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이제 와서 호들갑?”…씁쓸한 아프리카

입력 2022.06.0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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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 병원에서 이뤄진 원숭이두창 백신 접종 모습 [출처:REUTERS]캐나다 한 병원에서 이뤄진 원숭이두창 백신 접종 모습 [출처:REUTERS]

전세계가 원숭이두창 확산세에 비상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월 6일 전세계 27개 나라에서 780건의 원숭이두창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원숭이두창이 이미 풍토병으로 지정된 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우리 방역당국도 국내 유입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원숭이두창을 2급 감염병으로 지정했습니다.  또 덴마크 바바리안 노르딕사가 개발한 3세대 두창 백신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전세계는 백신 비축에 나섰고, 캐나다 등에서는 밀접접촉자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 아프리카는 사망자만 60여 명…"아프리카 풍토병 될 동안 세계는 뭘 했나"

원숭이두창은 갑자기 새로 나타난 질병이 아닙니다. 아프리카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이 질병으로 고통받아왔고, 풍토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는 말을 환자가 줄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올해 지난해보다도 3배 많은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카메룬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 나이지리아 등 4개국에서 1,4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만 63명에 이릅니다.  '화들짝' 놀라 백신을 사들이고 있는 서방국가들에서는 아직 사망자가 보고되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에서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사용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AP통신은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아흐메드 오그웰 소장 대행을 인용해 "아프리카는 천연두가 발생하면 의료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소량의 백신만 비축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WHO 등 유엔 보건기구의 백신 비축 물량이 한번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원숭이두창을 위해 배포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최근 WHO의 행보는 이와는 대조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WHO는 최근 유럽과 미국 등 아프리카 이외의 국가에서 원숭이두창이 번지자 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특별회의 소집에 이어 비축하고 있는 천연두 백신 사용을 허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프리카 입장에서는 수십 년 동안 모른 척하더니 이른바 '고소득 서방'국가에서 번지기 시작하자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냐는 불만이 나올만합니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모습은 처음이 아닙니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에도 백신불평등이 계속 문제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등의 국가에서 4차 백신 접종까지 추진할 동안 아프리카 전체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2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원숭이두창 보도에 계속 사용된 이 사진은 1996년-1997년 사이 콩고민주공화국(DRC)에서 발생한 원숭이두창 조사 중 촬영된 환자의 손이다.원숭이두창 보도에 계속 사용된 이 사진은 1996년-1997년 사이 콩고민주공화국(DRC)에서 발생한 원숭이두창 조사 중 촬영된 환자의 손이다.

■ 아프리카 언론인들 "유럽 확산에 아프리카 사진 그만써야"

아프리카 언론인협회는 유럽과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주요 언론들이 원숭이두창 기사에 사용하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현재 전세계 언론에서 우려하고 있는 원숭이두창은 영국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발병 사례들인데 대부분이 아프리카 흑인의 발병 사진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사진을 촬영하려는 노력없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자료화면들을 그대로 꺼내 쓰곤 하는 언론들의 관행에 대한 강한 비판입니다.
이 같은 무의식적인 사용이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범아프리카계 언론인들로 구성된 해외언론협회 아프리카지부(FPAA, The Foreign Press Association, Africa)는 성명을 통해 "유럽 또는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원숭이두창에 대해 말하려면 그 지역 병원들의 이미지를 써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적합한 사진이 없다면 세포의 전자 현미경 사진 등을 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이제야 적극적으로 나선 서구…아프리카에도 백신이 도달할까

서구 국가들은 최근 몇 주간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나섰고, 백신 비축에도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연구 성과가 아프리카 저소득국까지 확산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WHO 아프리카 지역본부는 현재 세계 각국이 원숭이두창과의 싸움에서 아프리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세계 각국이 원숭이두창 극복 방법을 찾으면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코로나19 당시처럼 불평등한 백신 접근이 반복될 가능성을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 전세계는 모든 국가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질병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다같이 움직여야 하며  또 연구성과가 공유되어야만  모두가 안전하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국제사회가 보여줬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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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08 13:35:44
    특파원 리포트
캐나다 한 병원에서 이뤄진 원숭이두창 백신 접종 모습 [출처:REUTERS]
전세계가 원숭이두창 확산세에 비상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월 6일 전세계 27개 나라에서 780건의 원숭이두창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원숭이두창이 이미 풍토병으로 지정된 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우리 방역당국도 국내 유입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원숭이두창을 2급 감염병으로 지정했습니다.  또 덴마크 바바리안 노르딕사가 개발한 3세대 두창 백신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전세계는 백신 비축에 나섰고, 캐나다 등에서는 밀접접촉자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 아프리카는 사망자만 60여 명…"아프리카 풍토병 될 동안 세계는 뭘 했나"

원숭이두창은 갑자기 새로 나타난 질병이 아닙니다. 아프리카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이 질병으로 고통받아왔고, 풍토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는 말을 환자가 줄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올해 지난해보다도 3배 많은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카메룬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 나이지리아 등 4개국에서 1,4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만 63명에 이릅니다.  '화들짝' 놀라 백신을 사들이고 있는 서방국가들에서는 아직 사망자가 보고되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에서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사용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AP통신은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아흐메드 오그웰 소장 대행을 인용해 "아프리카는 천연두가 발생하면 의료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소량의 백신만 비축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WHO 등 유엔 보건기구의 백신 비축 물량이 한번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원숭이두창을 위해 배포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최근 WHO의 행보는 이와는 대조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WHO는 최근 유럽과 미국 등 아프리카 이외의 국가에서 원숭이두창이 번지자 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특별회의 소집에 이어 비축하고 있는 천연두 백신 사용을 허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프리카 입장에서는 수십 년 동안 모른 척하더니 이른바 '고소득 서방'국가에서 번지기 시작하자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냐는 불만이 나올만합니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모습은 처음이 아닙니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에도 백신불평등이 계속 문제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등의 국가에서 4차 백신 접종까지 추진할 동안 아프리카 전체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2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원숭이두창 보도에 계속 사용된 이 사진은 1996년-1997년 사이 콩고민주공화국(DRC)에서 발생한 원숭이두창 조사 중 촬영된 환자의 손이다.
■ 아프리카 언론인들 "유럽 확산에 아프리카 사진 그만써야"

아프리카 언론인협회는 유럽과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주요 언론들이 원숭이두창 기사에 사용하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현재 전세계 언론에서 우려하고 있는 원숭이두창은 영국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발병 사례들인데 대부분이 아프리카 흑인의 발병 사진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사진을 촬영하려는 노력없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자료화면들을 그대로 꺼내 쓰곤 하는 언론들의 관행에 대한 강한 비판입니다.
이 같은 무의식적인 사용이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범아프리카계 언론인들로 구성된 해외언론협회 아프리카지부(FPAA, The Foreign Press Association, Africa)는 성명을 통해 "유럽 또는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원숭이두창에 대해 말하려면 그 지역 병원들의 이미지를 써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적합한 사진이 없다면 세포의 전자 현미경 사진 등을 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이제야 적극적으로 나선 서구…아프리카에도 백신이 도달할까

서구 국가들은 최근 몇 주간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나섰고, 백신 비축에도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연구 성과가 아프리카 저소득국까지 확산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WHO 아프리카 지역본부는 현재 세계 각국이 원숭이두창과의 싸움에서 아프리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세계 각국이 원숭이두창 극복 방법을 찾으면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코로나19 당시처럼 불평등한 백신 접근이 반복될 가능성을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 전세계는 모든 국가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질병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다같이 움직여야 하며  또 연구성과가 공유되어야만  모두가 안전하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국제사회가 보여줬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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