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 존엄사법’ 국내 첫 발의…‘품위있는 죽음’ 어디까지 왔나?

입력 2022.06.16 (08:00) 수정 2022.06.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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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른바 '조력 존엄사'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어제(1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은 허용됐습니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말기 환자가 죽을 시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조력 존엄사? 의사 조력 자살?

'조력 존엄사'는 의사가 약물을 준비하면 환자 자신이 그 약물을 주입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사가 약물을 직접 환자에게 투여하는 '전통적' 의미의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의사 조력 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인데 이번에 발의된 법안에서는 '조력 존엄사'라고 표현했습니다.

법안에 따르면 '조력 존엄사'는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우선 말기 환자여야 하고, 두 번째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환자 본인이 담당 의사와 전문의 2명에게 조력 존엄사를 하겠다는 요청을 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의료와 윤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의 심사도 거치도록 했습니다.


■ 국민 76.3% "안락사·조력 존엄사 찬성"

동료 국회의원 11명과 함께 이른바 '조력 존엄사'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찬성 여론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 가까이가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2016년 같은 연구팀의 조사에서 찬성 비율이 40% 정도였는데 5년 만에 2배 가까이 높아진 겁니다.

안규백 의원은 "조력 존엄사 등 안락사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높아진 만큼 국회에서 깊이 논의해 제대로 된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조력 존엄사'는 세계적으로도 논쟁적입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을 비롯해 캐나다와 미국 일부 주에서는 허용돼 있지만, 영국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월 "죽음을 앞둔 사람과 함께 해야 하지만 죽음을 유발하거나 자살을 돕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가톨릭 등 종교계의 반대도 큰 상황입니다.

공전 중인 국회가 21대 후반기 원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상임위원회 활동을 시작하면 '조력 존엄사' 법안에 대한 치열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품위 있는 죽음’은 먼 얘기…논의 시작해야

'조력 존엄사' 법안 제출을 뒷받침한 안락사 찬성 여론을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품위 있는 삶뿐만 아니라 품위 있는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인데, 우리 사회에서 준비는 잘 되고 있을까요?

'품위 있는 죽음'은 아직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생소한 개념입니다.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사망자의 약 75%, 4명 중 3명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대표적인 제도인 연명의료결정제도나 호스피스제도 역시 정착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약 130만 명으로 성인 인구의 3%에 불과합니다. 말기 환자의 통증을 보살피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 이용률은 암 환자 기준 겨우 23%였습니다.

영국의 경우 호스피스 병동 이용률이 95%까지 올라가고, 미국도 65세 이상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원혜영 전 의원은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대안으로 호스피스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병상이 부족하다"며 "호스피스 병동은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원 전 의원은 "나아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전장례의향서 작성 그리고 유언장 작성을 통한 유산 기부 등 넓은 의미의 웰 다잉(품위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도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도 3년 뒤인 2025년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입니다.

전문가들은 '조력 존엄사' 법안의 찬반 논쟁에 집중하기보다는, 정책과 제도 논의를 통해 외연이 확장된 품위 있는 죽음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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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력 존엄사법’ 국내 첫 발의…‘품위있는 죽음’ 어디까지 왔나?
    • 입력 2022-06-16 08:00:47
    • 수정2022-06-16 14:54:46
    취재K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른바 '조력 존엄사'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어제(1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은 허용됐습니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말기 환자가 죽을 시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조력 존엄사? 의사 조력 자살?

'조력 존엄사'는 의사가 약물을 준비하면 환자 자신이 그 약물을 주입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사가 약물을 직접 환자에게 투여하는 '전통적' 의미의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의사 조력 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인데 이번에 발의된 법안에서는 '조력 존엄사'라고 표현했습니다.

법안에 따르면 '조력 존엄사'는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우선 말기 환자여야 하고, 두 번째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환자 본인이 담당 의사와 전문의 2명에게 조력 존엄사를 하겠다는 요청을 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의료와 윤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의 심사도 거치도록 했습니다.


■ 국민 76.3% "안락사·조력 존엄사 찬성"

동료 국회의원 11명과 함께 이른바 '조력 존엄사'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찬성 여론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 가까이가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2016년 같은 연구팀의 조사에서 찬성 비율이 40% 정도였는데 5년 만에 2배 가까이 높아진 겁니다.

안규백 의원은 "조력 존엄사 등 안락사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높아진 만큼 국회에서 깊이 논의해 제대로 된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조력 존엄사'는 세계적으로도 논쟁적입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을 비롯해 캐나다와 미국 일부 주에서는 허용돼 있지만, 영국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월 "죽음을 앞둔 사람과 함께 해야 하지만 죽음을 유발하거나 자살을 돕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가톨릭 등 종교계의 반대도 큰 상황입니다.

공전 중인 국회가 21대 후반기 원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상임위원회 활동을 시작하면 '조력 존엄사' 법안에 대한 치열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품위 있는 죽음’은 먼 얘기…논의 시작해야

'조력 존엄사' 법안 제출을 뒷받침한 안락사 찬성 여론을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품위 있는 삶뿐만 아니라 품위 있는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인데, 우리 사회에서 준비는 잘 되고 있을까요?

'품위 있는 죽음'은 아직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생소한 개념입니다.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사망자의 약 75%, 4명 중 3명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대표적인 제도인 연명의료결정제도나 호스피스제도 역시 정착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약 130만 명으로 성인 인구의 3%에 불과합니다. 말기 환자의 통증을 보살피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 이용률은 암 환자 기준 겨우 23%였습니다.

영국의 경우 호스피스 병동 이용률이 95%까지 올라가고, 미국도 65세 이상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원혜영 전 의원은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대안으로 호스피스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병상이 부족하다"며 "호스피스 병동은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원 전 의원은 "나아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전장례의향서 작성 그리고 유언장 작성을 통한 유산 기부 등 넓은 의미의 웰 다잉(품위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도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도 3년 뒤인 2025년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입니다.

전문가들은 '조력 존엄사' 법안의 찬반 논쟁에 집중하기보다는, 정책과 제도 논의를 통해 외연이 확장된 품위 있는 죽음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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