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이 받은 ‘심신미약’ 감형,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입력 2022.06.03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조두순을 사회로 되돌려보낸 '심신미약' 감형
조두순 때린 20대도 '심신미약' 인정돼 형 감경 아이러니
오히려 '가중처벌' 주장까지...계속되는 논란


■격리시킬 기회는 있었다.
당초 검찰은 아동 성폭력범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습니다. 워낙 범행이 잔혹했던데다 20건 가까운 전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가석방 등의 변수가 없었다면 조두순은 사회에서 격리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 내내 조두순은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버텼고, 재판부는 형을 깎아줬습니다. '심신미약 감경', 범행 당시 만취 상태를 감안했다고 판결문에 적시돼 있습니다. 12년 형을 마친 조두순은 살던 동네로 복귀했습니다.

조두순 재판 판결문.  한국사회에 충격을 준 이  사건은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논란도 불러일으킨다.조두순 재판 판결문. 한국사회에 충격을 준 이 사건은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논란도 불러일으킨다.

■가해자 운명을 바꾸는 '형법 10조'


조두순을 사회로 돌려보낸 형법 10조입니다. 제대로 적용된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 있습니다. 당시 판결문을 좀 더 들여다보면 조두순은 범행 직후 아내에게 범행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전혀 기억이 안 난다"던 진술과 배치되는 부분입니다.

당시 판결문. “피고인의 처는 ‘피고인이 사고를 쳤다고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당시 판결문. “피고인의 처는 ‘피고인이 사고를 쳤다고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도 조두순이 범행의 의도를 갖고 현장에 갔을 것이라고 '의도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하지만 '음주 심신미약 감형'은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조두순이 이런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했을 것이라는 추정,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설득력이 있습니다.

■조두순 폭행한 20대도 '심신미약' 감형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지난해 2월 한 20대 남성이 조두순의 집에 들어가 둔기로 조두순을 폭행합니다.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은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상태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조씨가 한 성범죄에 분노했고 그를 겁줘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찾아갔다. 제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다만 범행 당시 정신질환으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
-조두순 폭행 20대 최후진술 중-

‘조두순 폭행’ 20대.  역시 ‘심신미약’ 이 인정돼 지난달 징역 1년 3개월형을 선고받았다.‘조두순 폭행’ 20대. 역시 ‘심신미약’ 이 인정돼 지난달 징역 1년 3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심신 미약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의 법률상 처단형은 징역 1년~징역 13년. 심신 미약을 재판부가 인정하면 징역 6개월~6년 6개월로 줄어듭니다. 내려진 판결은 징역 1년 3개월이었습니다. 조두순이 받았던 심신미약 감형 혜택이 그를 둔기로 때린 가해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이용구 전 차관도 심신미약 카드...면죄부 되지 않으려면?
'조두순 사건' 이후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음주 감경'을 하지 않도록 적용이 바뀌었습니다. 술에 취해 기억 안 난다고 주장해도 성범죄에 있어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음주 감경'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습니다.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예가 대표적입니다. 폭행 혐의를 부인하던 이 전 차관 측은 최근 돌연 '심신미약'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 상대방이 누구인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차량이 운행 중이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였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변호인 측(올해 3월)-


심신미약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정신병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과거 여러 예를 볼 때 '범죄자들의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음주 등 심신미약을 주장했을 경우 사안에 따라 오히려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 제도를 당장 손대기 어렵다면 취지에 맞게 명확하고 엄격한 기준을 만들고 차질없이 집행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논쟁을 촉발시킨 조두순과 최근 사건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심신미약 감형 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권세라 / 사진: 권동희)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조두순이 받은 ‘심신미약’ 감형,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 입력 2022-06-03 07:00:23
    취재K
조두순을 사회로 되돌려보낸 '심신미약' 감형<br />조두순 때린 20대도 '심신미약' 인정돼 형 감경 아이러니<br />오히려 '가중처벌' 주장까지...계속되는 논란<br />

■격리시킬 기회는 있었다.
당초 검찰은 아동 성폭력범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습니다. 워낙 범행이 잔혹했던데다 20건 가까운 전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가석방 등의 변수가 없었다면 조두순은 사회에서 격리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 내내 조두순은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버텼고, 재판부는 형을 깎아줬습니다. '심신미약 감경', 범행 당시 만취 상태를 감안했다고 판결문에 적시돼 있습니다. 12년 형을 마친 조두순은 살던 동네로 복귀했습니다.

조두순 재판 판결문.  한국사회에 충격을 준 이  사건은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논란도 불러일으킨다.
■가해자 운명을 바꾸는 '형법 10조'


조두순을 사회로 돌려보낸 형법 10조입니다. 제대로 적용된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 있습니다. 당시 판결문을 좀 더 들여다보면 조두순은 범행 직후 아내에게 범행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전혀 기억이 안 난다"던 진술과 배치되는 부분입니다.

당시 판결문. “피고인의 처는 ‘피고인이 사고를 쳤다고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도 조두순이 범행의 의도를 갖고 현장에 갔을 것이라고 '의도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하지만 '음주 심신미약 감형'은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조두순이 이런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했을 것이라는 추정,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설득력이 있습니다.

■조두순 폭행한 20대도 '심신미약' 감형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지난해 2월 한 20대 남성이 조두순의 집에 들어가 둔기로 조두순을 폭행합니다.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은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상태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조씨가 한 성범죄에 분노했고 그를 겁줘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찾아갔다. 제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다만 범행 당시 정신질환으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
-조두순 폭행 20대 최후진술 중-

‘조두순 폭행’ 20대.  역시 ‘심신미약’ 이 인정돼 지난달 징역 1년 3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심신 미약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의 법률상 처단형은 징역 1년~징역 13년. 심신 미약을 재판부가 인정하면 징역 6개월~6년 6개월로 줄어듭니다. 내려진 판결은 징역 1년 3개월이었습니다. 조두순이 받았던 심신미약 감형 혜택이 그를 둔기로 때린 가해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이용구 전 차관도 심신미약 카드...면죄부 되지 않으려면?
'조두순 사건' 이후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음주 감경'을 하지 않도록 적용이 바뀌었습니다. 술에 취해 기억 안 난다고 주장해도 성범죄에 있어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음주 감경'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습니다.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예가 대표적입니다. 폭행 혐의를 부인하던 이 전 차관 측은 최근 돌연 '심신미약'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 상대방이 누구인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차량이 운행 중이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였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변호인 측(올해 3월)-


심신미약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정신병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과거 여러 예를 볼 때 '범죄자들의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음주 등 심신미약을 주장했을 경우 사안에 따라 오히려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 제도를 당장 손대기 어렵다면 취지에 맞게 명확하고 엄격한 기준을 만들고 차질없이 집행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논쟁을 촉발시킨 조두순과 최근 사건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심신미약 감형 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권세라 / 사진: 권동희)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