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주 4일제’ 실험…근무시간 줄어도 생산성 유지할까?

입력 2022.06.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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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차츰 잦아들면서 노동자들의 관심사는 ‘재택근무’에서 ‘출근’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붐비고 막히는 출근길과 오른 점심값 때문에 재택근무를 할 수 없다면 이직이나 퇴사를 하겠다는 노동자가 늘어 IT 기업 중심으로 인력 유출이 관심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업무 방식이 다양해졌고 노동자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재택근무와 함께 ‘주4일제’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영국 기업들이 주4일제에 대한 대대적인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역사적인 실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6일(현지시각)부터 영국에서 70여 개 기업이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 실험에 들어갔다고 보도했습니다. 은행과 투자회사, 병원 등 다양한 업종 종사자 3,300명 이상이 앞으로 6개월 동안 주 4일제 실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번 실험은 주 4일제 적용을 검토해 온 비영리단체 ‘주4일 글로벌(4 Day Week Global)’과 옥스퍼드, 캠브리지, 보스턴 대학 연구진 등이 기획했습니다.

이 실험은 ‘100:80:100 모델’을 기반으로 합니다. 근무시간은 80% 줄이면서 생산성과 임금은 100%를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노동자는 좀 더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과 협력해 주 4일제 시행에 따른 기업 생산성, 노동자의 복지 여건 변화, 환경이나 성 평등성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측정할 예정입니다.

실험을 주도한 줄리엣 스코어 보스턴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적인 실험’이라면서 “실험을 통해 노동자들이 추가로 얻은 휴일에 어떻게 지낼지, 스트레스를 얼마나 줄이고 삶의 만족도는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등을 연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디언은 올해 말에는 스페인과 스코틀랜드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주 4일제 실험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 아이슬란드 “‘주 4일제’ 생산성 유지·증가…번 아웃 감소”

영국보다 먼저 주 4일제 실험을 한 나라도 있습니다. 앞서 아이슬란드는 4년 동안 임금을 줄이지 않고 근무시간을 단축한 주 4일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은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의회와 중앙 정부의 주도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노동자 2,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했습니다. 이는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 인구의 약 1%에 해당합니다. 실험 참여 노동자 중 상당수가 기존 주 40시간에서 35시간 또는 36시간으로 근무시간이 단축됐습니다.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와 아이슬란드의 지속가능민주주의협회(Alda) 연구원들의 분석 결과 근무시간이 줄어든 대부분의 노동 현장에서 업무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스트레스나 번 아웃(burnout·극도의 신체·정신적 피로)을 더 적게 호소했으며, 일과 건강·생활의 균형 등이 개선됐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실험을 토대로 노동조합은 근무 방식을 다시 협상했고, 그 결과 아이슬란드 노동 인력의 86%가 같은 임금으로 더 적은 시간을 근무하거나 근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됐습니다.

주4일제 지지 캠페인 게시물주4일제 지지 캠페인 게시물

■ ‘주 4일제’ 세계적 흐름 되나?…“노동자 삶의 질이 새로운 경쟁력”

이미 많은 나라와 기업이 주 4일제를 시행하거나 시행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유형도 다양합니다.

벨기에는 지난 2월 노동법을 개정해 주 4일제를 공식 도입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하루 최대 9시간 30분 근무해 4일 이내에 주당 근무시간을 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 벨기에의 근무시간은 원칙적으로 주 38시간이며, 최장 하루 8시간을 넘을 수 없게 돼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또 한 주는 더 일하고 그 다음 한 주는 적게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의 요청으로 가능하며, 고용인은 거부 사유를 문서로 제시한다는 조건으로 피고용인의 이 같은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50개 주 가운데 인구가 3,960만 명으로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가 주 4일제 법제화에 나섰습니다.

직원 500명 이상인 기업의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5일)에서 32시간(4일)으로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근무 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은 금지되고, 32시간을 넘겨 일하는 노동자는 정규 급여 1.5배 이상의 수당을 받습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소속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과거 산업 혁명에 기여했던 근무 스케줄을 아직도 고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더 많은 근무시간과 더 나은 생산성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본도 기업 중심으로 속속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히타치는 내년 3월까지 직원 15,000명을 상대로 주 4일제를 시행합니다. 총 근무시간과 임금은 유지되는 방식입니다. NEC와 파나소닉홀딩스, 시오노기제약, 미즈호파이낸셜그룹 등도 주 4일제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노동자가 일하는 방식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게 기업들의 계산입니다.

코로나19도 주4일제 확산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영국 ‘주4일 글로벌’의 조 오커너 최고 운영자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기업들은 노동자의 삶의 질이 경쟁의 새로운 지평이 되고,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량에 집중하는 노동방식이 경쟁력을 높여주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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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주 4일제’ 실험…근무시간 줄어도 생산성 유지할까?
    • 입력 2022-06-08 08: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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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차츰 잦아들면서 노동자들의 관심사는 ‘재택근무’에서 ‘출근’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붐비고 막히는 출근길과 오른 점심값 때문에 재택근무를 할 수 없다면 이직이나 퇴사를 하겠다는 노동자가 늘어 IT 기업 중심으로 인력 유출이 관심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업무 방식이 다양해졌고 노동자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재택근무와 함께 ‘주4일제’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영국 기업들이 주4일제에 대한 대대적인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역사적인 실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6일(현지시각)부터 영국에서 70여 개 기업이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 실험에 들어갔다고 보도했습니다. 은행과 투자회사, 병원 등 다양한 업종 종사자 3,300명 이상이 앞으로 6개월 동안 주 4일제 실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번 실험은 주 4일제 적용을 검토해 온 비영리단체 ‘주4일 글로벌(4 Day Week Global)’과 옥스퍼드, 캠브리지, 보스턴 대학 연구진 등이 기획했습니다.

이 실험은 ‘100:80:100 모델’을 기반으로 합니다. 근무시간은 80% 줄이면서 생산성과 임금은 100%를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노동자는 좀 더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과 협력해 주 4일제 시행에 따른 기업 생산성, 노동자의 복지 여건 변화, 환경이나 성 평등성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측정할 예정입니다.

실험을 주도한 줄리엣 스코어 보스턴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적인 실험’이라면서 “실험을 통해 노동자들이 추가로 얻은 휴일에 어떻게 지낼지, 스트레스를 얼마나 줄이고 삶의 만족도는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등을 연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디언은 올해 말에는 스페인과 스코틀랜드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주 4일제 실험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 아이슬란드 “‘주 4일제’ 생산성 유지·증가…번 아웃 감소”

영국보다 먼저 주 4일제 실험을 한 나라도 있습니다. 앞서 아이슬란드는 4년 동안 임금을 줄이지 않고 근무시간을 단축한 주 4일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은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시의회와 중앙 정부의 주도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노동자 2,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했습니다. 이는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 인구의 약 1%에 해당합니다. 실험 참여 노동자 중 상당수가 기존 주 40시간에서 35시간 또는 36시간으로 근무시간이 단축됐습니다.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와 아이슬란드의 지속가능민주주의협회(Alda) 연구원들의 분석 결과 근무시간이 줄어든 대부분의 노동 현장에서 업무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스트레스나 번 아웃(burnout·극도의 신체·정신적 피로)을 더 적게 호소했으며, 일과 건강·생활의 균형 등이 개선됐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실험을 토대로 노동조합은 근무 방식을 다시 협상했고, 그 결과 아이슬란드 노동 인력의 86%가 같은 임금으로 더 적은 시간을 근무하거나 근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됐습니다.

주4일제 지지 캠페인 게시물
■ ‘주 4일제’ 세계적 흐름 되나?…“노동자 삶의 질이 새로운 경쟁력”

이미 많은 나라와 기업이 주 4일제를 시행하거나 시행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유형도 다양합니다.

벨기에는 지난 2월 노동법을 개정해 주 4일제를 공식 도입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하루 최대 9시간 30분 근무해 4일 이내에 주당 근무시간을 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 벨기에의 근무시간은 원칙적으로 주 38시간이며, 최장 하루 8시간을 넘을 수 없게 돼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또 한 주는 더 일하고 그 다음 한 주는 적게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의 요청으로 가능하며, 고용인은 거부 사유를 문서로 제시한다는 조건으로 피고용인의 이 같은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50개 주 가운데 인구가 3,960만 명으로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가 주 4일제 법제화에 나섰습니다.

직원 500명 이상인 기업의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5일)에서 32시간(4일)으로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근무 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은 금지되고, 32시간을 넘겨 일하는 노동자는 정규 급여 1.5배 이상의 수당을 받습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소속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과거 산업 혁명에 기여했던 근무 스케줄을 아직도 고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더 많은 근무시간과 더 나은 생산성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본도 기업 중심으로 속속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히타치는 내년 3월까지 직원 15,000명을 상대로 주 4일제를 시행합니다. 총 근무시간과 임금은 유지되는 방식입니다. NEC와 파나소닉홀딩스, 시오노기제약, 미즈호파이낸셜그룹 등도 주 4일제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노동자가 일하는 방식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게 기업들의 계산입니다.

코로나19도 주4일제 확산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영국 ‘주4일 글로벌’의 조 오커너 최고 운영자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기업들은 노동자의 삶의 질이 경쟁의 새로운 지평이 되고,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량에 집중하는 노동방식이 경쟁력을 높여주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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