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일본 ‘AV 피해 구제법’ 급물살…효과 있을까?

입력 2022.06.16 (07:00) 수정 2022.06.1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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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법무성이 성인 나이 기준이 낮아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을 알기 쉽게 정리한 설명서일본 법무성이 성인 나이 기준이 낮아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을 알기 쉽게 정리한 설명서

일본의 민법상 성인 나이 기준이 지난 4월부터 만 18세로 낮아졌습니다. 메이지 시대인 1876년에 관련법이 생긴 뒤 146년 만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만 18세부터 대출이나 휴대폰, 신용카드의 계약 등이 가능해졌습니다.

성인 나이 기준이 낮아지면서 일본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건 고교생의 성인 비디오(AV) 출연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부모의 동의 없이 맺은 계약은 나중에라도 취소할 수 있었는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AV에 출연한 10대 피해자들이 대거 생겨날 것이라는 우려가 표면화된 겁니다. AV에 출연한 18세 고교생이 나중에 사정이 달라지더라도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를 악용하기 위해 일본의 AV 업계가 성인 나이가 하향 조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본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당장 피해자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며 논의를 시작했고, AV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도 구제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고교생의 AV출연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일러스트레이트 (일본 시민단체 PAPS)고교생의 AV출연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일러스트레이트 (일본 시민단체 PAPS)

일본 시민단체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PAPS)'은 구체적인 피해 유형들을 언급하며 구제 조치를 마련할 것을 호소하며 각 정당에 요망서를 제출했습니다.

"18~20세 전후의 여성들로부터 AV 출연에 관한 피해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아동(15~16살)일 때 고용돼 아이돌이나 유튜버 활동을 하다가 18세 생일이 되면 곧바로 AV를 포함한 성적 촬영을 해야만 했다는 피해 상담이 있다"
- PAPS 홈페이지

여당인 자유민주당은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나이에 상관없이 촬영 후 일정 기간 무조건 출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법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더니 불과 두 달여 만에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본 내 성인비디오(AV) 출연이나 유통에 따른 출연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AV 출연피해방지 구제법'이 어제(15일) 일본 참의원에서 가결됐습니다.

‘AV 출연피해방지 구제법’ 통과 소식을 전하는 NHK뉴스‘AV 출연피해방지 구제법’ 통과 소식을 전하는 NHK뉴스

일본 언론들도 이 문제를 진지한 태도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NHK는 법안 검토 단계부터 성립까지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했습니다.

이 법은 나이가 성별에 관계없이 영상이 공개된 날로부터 1년 동안 계약을 무조건 해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계약 내용에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계약 해지가 가능합니다. 영상의 판매와 유통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엔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됩니다.

'AV출연피해방지구제법'의 골자

■계약
출연 계약은 AV마다 체결한다
촬영의 구체적 내용을 서면으로 교부한다

■촬영이나 공표
뜻에 반하는 성행위는 거절할 수 있다
모든 촬영이 종료되고 난 후로부터 4개월간은 공표를 금지한다

■계약 취소
AV 공표 후 1년간, 무조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번 AV 관련 법의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사실상 성행위 촬영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매춘방지법으로 금지된 '금전 거래를 조건으로 한 성행위'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며 법안에 반대했습니다. 계약 자체를 인정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법은 급속도로 만들었지만 이처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행위에 책임을 두는 시각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일본의 성인 나이가 지난 4월부터 만 18세로 하향 조정됐다. (일본 법무성)일본의 성인 나이가 지난 4월부터 만 18세로 하향 조정됐다. (일본 법무성)

하지만 일본의 국회는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성행위를 촬영한 영상의 판매가 이미 횡행하고 있기에 사실상 법으로 규제가 어렵다고 본 겁니다.

PAPS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이 단체에만 80여 건의 AV 출연 피해 상담이 들어왔고, 그중 20세 미만의 피해자는 20명입니다. 일본 사회가 묵인해 온 AV 산업의 폐해가 성인 나이 하향 조정을 계기로 표면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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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일본 ‘AV 피해 구제법’ 급물살…효과 있을까?
    • 입력 2022-06-16 07:00:09
    • 수정2022-06-16 12:47:13
    특파원 리포트
일본 법무성이 성인 나이 기준이 낮아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을 알기 쉽게 정리한 설명서
일본의 민법상 성인 나이 기준이 지난 4월부터 만 18세로 낮아졌습니다. 메이지 시대인 1876년에 관련법이 생긴 뒤 146년 만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만 18세부터 대출이나 휴대폰, 신용카드의 계약 등이 가능해졌습니다.

성인 나이 기준이 낮아지면서 일본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건 고교생의 성인 비디오(AV) 출연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부모의 동의 없이 맺은 계약은 나중에라도 취소할 수 있었는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AV에 출연한 10대 피해자들이 대거 생겨날 것이라는 우려가 표면화된 겁니다. AV에 출연한 18세 고교생이 나중에 사정이 달라지더라도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를 악용하기 위해 일본의 AV 업계가 성인 나이가 하향 조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본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당장 피해자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며 논의를 시작했고, AV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도 구제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고교생의 AV출연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일러스트레이트 (일본 시민단체 PAPS)
일본 시민단체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PAPS)'은 구체적인 피해 유형들을 언급하며 구제 조치를 마련할 것을 호소하며 각 정당에 요망서를 제출했습니다.

"18~20세 전후의 여성들로부터 AV 출연에 관한 피해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아동(15~16살)일 때 고용돼 아이돌이나 유튜버 활동을 하다가 18세 생일이 되면 곧바로 AV를 포함한 성적 촬영을 해야만 했다는 피해 상담이 있다"
- PAPS 홈페이지

여당인 자유민주당은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나이에 상관없이 촬영 후 일정 기간 무조건 출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법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더니 불과 두 달여 만에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본 내 성인비디오(AV) 출연이나 유통에 따른 출연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AV 출연피해방지 구제법'이 어제(15일) 일본 참의원에서 가결됐습니다.

‘AV 출연피해방지 구제법’ 통과 소식을 전하는 NHK뉴스
일본 언론들도 이 문제를 진지한 태도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NHK는 법안 검토 단계부터 성립까지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했습니다.

이 법은 나이가 성별에 관계없이 영상이 공개된 날로부터 1년 동안 계약을 무조건 해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계약 내용에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계약 해지가 가능합니다. 영상의 판매와 유통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엔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됩니다.

'AV출연피해방지구제법'의 골자

■계약
출연 계약은 AV마다 체결한다
촬영의 구체적 내용을 서면으로 교부한다

■촬영이나 공표
뜻에 반하는 성행위는 거절할 수 있다
모든 촬영이 종료되고 난 후로부터 4개월간은 공표를 금지한다

■계약 취소
AV 공표 후 1년간, 무조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번 AV 관련 법의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사실상 성행위 촬영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매춘방지법으로 금지된 '금전 거래를 조건으로 한 성행위'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며 법안에 반대했습니다. 계약 자체를 인정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법은 급속도로 만들었지만 이처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행위에 책임을 두는 시각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일본의 성인 나이가 지난 4월부터 만 18세로 하향 조정됐다. (일본 법무성)
하지만 일본의 국회는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성행위를 촬영한 영상의 판매가 이미 횡행하고 있기에 사실상 법으로 규제가 어렵다고 본 겁니다.

PAPS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이 단체에만 80여 건의 AV 출연 피해 상담이 들어왔고, 그중 20세 미만의 피해자는 20명입니다. 일본 사회가 묵인해 온 AV 산업의 폐해가 성인 나이 하향 조정을 계기로 표면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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