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국 인플레이션 ‘8.6%’의 행간 읽기

입력 2022.06.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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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6%

8.6%가 나왔다. 추세가 좀 꺾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전히 전망을 뚫고 올라갔다.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198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놀란 미국 신문들은 48포인트로 큼지막하게 '끔찍한 dreadful' 같은 단어를 내보냈다. 미 증시는 또 주저앉았다. 지난 금요일 나스닥은 3.52% 폭락했다. 나스닥은 6개월 만에 40% 하락했다.

8.6%라는 숫자에 파월 미국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더 놀랐을까, 바이든 대통령이 더 놀랐을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 11월 바이든에 의해 연임에 성공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 수치는 인플레이션이 중간 선거 전에 잦아들기는 어려워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미국인들의 장바구니는 퍼렇게 멍들고 있다. 내릴 것 같았던 중고차 가격은 1년 전보다 16.1%나 올랐다. 식료품 물가도 11.9%나 올랐다. 소비자물가통계(CPI)에서 1/3을 차지하는 주택임대료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식품이나 에너지처럼 외부 환경에 영향받는 항목을 뺀 기초적인 물가를 보여주는 근원 물가(core inflation)는 6.0%로 소폭 낮아졌다. 그런데 식품이나 에너지 가격이 이번 인플레이션의 핵심(core) 아닌가?

뉴스화면에 우연히 잡힌 미국 물가. 비빔밥이 2만 5천 원 정도, 육회비빔밥은 3만 원가량이다. (사진: SBS 뉴스 캡처)뉴스화면에 우연히 잡힌 미국 물가. 비빔밥이 2만 5천 원 정도, 육회비빔밥은 3만 원가량이다. (사진: SBS 뉴스 캡처)

인플레이션으로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던 CNBC는 이제 '상당한 고통'이 예상된다고 했다. 무디스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미국 소비자들이 월 '346.67달러'를 더 지출하고 있다고 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파월 이전 연준 의장)은 지난 7일 청문회에 참석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환자의 열이 너무 오른다. 이제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야 할 시간이다.

2. 0.75%

인플레이션은 고열을 동반한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열을 식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것이다.

이번 주 열리는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1년에 8번 열린다)에서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p 올릴 가능성이 커졌다(파월 의장은 얼마 전까지 그럴 일 없다고 했다). 연준 위원들은 모두 매의 탈을 쓰고 등장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논의할 것이다. 진짜 금리를 0.75%p 올린다면, 지난 1994년이 이후 처음이 될 것이다.

이 칼을 한 번만 휘두르는 게 아니다. 7월과 9월, 11월, 12월에도 계속 올려야 한다. 이렇게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 시장이 따라가기 어려워진다(지난해 공장을 확장한 대기업이나 새로 문을 연 동네 미용실은 이런 이자율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열이 오른다고 얼음물 속에 환자를 담그면 기절할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그러면 경기침체가 온다. 리세션의 공포가 커진다.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 내년 경기침체가 올 가능성이 80%라고 분석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실러지수를 만든 그 경제학자)는 향후 2년간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50%라고 분석했다. 실러는 소비자들이 경기 하강을 우려해 더 지갑을 닫으면서 리세션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했다.

보통 갤런당 3달러 정도 하는 미국 휘발윳값이 5달러를 넘으면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 있다. 지난 주말 기준 미국의 휘발윳값 평균은 1갤런당 4.97달러였다.(전미자동차협회/AAA)

3. 3.2%

이렇게 금리를 올리면 채권 이자율도 올라간다. 은행이 이자를 더 준다고 하면 채권 발행을 하는 사람(돈 빌리는 사람)은 채권에 더 높은 이자를 적어내야 한다. 그래야 돈을 빌려준다. 지난주(7일) 우리 정부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3.232%를 기록했다. 3년물이 3.2%를 넘은 것은 201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시중 이자율이 오르니 한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려면 3.2% 이자는 받아야겠다는 뜻이다.

금리 인상은 이렇게 돈값이 오르는 것을 말한다. 뭐든 돈이 더 들어간다. 2000년대 중반에도 지금처럼 서둘러 금리를 올렸고 그러자 주택 대출자들은 모기지 이자를 갚지 못했다. 2007년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붕괴됐다.

며칠 전 나온 미시간대 소비자지수(잠정치)는 50.2로 사상 최저치로 나타났다. 코로나로 아껴뒀던 돈을 팍팍 쓰던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경기침체는 이렇게 시작된다.

4.

어떻게든 물가를 잡아야 한다.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계속 부탁한다(여성 인권이나 언론인 암살 문제는 더는 언급 안 할 테니…). 바이든 대통령이 조만간 사우디를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백악관은 원수 같은 중국에 대한 관세인하도 적극 검토 중이다. 소비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낮추면 소비자물가가 내려간다. 지난 3월에도 352개 중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제외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애널리스트들이 '그래 봤자 물가 못 잡는다'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물가 인상은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됐다. 물가 인상률은 보통 전년 동월에 비교한 수치다. 지난해부터 매월 조금씩 올랐으니 이제부터 매월 발표되는 수치들은 더 낮아지기 마련이다. 기저효과가 사라진다. 이렇게라도 물가 인상률이 좀 낮아지려나?

미국의 기준금리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1995년에 또  2005년에도 지금처럼 급격하게 금리를 올렸고 그 때마다 세계 경제는 큰 홍역을 치렀다. 2020년 0%까지 낮춘 기준금리를 올해 연말 2.5%까지 올린다고 해도 사실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금리 수준에 근접할 뿐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이미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미국의 기준금리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1995년에 또 2005년에도 지금처럼 급격하게 금리를 올렸고 그 때마다 세계 경제는 큰 홍역을 치렀다. 2020년 0%까지 낮춘 기준금리를 올해 연말 2.5%까지 올린다고 해도 사실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금리 수준에 근접할 뿐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이미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시계를 2020년 3월로 돌려보자. 외계인의 침공같은 생각도 못한 '바이러스'의 범람에 자본시장은 패닉을 맞았다. 원유 선물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한 번도 당해 본 적이 없는 위기에 대응해 연준(Fed)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규모로 돈을 풀었다. 그렇게 대기업도 자영업자도 시간을 벌었다. 증시 등 자산시장은 파티를 벌였다.

그리고 다시 정상적이고 평범한 금리 환경이 도래한다. 서둘러 금리를 계속 올려도 연말 미국의 기준금리는 대략 2.5% 수준이다. 그런데도 자산 시장은 패닉 직전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낮은데 익숙해졌나 보다. 지구인들은 다시 '평범한' 금리에 익숙해질 때마다 늘 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번엔 얼마를 내야 할까? 이번주 연준이 내밀 청구서는 예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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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미국 인플레이션 ‘8.6%’의 행간 읽기
    • 입력 2022-06-13 07:00:28
    특파원 리포트

1. 8.6%

8.6%가 나왔다. 추세가 좀 꺾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전히 전망을 뚫고 올라갔다.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198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놀란 미국 신문들은 48포인트로 큼지막하게 '끔찍한 dreadful' 같은 단어를 내보냈다. 미 증시는 또 주저앉았다. 지난 금요일 나스닥은 3.52% 폭락했다. 나스닥은 6개월 만에 40% 하락했다.

8.6%라는 숫자에 파월 미국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더 놀랐을까, 바이든 대통령이 더 놀랐을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 11월 바이든에 의해 연임에 성공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 수치는 인플레이션이 중간 선거 전에 잦아들기는 어려워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미국인들의 장바구니는 퍼렇게 멍들고 있다. 내릴 것 같았던 중고차 가격은 1년 전보다 16.1%나 올랐다. 식료품 물가도 11.9%나 올랐다. 소비자물가통계(CPI)에서 1/3을 차지하는 주택임대료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식품이나 에너지처럼 외부 환경에 영향받는 항목을 뺀 기초적인 물가를 보여주는 근원 물가(core inflation)는 6.0%로 소폭 낮아졌다. 그런데 식품이나 에너지 가격이 이번 인플레이션의 핵심(core) 아닌가?

뉴스화면에 우연히 잡힌 미국 물가. 비빔밥이 2만 5천 원 정도, 육회비빔밥은 3만 원가량이다. (사진: SBS 뉴스 캡처)
인플레이션으로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던 CNBC는 이제 '상당한 고통'이 예상된다고 했다. 무디스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미국 소비자들이 월 '346.67달러'를 더 지출하고 있다고 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파월 이전 연준 의장)은 지난 7일 청문회에 참석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환자의 열이 너무 오른다. 이제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야 할 시간이다.

2. 0.75%

인플레이션은 고열을 동반한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열을 식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것이다.

이번 주 열리는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1년에 8번 열린다)에서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p 올릴 가능성이 커졌다(파월 의장은 얼마 전까지 그럴 일 없다고 했다). 연준 위원들은 모두 매의 탈을 쓰고 등장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논의할 것이다. 진짜 금리를 0.75%p 올린다면, 지난 1994년이 이후 처음이 될 것이다.

이 칼을 한 번만 휘두르는 게 아니다. 7월과 9월, 11월, 12월에도 계속 올려야 한다. 이렇게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 시장이 따라가기 어려워진다(지난해 공장을 확장한 대기업이나 새로 문을 연 동네 미용실은 이런 이자율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열이 오른다고 얼음물 속에 환자를 담그면 기절할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그러면 경기침체가 온다. 리세션의 공포가 커진다.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 내년 경기침체가 올 가능성이 80%라고 분석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실러지수를 만든 그 경제학자)는 향후 2년간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50%라고 분석했다. 실러는 소비자들이 경기 하강을 우려해 더 지갑을 닫으면서 리세션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했다.

보통 갤런당 3달러 정도 하는 미국 휘발윳값이 5달러를 넘으면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 있다. 지난 주말 기준 미국의 휘발윳값 평균은 1갤런당 4.97달러였다.(전미자동차협회/AAA)

3. 3.2%

이렇게 금리를 올리면 채권 이자율도 올라간다. 은행이 이자를 더 준다고 하면 채권 발행을 하는 사람(돈 빌리는 사람)은 채권에 더 높은 이자를 적어내야 한다. 그래야 돈을 빌려준다. 지난주(7일) 우리 정부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3.232%를 기록했다. 3년물이 3.2%를 넘은 것은 201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시중 이자율이 오르니 한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려면 3.2% 이자는 받아야겠다는 뜻이다.

금리 인상은 이렇게 돈값이 오르는 것을 말한다. 뭐든 돈이 더 들어간다. 2000년대 중반에도 지금처럼 서둘러 금리를 올렸고 그러자 주택 대출자들은 모기지 이자를 갚지 못했다. 2007년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붕괴됐다.

며칠 전 나온 미시간대 소비자지수(잠정치)는 50.2로 사상 최저치로 나타났다. 코로나로 아껴뒀던 돈을 팍팍 쓰던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경기침체는 이렇게 시작된다.

4.

어떻게든 물가를 잡아야 한다.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계속 부탁한다(여성 인권이나 언론인 암살 문제는 더는 언급 안 할 테니…). 바이든 대통령이 조만간 사우디를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백악관은 원수 같은 중국에 대한 관세인하도 적극 검토 중이다. 소비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낮추면 소비자물가가 내려간다. 지난 3월에도 352개 중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제외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애널리스트들이 '그래 봤자 물가 못 잡는다'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물가 인상은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됐다. 물가 인상률은 보통 전년 동월에 비교한 수치다. 지난해부터 매월 조금씩 올랐으니 이제부터 매월 발표되는 수치들은 더 낮아지기 마련이다. 기저효과가 사라진다. 이렇게라도 물가 인상률이 좀 낮아지려나?

미국의 기준금리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1995년에 또  2005년에도 지금처럼 급격하게 금리를 올렸고 그 때마다 세계 경제는 큰 홍역을 치렀다. 2020년 0%까지 낮춘 기준금리를 올해 연말 2.5%까지 올린다고 해도 사실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금리 수준에 근접할 뿐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이미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시계를 2020년 3월로 돌려보자. 외계인의 침공같은 생각도 못한 '바이러스'의 범람에 자본시장은 패닉을 맞았다. 원유 선물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한 번도 당해 본 적이 없는 위기에 대응해 연준(Fed)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규모로 돈을 풀었다. 그렇게 대기업도 자영업자도 시간을 벌었다. 증시 등 자산시장은 파티를 벌였다.

그리고 다시 정상적이고 평범한 금리 환경이 도래한다. 서둘러 금리를 계속 올려도 연말 미국의 기준금리는 대략 2.5% 수준이다. 그런데도 자산 시장은 패닉 직전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낮은데 익숙해졌나 보다. 지구인들은 다시 '평범한' 금리에 익숙해질 때마다 늘 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번엔 얼마를 내야 할까? 이번주 연준이 내밀 청구서는 예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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