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취재, 돌아온 건 처벌”…‘여권법’ 문제 없나

입력 2022.06.06 (08:06) 수정 2022.06.0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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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에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 이반 스크리프누크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어머니 루바는 관 속 이반의 손에 입을 맞추고,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우크라이나 현지를 취재한 사진가 장진영 씨는 이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사진  제공: 사진가 장진영사진 제공: 사진가 장진영

■ 목숨 건 취재…돌아온 건 처벌

장 씨는 지난 3월 5일 우크라이나에 입국했습니다. 20일간 르비우와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다녔고, 전쟁의 참상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장 씨는 우크라이나로 향한 이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남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보고 싶었다고.

"국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뉴스를 보다 보니까, 거의 대부분이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언론을 주 소스로 해서 뉴스가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남의 시선, 남의 눈을 통해서 보는 이미지가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 장진영 사진가


한국으로 돌아온 장 씨는 우크라이나에서 찍은 사진을 국내 매체에 실었습니다. 하지만 장 씨 이름 대신 가명을 썼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경찰은 장 씨를 여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정부의 허가 없이 전쟁 지역인 우크라이나에 불법으로 입국했다는 이유였습니다.


■ 분쟁지역 취재 제한하는 여권법…'허가제는 한국뿐'

지난 2월, 외교부는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여행금지제도는 2007년 샘물교회 선교사 피랍 사건으로 도입됐습니다.

현행 여권법에 따르면, 외교부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 지역' 방문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하겠다며 무단 출국한 해군특수전전단 대위 출신 유튜버 이근 씨도 이 혐의로 조사를 받을 예정입니다.


언론인의 취재도 예외는 아닙니다. 취재·보도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같은 전쟁 국가에 입국하기 위해선 외교부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허가받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장 씨가 여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장 씨는 "취재가 허가제로 진행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면서 "분쟁지역 취재를 제한하기보다는 위험을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전수칙이라든가 응급처치법이라든가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고민해야죠. 위험하기 때문에 무조건 가지 말라는 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라고 생각합니다."
- 장진영 사진가

■'국민 안전 VS 국민의 알 권리'…여권법 문제없나?
지난 4월 15일, 유럽 주재 한국 특파원단은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외교부가 언론사 소속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입국을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까다로운 조건 탓에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취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는 예외적 입국을 허용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전선과 가장 먼 서남부 체르니우치주 지역에서만 한국 언론의 취재가 가능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마저도 부족해 ‘한번에 4명 이내’의 언론인이 ‘2박 3일’씩만 체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유럽 주재 특파원 성명서 중

한국 언론인은 '수학여행' 같은 통제 속 취재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 언론인만 우크라이나 입국이 금지된 사이, 해외 언론은 키이우와 르비우 등 주요 도시에 특파원을 파견해 우크라이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장진영 씨는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만난 일본 언론인들의 활동을 전했습니다.

"경험 많은 선배 기자와 후배 기자가 같이 다니며 취재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여권법이 국내 언론의 분쟁지역 취재 역량을 떨어뜨리고 있다."

(인포그래픽: 이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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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06 08:06:18
    • 수정2022-06-06 09:07:48
    취재K

지난 3월 17일,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에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 이반 스크리프누크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어머니 루바는 관 속 이반의 손에 입을 맞추고,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우크라이나 현지를 취재한 사진가 장진영 씨는 이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사진  제공: 사진가 장진영
■ 목숨 건 취재…돌아온 건 처벌

장 씨는 지난 3월 5일 우크라이나에 입국했습니다. 20일간 르비우와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다녔고, 전쟁의 참상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장 씨는 우크라이나로 향한 이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남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보고 싶었다고.

"국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뉴스를 보다 보니까, 거의 대부분이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언론을 주 소스로 해서 뉴스가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남의 시선, 남의 눈을 통해서 보는 이미지가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 장진영 사진가


한국으로 돌아온 장 씨는 우크라이나에서 찍은 사진을 국내 매체에 실었습니다. 하지만 장 씨 이름 대신 가명을 썼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경찰은 장 씨를 여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정부의 허가 없이 전쟁 지역인 우크라이나에 불법으로 입국했다는 이유였습니다.


■ 분쟁지역 취재 제한하는 여권법…'허가제는 한국뿐'

지난 2월, 외교부는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여행금지제도는 2007년 샘물교회 선교사 피랍 사건으로 도입됐습니다.

현행 여권법에 따르면, 외교부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 지역' 방문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하겠다며 무단 출국한 해군특수전전단 대위 출신 유튜버 이근 씨도 이 혐의로 조사를 받을 예정입니다.


언론인의 취재도 예외는 아닙니다. 취재·보도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같은 전쟁 국가에 입국하기 위해선 외교부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허가받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장 씨가 여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장 씨는 "취재가 허가제로 진행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면서 "분쟁지역 취재를 제한하기보다는 위험을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전수칙이라든가 응급처치법이라든가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고민해야죠. 위험하기 때문에 무조건 가지 말라는 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라고 생각합니다."
- 장진영 사진가

■'국민 안전 VS 국민의 알 권리'…여권법 문제없나?
지난 4월 15일, 유럽 주재 한국 특파원단은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외교부가 언론사 소속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입국을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까다로운 조건 탓에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취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는 예외적 입국을 허용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전선과 가장 먼 서남부 체르니우치주 지역에서만 한국 언론의 취재가 가능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마저도 부족해 ‘한번에 4명 이내’의 언론인이 ‘2박 3일’씩만 체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유럽 주재 특파원 성명서 중

한국 언론인은 '수학여행' 같은 통제 속 취재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 언론인만 우크라이나 입국이 금지된 사이, 해외 언론은 키이우와 르비우 등 주요 도시에 특파원을 파견해 우크라이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장진영 씨는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만난 일본 언론인들의 활동을 전했습니다.

"경험 많은 선배 기자와 후배 기자가 같이 다니며 취재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여권법이 국내 언론의 분쟁지역 취재 역량을 떨어뜨리고 있다."

(인포그래픽: 이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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