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저질렀는데…재벌 3·4세 ‘그들만의 세상’

입력 2022.06.11 (10:00) 수정 2022.06.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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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진이 가장 쉬웠어요?

올해 초 대기업들이 인사를 단행하면서 이런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어느 재벌 집 3세, 혹은 4세가 승진을 했단 내용입니다.

그중 눈에 띄는 기사, 조현민 한진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었습니다. 2018년 조 사장은 직원에게 유리컵을 던졌다는, 이른바 '물컵 갑질'로 회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었습니다. 당시 경찰이 구속영장까지 신청할 정도로 시끄러웠는데,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서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사건 1년여 뒤 조 사장은 한진칼 전무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올해 초 사장까지 고속 승진한 겁니다.

물론 재벌가의 '고속승진'은 흔한 일이지요. 60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자녀세대 승진 속도를 계산해봤더니, 입사 뒤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4.4년이 걸렸습니다. 총수 부모 세대가 5년이 걸린 것에 비해,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자료: CEO스코어)

그런데 더 문제는, 조 사장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자리를 떠난 뒤에도 슬쩍 돌아와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입니다.


■ '일 저지른' 3·4세가 돌아왔다

KBS는 이렇게 '일을 저지른' 뒤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는 총수 자녀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CEO스코어'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 60개 그룹 중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3·4세를 추려봤습니다.

역시 대표적 인물은 재계 1위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 이 부회장은 이병철, 이건희 전 회장을 이은 삼성가 3세입니다. 그를 포함해, 경영에 참여 중인 3·4세는 모두 113명이었습니다.

이 중 범죄에 연루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은 몇명이나 될까요. 언론 기사에 실린 경우만 추려봤습니다. 20명이었습니다.

이 중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매매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횡령, 뇌물 등 경제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9명(삼성 이재용·GS 허태수·CJ 이재현·DL 이해욱·효성 조현준·한국타이어 조현범·OCI 이우현·동국제강 장세주·하이트진로 박태영)이었습니다.

▲직원이나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이나 직원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는 5명(현대 정일선·정문선·한진 조원태·조현민·DL 이해욱)이었습니다. ▲마약류 범죄 3명(한화 김동원·CJ 이선호·두산 박진원) ▲도박 1명(동국제강 장세주) ▲음주폭행 1명(한화 김동선) ▲재물손괴 1명(동국제강 장선익)이었습니다.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벌금을 선고받은 경우, 남매 2명(신세계 정용진·정유경)이었습니다.


■ 유죄 받아도 '전무님, 상무님, 회장님'

이들 중엔 수사를 받아 법원에서 유죄까지 확정된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해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경우나, 아직도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반 대기업 직원이었다면, 이런 논란 뒤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요?

대기업의 취업 규칙을 살펴보니 대부분 형사 사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퇴직' 사유였습니다. 유죄까지 받지 않더라도, 언론에 보도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최소 중징계를 받게 돼 있습니다.

마약 밀반입과 투약 혐의로 구속됐던 CJ 4세 이선호 씨, 그나마 사내에서 징계를 받은 드문 경우입니다. 물론 정직 처분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사건 1년 만에 회사에 복귀해 올해 CJ 제일제당의 임원이 됐습니다.

참여연대의 김남근 변호사는 "재벌들이 마약이라든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면서 "이들이 경영 일선에 바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업 경영이 투명하지 않다는 이미지를 주고,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기업가치도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재벌 3·4세 '그들만의 복귀', 윤리적 문제만이 아니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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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 저질렀는데…재벌 3·4세 ‘그들만의 세상’
    • 입력 2022-06-11 10:00:16
    • 수정2022-06-11 11:08:40
    취재K

■ 승진이 가장 쉬웠어요?

올해 초 대기업들이 인사를 단행하면서 이런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어느 재벌 집 3세, 혹은 4세가 승진을 했단 내용입니다.

그중 눈에 띄는 기사, 조현민 한진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었습니다. 2018년 조 사장은 직원에게 유리컵을 던졌다는, 이른바 '물컵 갑질'로 회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었습니다. 당시 경찰이 구속영장까지 신청할 정도로 시끄러웠는데,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서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사건 1년여 뒤 조 사장은 한진칼 전무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올해 초 사장까지 고속 승진한 겁니다.

물론 재벌가의 '고속승진'은 흔한 일이지요. 60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자녀세대 승진 속도를 계산해봤더니, 입사 뒤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4.4년이 걸렸습니다. 총수 부모 세대가 5년이 걸린 것에 비해,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자료: CEO스코어)

그런데 더 문제는, 조 사장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자리를 떠난 뒤에도 슬쩍 돌아와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입니다.


■ '일 저지른' 3·4세가 돌아왔다

KBS는 이렇게 '일을 저지른' 뒤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는 총수 자녀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CEO스코어'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 60개 그룹 중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3·4세를 추려봤습니다.

역시 대표적 인물은 재계 1위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 이 부회장은 이병철, 이건희 전 회장을 이은 삼성가 3세입니다. 그를 포함해, 경영에 참여 중인 3·4세는 모두 113명이었습니다.

이 중 범죄에 연루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은 몇명이나 될까요. 언론 기사에 실린 경우만 추려봤습니다. 20명이었습니다.

이 중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매매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횡령, 뇌물 등 경제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9명(삼성 이재용·GS 허태수·CJ 이재현·DL 이해욱·효성 조현준·한국타이어 조현범·OCI 이우현·동국제강 장세주·하이트진로 박태영)이었습니다.

▲직원이나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이나 직원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는 5명(현대 정일선·정문선·한진 조원태·조현민·DL 이해욱)이었습니다. ▲마약류 범죄 3명(한화 김동원·CJ 이선호·두산 박진원) ▲도박 1명(동국제강 장세주) ▲음주폭행 1명(한화 김동선) ▲재물손괴 1명(동국제강 장선익)이었습니다.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벌금을 선고받은 경우, 남매 2명(신세계 정용진·정유경)이었습니다.


■ 유죄 받아도 '전무님, 상무님, 회장님'

이들 중엔 수사를 받아 법원에서 유죄까지 확정된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해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경우나, 아직도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반 대기업 직원이었다면, 이런 논란 뒤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요?

대기업의 취업 규칙을 살펴보니 대부분 형사 사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퇴직' 사유였습니다. 유죄까지 받지 않더라도, 언론에 보도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최소 중징계를 받게 돼 있습니다.

마약 밀반입과 투약 혐의로 구속됐던 CJ 4세 이선호 씨, 그나마 사내에서 징계를 받은 드문 경우입니다. 물론 정직 처분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사건 1년 만에 회사에 복귀해 올해 CJ 제일제당의 임원이 됐습니다.

참여연대의 김남근 변호사는 "재벌들이 마약이라든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면서 "이들이 경영 일선에 바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업 경영이 투명하지 않다는 이미지를 주고,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기업가치도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재벌 3·4세 '그들만의 복귀', 윤리적 문제만이 아니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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