 생겨도 최고 통화 지위를 지켜야한다"
-재닛 옐런 Janet Yellen(지금 재무장관)
, 지난달

4. '화폐'도 상품이다.

6월 1일부터는 양적긴축도 시작된다. 연준(Fed)이 채권을 구입하며 풀었던 돈을 다시 채권을 팔면서 흡수하는 방식이다(그럼 연준 곳간의 채권(빚)이 줄어들고 시중의 돈이 흡수된다). 40년만의 인플레이션에 놀란 연준이 사상 유래없는 속도로 돈을 흡수한다.

이렇게 시중에 채권이 늘어나면 채권값은 떨어지고 채권금리는 올라간다(이자라도 더 줘야 채권을 사지 않겠는가). 미국의 모기지 금리는 더 가파르게 오른다. 그 여파가 자산시장에 빠르게 퍼지는 중이다.

마치 어느 나라가 쓰러지고 어느 나라가 버티는지 테스트하는 것 같다 . 달러는 미국이 풀었는데 정작 달러가치만 오른다. 다른 모든 화폐는 그냥 '나머지 화폐'가 됐다. 지난 1991년에도, 2001년에도, 2009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그 돈풀기 불장난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산불이 발생하지 않았기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엔 거대한 산불로 번졌다. 그러니 다음 경기 침체 때는 '돈풀기 비공'을 쓰기 쉽지 않아졌다. 재정투입도 쉽지 않다. 2007년 마지막 돈풀기를 시현할 때보다 미국의 GDP대비 총부채 비율은 2배로 높아졌다. 연준의 줄타기는 더 아슬아슬해 질 것이다. 그때는 또 어느 나라가 쓰러질 것인가.

'자본주의 시장에서 화폐도 상품이다'. 다들 그 상품만 사니 또 가격이 오른다. 마땅히 다른 것을 살 것도 없다. 특히 시장이 흔들리면 오직 믿을 것은 달러뿐이다.

그리고 리스크는 나머지 나라의 몫이다. '리스크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고 남은 위험'이다. 그 리스크에 대비할 시간이다. 달러탓은 그 다음에 하자.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드골은 오직 믿을 것은 '금'뿐이라고 했지만, '모두가 원하는 돈'이 누리는 권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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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달러가치 20년 만에 최고…세계경제는 왜 달러를 추앙할까
    • 입력 2022-06-01 08:01:52
    특파원 리포트

■ 오늘(6월 1일)부터 양적 긴축 시작!
■ 미국의 금리인상은 어떻게 우리 지갑을 털어갈까?
■ Fed는 인플레 걱정이 없어서 툭하면 돈을 풀었는데, 앞으론 어떻게 하나
■ 지구인들은 왜 매번 속으면서 달러 무한 발행 시스템을 용인할까


빚쟁이도 이런 빚쟁이가 없다. 미국은 나라빚이 30조 달러다(30조 원이 아니다). 장사도 지독히 못해 무역수지도 해마다 적자다. 이 나라 정부와 기업이 중앙은행(FED)에 꿔온 돈이 9조 9천억 달러다. 이쯤 되면 나라가 망해야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달러 가치가 치솟는다. 달러인덱스(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값)가 20년만에 최고치다.

글로벌 경제가 또 흔들린다. 그럼 이런 빚쟁이 나라는 당장 외화조달이 어려워져야 한다. 누가 돈을 빌려 주겠는가. 투자도 막힌다. 그럼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치솟는다. 멀쩡한 채권도 연장을 안해준다. 그렇게 스리랑카나 파키스탄, 러시아 등 수십여 나라가 지금 망하기 직전이다. 그런데 미국은 정반대다.

국채도 잘만 팔린다. 정부가 돈 꿔오기가 너무 쉽다. 돈 필요해? 중앙은행(fed)이 알아서 돈을 쭉쭉 쏴준다. 연준(FED)의 인쇄기는 2년간 5천조 원을 또 풀었다. 장사하기 참 쉽다. 10여년 전에도 4천조 원을 풀었었다. 그렇게 범람한 돈이 바다건너 세계경제를 때린다. 그래서 어쩌라구.

"달러화는 우리 돈이고, 문제는 당신들의 것이라니까! our currency... but it’s your problem"
-존 커널리(John Conally, 전 미 재무장관)

1. 금태환의 거짓말


20세기 초부터 유럽은 지독한 화폐남발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다들 수출을 위해 자국 화폐가치를 낮추고 툭하면 무역장벽을 쌓았다. 서로 수입을 막으면 모두의 수출이 줄어든다. 믿을 만한 기준통화가 사라지자 공황은 계속 길어졌다.

영국은 미국을 공황에서 구해낸 천재학자 케인즈를 보내서 '지구인들이 거래에 사용할 새로운 대표화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누가 전쟁에서 죽다 살아난 이 늙은 제국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파운드화는 초라해졌고, 이미 오래전 유럽국가들은 런던은행에 예치해둔 금을 다 찾아갔다.

결국 미국 맘대로 하기로 했다. 1944년 미국은 브레튼우즈라는 시골 도시에 44개 나라를 모여라고 한뒤 친절하게 이렇게 정해줬다.

"자, 잘들으세요! 오늘부터 금 1온스=35달러입니다. 이제 35달러 가져오시면 금 1온스를 드려요"

곳간에 쌓인 금만큼만 화폐를 찍어내는 금태환이 이번엔 달러 기준으로 바뀌었다. 달러는 금에 고정되고, 다른 나라 돈의 가치는 달러에 고정된다. 달러의 시대가 열렸다. 지구인들은 이제 거래를 하면서 모두 달러를 내고, 무역 흑자가 나면 곳간에 달러를 쌓아두면 된다. 금이 필요하면 달러들고 미국의 중앙은행을 찾아가면 된다. 화폐 발행은 절제될 것이고 지긋지긋한 인플레이션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미국은 곳간의 금보다 훨씬 더 많은 달러를 찍어냈다. 스위스와 스페인이 미국을 의심하며 달러를 주고 금을 찾아갔다. 1965년, 전쟁영웅 드골의 프랑스도 달러를 믿지 못하겠다며 서둘러 금을 되찾아갔다.

달러를 주고 황금을 되찾아오는 상선을 프랑스 해군이 호위하는 장면은 흔들리던 달러의 권위에 치명상을 입혔다. 달러는 '못믿을 화폐'가 됐다. 71년 결국 영국마저 달러를 들이밀며 금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고, 결국 이렇게 브레튼우즈체제가 막을 내린다.
달러가치는 급락하고 그렇게 달러의 시대는 저무는 것 같았다. (드골은 이 장면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65년, 프랑스의 드골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지출로 미국인들이 ‘공짜 빚’을 즐긴다며 미국의 대책 없는 달러 발행을 비난한다. 이 발언 이후 프랑스는 못 믿을 달러를 미국에 돌려주고 그만큼의 금을 인출해 갔다. 드골은 이 연설에서 ‘오직 믿을 것은 금밖에 없다’고 말한다. 출처 유튜브 GoldSilver (w/ Mike Maloney)

2. 페트로달러(PetroDollar)

73년 1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미국은 사우디 등 오펙(Opec)회원국과 달러로만 기름거래를 하기로 약속을 맺었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다. 기름을 수입하는 모든 나라는 이제 달러를 써야한다. 기름값이 치솟으면 달러 수요도 치솟는다. 지구인들은 이렇게 또 속는셈치고 달러를 믿어주기로 했다.

연준의 달러 인쇄기에 기름칠이 끝났다. 마구 찍어낼 일만 남았다. 달러 범람의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이 고스톱 게임에서 오직 한사람은 돈이 떨어지면 얼마든지 옆방에 가서 돈을 찍어낼 수 있다. 최대 부채국가이며 대책없는 무역적자국 미국은 이렇게 달러로 세워진 제국이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적절히 밟으면 된다는 케인즈의 설명처럼', 이제 경기가 가라앉으면 돈을 풀고 돈이 넘치면 금리를 올리면 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전세계에 풀린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돈은 항상 이자 많이 주는 곳으로 향한다). 흔들리는 미국 경제를 다잡아준다. 대신 대부분의 나라는 달러유출을 바라보며 자국 화폐가치를 걱정해야한다.

그렇게 달러 유동성의 부담이 다른 나라로 전가된다. 미국은 이렇게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금리 인상으로 외환시장의 불안을 수출한다. 그 불안이 커질수록 달러 수요는 더 높아진다. 그렇게 부는 미국으로, 가난은 전세계로 이전된다.

3. 미국의 금리인상은 어떻게 우리 지갑을 털어갈까

8% 인플레이션에 놀란 연준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린다. 시장 전망을 종합하면 연말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2.5~2.75% 정도가 된다. 우리도 그 정도는 올려야한다. 우리도 곧 인플레가 5%를 넘어간다(금통위). 무엇보다 미국과 금리차가 많이 나면 안된다. 미국보다 이자를 덜주면 달러가 보따리 싸서 고향으로 갈 수 있다. 그러니 우리도 금리를 많이 그리고 빨리 올려야한다.

1) 이자부담이 커진다.
시장이 예상하는 연말 우리 기준금리는 2.25~2.5% 수준이다. 코로나사태로 0.5%까지 떨어졌던 기준금리가 2%p정도 올라가는 셈이다. 한은 총재는 며칠전 우리 기준금리가 1%p만 올라도 해마다 가계는 이자부담이 3조원, 기업은 2조7천억원 정도 커진다고 밝혔다. (이 돈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지갑에서, 예대마진을 제하고 형편이 넉넉한 예금자들의 이자 소득으로 이전될 것이다. 원래 가난에는 늘 그렇게 이자가 붙는다.)

시중 주담대 이자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금리인상을 시작한 이후 올해 말까지 1인당 130만원 정도의 이자를 더 내야한다. 늘어난 이자부담은 그만큼 지갑을 닫게 만든다. 금리인상은 그렇게 경기를 무겁게 만든다.

2) 경기가 무거워진다.
금리 인상은 돈값이 오른다는 뜻이다. 돈값이 오르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든다. 코로나때문에 돈을 풀어 소비가 그토록 늘었지만, 투자와 고용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경기침체 조짐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달러 대비 우리돈의 가치가 내릴수록 우리는 더 비싼 값에 수입을 해야한다. 원자재부터 특히 기름값이 오르고 그렇게 한국인은 더 비싼 값을 치러야한다. 수입가가 높아지면 무역적자가 커진다. 수출대국 한국이 이미 3월과 4월에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적자는 원화의 평가절하를 더 부추긴다. 달러화대비 우리 원화의 가격이 1,300원을 뚫고 갈 기세다. 이제 해외여행을 갈 때도, 미국의 딸에게 학비를 보낼 때도 더 많은 한국돈을 내야 한다.

달러값이 치솟는다. 주요 6개 나라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를 알려주는 ‘달러인덱스’ 지수가 최근 105를 넘나들며 2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캡처 Investing.com
3) 출렁이는 자본시장

이자를 더준다고 하면 돈은 은행 곳간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뭔가를 사지않고 팔려고 한다. 특히 급등한 자산일수록 급락하기 쉽다. 게다가 우리는 가계부채가 '1천7백조 원'이다. 선진국중 가장 가계부채가 폭증한 나라다. 빚내서 주식사고 빚내서 집산 사람들에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금리인상'이다. 이미 코인과 증시에 투자한 수많은 사람들의 계좌가 퍼렇게 멍들고 있다.

4) 외환보유고 유지에도 돈이 들어간다.

이런 위험을 줄이려고 정부는 곳간에 외환보유고 4,588억 달러(4월 기준)를 쌓아뒀다. 태국 한해 GDP에 맘먹는 엄청난 규모다. 이 외환보유고 곳간의 달러나 채권 또는 금을 사려면 당연히 돈이 들어간다. 외국환평형기금 채권 등을 발행해 이 돈을 마련하는데 그 이자가 해마다 수천억 원이 나간다. 결국 다 우리 국민의 부담이다. 툭하면 빠져나가는 달러는 이렇게 사방팔방에서 우리 지갑을 털어간다.

"강한 달러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당시 미 재무장관), 95년

"달러는 무슨 일이 생겨도 최고 통화 지위를 지켜야한다"
-재닛 옐런 Janet Yellen(지금 재무장관)
, 지난달

4. '화폐'도 상품이다.

6월 1일부터는 양적긴축도 시작된다. 연준(Fed)이 채권을 구입하며 풀었던 돈을 다시 채권을 팔면서 흡수하는 방식이다(그럼 연준 곳간의 채권(빚)이 줄어들고 시중의 돈이 흡수된다). 40년만의 인플레이션에 놀란 연준이 사상 유래없는 속도로 돈을 흡수한다.

이렇게 시중에 채권이 늘어나면 채권값은 떨어지고 채권금리는 올라간다(이자라도 더 줘야 채권을 사지 않겠는가). 미국의 모기지 금리는 더 가파르게 오른다. 그 여파가 자산시장에 빠르게 퍼지는 중이다.

마치 어느 나라가 쓰러지고 어느 나라가 버티는지 테스트하는 것 같다 . 달러는 미국이 풀었는데 정작 달러가치만 오른다. 다른 모든 화폐는 그냥 '나머지 화폐'가 됐다. 지난 1991년에도, 2001년에도, 2009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그 돈풀기 불장난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산불이 발생하지 않았기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엔 거대한 산불로 번졌다. 그러니 다음 경기 침체 때는 '돈풀기 비공'을 쓰기 쉽지 않아졌다. 재정투입도 쉽지 않다. 2007년 마지막 돈풀기를 시현할 때보다 미국의 GDP대비 총부채 비율은 2배로 높아졌다. 연준의 줄타기는 더 아슬아슬해 질 것이다. 그때는 또 어느 나라가 쓰러질 것인가.

'자본주의 시장에서 화폐도 상품이다'. 다들 그 상품만 사니 또 가격이 오른다. 마땅히 다른 것을 살 것도 없다. 특히 시장이 흔들리면 오직 믿을 것은 달러뿐이다.

그리고 리스크는 나머지 나라의 몫이다. '리스크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고 남은 위험'이다. 그 리스크에 대비할 시간이다. 달러탓은 그 다음에 하자.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드골은 오직 믿을 것은 '금'뿐이라고 했지만, '모두가 원하는 돈'이 누리는 권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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