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설 위탁]① 함평군은 왜 비리 복지법인에 또 위탁 운영을 맡겼을까?

입력 2022.06.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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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농어촌 지역은 고령화 등으로 복지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지 현장의 상황은 열악합니다. 특히 대부분의 복지 시설을 민간 위탁 형태로 운영하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KBS광주는 3차례에 걸쳐 전남 지역 복지시설의 위탁 운영 실태와 개선 방안을 짚어봅니다.


[연재 기사 목록]
①함평군은 왜 비리 복지법인에 또 위탁 운영을 맡겼을까?
②행정처분 이력 복지법인, 위탁운영 배제는 '0건'
③복지시설 위탁 운영 문제, 현실과 해법 사이

공립학교, 공립도서관, 공립요양원…. '사립'과 대비되는 '공립'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관(官)에서 세운 시설이라는 거니까 뭔가 효율이 떨어지고 조금 답답할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절차나 규정은 꼭 지킬 것만 같습니다. '국립'보다야 덜하지만, 신뢰도 역시 높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이 실제에 부합하는지는 좀 따져봐야 합니다. 특히 복지 시설이 더 그렇습니다. 흔히 복지야말로 국가의 대표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공립 복지 시설은 10곳 가운데 9곳꼴로 '민간 위탁' 형태입니다. 민간 법인에 운영을 맡기고, 자치단체는 관리와 감독만 할 뿐입니다.

공공의 일을 민간에 넘기는 건 업무 효율과 전문성 면에서 꼭 필요한 방식입니다. 1950년대 이른바 '구호 사업'이 전개될 때부터 민간 영역에 깊이 의존해 온 복지 분야는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민간 운영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한지, 그렇게 뽑힌 운영자가 청렴하고 유능하게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뒤따릅니다. 특히 복지 분야에서 갈등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함평군 유일 '군립 요양원', 위탁 운영 법인은 근무 기록 조작

인구 3만여 명인 전남 함평군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말썽이 생긴 곳은 군에서 유일하게 '군립'이라는 이름을 단 함평군립요양원입니다. 2010년 설립 이후 A 사회복지법인이 줄곧 위탁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요양원 운영비와 인건비는 대부분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지급하는 '장기요양급여'로 충당됩니다. 그런데 함평군립요양원이 요양급여를 더 타내기 위해 공단을 속인 사실이 2019년 드러났습니다. 공단 조사 결과, 2016년부터 3년간 임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허위로 보고해 요양급여 7,700여만 원을 부정으로 받은 겁니다.

이 사건과 관련한 형사재판의 1심 판결문에는 자세한 범죄 사실이 나옵니다.

요양원 측은 기준 인력을 넘겼을 때 지급되는 요양급여를 받기 위해 퇴사하거나 해외로 출국한 직원까지 일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입소 노인의 외박 사실도 숨겨 요양급여를 더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공단 평가를 잘 받으려고 실제 진료를 하지도 않은 촉탁 의사가 방문해 진료한 것처럼 진료기록부까지 위조했습니다.


근무 시간 조작을 주도한 이는 요양원장이자 A 법인의 이사장(이하 이사장)과 요양원 부원장이었습니다. 특히 이사장은 자신뿐 아니라 직원 신분이었던 딸과 동생의 근무 시간까지 부풀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심 재판부는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이사장과 부원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함평군은 업무 정지 70일의 행정 처분을, 공단은 부당 이득금 7,700여만 원에 대한 환수 조처를 내렸습니다.

■ 비리 저지른 법인, 요양원 위탁 운영 또 따내

1심 선고가 내려진 직후인 지난해 9월, 마침 A 법인과 함평군의 군립요양원 위탁 운영 계약 기간이 만료됐습니다. 새로운 운영자를 모집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함평군의 선택은 어땠을까요? 공모를 거쳐 5년간 군립요양원의 위탁 운영자로 선정된 곳은 또다시 A 법인이었습니다.

요양원을 운영하며 부정 수급을 저지른 법인에 다시 위탁 운영을 맡긴 이유를 물었습니다. 함평군청 노인복지팀은 A 법인 말고는 지원한 법인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전국으로 모집 대상을 넓혀 재공고까지 냈는데도 단독 지원에 그쳤다는 겁니다. 또 A 법인의 업무 정지 처분은 공고에 명시된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설명했습니다.


■ 함평군, 비리 법인에 다른 복지시설 위탁 맡겨…심사 절차 '의문'

비리 사건 이후 A 법인이 따낸 함평군 위탁 사업은 요양원만이 아닙니다. A 법인이 기존에 위탁 운영하던 시설 중에는 '함평군 장애인 거주시설'도 있었습니다. 이 시설의 위탁 계약은 올해 3월 끝났는데, 역시 A 법인이 다시 위탁 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경쟁 법인 2곳이 지원했지만, A 법인이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심사 절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KBS가 정보 공개 청구와 이의 신청을 거쳐 확보한 <함평군 장애인 거주시설 신청자 1차 서류검토 결과 보고> 문건을 봐도 그렇습니다. 해당 문건은 지원 법인 3곳의 시설 운영 내력, 법인 대표의 자격 등을 정리해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인의 행정 처분 이력과 관련한 내용은 서류 검토 내역에 전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A 법인이 받은 심사 점수에도 궁금증이 남습니다. 최근 법인에 대한 지적 사항과 비위 사실 등에 대한 평가를 의미하는 '공신력' 항목이 총점 100점 가운데 20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고문에는 "법인 비위 사실 등이 확인되면 0점 처리한다"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 수급을 저지른 A 법인은, 공신력 항목에서도 20점 만점에 18점을 받아 지원한 법인 3곳 가운데 최고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격 사유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의문입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위탁 공고에는 '금고나 벌금 이상의 형을 받은 자는 지원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A 법인 이사장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만큼 문제가 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담당 부서인 함평군 장애인복지팀은 처벌 사실을 몰랐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처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함평군 장애인복지팀은 심사위원회를 거쳐 결정한 결과라며, A 법인이 받은 행정 처분 이력도 심사에 반영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더 무거운 사법 당국의 판결 내용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위탁 운영자의 심사 절차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결격 사유 등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한편 A 법인은 전 대표가 사망한 뒤 부인인 현 대표가 운영을 맡으면서 행정 착오 등이 있었다고 해명하며, 부정수급 처벌 사건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명을 들으니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자치단체가 비리 법인을 배제할 수는 없을까요? 다른 지역의 사정은 어떨까요? 복지 시설 운영을 민간에 맡기는 구조 자체에 문제는 없는 걸까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계속 취재했습니다.

촬영기자: 이성현 / 자료조사: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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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시설 위탁]① 함평군은 왜 비리 복지법인에 또 위탁 운영을 맡겼을까?
    • 입력 2022-06-03 08:00:13
    취재K
농어촌 지역은 고령화 등으로 복지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지 현장의 상황은 열악합니다. 특히 대부분의 복지 시설을 민간 위탁 형태로 운영하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KBS광주는 3차례에 걸쳐 전남 지역 복지시설의 위탁 운영 실태와 개선 방안을 짚어봅니다.

[연재 기사 목록]
①함평군은 왜 비리 복지법인에 또 위탁 운영을 맡겼을까?
②행정처분 이력 복지법인, 위탁운영 배제는 '0건'
③복지시설 위탁 운영 문제, 현실과 해법 사이

공립학교, 공립도서관, 공립요양원…. '사립'과 대비되는 '공립'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관(官)에서 세운 시설이라는 거니까 뭔가 효율이 떨어지고 조금 답답할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절차나 규정은 꼭 지킬 것만 같습니다. '국립'보다야 덜하지만, 신뢰도 역시 높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이 실제에 부합하는지는 좀 따져봐야 합니다. 특히 복지 시설이 더 그렇습니다. 흔히 복지야말로 국가의 대표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공립 복지 시설은 10곳 가운데 9곳꼴로 '민간 위탁' 형태입니다. 민간 법인에 운영을 맡기고, 자치단체는 관리와 감독만 할 뿐입니다.

공공의 일을 민간에 넘기는 건 업무 효율과 전문성 면에서 꼭 필요한 방식입니다. 1950년대 이른바 '구호 사업'이 전개될 때부터 민간 영역에 깊이 의존해 온 복지 분야는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민간 운영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한지, 그렇게 뽑힌 운영자가 청렴하고 유능하게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뒤따릅니다. 특히 복지 분야에서 갈등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함평군 유일 '군립 요양원', 위탁 운영 법인은 근무 기록 조작

인구 3만여 명인 전남 함평군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말썽이 생긴 곳은 군에서 유일하게 '군립'이라는 이름을 단 함평군립요양원입니다. 2010년 설립 이후 A 사회복지법인이 줄곧 위탁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요양원 운영비와 인건비는 대부분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지급하는 '장기요양급여'로 충당됩니다. 그런데 함평군립요양원이 요양급여를 더 타내기 위해 공단을 속인 사실이 2019년 드러났습니다. 공단 조사 결과, 2016년부터 3년간 임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허위로 보고해 요양급여 7,700여만 원을 부정으로 받은 겁니다.

이 사건과 관련한 형사재판의 1심 판결문에는 자세한 범죄 사실이 나옵니다.

요양원 측은 기준 인력을 넘겼을 때 지급되는 요양급여를 받기 위해 퇴사하거나 해외로 출국한 직원까지 일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입소 노인의 외박 사실도 숨겨 요양급여를 더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공단 평가를 잘 받으려고 실제 진료를 하지도 않은 촉탁 의사가 방문해 진료한 것처럼 진료기록부까지 위조했습니다.


근무 시간 조작을 주도한 이는 요양원장이자 A 법인의 이사장(이하 이사장)과 요양원 부원장이었습니다. 특히 이사장은 자신뿐 아니라 직원 신분이었던 딸과 동생의 근무 시간까지 부풀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심 재판부는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이사장과 부원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함평군은 업무 정지 70일의 행정 처분을, 공단은 부당 이득금 7,700여만 원에 대한 환수 조처를 내렸습니다.

■ 비리 저지른 법인, 요양원 위탁 운영 또 따내

1심 선고가 내려진 직후인 지난해 9월, 마침 A 법인과 함평군의 군립요양원 위탁 운영 계약 기간이 만료됐습니다. 새로운 운영자를 모집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함평군의 선택은 어땠을까요? 공모를 거쳐 5년간 군립요양원의 위탁 운영자로 선정된 곳은 또다시 A 법인이었습니다.

요양원을 운영하며 부정 수급을 저지른 법인에 다시 위탁 운영을 맡긴 이유를 물었습니다. 함평군청 노인복지팀은 A 법인 말고는 지원한 법인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전국으로 모집 대상을 넓혀 재공고까지 냈는데도 단독 지원에 그쳤다는 겁니다. 또 A 법인의 업무 정지 처분은 공고에 명시된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설명했습니다.


■ 함평군, 비리 법인에 다른 복지시설 위탁 맡겨…심사 절차 '의문'

비리 사건 이후 A 법인이 따낸 함평군 위탁 사업은 요양원만이 아닙니다. A 법인이 기존에 위탁 운영하던 시설 중에는 '함평군 장애인 거주시설'도 있었습니다. 이 시설의 위탁 계약은 올해 3월 끝났는데, 역시 A 법인이 다시 위탁 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경쟁 법인 2곳이 지원했지만, A 법인이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심사 절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KBS가 정보 공개 청구와 이의 신청을 거쳐 확보한 <함평군 장애인 거주시설 신청자 1차 서류검토 결과 보고> 문건을 봐도 그렇습니다. 해당 문건은 지원 법인 3곳의 시설 운영 내력, 법인 대표의 자격 등을 정리해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인의 행정 처분 이력과 관련한 내용은 서류 검토 내역에 전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A 법인이 받은 심사 점수에도 궁금증이 남습니다. 최근 법인에 대한 지적 사항과 비위 사실 등에 대한 평가를 의미하는 '공신력' 항목이 총점 100점 가운데 20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고문에는 "법인 비위 사실 등이 확인되면 0점 처리한다"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 수급을 저지른 A 법인은, 공신력 항목에서도 20점 만점에 18점을 받아 지원한 법인 3곳 가운데 최고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격 사유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의문입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위탁 공고에는 '금고나 벌금 이상의 형을 받은 자는 지원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A 법인 이사장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만큼 문제가 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담당 부서인 함평군 장애인복지팀은 처벌 사실을 몰랐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처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함평군 장애인복지팀은 심사위원회를 거쳐 결정한 결과라며, A 법인이 받은 행정 처분 이력도 심사에 반영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더 무거운 사법 당국의 판결 내용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위탁 운영자의 심사 절차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결격 사유 등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한편 A 법인은 전 대표가 사망한 뒤 부인인 현 대표가 운영을 맡으면서 행정 착오 등이 있었다고 해명하며, 부정수급 처벌 사건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명을 들으니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자치단체가 비리 법인을 배제할 수는 없을까요? 다른 지역의 사정은 어떨까요? 복지 시설 운영을 민간에 맡기는 구조 자체에 문제는 없는 걸까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계속 취재했습니다.

촬영기자: 이성현 / 자료조사: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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