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 자주 외교를 꿈꿨던 최초 주미공사 박정양, 활동 사진 첫 발견

입력 2022.06.03 (14:33) 수정 2022.06.0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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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주미공사 박정양과 조선 외교관원들의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 사저 마운트 버넌 방문. 1888년 4월 26일 왼쪽부터 이종하, 박정양, 강진희, 이하영최초 주미공사 박정양과 조선 외교관원들의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 사저 마운트 버넌 방문. 1888년 4월 26일 왼쪽부터 이종하, 박정양, 강진희, 이하영

1888년 1월 1일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박정양은 미국 군함 오마하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라는 고종의 친서를 들고. 45일이나 걸린 여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천연두가 유행하고 있었다. 요즘말로 박정양은 일주일 간 격리를 하고 1월 9일이 되어서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미국에 파견한 최초의 주미 공사(현재의 대사). 박정양은 오자마자 여독을 풀 새도 없이 곧바로 미국 국무부 장관을 만나고, 17일 마침내 그로버 클리블랜드(22대)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친서를 전달한다.

■왜 이렇게 속도를 냈을까? 중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청나라는 당시 조선을 속국으로 여겨 공공연히 조선의 외교를 방해했다.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직후 미국에선 주한공사를 임명해 부임하도록 했지만(현 서울 정동 주미 대사관저 자리), 정작 조선이 미국에 주미공사를 보내는 데는 청나라의 반대와 압박이 심했다. 조약이 수립된 뒤 5년 뒤인 1887년에서야 고종의 친서를 받은 최초의 주미공사 박정양은 1888년에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고, 청나라 주미 공사가 방해하기 전에 미국의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선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주적으로 국무장관을 만나고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만나 친서를 전달한 박정양을, 청나라는 내버려두지 않았다. 고종을 압박해 결국 박정양은 몇 달 뒤 곧 본국으로 소환되고 만다.

■주미 외교관원 활동 사진 발견...현존 가장 오래된 사진

최초 주미공사 박정양과 조선 외교관원들의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 사저 마운트 버넌 방문. 1888년 4월 26일 왼쪽부터 이종하, 박정양, 강진희, 이하영최초 주미공사 박정양과 조선 외교관원들의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 사저 마운트 버넌 방문. 1888년 4월 26일 왼쪽부터 이종하, 박정양, 강진희, 이하영

그 박정양의 활동을 담은 사진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예방하고 석달 쯤 지난 뒤인 1888년 4월 26일 박정양과 이하영 서기관(훗날 친일반민족 행위자), 무관인 이종하, 수행 화가인 강진희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살았던 집 마운트 버넌을 방문했던 사진이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주미 대한제국공사관: 1889년 2월부터 16년 동안 미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이었으며, 현재는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외소재 문화재임) 은 우리나라 공식 외교관원이 미국 기관을 방문한 가장 오래된 사진(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이라며 사진을 공개했다. 주미 외교관원 네 명 모두 갓을 쓰고, 도포에 버선, 전통 신발을 신은 모습. 사진을 찍은 이는 마운트 버넌 전속 사진사로 추정되며, 네 명의 이방인이 신기했는지 미국인 관광객들이 이들 뒤에 선 채 함께 사진에 담겼다.

■이베이에서 신기한 사진 구매...첫 외교 활동 기록물 발견으로 이어져

130년이 넘어서야 사진이 발견된 것은 이사벨 하인즈만이라는 여성 덕분. 이 여성은 이베이에서 이채로운 사진을 구입한 뒤 마운트 버넌 워싱턴 도서관에 2020년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서관 측에서 2021년 우리 측에 고증을 의뢰하며, 처음으로 우리 외교관원들의 활동을 담은 사진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

공사관 측은 클리블랜드 당시 대통령을 접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번에 공개된 사진이 미국에 파견된 우리 외교관들의 활동을 담은 첫 사진이자, 가장 오래된 사진이라고 알렸다.

박정양은 마운트 버넌에 다녀온 뒤 "공사관원들과 알렌 가족을 대동하고 마은포(마운트 버넌의 한문식 표기) 에 갔다. 워싱턴의 옛집을 보았다"며 "평소에 거주하는 곳인데 방 안의 일용하던 가구에서 화원과 운동장까지 살아 있을 때 그대로 보존했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 현재 사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미행일지에 적었다.

박정양이 작성한 미행일지박정양이 작성한 미행일지

■영국서 독립한 조지 워싱턴처럼...독립, 자주 외교 열망한 박정양

배재대 김종헌 교수는"박정양의 미행일지를 보면, 독립에 대한 열망이 많이 담겨 있다"며 "청나라로부터 독립해 자주 외교를 하겠다는 박정양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조지 워싱턴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박정양은 조선의 자주 독립을 위해 노력했고, 이후 독립협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며 이번에 발견된 사진은 조선의 근대 외교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고 강조했다.

박정양이 본국으로 소환된 뒤 2대 주미 공사로 임명된 것은 이하연(친일 반민족 행위자) 서기관, 3대 주미 공사는 을사오적이자 역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 이완용. 이완용과 이하연, 그리고 4대 주미공사를 지낸 이채연은 박정양이 마운트 버넌을 찾았던 1년 뒤 부인들과 함께 같은 곳을 방문했고, 이때 찍은 사진도 이번에 함께 공개됐다.

1889.5.6. 마운트 버넌 방문 당시. (왼쪽부터) 이하영, 이채연의 부인, 이채연, 알렌과 알렌의 딸, 이완용, 이완용의 부인1889.5.6. 마운트 버넌 방문 당시. (왼쪽부터) 이하영, 이채연의 부인, 이채연, 알렌과 알렌의 딸, 이완용, 이완용의 부인

당시 이들의 방문은 현지 언론 '이브닝 스타'가 1989년 5월 7일 자로 보도했는데, 당시 조선 여성들(이하연과 이완용의 부인)의 한복과 조바위를 쓴 이채로운 모습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공사관은 설명했다. 다만, 박정양과 달리 이하연과 이완용은 당시 마운트 버넌 방문 당시를 기록해 놓고 있지 않아, 왜 갔었는지 등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다.

이후 박정양은 을사늑약의 철회를 호소하는 상소를 올리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하연과 이완용의 행적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한미수교 140년...구한말 동북아 정세와 2022년의지정학

1882년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올해로 140년이 됐다. 한국과 미국 외교의 시작점. 조선은 당시 서양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조약을 맺었다. 다만, 조선이 주체적으로 조약에 참여하지 않고, 청나라가 대리로 맺은 조약이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속국으로 여겼기 때문. 그래서 조선은 미국에 주미공사(지금의 대사)를 파견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중국의 방해 때문. 이후 소용돌이치는 세계 정세 속에 미국과 일본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중국과 러시아 모두 일본의 기세에 눌려 대한제국은 결국 미국의 묵인 하에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중국의 부상과 중국· 러시아의 밀착, 이에 맞서는 미국과 일본의 밀착(가쓰라 태프트 밀약) 등 급변하는 세계 상황, 2022년인 지금이 마치 구한 말 동북아의 정세와 비슷해 보이는 건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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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중국 자주 외교를 꿈꿨던 최초 주미공사 박정양, 활동 사진 첫 발견
    • 입력 2022-06-03 14:33:26
    • 수정2022-06-03 14:36:32
    세계는 지금
최초 주미공사 박정양과 조선 외교관원들의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 사저 마운트 버넌 방문. 1888년 4월 26일 왼쪽부터 이종하, 박정양, 강진희, 이하영
1888년 1월 1일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박정양은 미국 군함 오마하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라는 고종의 친서를 들고. 45일이나 걸린 여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천연두가 유행하고 있었다. 요즘말로 박정양은 일주일 간 격리를 하고 1월 9일이 되어서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미국에 파견한 최초의 주미 공사(현재의 대사). 박정양은 오자마자 여독을 풀 새도 없이 곧바로 미국 국무부 장관을 만나고, 17일 마침내 그로버 클리블랜드(22대)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친서를 전달한다.

■왜 이렇게 속도를 냈을까? 중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청나라는 당시 조선을 속국으로 여겨 공공연히 조선의 외교를 방해했다.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직후 미국에선 주한공사를 임명해 부임하도록 했지만(현 서울 정동 주미 대사관저 자리), 정작 조선이 미국에 주미공사를 보내는 데는 청나라의 반대와 압박이 심했다. 조약이 수립된 뒤 5년 뒤인 1887년에서야 고종의 친서를 받은 최초의 주미공사 박정양은 1888년에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고, 청나라 주미 공사가 방해하기 전에 미국의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선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주적으로 국무장관을 만나고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만나 친서를 전달한 박정양을, 청나라는 내버려두지 않았다. 고종을 압박해 결국 박정양은 몇 달 뒤 곧 본국으로 소환되고 만다.

■주미 외교관원 활동 사진 발견...현존 가장 오래된 사진

최초 주미공사 박정양과 조선 외교관원들의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 사저 마운트 버넌 방문. 1888년 4월 26일 왼쪽부터 이종하, 박정양, 강진희, 이하영
그 박정양의 활동을 담은 사진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예방하고 석달 쯤 지난 뒤인 1888년 4월 26일 박정양과 이하영 서기관(훗날 친일반민족 행위자), 무관인 이종하, 수행 화가인 강진희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살았던 집 마운트 버넌을 방문했던 사진이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주미 대한제국공사관: 1889년 2월부터 16년 동안 미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이었으며, 현재는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외소재 문화재임) 은 우리나라 공식 외교관원이 미국 기관을 방문한 가장 오래된 사진(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이라며 사진을 공개했다. 주미 외교관원 네 명 모두 갓을 쓰고, 도포에 버선, 전통 신발을 신은 모습. 사진을 찍은 이는 마운트 버넌 전속 사진사로 추정되며, 네 명의 이방인이 신기했는지 미국인 관광객들이 이들 뒤에 선 채 함께 사진에 담겼다.

■이베이에서 신기한 사진 구매...첫 외교 활동 기록물 발견으로 이어져

130년이 넘어서야 사진이 발견된 것은 이사벨 하인즈만이라는 여성 덕분. 이 여성은 이베이에서 이채로운 사진을 구입한 뒤 마운트 버넌 워싱턴 도서관에 2020년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서관 측에서 2021년 우리 측에 고증을 의뢰하며, 처음으로 우리 외교관원들의 활동을 담은 사진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

공사관 측은 클리블랜드 당시 대통령을 접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번에 공개된 사진이 미국에 파견된 우리 외교관들의 활동을 담은 첫 사진이자, 가장 오래된 사진이라고 알렸다.

박정양은 마운트 버넌에 다녀온 뒤 "공사관원들과 알렌 가족을 대동하고 마은포(마운트 버넌의 한문식 표기) 에 갔다. 워싱턴의 옛집을 보았다"며 "평소에 거주하는 곳인데 방 안의 일용하던 가구에서 화원과 운동장까지 살아 있을 때 그대로 보존했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 현재 사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미행일지에 적었다.

박정양이 작성한 미행일지
■영국서 독립한 조지 워싱턴처럼...독립, 자주 외교 열망한 박정양

배재대 김종헌 교수는"박정양의 미행일지를 보면, 독립에 대한 열망이 많이 담겨 있다"며 "청나라로부터 독립해 자주 외교를 하겠다는 박정양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조지 워싱턴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박정양은 조선의 자주 독립을 위해 노력했고, 이후 독립협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며 이번에 발견된 사진은 조선의 근대 외교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고 강조했다.

박정양이 본국으로 소환된 뒤 2대 주미 공사로 임명된 것은 이하연(친일 반민족 행위자) 서기관, 3대 주미 공사는 을사오적이자 역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 이완용. 이완용과 이하연, 그리고 4대 주미공사를 지낸 이채연은 박정양이 마운트 버넌을 찾았던 1년 뒤 부인들과 함께 같은 곳을 방문했고, 이때 찍은 사진도 이번에 함께 공개됐다.

1889.5.6. 마운트 버넌 방문 당시. (왼쪽부터) 이하영, 이채연의 부인, 이채연, 알렌과 알렌의 딸, 이완용, 이완용의 부인
당시 이들의 방문은 현지 언론 '이브닝 스타'가 1989년 5월 7일 자로 보도했는데, 당시 조선 여성들(이하연과 이완용의 부인)의 한복과 조바위를 쓴 이채로운 모습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공사관은 설명했다. 다만, 박정양과 달리 이하연과 이완용은 당시 마운트 버넌 방문 당시를 기록해 놓고 있지 않아, 왜 갔었는지 등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다.

이후 박정양은 을사늑약의 철회를 호소하는 상소를 올리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하연과 이완용의 행적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한미수교 140년...구한말 동북아 정세와 2022년의지정학

1882년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올해로 140년이 됐다. 한국과 미국 외교의 시작점. 조선은 당시 서양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조약을 맺었다. 다만, 조선이 주체적으로 조약에 참여하지 않고, 청나라가 대리로 맺은 조약이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속국으로 여겼기 때문. 그래서 조선은 미국에 주미공사(지금의 대사)를 파견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중국의 방해 때문. 이후 소용돌이치는 세계 정세 속에 미국과 일본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중국과 러시아 모두 일본의 기세에 눌려 대한제국은 결국 미국의 묵인 하에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중국의 부상과 중국· 러시아의 밀착, 이에 맞서는 미국과 일본의 밀착(가쓰라 태프트 밀약) 등 급변하는 세계 상황, 2022년인 지금이 마치 구한 말 동북아의 정세와 비슷해 보이는 건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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