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 실습’은 남성이 더 유리?…인권위 “시대착오”

입력 2022.06.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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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 학생인데, 여성이란 이유로 실습 기회를 적게 받는다면? 또 실습 경험이 부족한 탓에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대부분 '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일이 부산의 한 국립대에서 지속해 일어나자, 학생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개선을 요구하며 진정을 제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인권위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 "취업에도 영향, 불합리"… "해운 회사의 수요 따른 것"

2020년 부산의 한 국립대학교 학생 3명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민간 해운회사에서 위탁하여 실시하는 '현장 실습' 참여 비율이 현저히 낮은데도 학교가 손을 놓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했습니다.

현장 실습 여부는 해운 회사 취업과도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데, 애초에 실습에 참여할 기회가 적다 보니 구직 과정에서도 불리하단 것입니다.

학교 측은 해운 회사의 수요에 따라 현장실습이 진행돼 어쩔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그러면서 해운사가 현장실습을 자사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로 인식하고 관련 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있어, 실습 뒤 장기 승선 근무가 불확실한 여학생 배정 비율을 높이도록 학교가 강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여학생의 현장실습 기회 확대와 취업 경로 다양화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해상 근무라는 해운 산업의 특성상 여성의 근무환경 조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학생 현장실습 인원 강제 할당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해운= 남성 위주 산업' 이라고 전제한 해명으로 보입니다.

인권위는 해당 학교 재학생들을 상대로, 누구 말이 더 타당한지 참고인 조사에 나섰습니다.

"현장 실습은 해운 관련 어떤 종류의 취업에도 유리하다. 그런데 여학생은 성적 등 다른 조건은 좋으나, 현장 실습을 나갈 수 있는 곳이 적다. 여성 해기사(항해사, 기관사, 운항사 등)도 남성과 거의 동일하게 일할 수 있는데도, 여학생은 진입 자체가 어려운 구조라 문제다."
- A 씨 (여성 재학생, 현장실습 경험)

"현장실습 이후 현재 1항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경우 30대 초반이면 관련 면허를 가지게 되는데 아무래도 가족들이 장기간 배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육상직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B 씨 (남성 졸업생, 현장실습 경험)

■ 인권위 "현장실습 관행, 여성 배제 구조 공고화"

인권위는 해당 진술 등을 통해 남성 역시 장기 승선이 불확실한 점이 확인되는 등, 해운업계에서 여성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5년간 해당 학교의 승선실습 현황을 보면 평균적으로 여학생은 39%가 현장실습을 했는데, 남학생은 80% 가 현장실습을 해 차이가 컸습니다.

인권위는 현장실습 여부와 취업률의 상관관계도 확인했습니다.

졸업생 취업률을 성별에 따라 살펴보니, 남학생 취업률은 매해 80% 이상이었고 여학생의 평균 취업률은 61%로 나타났습니다. 취업한 여학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현장실습을 한 여학생의 취업률 평균은 85.2%로 평균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현장실습을 했을 때 취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근거가 충분한 겁니다.

■"성별 균형 확보 방안 마련해야"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권위는 해운 분야가 여성의 진입이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있는 것은, 현장실습에서 여성이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봤습니다. 여성이 현장실습에서 차별받는 관행이, 여성을 해운 분야 노동시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구조를 공고히 한다는 겁니다.

특히 학교는, 여학생보다 남학생을 선호하는 해운 회사의 채용 관행을 적극적으로 고쳐야 함에도 회사측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측에, 승선실습과 관련해 성별 균형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또 학교의 관리감독기관인 해양수산부에도, 국내 선원이 근무하는 선박에 대한 시설현황을 점검해 여성 선원의 승선을 위한 실질적인 개선 조처를 할 것 등을 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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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선 실습’은 남성이 더 유리?…인권위 “시대착오”
    • 입력 2022-06-13 12:00:15
    취재K

같은 학교 학생인데, 여성이란 이유로 실습 기회를 적게 받는다면? 또 실습 경험이 부족한 탓에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대부분 '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일이 부산의 한 국립대에서 지속해 일어나자, 학생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개선을 요구하며 진정을 제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인권위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 "취업에도 영향, 불합리"… "해운 회사의 수요 따른 것"

2020년 부산의 한 국립대학교 학생 3명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민간 해운회사에서 위탁하여 실시하는 '현장 실습' 참여 비율이 현저히 낮은데도 학교가 손을 놓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했습니다.

현장 실습 여부는 해운 회사 취업과도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데, 애초에 실습에 참여할 기회가 적다 보니 구직 과정에서도 불리하단 것입니다.

학교 측은 해운 회사의 수요에 따라 현장실습이 진행돼 어쩔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그러면서 해운사가 현장실습을 자사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로 인식하고 관련 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있어, 실습 뒤 장기 승선 근무가 불확실한 여학생 배정 비율을 높이도록 학교가 강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여학생의 현장실습 기회 확대와 취업 경로 다양화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해상 근무라는 해운 산업의 특성상 여성의 근무환경 조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학생 현장실습 인원 강제 할당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해운= 남성 위주 산업' 이라고 전제한 해명으로 보입니다.

인권위는 해당 학교 재학생들을 상대로, 누구 말이 더 타당한지 참고인 조사에 나섰습니다.

"현장 실습은 해운 관련 어떤 종류의 취업에도 유리하다. 그런데 여학생은 성적 등 다른 조건은 좋으나, 현장 실습을 나갈 수 있는 곳이 적다. 여성 해기사(항해사, 기관사, 운항사 등)도 남성과 거의 동일하게 일할 수 있는데도, 여학생은 진입 자체가 어려운 구조라 문제다."
- A 씨 (여성 재학생, 현장실습 경험)

"현장실습 이후 현재 1항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경우 30대 초반이면 관련 면허를 가지게 되는데 아무래도 가족들이 장기간 배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육상직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B 씨 (남성 졸업생, 현장실습 경험)

■ 인권위 "현장실습 관행, 여성 배제 구조 공고화"

인권위는 해당 진술 등을 통해 남성 역시 장기 승선이 불확실한 점이 확인되는 등, 해운업계에서 여성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5년간 해당 학교의 승선실습 현황을 보면 평균적으로 여학생은 39%가 현장실습을 했는데, 남학생은 80% 가 현장실습을 해 차이가 컸습니다.

인권위는 현장실습 여부와 취업률의 상관관계도 확인했습니다.

졸업생 취업률을 성별에 따라 살펴보니, 남학생 취업률은 매해 80% 이상이었고 여학생의 평균 취업률은 61%로 나타났습니다. 취업한 여학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현장실습을 한 여학생의 취업률 평균은 85.2%로 평균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현장실습을 했을 때 취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근거가 충분한 겁니다.

■"성별 균형 확보 방안 마련해야"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권위는 해운 분야가 여성의 진입이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있는 것은, 현장실습에서 여성이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봤습니다. 여성이 현장실습에서 차별받는 관행이, 여성을 해운 분야 노동시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구조를 공고히 한다는 겁니다.

특히 학교는, 여학생보다 남학생을 선호하는 해운 회사의 채용 관행을 적극적으로 고쳐야 함에도 회사측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측에, 승선실습과 관련해 성별 균형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또 학교의 관리감독기관인 해양수산부에도, 국내 선원이 근무하는 선박에 대한 시설현황을 점검해 여성 선원의 승선을 위한 실질적인 개선 조처를 할 것 등을 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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