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자리에서 급우 엄마 험담, 학폭 아니다”

입력 2022.06.0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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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 급우의 어머니를 향해 심한 험담, 이른바 '패드립'을 한 고등학생 A 군이 있습니다. 이 일로 A 군은 학교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처분이 억울했던 A 군, 자신의 잘못이 학폭인지 아닌지 법원에 판단을 물었습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둘만의 대화에서 나온 험담

사건은 지난해 6월, 경북 모 고등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A 군은 친구 B 군과 잡담을 나누던 중 문득 같은 반 C 군에 대한 험담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본인도 심하다고 판단했는지 "이거 진짜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며 말을 끊습니다. 하지만 B 군의 중단된 말 뒤에 뭐가 있을지 궁금했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며 말해 달라고 재촉합니다. 결국, A 군은 C 군 어머니에 대해 험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B 군은 C 군에게 이 내용을 전달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C 군, 당연히 화가 많이 났겠죠. A 군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고, 이후 해당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는 A 군에게 '서면 사과를 하라'고 의결했습니다.

A 군도 억울했습니다. 무엇보다 C 군에게 직접 얘기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설령 이 발언이 학폭에 해당하더라도 학폭 가해자 신세가 되면서 앞으로의 불이익이 너무 크다고 봤습니다. 결국, A 군과 부모는 법원에 판단을 구했습니다.

■ "부적절한 행동이지만 학폭 인정 안 돼"

법원은 먼저 A 군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에 해당한다고 적시했습니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둘만의 대화 과정에서 이뤄진 발언이었다는데 주목했습니다.

SNS나 메신저 등 전파성이 높은 통신수단을 매개로 한 행위가 아니었고, A 군이 친구 B 군의 비밀보장 약속을 믿은 만큼 자신이 한 발언이 피해 학생에게 전달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그래서 형법상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A 군의 발언은 친구 사이 은밀한 대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C 군에게 직접 심리적 정신적 손해를 입히기 위한 공격 의도가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사후적으로 대화 내용이 피해 학생에게 유출됐다는 이유만으로 A 군의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재판부는 교육지원청의 서면사과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도 교육지원청이 부담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옛말에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고 했죠. 없는 자리에 한 험담은 학폭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A 군으로선, 있는 자리든 없는 자리든 남의 험담을 해선 안 된다는 확실한 교훈을 얻었을 겁니다.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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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는 자리에서 급우 엄마 험담, 학폭 아니다”
    • 입력 2022-06-05 07:02:52
    취재K

같은 반 급우의 어머니를 향해 심한 험담, 이른바 '패드립'을 한 고등학생 A 군이 있습니다. 이 일로 A 군은 학교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처분이 억울했던 A 군, 자신의 잘못이 학폭인지 아닌지 법원에 판단을 물었습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둘만의 대화에서 나온 험담

사건은 지난해 6월, 경북 모 고등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A 군은 친구 B 군과 잡담을 나누던 중 문득 같은 반 C 군에 대한 험담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본인도 심하다고 판단했는지 "이거 진짜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며 말을 끊습니다. 하지만 B 군의 중단된 말 뒤에 뭐가 있을지 궁금했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며 말해 달라고 재촉합니다. 결국, A 군은 C 군 어머니에 대해 험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B 군은 C 군에게 이 내용을 전달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C 군, 당연히 화가 많이 났겠죠. A 군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고, 이후 해당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는 A 군에게 '서면 사과를 하라'고 의결했습니다.

A 군도 억울했습니다. 무엇보다 C 군에게 직접 얘기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설령 이 발언이 학폭에 해당하더라도 학폭 가해자 신세가 되면서 앞으로의 불이익이 너무 크다고 봤습니다. 결국, A 군과 부모는 법원에 판단을 구했습니다.

■ "부적절한 행동이지만 학폭 인정 안 돼"

법원은 먼저 A 군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에 해당한다고 적시했습니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둘만의 대화 과정에서 이뤄진 발언이었다는데 주목했습니다.

SNS나 메신저 등 전파성이 높은 통신수단을 매개로 한 행위가 아니었고, A 군이 친구 B 군의 비밀보장 약속을 믿은 만큼 자신이 한 발언이 피해 학생에게 전달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그래서 형법상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A 군의 발언은 친구 사이 은밀한 대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C 군에게 직접 심리적 정신적 손해를 입히기 위한 공격 의도가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사후적으로 대화 내용이 피해 학생에게 유출됐다는 이유만으로 A 군의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재판부는 교육지원청의 서면사과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도 교육지원청이 부담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옛말에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고 했죠. 없는 자리에 한 험담은 학폭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A 군으로선, 있는 자리든 없는 자리든 남의 험담을 해선 안 된다는 확실한 교훈을 얻었을 겁니다.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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