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엄마 성으로 바꿔도 종중원”…대법 판결에 종중들 ‘난감’

입력 2022.06.14 (11:30) 수정 2022.06.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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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1988년 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 씨'로 출생 신고된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이 남성은 25살이 된 2013년, 가정법원 허가를 받아 자신의 성을 어머니의 성과 본관으로 고쳐 '이 씨'가 됐습니다.

이 씨는 2015년 어머니가 속한 종중에 종중원 자격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해당 종중은 임원회의에서 이 사안을 논의했지만 부결됐고, 결국 "여성 종중원의 후손, 즉 모계 혈족은 종중원이 될 수 없다"며 이 씨의 종중원 가입을 거절했습니다.

당시 이 종중의 정관상 '회원의 자격'은 '공동시조의 후손으로서 친생관계가 있고 혈족이 성년이 된 남, 여로 구성된다'고만 돼 있었고, 모계 혈족을 종중원으로 받지 않는다는 문구는 없었습니다.

■ "성과 본관 같으면 당연히 종중원" Vs "남성의 후손만 해당"

이 씨는 자신이 어머니 쪽 종중의 구성원 자격이 있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이 씨는 재판에서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하는 후손은 성인이 되면 당연히 종중원이 된다"면서 "원고는 여성 종중원의 아들로 해당 종중의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이므로, 피고 종중의 구성원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종중 측은 "종중은 본질적으로 부계혈족을 전제로 하는 종족단체라는 확고한 관습이 존재한다"면서 "정관에는 구성원을 부계혈족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지만, 이는 위와 같은 종중의 본질적 성격에 비춰 명기할 필요가 없었을 뿐 모계혈족도 종중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고 맞섰습니다.

■ 대법원 "어머니 성본 따른 여성 종중원 후손도 종중원"

1·2심은 "원고가 법원 허가를 받아 성과 본관을 어머니와 같게 바꿨다면, 어머니 쪽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있다"며 이 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급심은 "종중 구성원을 성년 남성으로 제한한 관습법은 2005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무효가 됐다"며, "이에 더해 '여성 종원의 후손은 그 여성 종원이 속한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 관습 내지 관습법이 있더라도, 이는 변화된 우리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아 정당성과 합리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원고가 여성 종원의 후손이라도 공동선조의 분묘 수호와 제사, 종중원 상호 간의 친목 등을 목적으로 구성되는 자연 발생적인 종족집단인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대법원도 동일한 결론을 내놨습니다.

대법원은 " 종중의 공동 선조와 성과 본관이 같은 성인 후손이라면 여성의 후손이든, 남성의 후손이든 종중원에 해당한다"며 어머니 쪽 후손에게도 종중원 자격이 있음을 명시적으로 판결했습니다.

민법 제781조(자의 성과 본)
①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⑥자의 복리를 위하여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자가 미성년자이고 법정대리인이 청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제777조의 규정에 따른 친족 또는 검사가 청구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어 "민법은 출생 시부터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런 사람은 어머니 쪽 종중원에 속하게 되는데, 법원 허가를 받아 성을 바꾼 사람을 출생 당시 성을 바꾼 사람과 다르게 볼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어머니 쪽 성과 본관으로 바꾼 사람은 기존에 속한 종중에서 탈퇴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 쪽 종중의 구성원도 될 수 없다고 본다면 성과 본을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종중 구성원 자격이 원천적으로 박탈되는 셈이 되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도 설명했습니다.

■ 모계 후손도 종중원…종중 '재산 분배'에도 영향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상당한 파장을 낳을 전망입니다.

성과 본을 정정해 모친 쪽 종중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명시적으로 인정되면서, 향후 어머니 성으로 바꾼 사람들이 모계 종중의 재산분배 등에 관여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당한 자산이 축적된 대형 종중들의 경우 △종중 토지 등 자산 매각에 따른 재산 분배 △자녀 장학 혜택 등 종중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조계에선 이런 혜택을 노리고 어머니 쪽 성과 본으로 바꿔 종중원으로 가입하려는 시도가 잦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만 성과 본관 변경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가정법원이 허가하는 만큼, 종중원 자격 취득 목적의 성본변경 신청이 '제도 남용'에 해당돼 상당수 좌절될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가정법원이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당분간 성본 변경신청의 목적과 관련해 엄격한 심사를 진행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여기에 더해 각 종중들은 종중원이 된 지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야 재산의 분배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한하는 식으로 일부 정관을 수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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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엄마 성으로 바꿔도 종중원”…대법 판결에 종중들 ‘난감’
    • 입력 2022-06-14 11:30:50
    • 수정2022-06-14 14:29:14
    취재후·사건후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1988년 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 씨'로 출생 신고된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이 남성은 25살이 된 2013년, 가정법원 허가를 받아 자신의 성을 어머니의 성과 본관으로 고쳐 '이 씨'가 됐습니다.

이 씨는 2015년 어머니가 속한 종중에 종중원 자격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해당 종중은 임원회의에서 이 사안을 논의했지만 부결됐고, 결국 "여성 종중원의 후손, 즉 모계 혈족은 종중원이 될 수 없다"며 이 씨의 종중원 가입을 거절했습니다.

당시 이 종중의 정관상 '회원의 자격'은 '공동시조의 후손으로서 친생관계가 있고 혈족이 성년이 된 남, 여로 구성된다'고만 돼 있었고, 모계 혈족을 종중원으로 받지 않는다는 문구는 없었습니다.

■ "성과 본관 같으면 당연히 종중원" Vs "남성의 후손만 해당"

이 씨는 자신이 어머니 쪽 종중의 구성원 자격이 있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이 씨는 재판에서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하는 후손은 성인이 되면 당연히 종중원이 된다"면서 "원고는 여성 종중원의 아들로 해당 종중의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이므로, 피고 종중의 구성원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종중 측은 "종중은 본질적으로 부계혈족을 전제로 하는 종족단체라는 확고한 관습이 존재한다"면서 "정관에는 구성원을 부계혈족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지만, 이는 위와 같은 종중의 본질적 성격에 비춰 명기할 필요가 없었을 뿐 모계혈족도 종중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고 맞섰습니다.

■ 대법원 "어머니 성본 따른 여성 종중원 후손도 종중원"

1·2심은 "원고가 법원 허가를 받아 성과 본관을 어머니와 같게 바꿨다면, 어머니 쪽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있다"며 이 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급심은 "종중 구성원을 성년 남성으로 제한한 관습법은 2005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무효가 됐다"며, "이에 더해 '여성 종원의 후손은 그 여성 종원이 속한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 관습 내지 관습법이 있더라도, 이는 변화된 우리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아 정당성과 합리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원고가 여성 종원의 후손이라도 공동선조의 분묘 수호와 제사, 종중원 상호 간의 친목 등을 목적으로 구성되는 자연 발생적인 종족집단인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대법원도 동일한 결론을 내놨습니다.

대법원은 " 종중의 공동 선조와 성과 본관이 같은 성인 후손이라면 여성의 후손이든, 남성의 후손이든 종중원에 해당한다"며 어머니 쪽 후손에게도 종중원 자격이 있음을 명시적으로 판결했습니다.

민법 제781조(자의 성과 본)
①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⑥자의 복리를 위하여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자가 미성년자이고 법정대리인이 청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제777조의 규정에 따른 친족 또는 검사가 청구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어 "민법은 출생 시부터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런 사람은 어머니 쪽 종중원에 속하게 되는데, 법원 허가를 받아 성을 바꾼 사람을 출생 당시 성을 바꾼 사람과 다르게 볼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어머니 쪽 성과 본관으로 바꾼 사람은 기존에 속한 종중에서 탈퇴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 쪽 종중의 구성원도 될 수 없다고 본다면 성과 본을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종중 구성원 자격이 원천적으로 박탈되는 셈이 되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도 설명했습니다.

■ 모계 후손도 종중원…종중 '재산 분배'에도 영향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상당한 파장을 낳을 전망입니다.

성과 본을 정정해 모친 쪽 종중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명시적으로 인정되면서, 향후 어머니 성으로 바꾼 사람들이 모계 종중의 재산분배 등에 관여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당한 자산이 축적된 대형 종중들의 경우 △종중 토지 등 자산 매각에 따른 재산 분배 △자녀 장학 혜택 등 종중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조계에선 이런 혜택을 노리고 어머니 쪽 성과 본으로 바꿔 종중원으로 가입하려는 시도가 잦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만 성과 본관 변경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가정법원이 허가하는 만큼, 종중원 자격 취득 목적의 성본변경 신청이 '제도 남용'에 해당돼 상당수 좌절될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가정법원이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당분간 성본 변경신청의 목적과 관련해 엄격한 심사를 진행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여기에 더해 각 종중들은 종중원이 된 지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야 재산의 분배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한하는 식으로 일부 정관을 수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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