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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일제강점기 ‘이충무공 유적 보존’ 성금 기탁자 후손 찾는다
입력 2022.06.07 (10:04) 수정 2022.06.07 (10:05) 문화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일제강점기에 이충무공의 묘소와 위토(제사와 관련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토지)를 되찾기 위해 진행된 전국민모금운동에 동참한 성금기탁자들의 후손을 찾습니다.

현충사관리소는 현충사가 중건된 지 90주년을 맞아 ‘이충무공 유적 보존 민족성금 후손 찾기 운동’을 올해 말까지 전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현충사관리소는 12월 31일까지 누리집(http://hcs.cha.go.kr)에 당시 모금에 참여한 성금기탁자 2만여 명과 400여 단체의 이름과 지역 정보를 공개합니다.

자신의 조상이 모금에 동참한 경우 누리집에서 기탁자 이름과 일제강점기 당시 기탁자가 살던 지역명 등을 같이 확인한 후 재적등본이나 족보 등의 입증서류를 제출하면 됩니다.

현충사관리소는 확인 과정을 거쳐 문화재청장 명의의 감사패를 전달하고, 오는 하반기(10월)에 예정된 현충사 중건 90주년 문화행사에 초청할 계획입니다.

현충사는 1706년(숙종 32년)에 처음 세워졌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32년 민족적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민족성금으로 중건된 바 있습니다.

1930년대 초 이충무공 묘소와 위토가 일본은행에 저당 잡혀 경매에 넘어갈 상황이 되자, 1931년 5월 13일 자 동아일보에 ‘2천원에 경매당하는 이충무공의 묘소 위토’라는 제목의 기사와 다음날 민족지사 정인보의 ‘민족적 수치’라는 사설을 통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정인보는 사설을 통해 ‘어찌 충무공의 분묘를 위함뿐이랴. 이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일층 민족문화에 대한 숭앙심과 애착심을 불길질할 필요가 있다’며 온 겨레가 동참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후 1932년 3월까지 약 2만여 명의 사람들과 400여 단체가 성금 모금에 동참해 1만 6천 21원 30전의 민족성금이 모금되었고, 성금과 함께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각계각층의 편지글들이 전달됐습니다.
  • 현충사, 일제강점기 ‘이충무공 유적 보존’ 성금 기탁자 후손 찾는다
    • 입력 2022-06-07 10:04:42
    • 수정2022-06-07 10:05:17
    문화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일제강점기에 이충무공의 묘소와 위토(제사와 관련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토지)를 되찾기 위해 진행된 전국민모금운동에 동참한 성금기탁자들의 후손을 찾습니다.

현충사관리소는 현충사가 중건된 지 90주년을 맞아 ‘이충무공 유적 보존 민족성금 후손 찾기 운동’을 올해 말까지 전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현충사관리소는 12월 31일까지 누리집(http://hcs.cha.go.kr)에 당시 모금에 참여한 성금기탁자 2만여 명과 400여 단체의 이름과 지역 정보를 공개합니다.

자신의 조상이 모금에 동참한 경우 누리집에서 기탁자 이름과 일제강점기 당시 기탁자가 살던 지역명 등을 같이 확인한 후 재적등본이나 족보 등의 입증서류를 제출하면 됩니다.

현충사관리소는 확인 과정을 거쳐 문화재청장 명의의 감사패를 전달하고, 오는 하반기(10월)에 예정된 현충사 중건 90주년 문화행사에 초청할 계획입니다.

현충사는 1706년(숙종 32년)에 처음 세워졌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32년 민족적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민족성금으로 중건된 바 있습니다.

1930년대 초 이충무공 묘소와 위토가 일본은행에 저당 잡혀 경매에 넘어갈 상황이 되자, 1931년 5월 13일 자 동아일보에 ‘2천원에 경매당하는 이충무공의 묘소 위토’라는 제목의 기사와 다음날 민족지사 정인보의 ‘민족적 수치’라는 사설을 통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정인보는 사설을 통해 ‘어찌 충무공의 분묘를 위함뿐이랴. 이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일층 민족문화에 대한 숭앙심과 애착심을 불길질할 필요가 있다’며 온 겨레가 동참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후 1932년 3월까지 약 2만여 명의 사람들과 400여 단체가 성금 모금에 동참해 1만 6천 21원 30전의 민족성금이 모금되었고, 성금과 함께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각계각층의 편지글들이 전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