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우 라이브] 함세웅 신부 “윤 대통령, 검사 중심으로만 하려는 단세포적인 생각은 도려내고 초심 간직하길”

입력 2022.06.10 (19:49) 수정 2022.06.1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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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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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오늘, 명동성당에 발 디딜 틈 없이 청년들 밀려와…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었다
- 6.29 선언 다 소화해내지 못한 아쉬움 있어, 전두환씨의 항복까지 받아냈어야
- 6.10 만세운동과 6.10 민주항쟁 연계해서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
-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 50.9%,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국민들의 마음 헤아려야
- '586 용퇴론'이라는 말이 나온 자체가 슬프고 아파, 지적 나오기 전에 최선 다했어야
- 젊은 세대와 정면으로 다투기보다는 초심으로 응답하는 게 옳다고 생각
- 대통령 사면권은 초법적 권한이지만 적절하게 쓸 순간 분명히 있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택 아쉽다
- 윤석열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삼성과 맞선 단호함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종합적인 시각은 부족한 듯

■ 프로그램명 : KBS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 코너명 : <훅 인터뷰>
■ 방송시간 : 6월 10일 (금) 17:05~18:55 KBS1R FM 97.3 MHz
■ 출연자 : 함세웅 신부



◇주진우: 모두를 위한 모두를 향한 모두의 궁금증 <훅 인터뷰>. 35년 전 오늘로 가보겠습니다. 1987년 6월 10일 그때는 민주주의라고 얘기할 수 없었어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았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날의 외침이 거리를 가득 메워서 그래서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던 1987년의 외침, 우리의 민주주의는 잘 가고 있는지, 잘 살아남았는지, 잘 키워야 하는 건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 모셨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함세웅: 안녕하세요.

◇주진우: 6월 10일입니다.

◆함세웅: 반갑습니다.

◇주진우: 35년 전, 6월 10일에 신부님이 몇 살이셨죠? 까마득합니까?

◆함세웅: 45살이었나요.

◇주진우: 그래요? 그때 명동성당에 계셨습니까?

◆함세웅: 네.

◇주진우: 명동성당은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1987년 6월.

◆함세웅: 6월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제 87년 전 단계를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86년부터 상당히 어려웠어요. 5월에 인천 항쟁이 있었고, 또 6월에 권인숙 양이 부천경찰서에서 경찰에 의해서 성고문을 당했고, 또 11월에는 건국대학교에서 전국의 대학생 대표들이 모였는데, 한 2천여 명이 무더기로 전두환 경찰에 의해서 체포되어 갔어요.

◇주진우: 토끼몰이 막 그때 얘기 나왔었죠.

◆함세웅: 끔찍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아주 암울한 그런 시대였었는데, 불길하기도 하고, 그런데 87년 1월 14일에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수사 분실해서 고문으로 숨을 거뒀는데, 경찰이 그걸 조작을 했어요.

◇주진우: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얘기가 나왔죠.

◆함세웅: 이런 내용들이 의사 선생님이라든지 또 기자라든지 또 부검이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밝혀졌고, 영등포 감옥에 갇혀 계셨던 이부영 선생님이 그 내용을 교도관한테 확인해서 또 밖으로 내보내서 그 내용을 저희들이 발표하게 되었는데.

◇주진우: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서.

◆함세웅: 발표 과정에서도 저희들도 조금 힘드니까 고민하는데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혹시 인혁당 사건처럼 그 사람들을 전두환 폭압적인 정권이 살해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시는 거예요. 저희들도 발표를 조금 머뭇거리고 있었던 터에, 김영삼 전 대통령, 그 당시에 신민당인지 그 당의 국회의원들이 치외법권이 있으니까 국회에서 발표하겠다고 해서 너무 잘 됐다고 발표하세요. 그랬더니 그분들이 못하겠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국회의원들이.

◇주진우: 왜요? 무서워서?

◆함세웅: 뭐 당신들도 하여간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이 있었겠죠. 그리고 다시 저희한테 그게 왔어요. 고민 끝에 5월 18일 광주항쟁 7주기 기념 미사 때 명동성당에서 김승훈 신부님께서 그 내용을 발표를 하셨죠. 이 내용이 기폭제가 되면서 6월 항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전에 광주의 신부님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런 명분을 가지고 단식을 하셨고, 전국의 사제들이 한 600여명이 릴레이 단식을 하셨고, 그 당시 5월 3일부터는 고려대학교 교수부터 시작이 되어서 교수들의 연명을 하면서 성명을 발표한 거예요. 그러니까 분위기가 고조되었죠. 그러던 때의 6월 10일이 바로 민정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날이었는데, 우리 청년, 학생들이 이날을 디데이로 잡은 거예요. 그래서 전국에서 “민정당 후보 대통령을 뽑을 때 우리가 전두환 독재 타도를 위해서 들고 일어나자.” 그래서 모여서 했는데, “만일에 흩어지면 명동성당으로 모이자, 제2의 집결지는 명동성당이다.” 그렇게 약속을 했어요, 사전에. 저희들은 전혀 몰랐었죠.

◇주진우: 신부님이 지시하신 거 아닙니까?

◆함세웅: 아니죠. 전혀 모르고, 성당에서 6시에 일 끝나고 다음 일을 하려고 하는데, 막 청년, 학생들이 명동성당으로 막 모여 들어오는 거예요. 한 2시간 만에 그냥 1만여명, 2만여명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명동성당에 꽉 찬 거예요. 저희들도 당황을 했죠. 그래서 성당 문을 다 닫아놨는데, 뜯고 교리실도 뜯고 청년, 학생들이 다 들어가 있고, 그러니까 성당 측에서는 비상인데 김수환 추기경께서 긴급으로 교구청 사제들을 부르신 다음에 위기니까 “여기 들어오신 학생들이나 시민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일단은 성당도 관리하고 이분들을 보호하자.” 그러면서 하루하루 지내다가 닷새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 닷새가 정말 6.10 항쟁의 어떤 기폭제가 되는데, 물론 이제 또 호헌철폐 국민운동본부가 전국적으로 조직이 되어서 운동을 했었는데, 또 명동에 모이신 분들은 나름대로의 구심점이 이루어서 명동성당이 민주주의를 위한 해방구다 이러면서 전두환 독재 정부와 맞섰던 것이었죠. 그 5일의 상황이 아주 긴장이었습니다.

◇주진우: 그때 명동성당에서 학생들한테 문 열어주시고 밥 주시고 신부님이.

◆함세웅: 아니요. 제가 준 게 아니라 마침 그때 노원 쪽에서 철거민들이 쫓겨 오셨었는데, 그분들이 명동성당에 계셨어요. 그 철거민들 그분께서 또 식사도 만들어 주시고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진우: 알겠습니다. 김성수님께서 “명동성당은 한국 민주화의 메카였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요, 6월 항쟁으로 시민들이 이렇게 이제 학생뿐만 아니라 넥타이 부대 그리고 주민들 다 이렇게 몰려와서 군부를 동원하겠다, 군을 동원하겠다는 전두환의 생각은 좌절됐어요. 그래서 이제 손을 들었어요. “그래 알겠다.
직선제로 바꾸겠다. 그리고 헌법도 개정하겠다.“ 이렇게 왔습니다. 근데 신부님 그리고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잖아요.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노태우 당선 그렇죠?

◆함세웅: 네.

◇주진우: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때는 그 모든 사람들이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렇게 하다가 직선제로 갔는데.

◆함세웅: 6월부터 12월까지의 과정이 아주 정말 대드라마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이제 6월 항쟁에서 청년, 학생들이 기초가 되어서 움직였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또 부산 같은 데는 수도자들, 사제들이 또다시 해서 6.29를 끌어내었는데, 그 6.29에 대한 걸 그 당시에 우리 청년, 학생, 시민들이 다 소화를 못 시켰던 것 같아요.

◇주진우: 소화를 못 하다니요.

◆함세웅: 그 말은 거기에 담겨진 저의가 있었잖아요. 저의를 좀 파악하고서 노태우의 항복뿐만이 아니라 전두환의 항복까지 그때 받아냈어야 되는데, 그것을 못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 뒤에 ‘속이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만 결국은 우리 청년, 학생들과 민주화 운동하셨던 분들이 속은 면이 좀 있어요. 이 부분이 가슴이 아픈 거죠. 그때 한계는 김영삼 그 당시에 야당 총재하고 또 김대중 선생님 두 분들이,

◇주진우: 분열.

◆함세웅: 그때는 아직 분열이 안 됐어요. 그분들이 모여서 이 6.29 선언을 수락하느냐, 거부하느냐 논쟁을 하고 또 많은 종교단체, 시민단체 대표들도 모여서 논의를 했는데, 어쨌든지 완벽하지 못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걸 수락하고 나아가자라고 합의를 했어요, 7월 초에. 그래서 그걸 받으면서 나갔는데, 제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그 뒤에 노동자 운동들이 그냥 전국에서 특히 울산, 마산 같은 데, 또 부산에서 있었는데, 제 생각에 노동자들의 운동이 이 독재 타도에 함께 갔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이 제가 하는데.

◇주진우: 다 결합되지 않았군요.

◆함세웅: 예. 노동자들은 또 임금 투쟁 쪽으로 가신 거예요. 이런 부분에서 조금 틈이 생겼고, 그러다가 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그 신민당 내에서도 두 정파가 서로 대통령이 되고 싶기도 하고,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갖는 바람에 이른바 단일화가 안 됐습니다, 이제. 단일화가 안 된 게 나중에 두 분 다 역사적으로 속죄했습니다만 우리 민주주의 운동사에 있어서 큰 상처, 아직까지도 그 상처를 안고 있는 것 같아요.

◇주진우: 87년 대선 직전에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가 외국에서 바로 이렇게 송환되는 장면이 있었고요. 대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주 진영에서 이 대선 패배 이후의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함세웅: 그렇죠, 크죠.

◇주진우: 그때 어떤 생각들이 드셨어요?

◆함세웅: 저는요, 이제 87년 12월 18일이었나 선거일이, 그다음 날 19일이 되겠죠. 아침 미사를 봉헌하는데, 정말 뭐랄까 실망과 좌절, 아픔 가슴이 정말 쓰라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신앙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십자가 예수님의 고통과 상통할 수 있는 또 그 밑에 계신 성모님의 그 고통과 상통할 수 있는 민족적 아픔이랄까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민주주의 실현을 못하고, 여전히 또 군부 독재 후계자가 정권을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 상당히 마음이 아팠어요. 그 마음이 아파서 그때 그 체험이 올해 3월 9일에 또 재현이 되었었는데, 그거를 제가 올해 체험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거는 그때 체험에 비하면 올해 건도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래서 올해의 아픔을 제가 녹였습니다, 쉽게.

◇주진우: 그렇습니까? 알겠어요. 신부님, 6월 10일마다 어떤 생각 드세요? “2022년 6월 10일 신부님은 어떻게 와 닿습니까.” 7480님께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함세웅: 이제 6월 10일이 요새 어떤 분들도 글을 쓰셨는데, 1927년인가요. 순종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장례식 때 일체 치하에서 6.10 만세 항쟁이 있었잖아요. 그 내용인데, 그 내용도 우리가 기억을 자세히 못 하다가 민주주의 6.10 항쟁을 놓쳤는데 6.10항쟁이 일제 때 항고했던 만세 항쟁과 우리 6.10 민주항쟁을 우리가 함께 연계해서 기억해야 되지 않을까. 일제 때 항쟁하셨던 독립투사들의 정신 또 독재항쟁 했던 민주 투사들의 정신, 나아가서 또 며칠 뒤면 6.15인데, 남북의 평화 공존을 위해서 애쓰셨던 그 통일에 대한 열정, 화해. 이 세 물줄기를 합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걸 합하기가 너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주진우: 지방선거, 대선, 지방선거 어떻게 보셨습니까, 신부님?

◆함세웅: 주진우 기자님이 보신 것처럼 저도 똑같이 그렇게 봤어요. 저는 그날 저녁에 이렇게 보다가 기도하고 일찍 잤어요. 그다음 날 일어났더니 그냥 결과가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었는데, 투표에 응하신 분들이 50.9%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투표에 나오지 않으신 분들의 마음을 우리가 헤아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진우: 그렇죠. 투표를 안 함으로써 또 의견을 표명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런 것까지 좀 헤아려야 될 것 같습니다. 민주화운동 6.10을 이끌었던 학생들 대표적인 학생들이 586 기득권이라고 지금 칭해지고 있는데요. 민주화를 위해서 많은 헌신을 하셨는데, 이번 선거 때는 그리고 최근에는 586 용퇴론 계속 나옵니다. 이거 어떻게 보시는지요.

◆함세웅: 그 말 나온 자체가 조금 슬프죠, 아프고. 그런 말이 나오기 전에 당사자들이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더 최선을 다해야 되지 않았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일제시대 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독립운동을 펼치셨던 분들 대표적으로 김원봉 같으신 분들, 이 미국과 또 친일파들에 의해서 세워진 이른바 미군정 하에서 조사를 받고, 또 장택상이나 또 친일파 경찰한테 모욕을 당하고.

◇주진우: 모욕당했죠.

◆함세웅: 그러면서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것이 이제 우리가 기록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데, 물론 각자 자리에서 다 반성을 해야 합니다, 이제. 그래서 현재 정치권에서 일하고 있는 60년, 70년, 80년대 때 애쓰셨던 분들 그 젊은 세대가 그렇게 지적했을 때, 정면으로 다투기보다는 일단은 “내가 참으로 부족했었구나, 초심을 내가 놓쳤었구나, 잃었었구나, 다시 초심으로 가겠습니다, 순수한 그대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 응답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죠.

◇주진우: 신부님은 평생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했다고 이렇게 하셨는데요. 신부님, 신부님이 보는 민주주의는 얼마만큼 와있습니까?

◆함세웅: 그냥 항상 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완결될 수는 없고, 항상 진행형이라는 것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도 늘 완성을 위해서 구원을 향해서 끊임없이 상승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멈춰 있으면 안 돼요. 끊임없이 상승해야 하듯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도 여기면 됐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승하는 과정, 인간의 자기완성과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서 끊임없이 닿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그러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죠.

◇주진우: 영화배우 정우성 씨가 “민주주의는 항상 보살피고 가꿔야 되는 거구나.”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함세웅: 그건 이제 정원사의 관점에서는 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네요. 아주 좋은 표현이네요.

◇주진우: 네. 촛불혁명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신부님, 이명박 사면론, 이재용 사면론 나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함세웅: 제가 의견 표명한다고 반영되겠어요.

◇주진우: 그래도요.

◆함세웅: 저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에 우리 정경심 교수와 또 가석방된 이석기 의원에 대한 특별사면을 요청을 했어요.

◇주진우: 신부님이요?

◆함세웅: 네. 다른 목사님들이 그렇게 같이 하자고 요청하셔서 제가 다른 목사님들과 함께 사면을 요청했는데, 그 뒤에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든지 이런 분에 대한 사면 요청이 와서 저한테 의견을 물어보기에, 저는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때 새 정부가 시작되는 그러한 시점에서 한 시대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그런 선택도 가능할 수 있겠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그 문제를 풀어주고 가면 그다음 정권이 누가 되든지 쉬울 수 있겠다, 그런 논리는 제가 펼쳤어요.

◇주진우: 그래요, 신부님께서?

◆함세웅: 제가 서명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제 의견을 물어보기에 제가 사제로서 그게 어떤 의미에서 미래를 위한 통합을 지향하는 그런 시대가 아닐까. 제가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한 것에 대해서는 늘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죄와는 성격이 다르거든요.

◇주진우: 아니, 그래도 권력을 가지고 그렇게 뇌물을 받고 그랬는데 이게 미래하고 통합하고 이게 관련이 있습니까?

◆함세웅: 주진우 기자님은 그 사실을 파헤치기 위해서 아주 혼신 전력하셨는데, 그건 제가 존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이라는 것은 초법적 권한이거든요. 물론 그걸 남발해서는 안 돼요. 그러나 어떤 때 비상조치로서 이때 이게 특약이에요, 마약과 같이. 이런 약은 한 번 이때 쓸 필요가 있겠다, 그럴 때 써야 돼요. 그때 문재인 대통령이 그 특약을 썼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하는 거죠. 지금은 윤 대통령이 쓰라는 게 아니고, 쓸 때 쓸 사람과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그때가 아니었나 제가 해석을 했던 것이죠.

◇주진우: 지금은 때가 아닙니까?

◆함세웅: 지금은 그때를 놓쳤으니까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주진우: 조금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취임 한 달을 맞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이거는 좀 해줬으면 좀 바라는 점이 있습니까?

◆함세웅: 제가 다른 기회에도 여러 번 얘기를 했는데, 초심, 초심을 간직하고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윤석열 대통령도 어린 시절이 있었잖아요.

◇주진우: 검사 시절.

◆함세웅: 유치원 시절이 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생 시절 그 뒤에 검사 시절이 있는데, 검사도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또 좌천도 당하고 여러 가지 아픔이 있었는데, 저는 윤석열 대통령을 옛날에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모두가 두려워했던 그 삼성을 두려움 없이 조사했었다는 이 하나, 그다음에 김용철 변호사와 같이 뜻을 하면서 삼성을 파헤치고, 삼성의 회장도 구속시킬 정도로 단호함이 있었다는 것은 제가 높이 평가를 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것 요새 정치 행태를 보면 하나는 훌륭했었는데, 종합적인 시각은 조금 조금 부족하구나. 사실 요새 많은 분들이 염려하시는 것은, 5.16 박정희 시대 때나 전두환 군부 시대 때 군인들 중심으로 통치했던 것과 똑같이 이분이 검사 출신이니까 검사들 중심으로만 하려는 거, 이러한 단세포적인 그런 생각은 좀 도려내야 된다, 이런 생각을 제가 하고 싶네요, 그런 내용들.

◇주진우: 알겠습니다. 잘 알아들었겠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함세웅 신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함세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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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진우 라이브] 함세웅 신부 “윤 대통령, 검사 중심으로만 하려는 단세포적인 생각은 도려내고 초심 간직하길”
    • 입력 2022-06-10 19:49:58
    • 수정2022-06-10 19: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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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 만세운동과 6.10 민주항쟁 연계해서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
-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 50.9%,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국민들의 마음 헤아려야
- '586 용퇴론'이라는 말이 나온 자체가 슬프고 아파, 지적 나오기 전에 최선 다했어야
- 젊은 세대와 정면으로 다투기보다는 초심으로 응답하는 게 옳다고 생각
- 대통령 사면권은 초법적 권한이지만 적절하게 쓸 순간 분명히 있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택 아쉽다
- 윤석열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삼성과 맞선 단호함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종합적인 시각은 부족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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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시간 : 6월 10일 (금) 17:05~18:55 KBS1R FM 97.3 MHz
■ 출연자 : 함세웅 신부



◇주진우: 모두를 위한 모두를 향한 모두의 궁금증 <훅 인터뷰>. 35년 전 오늘로 가보겠습니다. 1987년 6월 10일 그때는 민주주의라고 얘기할 수 없었어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았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날의 외침이 거리를 가득 메워서 그래서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던 1987년의 외침, 우리의 민주주의는 잘 가고 있는지, 잘 살아남았는지, 잘 키워야 하는 건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 모셨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함세웅: 안녕하세요.

◇주진우: 6월 10일입니다.

◆함세웅: 반갑습니다.

◇주진우: 35년 전, 6월 10일에 신부님이 몇 살이셨죠? 까마득합니까?

◆함세웅: 45살이었나요.

◇주진우: 그래요? 그때 명동성당에 계셨습니까?

◆함세웅: 네.

◇주진우: 명동성당은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1987년 6월.

◆함세웅: 6월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제 87년 전 단계를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86년부터 상당히 어려웠어요. 5월에 인천 항쟁이 있었고, 또 6월에 권인숙 양이 부천경찰서에서 경찰에 의해서 성고문을 당했고, 또 11월에는 건국대학교에서 전국의 대학생 대표들이 모였는데, 한 2천여 명이 무더기로 전두환 경찰에 의해서 체포되어 갔어요.

◇주진우: 토끼몰이 막 그때 얘기 나왔었죠.

◆함세웅: 끔찍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아주 암울한 그런 시대였었는데, 불길하기도 하고, 그런데 87년 1월 14일에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수사 분실해서 고문으로 숨을 거뒀는데, 경찰이 그걸 조작을 했어요.

◇주진우: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얘기가 나왔죠.

◆함세웅: 이런 내용들이 의사 선생님이라든지 또 기자라든지 또 부검이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밝혀졌고, 영등포 감옥에 갇혀 계셨던 이부영 선생님이 그 내용을 교도관한테 확인해서 또 밖으로 내보내서 그 내용을 저희들이 발표하게 되었는데.

◇주진우: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서.

◆함세웅: 발표 과정에서도 저희들도 조금 힘드니까 고민하는데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혹시 인혁당 사건처럼 그 사람들을 전두환 폭압적인 정권이 살해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시는 거예요. 저희들도 발표를 조금 머뭇거리고 있었던 터에, 김영삼 전 대통령, 그 당시에 신민당인지 그 당의 국회의원들이 치외법권이 있으니까 국회에서 발표하겠다고 해서 너무 잘 됐다고 발표하세요. 그랬더니 그분들이 못하겠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국회의원들이.

◇주진우: 왜요? 무서워서?

◆함세웅: 뭐 당신들도 하여간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이 있었겠죠. 그리고 다시 저희한테 그게 왔어요. 고민 끝에 5월 18일 광주항쟁 7주기 기념 미사 때 명동성당에서 김승훈 신부님께서 그 내용을 발표를 하셨죠. 이 내용이 기폭제가 되면서 6월 항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전에 광주의 신부님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런 명분을 가지고 단식을 하셨고, 전국의 사제들이 한 600여명이 릴레이 단식을 하셨고, 그 당시 5월 3일부터는 고려대학교 교수부터 시작이 되어서 교수들의 연명을 하면서 성명을 발표한 거예요. 그러니까 분위기가 고조되었죠. 그러던 때의 6월 10일이 바로 민정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날이었는데, 우리 청년, 학생들이 이날을 디데이로 잡은 거예요. 그래서 전국에서 “민정당 후보 대통령을 뽑을 때 우리가 전두환 독재 타도를 위해서 들고 일어나자.” 그래서 모여서 했는데, “만일에 흩어지면 명동성당으로 모이자, 제2의 집결지는 명동성당이다.” 그렇게 약속을 했어요, 사전에. 저희들은 전혀 몰랐었죠.

◇주진우: 신부님이 지시하신 거 아닙니까?

◆함세웅: 아니죠. 전혀 모르고, 성당에서 6시에 일 끝나고 다음 일을 하려고 하는데, 막 청년, 학생들이 명동성당으로 막 모여 들어오는 거예요. 한 2시간 만에 그냥 1만여명, 2만여명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명동성당에 꽉 찬 거예요. 저희들도 당황을 했죠. 그래서 성당 문을 다 닫아놨는데, 뜯고 교리실도 뜯고 청년, 학생들이 다 들어가 있고, 그러니까 성당 측에서는 비상인데 김수환 추기경께서 긴급으로 교구청 사제들을 부르신 다음에 위기니까 “여기 들어오신 학생들이나 시민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일단은 성당도 관리하고 이분들을 보호하자.” 그러면서 하루하루 지내다가 닷새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 닷새가 정말 6.10 항쟁의 어떤 기폭제가 되는데, 물론 이제 또 호헌철폐 국민운동본부가 전국적으로 조직이 되어서 운동을 했었는데, 또 명동에 모이신 분들은 나름대로의 구심점이 이루어서 명동성당이 민주주의를 위한 해방구다 이러면서 전두환 독재 정부와 맞섰던 것이었죠. 그 5일의 상황이 아주 긴장이었습니다.

◇주진우: 그때 명동성당에서 학생들한테 문 열어주시고 밥 주시고 신부님이.

◆함세웅: 아니요. 제가 준 게 아니라 마침 그때 노원 쪽에서 철거민들이 쫓겨 오셨었는데, 그분들이 명동성당에 계셨어요. 그 철거민들 그분께서 또 식사도 만들어 주시고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진우: 알겠습니다. 김성수님께서 “명동성당은 한국 민주화의 메카였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요, 6월 항쟁으로 시민들이 이렇게 이제 학생뿐만 아니라 넥타이 부대 그리고 주민들 다 이렇게 몰려와서 군부를 동원하겠다, 군을 동원하겠다는 전두환의 생각은 좌절됐어요. 그래서 이제 손을 들었어요. “그래 알겠다.
직선제로 바꾸겠다. 그리고 헌법도 개정하겠다.“ 이렇게 왔습니다. 근데 신부님 그리고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잖아요.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노태우 당선 그렇죠?

◆함세웅: 네.

◇주진우: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때는 그 모든 사람들이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렇게 하다가 직선제로 갔는데.

◆함세웅: 6월부터 12월까지의 과정이 아주 정말 대드라마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이제 6월 항쟁에서 청년, 학생들이 기초가 되어서 움직였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또 부산 같은 데는 수도자들, 사제들이 또다시 해서 6.29를 끌어내었는데, 그 6.29에 대한 걸 그 당시에 우리 청년, 학생, 시민들이 다 소화를 못 시켰던 것 같아요.

◇주진우: 소화를 못 하다니요.

◆함세웅: 그 말은 거기에 담겨진 저의가 있었잖아요. 저의를 좀 파악하고서 노태우의 항복뿐만이 아니라 전두환의 항복까지 그때 받아냈어야 되는데, 그것을 못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 뒤에 ‘속이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만 결국은 우리 청년, 학생들과 민주화 운동하셨던 분들이 속은 면이 좀 있어요. 이 부분이 가슴이 아픈 거죠. 그때 한계는 김영삼 그 당시에 야당 총재하고 또 김대중 선생님 두 분들이,

◇주진우: 분열.

◆함세웅: 그때는 아직 분열이 안 됐어요. 그분들이 모여서 이 6.29 선언을 수락하느냐, 거부하느냐 논쟁을 하고 또 많은 종교단체, 시민단체 대표들도 모여서 논의를 했는데, 어쨌든지 완벽하지 못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걸 수락하고 나아가자라고 합의를 했어요, 7월 초에. 그래서 그걸 받으면서 나갔는데, 제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그 뒤에 노동자 운동들이 그냥 전국에서 특히 울산, 마산 같은 데, 또 부산에서 있었는데, 제 생각에 노동자들의 운동이 이 독재 타도에 함께 갔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이 제가 하는데.

◇주진우: 다 결합되지 않았군요.

◆함세웅: 예. 노동자들은 또 임금 투쟁 쪽으로 가신 거예요. 이런 부분에서 조금 틈이 생겼고, 그러다가 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그 신민당 내에서도 두 정파가 서로 대통령이 되고 싶기도 하고,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갖는 바람에 이른바 단일화가 안 됐습니다, 이제. 단일화가 안 된 게 나중에 두 분 다 역사적으로 속죄했습니다만 우리 민주주의 운동사에 있어서 큰 상처, 아직까지도 그 상처를 안고 있는 것 같아요.

◇주진우: 87년 대선 직전에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가 외국에서 바로 이렇게 송환되는 장면이 있었고요. 대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주 진영에서 이 대선 패배 이후의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함세웅: 그렇죠, 크죠.

◇주진우: 그때 어떤 생각들이 드셨어요?

◆함세웅: 저는요, 이제 87년 12월 18일이었나 선거일이, 그다음 날 19일이 되겠죠. 아침 미사를 봉헌하는데, 정말 뭐랄까 실망과 좌절, 아픔 가슴이 정말 쓰라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신앙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십자가 예수님의 고통과 상통할 수 있는 또 그 밑에 계신 성모님의 그 고통과 상통할 수 있는 민족적 아픔이랄까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민주주의 실현을 못하고, 여전히 또 군부 독재 후계자가 정권을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 상당히 마음이 아팠어요. 그 마음이 아파서 그때 그 체험이 올해 3월 9일에 또 재현이 되었었는데, 그거를 제가 올해 체험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거는 그때 체험에 비하면 올해 건도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래서 올해의 아픔을 제가 녹였습니다, 쉽게.

◇주진우: 그렇습니까? 알겠어요. 신부님, 6월 10일마다 어떤 생각 드세요? “2022년 6월 10일 신부님은 어떻게 와 닿습니까.” 7480님께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함세웅: 이제 6월 10일이 요새 어떤 분들도 글을 쓰셨는데, 1927년인가요. 순종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장례식 때 일체 치하에서 6.10 만세 항쟁이 있었잖아요. 그 내용인데, 그 내용도 우리가 기억을 자세히 못 하다가 민주주의 6.10 항쟁을 놓쳤는데 6.10항쟁이 일제 때 항고했던 만세 항쟁과 우리 6.10 민주항쟁을 우리가 함께 연계해서 기억해야 되지 않을까. 일제 때 항쟁하셨던 독립투사들의 정신 또 독재항쟁 했던 민주 투사들의 정신, 나아가서 또 며칠 뒤면 6.15인데, 남북의 평화 공존을 위해서 애쓰셨던 그 통일에 대한 열정, 화해. 이 세 물줄기를 합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걸 합하기가 너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주진우: 지방선거, 대선, 지방선거 어떻게 보셨습니까, 신부님?

◆함세웅: 주진우 기자님이 보신 것처럼 저도 똑같이 그렇게 봤어요. 저는 그날 저녁에 이렇게 보다가 기도하고 일찍 잤어요. 그다음 날 일어났더니 그냥 결과가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었는데, 투표에 응하신 분들이 50.9%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투표에 나오지 않으신 분들의 마음을 우리가 헤아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진우: 그렇죠. 투표를 안 함으로써 또 의견을 표명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런 것까지 좀 헤아려야 될 것 같습니다. 민주화운동 6.10을 이끌었던 학생들 대표적인 학생들이 586 기득권이라고 지금 칭해지고 있는데요. 민주화를 위해서 많은 헌신을 하셨는데, 이번 선거 때는 그리고 최근에는 586 용퇴론 계속 나옵니다. 이거 어떻게 보시는지요.

◆함세웅: 그 말 나온 자체가 조금 슬프죠, 아프고. 그런 말이 나오기 전에 당사자들이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더 최선을 다해야 되지 않았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일제시대 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독립운동을 펼치셨던 분들 대표적으로 김원봉 같으신 분들, 이 미국과 또 친일파들에 의해서 세워진 이른바 미군정 하에서 조사를 받고, 또 장택상이나 또 친일파 경찰한테 모욕을 당하고.

◇주진우: 모욕당했죠.

◆함세웅: 그러면서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것이 이제 우리가 기록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데, 물론 각자 자리에서 다 반성을 해야 합니다, 이제. 그래서 현재 정치권에서 일하고 있는 60년, 70년, 80년대 때 애쓰셨던 분들 그 젊은 세대가 그렇게 지적했을 때, 정면으로 다투기보다는 일단은 “내가 참으로 부족했었구나, 초심을 내가 놓쳤었구나, 잃었었구나, 다시 초심으로 가겠습니다, 순수한 그대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 응답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죠.

◇주진우: 신부님은 평생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했다고 이렇게 하셨는데요. 신부님, 신부님이 보는 민주주의는 얼마만큼 와있습니까?

◆함세웅: 그냥 항상 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완결될 수는 없고, 항상 진행형이라는 것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도 늘 완성을 위해서 구원을 향해서 끊임없이 상승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멈춰 있으면 안 돼요. 끊임없이 상승해야 하듯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도 여기면 됐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승하는 과정, 인간의 자기완성과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서 끊임없이 닿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그러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죠.

◇주진우: 영화배우 정우성 씨가 “민주주의는 항상 보살피고 가꿔야 되는 거구나.”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함세웅: 그건 이제 정원사의 관점에서는 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네요. 아주 좋은 표현이네요.

◇주진우: 네. 촛불혁명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신부님, 이명박 사면론, 이재용 사면론 나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함세웅: 제가 의견 표명한다고 반영되겠어요.

◇주진우: 그래도요.

◆함세웅: 저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에 우리 정경심 교수와 또 가석방된 이석기 의원에 대한 특별사면을 요청을 했어요.

◇주진우: 신부님이요?

◆함세웅: 네. 다른 목사님들이 그렇게 같이 하자고 요청하셔서 제가 다른 목사님들과 함께 사면을 요청했는데, 그 뒤에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든지 이런 분에 대한 사면 요청이 와서 저한테 의견을 물어보기에, 저는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때 새 정부가 시작되는 그러한 시점에서 한 시대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그런 선택도 가능할 수 있겠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그 문제를 풀어주고 가면 그다음 정권이 누가 되든지 쉬울 수 있겠다, 그런 논리는 제가 펼쳤어요.

◇주진우: 그래요, 신부님께서?

◆함세웅: 제가 서명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제 의견을 물어보기에 제가 사제로서 그게 어떤 의미에서 미래를 위한 통합을 지향하는 그런 시대가 아닐까. 제가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한 것에 대해서는 늘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죄와는 성격이 다르거든요.

◇주진우: 아니, 그래도 권력을 가지고 그렇게 뇌물을 받고 그랬는데 이게 미래하고 통합하고 이게 관련이 있습니까?

◆함세웅: 주진우 기자님은 그 사실을 파헤치기 위해서 아주 혼신 전력하셨는데, 그건 제가 존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이라는 것은 초법적 권한이거든요. 물론 그걸 남발해서는 안 돼요. 그러나 어떤 때 비상조치로서 이때 이게 특약이에요, 마약과 같이. 이런 약은 한 번 이때 쓸 필요가 있겠다, 그럴 때 써야 돼요. 그때 문재인 대통령이 그 특약을 썼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하는 거죠. 지금은 윤 대통령이 쓰라는 게 아니고, 쓸 때 쓸 사람과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그때가 아니었나 제가 해석을 했던 것이죠.

◇주진우: 지금은 때가 아닙니까?

◆함세웅: 지금은 그때를 놓쳤으니까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주진우: 조금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취임 한 달을 맞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이거는 좀 해줬으면 좀 바라는 점이 있습니까?

◆함세웅: 제가 다른 기회에도 여러 번 얘기를 했는데, 초심, 초심을 간직하고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윤석열 대통령도 어린 시절이 있었잖아요.

◇주진우: 검사 시절.

◆함세웅: 유치원 시절이 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생 시절 그 뒤에 검사 시절이 있는데, 검사도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또 좌천도 당하고 여러 가지 아픔이 있었는데, 저는 윤석열 대통령을 옛날에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모두가 두려워했던 그 삼성을 두려움 없이 조사했었다는 이 하나, 그다음에 김용철 변호사와 같이 뜻을 하면서 삼성을 파헤치고, 삼성의 회장도 구속시킬 정도로 단호함이 있었다는 것은 제가 높이 평가를 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것 요새 정치 행태를 보면 하나는 훌륭했었는데, 종합적인 시각은 조금 조금 부족하구나. 사실 요새 많은 분들이 염려하시는 것은, 5.16 박정희 시대 때나 전두환 군부 시대 때 군인들 중심으로 통치했던 것과 똑같이 이분이 검사 출신이니까 검사들 중심으로만 하려는 거, 이러한 단세포적인 그런 생각은 좀 도려내야 된다, 이런 생각을 제가 하고 싶네요, 그런 내용들.

◇주진우: 알겠습니다. 잘 알아들었겠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함세웅 신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함세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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