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치솟게 내버려두라”는 IMF…왜?

입력 2022.06.08 (14:45) 수정 2022.06.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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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YT '전쟁 나면 뭐라도 하려고 방방 뛰는 정치인들'

"전쟁 나면 정치인들은 머리 잘린 닭처럼 여기저기 내달리며 당장 무슨 소비자 구제책을 낼 수 있는지에 골몰한다"

뉴욕타임스는 <기름값을 내리려는 바이든에겐 '나쁜 선택지' 밖에 없다(2022.6.3)>는 기사에서 고유가 상황에 놓인 정치인들의 처지를 이렇게 신랄하게 비꼰다.

이유는 이렇다. 전쟁 중에 에너지 위기는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에너지 위기로 인한 물가 상승은 '정치인의 선거'에 치명적이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지갑이 홀쭉해진 유권자는 '폭발 직전의 불만'을 안고 투표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내가 이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유권자에게 보여야 한다.

바이든의 처지가 이렇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 당장 사우디에 대한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2019년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비판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을 지목하면서 사우디를 "국제사회의 '왕따 Pariah'로 만들겠다"고 까지 했다. 인권과 자유의 규범을 강조했다.

그렇게 '왕따' 만들겠다던 바이든이 이제 순방 중 사우디를 들를 수 있다고 말하게 됐다. 치솟은 국제유가 때문이다. 점점 다가오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상황에 "기름값 치솟게 내버려 두라"는 IMF의 수상한 제언

"정책입안자들은 높은 국제 가격이 그대로 국내 경제에 반영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그런데 오늘 나온 IMF의 정책 제언이 흥미롭다. 각국 상황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론 국제 가격이 국내에 그대로 반영되도록(Pass Through) 내버려 두라고 했다. 기름값을 예로 들면, 국제 기름값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그대로 국내 휘발유가에 반영되게 두라는 얘기다.

사실 각국은 반대로 하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급상승한 국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그대로 국내 가격에 반영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직접 보조금, 현금이전, 바우처, 공공요금 할인, 소비세 인하 등이 그 방법이다. 가격 충격을 줄이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다. 유류세를 두 차례 인하해서 유가 부담을 줄여주려 하고 있고, 수입돼지고기는 할당 관세로 0% 세율을 적용한다. 김치에 붙는 부가세(소비세)도 한시적으로 폐지한다.

그런데 IMF는 그런 정책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① 정부의 정책 여력이 위축된다

우선 IMF가 반대하는 정책은 '소비자가 얼마나 지출할 여력이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정책이다.

이렇게 국제 가격 충격을 '보편적으로 완화'하는 정책에는 돈이 많이 든다.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손실이 조 단위다. 농축산물 관세나 소비세 인하에도 6천억 원가량의 세수 손실이 발생한다.

당장 이러한 세수 손실 혹은 정부 지출 증대는 부담이다. IMF는 "이 같은 지원책이 안 그래도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하느라 압박을 받는 정부 재정에 새로운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재정지출이 "많은 경우 미래의 다른 공공 서비스 지출을 줄어들게 한다"고 우려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부자 기름값 깎아주느라 미래 복지서비스 예산 깎일 수 있다'는 얘기다.

②부자가 휘발유 더 소비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이 바람직한가?

다른 하나는 시장기능의 역할을 믿어야 한다는 얘기. 값이 비싸지면 수요 공급 원리에 따라 수요가 줄어든다. 그러면 기름을 덜 쓴다. 그러면 더 적은 소비가 달성된다. 바람직한 것 아닌가?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면, 원래 가격에는 휘발유 구매를 안 하려던 사람이 그만큼 더 쓰게 된다. 에너지 소비량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고 이는 곧 비효율이 된다.

게다가 휘발유를 많이 쓰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대중교통보다는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 경차보다는 대형차를 이용하는 사람, 환경 친화적인 차량보다는 비친화적인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

소비 분포가 소득에 따라 늘어나는 상품에 대한 보편적 가격 인하는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라고 IMF는 굳게 믿고 있다.


나라마다 바람직한 정책은 다르다, 그리고 '취약층은 꼭 보호해야 한다'

다만 IMF가 '무조건적인 물가 개입 반대' 입장만 가진 건 아니다. 우선 개별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 등 국가 상황과 발전, 재정 여력에 따라 또 역사적 경로에 따라 정책 믹스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 와서 고압적인 태도로 '무조건 긴축, 또 긴축!'을 주문하던 모습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그리고 '취약계층 보호는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특히 식료품의 경우 그렇다. 빵과 쌀과 밀은 가격이 오른다고 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먹어야 하는 양의 식료품이 있다. 에너지 역시 운송업종 종사자 등에겐 필수적인 상품이다.

물가가 올랐을 때 생업에,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단, 이들을 선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식량과 에너지 안보도 중요한 고려요소다. 안보 차원의 비축 자원 확보나 국가 간 협의와 합의, 그리고 시장 개입은 예외다.

즉, IMF의 조언은 가격(보편적 물가)은 낮추지 말고 내버려두라. 취약층 보호나 에너지-식량안보 같은 특정 가치를 위한 보호(선별적 물가대응)만 하라는 얘기다.


■ 한국의 정책 조합은?

우리 정부는 보편적 감세와 선별적 물가 대응을 동시에 하고 있다.

우리는 유류세를 30% 인하했다. 보편적 감세다. 최근 농축산물 수입 관세나 소비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했다. 역시 보편적 감세에 해당한다. 전기요금도 원가 이하 수준에서 낮게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 부담은 민간기업인 한전이 부담한다. 올해 한전의 적자가 많게는 20조에 이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로 인한 세수 손실, 혹은 전력회사 부실은 미래 정책 여력을 위축시키는 게 사실이다.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손실과 관세, 소비세 인하로 인한 세수 손실은 조 단위에 이른다.

게다가 수입 관세나 소비세 인하가 그대로 소비자 이익이 될 지도 불확실하다. 유류세를 내릴 때마다 석유회사나 주유소가 그 세금 인하로 인한 가격 효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늘 계속되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 수입업자, 또는 국산 김치 유통상들도 그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유류세 추가 인하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다. 빗발치는 요구에도 아직 계획이 없다고 답한다. 세수 여력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대표적 선별적 물가 조치는 경유차 유가보조금이다. 운전이 생계수단인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다.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운임제' 역시 유가 상황을 반영해 추가 운임을 책정한다.(다만 그 부담은 화주가 지게 되어 있다. 정부 부담은 없다.) 화물연대는 이 안전운임제를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해달라며 파업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식료품 바우처 제도와 최저생계비 지원제도도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제도를 더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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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름값 치솟게 내버려두라”는 IMF…왜?
    • 입력 2022-06-08 14:45:24
    • 수정2022-06-08 16:28:30
    취재K

■ NYT '전쟁 나면 뭐라도 하려고 방방 뛰는 정치인들'

"전쟁 나면 정치인들은 머리 잘린 닭처럼 여기저기 내달리며 당장 무슨 소비자 구제책을 낼 수 있는지에 골몰한다"

뉴욕타임스는 <기름값을 내리려는 바이든에겐 '나쁜 선택지' 밖에 없다(2022.6.3)>는 기사에서 고유가 상황에 놓인 정치인들의 처지를 이렇게 신랄하게 비꼰다.

이유는 이렇다. 전쟁 중에 에너지 위기는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에너지 위기로 인한 물가 상승은 '정치인의 선거'에 치명적이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지갑이 홀쭉해진 유권자는 '폭발 직전의 불만'을 안고 투표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내가 이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유권자에게 보여야 한다.

바이든의 처지가 이렇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 당장 사우디에 대한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2019년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비판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을 지목하면서 사우디를 "국제사회의 '왕따 Pariah'로 만들겠다"고 까지 했다. 인권과 자유의 규범을 강조했다.

그렇게 '왕따' 만들겠다던 바이든이 이제 순방 중 사우디를 들를 수 있다고 말하게 됐다. 치솟은 국제유가 때문이다. 점점 다가오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상황에 "기름값 치솟게 내버려 두라"는 IMF의 수상한 제언

"정책입안자들은 높은 국제 가격이 그대로 국내 경제에 반영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그런데 오늘 나온 IMF의 정책 제언이 흥미롭다. 각국 상황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론 국제 가격이 국내에 그대로 반영되도록(Pass Through) 내버려 두라고 했다. 기름값을 예로 들면, 국제 기름값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그대로 국내 휘발유가에 반영되게 두라는 얘기다.

사실 각국은 반대로 하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급상승한 국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그대로 국내 가격에 반영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직접 보조금, 현금이전, 바우처, 공공요금 할인, 소비세 인하 등이 그 방법이다. 가격 충격을 줄이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다. 유류세를 두 차례 인하해서 유가 부담을 줄여주려 하고 있고, 수입돼지고기는 할당 관세로 0% 세율을 적용한다. 김치에 붙는 부가세(소비세)도 한시적으로 폐지한다.

그런데 IMF는 그런 정책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① 정부의 정책 여력이 위축된다

우선 IMF가 반대하는 정책은 '소비자가 얼마나 지출할 여력이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정책이다.

이렇게 국제 가격 충격을 '보편적으로 완화'하는 정책에는 돈이 많이 든다.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손실이 조 단위다. 농축산물 관세나 소비세 인하에도 6천억 원가량의 세수 손실이 발생한다.

당장 이러한 세수 손실 혹은 정부 지출 증대는 부담이다. IMF는 "이 같은 지원책이 안 그래도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하느라 압박을 받는 정부 재정에 새로운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재정지출이 "많은 경우 미래의 다른 공공 서비스 지출을 줄어들게 한다"고 우려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부자 기름값 깎아주느라 미래 복지서비스 예산 깎일 수 있다'는 얘기다.

②부자가 휘발유 더 소비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이 바람직한가?

다른 하나는 시장기능의 역할을 믿어야 한다는 얘기. 값이 비싸지면 수요 공급 원리에 따라 수요가 줄어든다. 그러면 기름을 덜 쓴다. 그러면 더 적은 소비가 달성된다. 바람직한 것 아닌가?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면, 원래 가격에는 휘발유 구매를 안 하려던 사람이 그만큼 더 쓰게 된다. 에너지 소비량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고 이는 곧 비효율이 된다.

게다가 휘발유를 많이 쓰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대중교통보다는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 경차보다는 대형차를 이용하는 사람, 환경 친화적인 차량보다는 비친화적인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

소비 분포가 소득에 따라 늘어나는 상품에 대한 보편적 가격 인하는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라고 IMF는 굳게 믿고 있다.


나라마다 바람직한 정책은 다르다, 그리고 '취약층은 꼭 보호해야 한다'

다만 IMF가 '무조건적인 물가 개입 반대' 입장만 가진 건 아니다. 우선 개별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 등 국가 상황과 발전, 재정 여력에 따라 또 역사적 경로에 따라 정책 믹스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 와서 고압적인 태도로 '무조건 긴축, 또 긴축!'을 주문하던 모습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그리고 '취약계층 보호는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특히 식료품의 경우 그렇다. 빵과 쌀과 밀은 가격이 오른다고 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먹어야 하는 양의 식료품이 있다. 에너지 역시 운송업종 종사자 등에겐 필수적인 상품이다.

물가가 올랐을 때 생업에,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단, 이들을 선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식량과 에너지 안보도 중요한 고려요소다. 안보 차원의 비축 자원 확보나 국가 간 협의와 합의, 그리고 시장 개입은 예외다.

즉, IMF의 조언은 가격(보편적 물가)은 낮추지 말고 내버려두라. 취약층 보호나 에너지-식량안보 같은 특정 가치를 위한 보호(선별적 물가대응)만 하라는 얘기다.


■ 한국의 정책 조합은?

우리 정부는 보편적 감세와 선별적 물가 대응을 동시에 하고 있다.

우리는 유류세를 30% 인하했다. 보편적 감세다. 최근 농축산물 수입 관세나 소비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했다. 역시 보편적 감세에 해당한다. 전기요금도 원가 이하 수준에서 낮게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 부담은 민간기업인 한전이 부담한다. 올해 한전의 적자가 많게는 20조에 이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로 인한 세수 손실, 혹은 전력회사 부실은 미래 정책 여력을 위축시키는 게 사실이다.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손실과 관세, 소비세 인하로 인한 세수 손실은 조 단위에 이른다.

게다가 수입 관세나 소비세 인하가 그대로 소비자 이익이 될 지도 불확실하다. 유류세를 내릴 때마다 석유회사나 주유소가 그 세금 인하로 인한 가격 효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늘 계속되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 수입업자, 또는 국산 김치 유통상들도 그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유류세 추가 인하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다. 빗발치는 요구에도 아직 계획이 없다고 답한다. 세수 여력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대표적 선별적 물가 조치는 경유차 유가보조금이다. 운전이 생계수단인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다.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운임제' 역시 유가 상황을 반영해 추가 운임을 책정한다.(다만 그 부담은 화주가 지게 되어 있다. 정부 부담은 없다.) 화물연대는 이 안전운임제를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해달라며 파업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식료품 바우처 제도와 최저생계비 지원제도도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제도를 더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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